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18
플레이어 중등아카데미는 오전에는 중등교육과정에 속하는 일반교양을 개괄적으로 가르치고, 오후부터는 아카데미 전용교양을 가르친다.
이때, 학생들은 입학시험에서 얻은 포인트로 수강하고 싶은 교양과목을 제한 없이 수강할 수 있었다.
물론,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양과목도 존재했다. 이 경우에는 원하는 시간대와 교관을 선택하는데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서 ‘반’이라는 개념은 학생들을 편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는 하양과 몬스터학 입문을 수강하고 있었다.
“여러분 중에는 몬스터가 1999년, 세기말 디스트럭션 이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이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몬스터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류가 1980년대에 마나의 존재를 해명했을 때부터 제기되어 왔으며, 그 이전부터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몬스터학 입문.
중등아카데미 1학년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양이었다.
두 사람은 은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업을 쉽고 재미있게 진행한다는 교관의 과목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덕분에 세상과 몬스터의 관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혜 갚은 두꺼비의 민담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몬스터의 존재를 해명하는 학자들은 옛부터 ‘신비’라 거론되던 존재들을 몬스터를 가리키는 건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답니다.
인류가 마나의 존재를 해명한 건 1980년대이지만, 마나는 이전부터 존재했으니까요. 옛날에도 편재가 발생했을 테고, 편재에서 출몰했을 몬스터가 ‘신비’라 불리지는 않았나 추측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기에 국제마나관리기구에서는 신종몬스터를 명명할 때에는 출몰한 국가에서 기원하는 설화와 대조하여 이름을 붙일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교관은 익히 알려진 사례로, 제1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윤성진이 제3위계 몬스터 이시미를 명명한 사례를 꼽았다.
“…그렇구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하양은 교관의 설명에 눈을 빛냈다.
그녀는 손을 멈추는 일 없이 수업내용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었다.
한편, 은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흘러들으면서 발대식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이유정을 찾는 건 일단 보류하고, 안개꽃파티의 단원이었던 사람들을 찾는 걸 우선해야 해.
그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카데미에서 누구를 포섭할 것인지 열심히 고민했다.
미래에 국내에 영향력을 끼치는 황금세대 중에 누가 있는지.
그들 중에서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고민 끝에 은하는 회귀 전에 안개꽃파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제일 먼저 포섭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두자면 박혜림에게 견주더라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되었던 이유정과 라는 악명을 샀던 배수빈이었다.
파랑이 형은 제쳐두고, 해수 형은 학년이 달라서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접근해야 해.
우선 배수빈부터 포섭해야 하는데.
이유정과 배수빈은 안개꽃파티에서 유일하게 031기에 속했다. 은하를 포함해서 같은 시기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동기라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라 불렸던 벽해수는 029기에 속했다.
그밖에 안개꽃파티에 근접기수가 있기는 했지만, 황금세대로 통했던 세 사람을 먼저 끌어들여야 했다.
단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안개꽃파티에 입단했던 사람들은 걸핏하면 몬스터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다 죽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밖에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쌍둥이 자
매처럼 인상이 강렬하지 않고서는 기억이 어렴풋했다.
“그럼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국제마나관리기구는 세기말 디스트럭션 이후, 몬스터를 제1위계부터 제9위계까지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국제마나관리기구는 무엇을 기준으로 몬스터의 위계를 구분했을까요?”
여하튼 이유정을 아카데미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 배수빈은 우선적으로 영입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전 삶에서 제2기 십이좌 곽우혁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였던 캐스터.
무엇보다 그는 안개꽃파티의 창설원이었던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파티의 화력을 책임질 캐스터로서 그녀만큼 관리하고 파악하기 쉬운 사람은 따로 없었다.
성격과 행동이라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잘 안 되니….
수업을 듣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계획이 생각보다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곁눈질로 맨 앞에 앉아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요? 어디 보자, 정하양 학생은 무엇을 기준으로 몬스터의 위계를 구분한 것이라 생각하지요?”
그러던 중, 옆에 있던 하양이 교관에게 지목 당했다.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던 그녀가 당황했다.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몬스터가 출몰한 편재의 크기와 몬스터의 강함으로 구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편재의 크기로 몬스터의 위계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는 하죠. 그럼 몬스터의 강함을 어떤 식으로 구분하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몬스터의 강함을 가르는 기준.
크기? 특성? 체내 마나?
