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19
“둘 다 오늘 소문은 들었을 거야.”
“벌써 아카데미에 쫙 퍼졌는걸.”
“은하가 그럴 애가 아닌데….”
제1회 멋쟁이 여자들 기숙사회의가 열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즘 들어 아카데미에 퍼지고 있는 은하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차석 노은하가 배수빈을 찍었다.
그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될 수 있는 한 막으려 하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문의 진위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은하가 걸핏하면 배수빈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으니.
“걔 진짜 무슨 생각인 거지? 자꾸 싫다는 애를 졸래졸래 쫓아다니는데 그런 소문이 안 나게 생겼어?”
“아까 은하가 학생식당에서 점심 같이 먹자고 했다가 퇴짜 받는 모습 보고 내가 다 부끄럽더라.” “…정말 그건 아니었어.”
아이들은 과자를 열심히 씹어댔다.
그것이 꼭 노은하라는 양.
세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서나가 두 사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은하가 정말 배수빈이란 애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어디 그게 누구한테 반한 사람 얼굴이야?” “하긴, 그렇지?”
“은하는 말 그대로 수빈이랑 그냥 친해지고 싶은 것 같아.”
소문은 잘못됐다.
과자를 한 움큼 집은 아이들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확고하게 부정했다.
어렸을 적부터 은하를 알고 있던 세 사람으로서는 그가 배수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은하가 언제나 수빈을 따라다니며 말하는 대로 친해지고 싶을 뿐이다.
문제는 친해지는 방법에 있었다.
“우리가 이제 초등학생도 아닌데, 갑자기 친구하자고 말한 다음, 정말 친구가 되는 게 어디 있겠어?”
서나가 운을 뗐다.
민지와 하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아니건만, 이 나이에 친구하자고 손을 내밀고 정말로 친구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노은하 걔, 발대식 연습할 때부터 이상하더니 지금 아예 화룡점정을 찍고 있다니까. 지가 지금 흑역사를 찍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민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매사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난데없이 여자애를 쫓아다니니 어쩐지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가 배수빈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한테는 안 그랬으면서….”””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세 사람.
필시 은혁과 파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누군가를 이리도 열정적으로 쫓아다니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마음 한편으로 그를 의지하고 있던 아이들은 은하가 야속하기만 하고, 그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배수빈에게 시샘이 가기도 했다.
“나는 배수빈이란 애, 별로야.”
민지가 그녀답지 않게 솔직하게 툭 내뱉었다.
서나와 하양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심정이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무턱대고 들이대는 그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를 밀어내려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하가 어디가 못나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은하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그를 무시하는 처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상했다.
필시 그도 그녀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하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볼수록 속이 탔다. 열불이 났다.
그를 뜯어말리고 싶을 정도로.
노은하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만.
은하가 생각이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세 사람은 눈빛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
그가 그러는 데에는 친해지려 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작정 말릴 수는 없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면 될 텐데. 그럼 상대방도 경계하지 않을 테고, 원만하게 친해질 수 있었을 거야.”
서나가 빼빼로를 깨작거리며 옳은 소리를 했다.
다른 아이들도 빼빼로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먹었다.
마치 은하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은하 걔가 친구가 없어서 그래. 지금까지 걔가 누구한테 다가간 적 있었어?”
“없었지.”
“우리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으면 분명 친구 한 명도 없었을걸!?”
민지가 책상을 탕 하고 내리쳤다. 페트병에 담긴 사이다가 출렁였다.
두 사람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 말대로 은하는 먼저 다가가서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들이 먼저 다가갔다.
그러다 보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본인의지로 친구를 만든 적이 없던 그가 이제 와서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각하네.”
“심각하지?”
“응, 민지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세 사람은 머리를 싸맸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인 친구였다.
강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는 기분. 요즘 은하가 하고 있는 짓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나는 수빈이가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닐 것 같아.”
그때 하양이 넌지시 말했다.
그녀는 은하를 무시하는 배수빈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그녀가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은하가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그녀에게 실실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양이 네 말대로 그럴지도 몰라. 내 드라마 경력으로 보건대, 걔는 딱 보니까 자존심 강한 범생이야.” “그냥 은하가 잘못한 거야.”
은하를 어떡하면 좋을꼬.
그가 평소와 다르게 관심을 보이니 옆에서 거들어줄 수밖에.
세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넌 정말 우리한테 감사해야 해.
이제 곧 점호시간이었다.
민지는 이쯤에서 제1회 멋쟁이 여자들 기숙사회의를 마치기로 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회의를 몇 번이나 하게 될지 모르겠다.
