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1
크라켄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위압감이었다.
누가 어느 쪽이 무섭냐고 한다면, 은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후자를 고를 것만 같았다.
“다친 데는 없고?”
“응. 없어.”
“없어?”
“…없어요.”
이상하게 존댓말이 나오는 은하였다.
“은아는?”
“마나가 부족해서 잠이 든 것뿐이래요. 지금 포션 맞았어요.”
“하아….”
“후우….”
은하와 은아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부모님은 걱정을 덜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굳은 얼굴을 걷지 않았다.
“노은하.”
“네.”
목소리를 내리까는 아버지.
은하는 고개를 숙였다.
“누가 거기로 뛰어들래. 왜 아빠 말을 안 듣는 거야.”
“…….”
아버지가 말하는 거기가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었지만 은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죄송, 합니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꺼낸 말은 흔하디흔한 사과의 문구였다.
회귀 전, 그는 전선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면 죄송할 짓을 왜 하는데.’
‘…죄, 죄송합니다. 리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말했을 텐데. 사과할 짓도, 변명할 짓도 만들지 말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할 짓을 왜 하는지.
미안할 걸 알면서도 했다면 더더욱.
그런데 막상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 놓이니 떨어지는 말이 고작 그거였다.
죄송합니다.
회귀 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말.
솔직히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가 죄송한데?
결국 가족들은 살아남았다. 모두가 살았으니 은하로서는 최고의 결과였다.
그런데 뭐가 죄송한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분위기에 눌려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지만, 사실 은하는 자신이 정말 죄송할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아버지.
서글픈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
부모님의 시선을 마주한 은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다시 그 말이 나오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과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회귀 전에는 잃었던 가족들을 구해냈다.
문제는 부모님은 결과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크라켄에게 뛰어간 것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화를 내는 심정 깊은 곳에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늦었다.
“그것뿐이니.”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다시금 은하는 말문이 막혔다.
이 다음에는 뭐라고 말하면 되는지.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기를 바랐지만, 지금 그는 홀로 정답을 찾아야만 했다.
부모님은 지금 화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부모님은,
“다시는 안 그럴게요.”
부모님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은하가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부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앞으로도 그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그래서 더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다음에도 그러면 엄마가 혼낼 거야.”
부모님은 은하를 용서해주었다. 그가 사과를 할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건만, 부모님이 용서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색하게 부모님에게 안긴 은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대로 생각을 포기하고 어린아이처럼 지내기로 했다.
부모님이 바라는 건 그런 모습일 테니까.
이 시간, 다른 사람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겪고 있건만 오로지 은하네 가족들만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벼운 마나 탈진을 겪은 아버지는 은아와 같은 수액을 맞았다. 어머니는 지나다니는 간호사로부터 소독약을 구해서 아버지의 몸에 생긴 찰과상을 치료해주었다.
“어머. 상처가 하나도 없네?”
“…나 괜찮아. 엄마.”
은하에게서 피가 묻은 옷을 벗긴 어머니는 몸에 생채기 하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자고 있는 은아 역시도 상처가 없었으니 동그란 눈을 깜빡일 수밖에.
은하는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어머니의 의심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 옷을 입혀주었다.
“나는 행정처리 좀 받으러 다녀올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특히 은하 너.”
“엄마는 은아 물 뜨러 다녀올게. 여기서 가만히 있어. 응?”
이번 일로 두 사람의 신뢰가 떨어진 은하였다. 한동안 이런 식으로 시달리겠다고 생각한 은하는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며 두 사람을 보내야 했다.
“맛있네.”
홀로 남은 은하는 구호단체 사람들이 나누어주었던 초코파이를 먹었다. 그들로부터 귀엽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하나 더 받을 수 있었다.
허기가 진 그에게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는 값진 보물이었다.
“난 몽쉘이 좋지만. 그래도 힘들 때 먹는 초코파이는 최고지.”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울을 침공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밥을 먹을 틈이 없었다. 지급받은 식량은 그날 저녁에 모두 소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그는 하나 남아 있던 초코파이를 먹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초코파이 하나로 호랑이 같은 힘이 솟아난 그는 그날 편의점이 있는 영역을 사수해냈을 정도였다.
“어디 하나 더 없나. 힘을 써서 그런지 단 게 당기네.”
은아 몫으로 하나가 남아 있었지만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은하는 주변을 뛰어다니는 구호단체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나 더 받을 생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것도 먹어라 꼬마야.”
“아, 감사합….”
그때 눈앞에 불쑥 들이민 초코파이.
은하는 초코파이를 받아들며 감사를 전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앞에 강현철이 있었으니까.
“안 먹고 뭐해? 초코파이 먹고 싶다며?”
현철은 초코파이를 받아든 채 가만히 서 있는 은하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봉지를 뜯어 입에 물려주기까지 했다.
커다란 초코파이 하나를 입에 문 그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이제 죽을 때가 된 건가. 아, 이 녀석은 아직 안 죽는데.
그럼 얘가 드디어 미친 거구나.
아니지, 얘 미친놈이었지.
과거 미친놈의 대명사라고 불리던 는 따로 있었지만.
근데 이 녀석은 왜 여기 있는 거야.