하양은 머릿속에서 고민하다 그만 백기를 들었다.
직관적으로 어떤 몬스터는 위험하고, 어떤 몬스터는 그보다 덜 위험하다고 나누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고민을 파악한 교관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달리 손을 드는 사람이 없는지 기다렸다.
“네. 거기 학생.”
그러던 교관은 조용히 손을 드는 소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맨 앞자리에서 마이크를 넘겨받은 소녀가 안경을 고쳐 썼다.
…배수빈.
중등아카데미 031기수 배수빈.
그녀가 바로 은하가 며칠 전부터 찾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이 수업을 들었을 때, 그토록 찾고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배수빈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전 삶에서는 수석이었을 그녀가 이번 삶에서는 3등이었으니까.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예전부터 그랬던 거였구만.”
그는 하양을 돌아보며 눈빛을 번뜩이는 배수빈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경쟁심의 화신이었다.
지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플레이어 업계에서 곽우혁과 비교 당하자, 한껏 제 실력을 선보였을 정도로.
언젠가 그녀가 란 이명이 단순한 이명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며 욱하고 나섰을 때에는 이유정이 힘겹게 막아야 했다.
“몬스터의 위계를 구분하는 것은 몬스터의 강함 따위가 아니라, 해당 몬스터가 인류평화에 어떤 식으로 위협이 되는지 입니다.”
“네, 맞아요. 잘 들었어요, 배수빈 학생.”
자리로 돌아온 교관이 PPT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 국제마나관리기구 선언문이 떠올랐다.
「국제마나관리기구는 모든 몬스터를 인류평화에 위협이 되는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로 한다.
제9위계: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역병의 원인이 되는 몬스터.
제8위계: 일상생활에 물리적 피해를 주는 몬스터.
제7위계: 강도, 살인, 강간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몬스터.
제6위계: 개체 또는 군집 단위로 도심행정을 마비시키는 몬스터. 혹은 인간의 세력권을 위협하는 몬스터.
제5위계: 개체 혹은 군집 단위로 도시행정을 마비시키는 몬스터. 혹은 그에 준하는 위협을 지닌 몬스터.
제4위계: 몬스터 군집을 관리하는 몬스터. 혹은 인간을 가축화하는 몬스터. 혹은 인류의 번영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
제3위계: 단일개체로서 국가행정을 마비시키고 재해·재난에 준하는 피해를 야기하는 몬스터.
제2위계: 단일개체로서 국가행정을 마비시키고 재앙에 준하는 피해를 야기하는 몬스터.
제1위계: 단일개체로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
“보는 바와 같이, 국제마나관리기구는 몬스터가 인류평화에 위협이 되는 정도에 따라 위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반인은 매스컴을 통해 출몰한 몬스터의 위계와 피해를 듣고, 위계가 강함을 측정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네, 거기 학생.”
국제마나관리기구 선언문을 직접 읽어본 사람은 그다지 없었으리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인의 범주에 속했던 학생들은 교관의 말을 듣고는 눈빛을 달리했다.
몇몇 이들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었을 정도로.
“교관님, 그 말씀은 위계가 높다고 강한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반드시 위계와 몬스터의 강함이 일치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힘이 약한 몬스터라도 인류평화에 위협을 끼치는 정도에 따라 엄연히 고위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네, 거기 학생.”
“그러면 몬스터의 위계는 출몰 시, 주변에 위협을 끼치는 정도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건가요?”
“네, 변동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의 위계는 라이브러리에 저장된 데이터에 따라 분류되지만, 현장을 담당하는 네비게이터가 몬스터가 피해를 야기하는 정도에 따라 위계를 변동할 수 있습니다.”
교관이 다음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익숙한 장소가 나왔다.
도안유치원이었다.
“몇 년 전, 대학로에서 제7위계 몬스터 고블린이 30개체나 출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마나관리국은 고블린 무리를 인간의 세력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제6위계로 격상했습니다.”
교관은 몇 년 전, 도안유치원에 출몰한 고블린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몬스터의 힘이란 측정하기 굉장히 애매하고 포괄적이며 주관적이었다.
그래서 위계는 인류평화에 위협이 되는 정도에 따라 나뉘었다.
국제마나관리기구에 가입한 국가는 권고기준을 참고하면서 몬스터에게 국가에 따른 위계를 부여했다.