☆
인류를 지키겠다는 대의는 없었다.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지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부모가정에서 태어난 그녀가 아무 지지기반 없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갤럭시그룹의 후원을 받기 위해 코피가 나도록 노력하고, 직계와 방계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재능에 노력이 더해지니 나날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3등이었다.
아쉽지만, 결과가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아카데미에 두 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노은하 학생, 자꾸 이럴 겁니까?’
‘하, 네가 차석이라는 생각 때문에 단단히 헛바람이 들었나 본데, 너 그러다 여기서 뒤처질 수 있다?’
아카데미 발대식 연습.
그녀는 그때 수석과 차석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입학시험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근감이 들었다. 먼저 다가가서 인사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은하가 발대식 연습에서 번번이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죄송합니다.’
‘똑바로 대답 안 해?’
‘네.’
‘허, 참….’
그녀는 잘못했으면서도 교관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친해지는 것을 포기했다.
첫인상이 최악이었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그보다 못했다는 사실에.
그러다 수빈은 우연히 그가 얼마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수석으로 입학한 정하양이 앨리스그룹의 직계라는 이야기도.
좋겠다. 태어날 때부터 잘 살아서. 너희랑 같은 배경에서 태어났으면 나는 더, 더,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려 했을 텐데.
갤럭시의 후원을 받는 그녀는 조금이나마 정재계의 생리를 엿봤다.
그러다 보니 발대식에서 게으름을 피우던 은하나, 계열사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하양을 보고 있자니 괜히 반발심이 솟구쳤다.
두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녀에게 두 사람은 절차탁마할 대상이 아니라 쓰러뜨려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불쑥 다가왔다.
‘야, 아카데미는 어때?’
‘네가 누군데 갑자기 친한 척이야?’
‘…아, 맞다. 미안, 나는 노은하야.’
‘내가 언제 네 이름이 궁금하다고 했어? 왜 다짜고짜 친한 척이냐고 물은 거잖아.’
‘그냥, 뭐…. 우리 전에 어디서 만난 적 있는 것 같지 않아?’
‘뭔 개소리….’
‘개소리라니. 개소리는 내가 아니라 네가 더 잘했지. 아, 미안, 말실수. 어째 얼굴에 복이 많은 것 같아서, 너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냐니.
언제 봤다고 개소리를 잘한다니.
복이 많은 것 같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성공을 우선시하는 그녀는 친구를 만들 생각도 없었고, 이상한 놈은 더더욱 사양이었다.
이대로 적당히 무시하고만 있으면 그가 알아서 떨어져나가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다.
‘나랑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 너, 파스타 좋아하지 않았어?’
‘네가 내가 파스타를 좋아하는지 그런 건 어떻게 아는데.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너는 네 친구들이랑 먹지 그래?’
‘야! 어디 가?’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걸핏하면 그가 쫓아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에는 너무 짜증이 났던지라 그의 배경을 무시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에 무성하게 소문만 나돌았다.
노은하가 자신을 찍었다고.
‘너 자꾸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진짜 나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그녀도 여자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홧김에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뭐라 대답했던가.
‘응? 아니. 내가 왜.’
생글생글 웃고 있던 그는 처음으로 벌레 씹은 얼굴로 대꾸했다.
오히려 물어본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더더욱 그를 밀어내려 했다.
일부러 모진 말을 던졌다.
그럼에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너랑 친해질 생각 없다는 걸 알겠어?’
‘그러다 나중에 친구도 없다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찔찔 짜지나 말고.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다니까.’
‘아, 글쎄 쫌!!’
‘뭐, 쫌.’
그러는 와중에 장난을 치기까지.
수빈은 마치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말투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스스럼없는 행동이 짜증이 났다.
아무리 밀어내도 다가오는 모습에 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건 날 뒤통수치려는 수작인 게 분명해. 이렇게 해서 날 공부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점호를 마치고 몰래 기숙사를 나온 그녀는 산책로를 걸었다.
밤바람이 화를 식혔다.
길게 숨을 내쉰 그녀는 기억에서 그의 존재를 없애기로 했다.
고도의 수법인 게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귀찮게 해서, 자신을 방해하려는 수법인 게.
어림없는 소리.
누가 그런 걸 모를 줄 알고?
조금만 더 버티자.
그럼 그가 언젠가 떨어져나가리라.
그녀는 길을 밝히는 불빛을 따라 산책로를 지났다.
갈림길에서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들자, 주변이 새까매졌다.
곧 빛이 보였다.
“─여기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에요. 오랜만이에요, 오빠.”
길이 끝나는 지점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바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냈던 오빠는 그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오빠는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바위 위로 올라갔다.
“이게 얼마만이야.”
“오빠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이제 2년만이네요.”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다.”
수빈은 부끄러워하며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2년 만에 만난 소꿉친구는 그녀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 입학 축하해.”
