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14
봄추위에 잠이 깼다.
밤사이에 심하게 몸을 뒤척였는지, 이불 밖으로 발이 삐져나와 있었다.
…어쩐지.
은하는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맸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잠을 자기로 했다.
필시 시간이 되면 어머니가 깨어줄 테니─.
“…하.”
익숙지 않은 천장.
익숙지 않은 공간.
다시금 여기가 어디인지를 자각한 은하는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집을 나온 지 벌써 2주나 지났다.
익숙지 않은 생활도 몸에 익을 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이 생활이 익숙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에 정이 너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선택을 내린 것은 자신이었다.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아카데미에 들어가겠다고.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다.
후회할 생각도 없었지만.
“엄마 말대로 내일부터는 가
디건을 걸치고 자든가 해야지…. 아니지 참, 그냥 난방 빵빵하게 틀어야겠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세금과 그룹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것이었다.
주섬주섬 카디건을 챙기려던 그는 손을 뻗어 난방 리모컨을 쥐었다.
적당히 방을 데우기로 결심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맑은 소리에 섞인 함성.
아침부터 단련을 시작하는 아카데미 학생들의 함성이었다.
은하는 기숙사에 들어온 이후부터 매일 빠짐없이 듣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임 파인!]침대 머리맡에 두고 충전해 놓았던 스마트폰이 소리를 냈다.
시리우스그룹 2대 회장 한도영에게 최신형 기종으로 받은 스마트폰.
플레이어 라이브러리에 기재된 데이터를 일부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아침부터 열심히 울어대고 있었다.
알림이 소리가 나도록 설정한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다.
은하는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었다.
「누나」: 똑똑~
인났어?(오전 06:45)
「누나」: 은하야아아?
일어나!! ( *`ω´)ゞ
(오전 06:47)
「누나」: 오늘 입학식이란 말이야!(오전 06:49)
그만 웃음이 나왔다.
은아는 그가 기숙사로 이전한 뒤로 어머니를 대신해서 그를 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답장을 보낸 은하는 그만 씻기로 했다.
“이런 날에 늦잠을 잘 수는 없지.”
플레이어 중등아카데미 입학식.
이날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이었다.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로,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2월 중순에 기숙사로 이전하고부터 기대되는 마음을 얼마나 억누르고 있었던가.
“…최대한 깨끗이 하고 가야겠지? 면도는…, 아직 안 해도 되겠네.”
두 사람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한 방에는 욕실이 딸려 있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본 은하는 턱을 들어 수염은 나지 않았는지를 확인했다.
수염은 아직 나지 않았다.
올해로 이제 14세였으니.
“음….”
오늘은 이유정을 만나는 날이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최대한 단정하게.
될 수 있으면 첫인상에 호감 가게.
거울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잠옷을 훌러덩 벗었다.
아직 시간도 남았겠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로 했다.
어제도 욕조에 오랫동안 몸을 담갔건만.
“교복은….”
머리를 말리고 옷장을 열었다.
교복이 몇 벌이나 걸려 있었다.
검은색 기조를 바탕으로 금색 선이 두드러지는 블레이저.
그리고 하얀색 기조를 바탕으로 붉은 선이 두드러지는 블레이저.
검은색 블레이저는 아카데미에서 일상적으로 입고 다니는 교복이었고, 하얀색 블레이저는 의장용으로 입는 교복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지급한 교복은 각각 1벌씩이었으며, 나머지는 직접 돈을 주고 사야 했다.
교복자체에 마법이 걸려 있으니.
교복은 땀 흡수마법이나 통풍마법은 물론, 웬만한 더러움을 지워주는 세정마법, 외에도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충격흡수마법이 부여되어 있고, 격한 전투가 아니고서야 찢어지지 않는 질감과 신축성을 자랑하는 고급제품이었다.
국가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지원은 해줄 수 있어도, 최대한의 지원은 해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후원이 필요했고, 시리우스그룹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그는 옷장 하나를 아카데미 교복과 체육복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어디 이상한 데는 없겠지?
은하는 새하얀 색이 낯설었다.
이전 삶에서는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는 걸 당연시하게 여기다 보니, 피가 묻어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칙칙한 색 위주로 옷을 입었다.
그러니 때 한 점 묻지 않은, 맑고 선명한 피가 전신을 지나가는 듯한 교복이 영 익숙지 않았다.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눈매는 진작 포기한 그는 한참이나 거울을 보다 은아에게 구원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엄~청! 잘 어울려!
내 동생이지만 최고야!
(오전 07:57)
“누나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은아는 패션에 깐깐했다.
특히 그의 패션이라면 더더욱.
은아가 괜찮다고 인정한 바였으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준비를 마친 은하는 방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안녕, 대장!”
“왜 이렇게 늦게 내려와? 노은하 너 늦잠 잤지?”
남자기숙사 1층에는 기숙사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먼저 준비를 마친 파랑과 은혁은 식당 창가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을 받은 은하는 두 사람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형, 그 꼴로 갈 거야?”
“뭐가 어때서.” “머리 안 감았어?”
“어제 감았구만, 뭘. 하루에 두 번 감으면 머리에 안 좋아, 임마.”
“적어도 빗질이라도 하지.”
어휴 하고 한숨을 쉬는 은하.
머리에 까치집을 얹은 진파랑은 언짢다는 듯이 꼬리를 팍팍 흔들었다.
꼬리조차 제대로 정돈하지 않았는지 부스스했다.
“너는 아인이 털 관리하기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
“…서나도 저러는 걸까. 아침마다 준비하기 힘들었겠다.” “아니, 그냥 저 형이 게으른 거야.”
중등아카데미 입학식이 있는 날.
새하얀 블레이저를 입은 세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었다.