은하는 조용히 현철이 다가온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싸움에 미친 그가 고작 초코파이나 하나 주기 위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누나 때문인가.
현철이 은아와 싸우자는 말이라도 꺼내면 당장이라도 나설 생각이었다. 크라켄이라는 난관을 넘어섰는데, 라는 난관에 봉착해 은아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철이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꼬마. 몇 살이냐?”
“6살인데요.”
“엄청 어리네. 누나는?”
“…10살.”
“누나도 어리네. 그래, 이름은?”
“누나 이름은 왜….”
누나 이름은 왜 물어보는데요.
은하가 삐딱하게 말하려 했을 때였다.
“아니. 누나 이름 말고. 네 이름. 이름이 뭐냐?”
“…노은하.”
“흠, 노은하.”
은하의 이름을 입에 담은 현철이 씩 하고 웃었다.
이, 이거 이 자식!
은하는 현철이 짓는 표정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네가 라고 불리는 놈이라며? 네가 그렇게 몬스터를 잘 죽여? 요즘 여기저기서 네 이름이 들린단 말이지.’
회귀 전, 현철이 은하를 처음 보고 결투를 신청했을 때였으니까.
지금 현철은 그에게 호승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 있어? 있으면 내가 추천해줄 수 있는데.”
“아직 유치원도 졸업 안 했는데요.”
“제길, 너 왜 이리 어린 거야.”
누가 그 수작을 모를 줄 알고.
분명 현철은 그를 아카데미에 집어넣고 플레이어로 양성시킬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결투를 하려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은하였다.
이제 보니 저건 미친놈이 아니라 변태였어!
이게 어디서 싸울 사람이 없어서 싸울 사람을 키우려고 그래!
언젠가 대한민국의 최강자라 불릴 사나이를 변태로 찍어 내리는 은하였다.
“뭐. 그럼 천천히 생각해보고.
노은하, 노은하라…. 그래, 기억하고 있을게.”
찍혔다. 그것도 단단히.
은아는 넘어간 모양이었지만, 최악이 아니고 차악이 되었으니 다행이라 여길 수도 없었다.
“꼬마 누나 이름도 물어야죠. 꼬마 이름만 묻고 나오는 거예요?”
“그럼 네가 묻던가. 아까 쟤 눈빛 봤지? 어린 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눈빛이야.”
혜림이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현철에게 끼어들었다. 석장을 바닥에 탕탕 치며 화를 내는 그녀도 은하의 시선을 떠올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대로 넘어가게요?
그건 분명 이었어요, !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
지금 그걸 못 본 척하고 넘어가겠다는 거예요?”
“이니 뭐니 그딴 건 관심 없어. 강한지 안 강한지가 중요하지.”
“머리에 싸움 생각만 들어 있는 바보가!
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거예요?
선녀님의 의 기프트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인데, 은….”
“바보가 뭐냐. 내가 오빠 아니야? 너도 이제 십이좌가 되었으면 말 좀 가려서 해라. 나보다 어린 게.”
“지, 지금 말 다 했어요? 우리들 중에서 가장 국민신고가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데 그래요? 응?”
“됐고. 좀 쉬자. 헬기나 불러.”
“하아, 그래요. 이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말지.”
“배고프다. 중간에 밥 좀 먹고 가자.”
“네, 네.”
“점심, 기대할게.”
“미쳤어요? 내가 점심을 왜 사요!”
“힘을 썼더니 단 게 먹고 싶어졌어. 그냥 나도 초코파이 먹을걸 그랬나?”
“지금 제 말 듣고 있어요?”
“우리 일단 단 거부터 먹으러 가자. 그 다음에 점심을 뭐 먹을지 생각하고.”
멀어지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회귀 전에 만났을 때도 저랬는데 설마 십이좌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이랬는지는 몰랐다.
괜히 로 불릴 이들이 아니었다.
뭐, 누나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네.
강현철의 관심은 그에게 향했다. 현철이 그러니 혜림이 은아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혜림 역시도 은아에 대해 집요하게 알아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초등학생인 은아가 대한민국 최초로 의 기프트를 소지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순간, 은아가 지게 될 하이 리스크를 그녀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우….”
“누나도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저 사람이 십이좌 중에서 나은 사람에 속해도 서포터는 서포터니까.”
“헤헤, 은하야….”
잠꼬대를 하며 안겨드는 은아. 그런 누나를 내려다보며 은하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
☆
은하네 가족이 인천에 도착했을 때에는 크라켄이 출몰하고 다음날 저녁이었다.
전화로 미리 연락을 받은 할머니는 집 앞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보도된 사건이었다.
사망자는 약 600여명으로, 현재도 사망자 수색 중.
선녀 정부는 정권 출범부터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건이었으니 할머니는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조상님들께 감사하다고. 그이에게 감사하다고.
이들이 올 때까지 얼마나 감사함을 토했는지.
“어머님 나오셨어요?”
“엄마 왜 나와 있어요. 몸도 편찮은 사람이.”
“너희 보고 싶어서 나와 있었지. 우리 손주들도 좀 보게.”
할머니는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안심했다.
이어서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아파죽지 않을 손주
들을 보기 위해 차에 다가갔다.
“어머.”
그러던 그녀는 뒷좌석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눈웃음을 흘렸다.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그래, 푹 자렴.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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