“고마워요, 오빠.”
그가 봉지에서 캔 음료를 꺼냈다. 수빈은 입으로 짠 하는 소리를 내며 그와 건배했다.
두 사람은 그날, 아무도 오지 않는 숲속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
‘그 새끼만 만나지 않았어도─!’
이전 삶에서 은하는 아카데미에서 배수빈과 알게 된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배수빈의 사정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엄마도 남자 잘못 만났다가 날 덜컥 임신했다는데…, 어쩜 나도 엄마랑 하나도 다르지 않냐.’
그녀에게는 중등아카데미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당시 갤럭시그룹의 후원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던 그녀는 남자친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한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줬다고.
언젠가 그녀는 자조하듯 말했다.
‘내가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서…. 자꾸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내가 멍청했지.’
오죽했으면 인감도장까지 맡기며 남자친구가 클랜을 만들 수 있도록 갤럭시그룹의 후원까지 끌어왔다고.
결국 그녀는 그 사실이 발각되어 갤럭시그룹의 후원에서 제외되었고, 그럼에도 자신이 모든 돈으로라도 남자친구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만큼 각별한 사랑이었다.
모든 것을 열렬히 불태우던 사랑.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도 내로라하는 클랜의 권유를 거절하고 남자친구의 클랜에 입단했을 만큼.
‘내가 어쩌다 정말….’
그녀는 사랑의 노예였다.
클랜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부 남자친구의 주머니에 들어갔으며, 남자친구를 대신해 빚을 졌다.
그와 함께 살 것을 믿었던 그녀는 빚이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신체를 혹사할 정도로 몬스터를 물리쳐도 바보 같이 희망만을 꿈꿨다.
사랑이 눈을 멀게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고.
‘…그때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현실이 눈에 들어오더라. 내가 정말 미쳤었구나 하고….’
남자는 도박에서 빚을 졌다.
독촉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도박에서 진 빚과 그동안 갚지 못했던 빚을 대신해, 마나관리기구 기준으로 S등급 플레이어로 판정받았던 그녀를 팔았다.
그 거래에 그녀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남자가 도박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판돈에 불과했다.
그녀는 지하시장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팔려나갔다.
‘…별 짓을 다했어. 너희도 들으면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놀라고 말걸?’
암암리에 노예는 존재했다. 한 번 멸망한 세상은 약자를 지켜줄 만큼 자비로운 세상이 아니었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이란 바람 앞에 꺼질 등불에 지나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죽었다던 사람이 지하시장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경우는 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전투노예로, 성노예로, 일반노예로, 관상용으로, 실험체로 온갖 험한 꼴을 당했다고 한다.
남자를 원망하다 미쳐버린 끝에, 성격을 버리게 되었다고.
‘…수빈이니?’
그러다 은하와 유정은 지하시장을 전전하던 배수빈을 만났다.
그때 유정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온몸에 지니고 있던 배수빈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은하는 원하는 아티펙트를 찾기 위해 지하시장을 찾았던 그때, 우리 속에 갇혀 있던 그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야.’
한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듯.
수빈은 메마른 입술을 뻐끔거리며, 독기를 품은 눈으로 중얼거렸었다.
‘그 새끼….’
‘…….’
‘…죽여 버릴…거야.’
그날, 그는 아티펙트를 사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으로 그녀를 샀다.
안개꽃파티를 창설하기 전이었다.
그와 유정, 둘이서는 즉석 파티를 꾸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배수빈을 캐스터로서 영입했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했다.
“사랑이 뭐라고….”
수업이 끝났다.
오늘도 교관이 하는 말을 흘러들은 은하는 짐을 챙겨서 나가는 수빈을 따라나섰다.
“야, 다음 수업은 뭐야?”
“네가 알아서 뭐하게. 좀 꺼져.”
“너 끝날 때 마중가려고 그러지.” “하…, 진짜….”
이전 삶에서 배수빈은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뤄냈다.
건강을 되찾자마자 그녀는 남자친구의 클랜을 박살냈다.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던 남자친구를 잔인하게 찢어 죽였다고 했다.
그녀는 광인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던 미치광이.
스스로도 미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죽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마녀.
“그럼 이따 저녁이나 먹을래? 내가 맛있는 걸로 쏠게.”
“네 친구들이랑 먹으라니까. 자꾸 나 귀찮게 하지 말고 좀 가라?”
이번 삶에서는 그렇게는 안 된다.
은하는 이전 삶에서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넋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를 떠올리며 말을 걸었다.
그녀가 아무리 밀어낸다고 해도, 어떻게든 포섭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그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누나」: 은하야, 내가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
「누나」: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오후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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