☆
중등부와 고등부 동시에 진행되는 아카데미 입학식.
식장에 모인 학생들은 부별, 반별로 지정된 좌석에 따라 앉았다.
031기는 총 300명.
027기와 27기는 약 1500여명.
연단을 기점으로 방사형으로 퍼진 좌석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위치가 높아지는 구조였다.
따라서 폭이 제일 좁은 아래층에는 중등아카데미의 학생들이, 폭이 넓어지는 위층에는 고등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나만 다른 반이라니.
의사당 앞에서 친구들을 만난 은하는 들어오는 길에 그들과 헤어졌다.
반 배정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하양과 민지는 5반, 파랑은 8반, 은혁과 서나는 10반이었다.
그리고 그는 6반이었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지 못한 건 섭섭하기는 했어도, 이리 될 줄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수석과 차석을 같은 반으로 해줄 리가 있겠어?
하양은 수석, 그는 차석이었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입학시험에서 상위권에 달하는 성적을 받았다.
앨리스그룹의 후원이 중심이 되는 도안초등학교였다면 모를까, 10대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는 아카데미에서 다 같이 같은 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앞으로 힘들 것이다.
같은 반이어도, 어차피 수업에서 만나게 될 텐데. 그것보다….
6반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해 6반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교관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일에 집중했다.
10반, 9반, 8반….
그렇다면 반대쪽이 1반, 2반.
눈길은 2반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부근에서 멈췄다.
저기 어딘가에─.
─유정이가 있어.
두 번째 삶.
그럼에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유정이 아카데미에서 보낸 날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던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나는 맨날 2반이었어. 신기하지?’
‘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2반, 2반, 2반, 2반…. 그리고 중등아카데미에서도 2반…. 처음에는 이게 되게 지루했었다?’
‘근데?’
‘근데 있지…, 어쩌면 그게 다 너랑 만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더라.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 기억해?’
‘고등아카데미 1학년.’
‘맞아, 고등아카데미 1학년 2반. 그때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세상에 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니까. 척 보기에도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
‘…미안하게 됐다.’
‘누가 걸어오는 시비는 안 피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는 어떻게든 이기려 하고, 상대의 배경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너는 참 대책 없이 살았어. 그치?’
‘…허, 참.’
‘근데…, 그때 너를 만나서 내 삶이 이렇게 바뀌었어.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이 이리도 힘든 데도 살아야 하나 고민했던 날, 네가 바꿔준 거야.’
‘…….’
‘고마워, 은하야. 그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중등아카데미에서부터 유망주에 속했던 이유정.
아무 배경도 없이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했던 노은하.
웬만해서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을 두 사람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어쩌다 그녀는 그가 일으킨 폭력사건의 목격자로 휘말렸다.
교관들은 그 일을 계기로 그녀에게 아카데미에서 문제아로 통했던 그의 교육계를 부탁했던 것이다.
성격도, 행동도, 마음가짐도.
맞는 게 하나도 없었던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그는 이번 삶에서도 그녀와 각별한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지금부터 선력 9년, 플레이어 아카데미 입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 있는 태극기를─.]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어째서 그토록 헌신해준 것이냐고.
어째서 그토록 사랑해준 것이냐고.
그리고 어째서 새로운 삶을 선물한 것이냐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입학을 환영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군요. 여러분들도 환영받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아카데미 교장이 하는 말은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하는 2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여전히 추억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도 난 네가 필요해.
이전 삶에서 유일하게 마음 놓고 등을 맡길 수 있었던 파트너.
이번 삶에서도 그녀가 필요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가시밭길에는 그녀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백련을 지키기 위해.
이유정은 그에게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그녀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살기 위해 싸우세요. 죽기 위해 싸우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죽음밖에 없으니.]입학식이 끝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2반으로 나아갔다.
“어어? 뭐야?”
“밀쳤으면서 사과도 안 하냐!?” “저게….”
부딪치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그는 방해물들을 밀어내며 2반으로 향했다.
…유정아.
처음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모습이 어디 이상하지는 않을까, 조금 전에도 화장실에서 거울로 확인했는데.
그 애가 겁을 먹지는 않을까.
그래도 상관없다.
은하는 무수히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며 2반 아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폈다.
“유정아.”
“이유정.”
“…유정아.”
없다.
식장을 나서려는 여자애들을 잡아끌며 얼굴을 확인했던 그는 번번이 다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야, 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 몇 반이야? 몇 반인데 2반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
2반 교관이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2반 교관은 흠칫 놀랐다.
그대로 그의 손목을 비틀려하던 게 마치 강철이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꺾이지 않았으니까.
“교관님.”
은하는 2반 교관의 손목을 내치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어깨를 세게 쥔 은하가 부탁한다는 어조로 물었다.
“이 반에, 이유정이라고 있나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이 반에…, 그런 애는 없으니까, 어서 이 손 놓지 못해!”
말도 안 된다.
유정이가 없을 리가.
은하는 냉큼 2반 교관이 가지고 있던 명부를 뺏었다.
교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명부를 뒤지며 이유정의 이름을 찾았다.
“…….”
없었다. 이유정은.
은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명부를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교관이 화를 내며 명부를 되찾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아직 식장에 남아 있던 교관들에게 뛰어갔다.
…없어.
왜 없는 거야?
여기에도 없어.
1반도, 3반도, 4반도, 5반도….
교관들은 허락도 받지 않고 명부에 손을 대던 은하를 제지하려 했지만, 명부를 들출 때마다 낯빛이 어두워지는 그를 보고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은하는 사람들이 식장을 거의 빠져나갔을 때에야 모든 명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없어.”
모든 명부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
이유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카데미 어디에도.
리라이프 플레이어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