국내에서 제3위계 몬스터 크라켄이 미래에 위계가 하나 격하되는 일은 대한민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 크라켄은 성수대교랑 성산대교에서 출몰한 게 전부니까.
크라켄이 성산대교에서 출몰한 뒤 국내에서는 한 번도 출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마나관리기구는 크라켄이 두 차례에 야기한 피해를 근거로, 놈을 제4위계로 격하했다.
플레이어의 실력이 질적인 향상을 거두고 있었고, 기술이 발달했으며, 국민들의 마나제어능력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몬스터의 위계를 가르는 기준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몬스터의 위계와 몬스터의 강함을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대장, 어디 가?”
“오늘은 너희끼리 저녁 먹어.”
“야! 너 또 걔한테 가는 거야?”
오후 수업이 끝났다.
교실을 나온 은하는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배수빈을 찾기 위해 인파를 가로질렀다.
“야, 내가 수업 끝나고 같이 가자고 했잖아.” “내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랑 왜 같이 가야 하는데?”
가까스로 그녀를 잡은 그가 보폭을 맞췄다.
배수빈은 타박하듯 말하는 그에게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듯이 교과서를 끌어안고 지나쳤다.
“수업 다 끝났지? 배도 고프니까 나랑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너는 네 친구들이랑 먹어. 왜 맨날 나한테 와서 밥 먹자, 어디 가자, 계속 그러는 거야?”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배수빈.
은하는 끙 소리를 냈다.
배수빈을 영입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요 며칠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처음에는 경쟁심을 보였던 그녀가 이제는 은하를 무시하려 할 정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지.”
그럴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고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답지 않게 인내심을 발휘하며.
“나는 너랑 친해질 생각 조금도 없으니까, 귀찮게 따라다니지 마.”
“나는 친해지고 싶은데?”
“응, 꺼져.”
배수빈은 은하가 따라오든 말든, 제 갈 길을 갔다.
그는 별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가며,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가령, 짐을 대신 들어준다든가.
“교과서 무거워 보이네. 이리 줘.”
“내 교과서인데 왜 너한테 맡겨야 하는데?”
“나한테 달라니까.”
“너 진짜…!”
점수를 따려는 행동은 되레 역효과를 낳았다.
허락도 받지 않고 그녀의 짐을 낚아챈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질타를 받아야 했다.
씩씩거리며 짐을 되찾아간 수빈은 주변에 들릴 정도로 그를 욕하며 자리를 떠났다.
“…성격 하나 알아주기는 했지만,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부터 남이랑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구만, 뭘. 자존심 센 것도 그렇고….”
은하는 멀어지는 그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전 삶에서 배수빈은 성격이 개차반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본인 왈,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온갖 험한 꼴을 당해서 성격을 버리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가 보기에 씩씩거리는 그녀는 이전 삶에서 보았던 모습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그랬던 것이리라.
짜증은 나는데 포기할 수는 없고.
성격은 저래 보여도 실력 하나는 알아줬다.
이전 삶에서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던 그녀였으니.
‘그 새끼만 만나지 않았어도─!’
언젠가, 배수빈은 눈물을 흘리며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사귀었던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마지막에는 버림받아, 온갖 험한 꼴을 당했던 이야기를.
“─야! 기다려! 같이 가자니까!”
어쩔 수 없이 은하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녀에게 뛰어갔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야, 내가 그렇게 싫냐?”
“어! 너 되게 역겹거든?”
그녀가 영입대상에서 우선순위인 이유는 실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저주할 정도로, 끔찍이도 증오했던 연인과의 만남을 저지하기 위해.
그녀가 토로했던 ‘그 새끼’를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이상,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친분을 다져놓아야 했다.
“대장, 요새 왜 저러지…. 이상해. 요새 사춘기인가?”
“사춘기가 아니라 머리가 돈 거야. 진짜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다.”
한편, 은혁과 파랑은 아카데미에서 떠돌기 시작한 소문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입학시험 차석 노은하가 배수빈을 찍었다는 소문을.
☆
야심한 밤.
여자아이들은 민지의 방에 모여,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럼─.”
민지가 조그마한 냉장고에서 꺼낸 1.5L 사이다를 탁 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잔을 머리 위로 올려서는, 한 번에 사이다를 들이켰다.
세 사람이 ‘캬~!’ 하는 소리를 내며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이윽고 서나와 하양의 얼굴을 살핀 민지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1회 멋쟁이 여자들 기숙사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응.””
리라이프 플레이어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