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2
새벽이었다.
잘 때 이불을 걷어찬 걸까.
스산한 기운에 눈을 뜬 은하는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은아를 보고는 상황을 파악했다.
밤사이에 은아가 파고든 모양이었다. 잠버릇이 얼마나 험했으면 그가 덮고 있던 이불은 저만치 떨어져 있고,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는지.
은아가 깨지 않게끔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인지 잠든 채로 얼굴을 찡그리는 아버지와 은아처럼 아버지를 껴안은 어머니를 지나 이불을 가져왔다.
이제 보니 어머니가 잠버릇이 심했구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은하는 추운지 몸을 마는 은아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후우….”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켜니 시간은 새벽 5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전날 차에서 실컷 잠을 잤던 은하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미닫이문을 열었다. 회귀 전 할머니 집에 살았던 기억이 있는 그는 길을 헤매는 일 없이 뜰이 있는 복도로 나왔다.
“후우….”
밖으로 나오니 새벽 공기가 찼다. 잠옷만 입고 있던 그는 체내 마나로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확실히, 마나가 늘었어.”
하루에 한 번 틈틈이. 체내 마나를 늘리던 일을 해오던 그는 이틀 사이에 늘어난 마나를 실감했다. 그 동안 미묘하게 오르던 마나는 크라켄을 상대한 그날로부터 현저히 늘어난 것이다.
“기프트, 때문이려나.”
이유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기프트. 그날 그 싸움에서 기프트가 발현된 까닭이다. 마나가 바닥을 드러냈던 그날, 크라켄이 차체를 집어던졌을 때. 그때 그는 소량의 마나만으로 신체능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감각을 느꼈다.
“근데 그건…. 대체 뭐였지.”
그때는 도무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지금이 돼서야 떠오른 생각에 은하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헤집었다.
기프트란 모든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마나의 특성이다. 이름 그대로 천부적인 자질이라는 뜻이다.
“내 기프트는, 그게 아니었어.”
하지만 은하의 기프트는 회귀 전에 사용했던 기프트와는 달랐다.
회귀 전, 은하의 기프트는 . 는 마나를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신체능력과 마법효과가 증가하는 기프트였다. 단, 라는 이름처럼 마나를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이성을 잃고 광분하게 되는 대가를 부담해야 했다.
그래서 체내 마나가 적었던 은하는 걸핏하면 에 의해 몬스터를 미친 듯이 멸하는 라 불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체내 마나가 적었던 그에게 는 최상의 기프트였다.
“기프트가 바뀌었을 가능성은… 없을 텐데.”
이틀 전 현장에서 발현된 기프트는 분명 였다. 다만 마나를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어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회귀를 하고 기프트가 바뀌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바뀐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오히려,
“오히려 내가 의 본질을 잘못 알았다거나….”
은하는 당시 마나관리국에서 를 검증받을 때를 떠올렸다. 마나를 소모할수록 신체능력이 상승하고,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확인한 연구원들은 마나의 파장과 특성이 미국의 소지자와 유사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프트가 유사했던 것이 아니라면? 혹은 미국의 소지자조차 기프트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은하나 연구원들이나 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성을 잃고 광분하는 건 기프트의 부수효과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그러면 나는 어떻게 페널티 없이 를 사용한 거지? 앞으로도 페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여느 기프트 부럽지 않을 텐데.
절로 혹하는 마음에 은하는 다시 한 번 기프트를 발현하기 위해 마나를 소모하기로 했지만,
“어머. 안 자고 뭐하니?”
“아.”
생각에 깊이 빠져든 모양이었다. 은하는 할머니가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에야 기척을 깨닫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차에서, 많이 자서요.”
“그러니. 그래도 어른이 되려면 더 많이 자야 하는데?”
“헤헤.”
그래도 할머니는 들어가서 마저 자라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슬며시 툇마루에 걸터앉은 할머니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은하에게 입혀주었다. 단추까지 채워주는 손길과 그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시선을 느낀 은하도 마주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는 이런 사람이었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길 때마다 살며시 다가와서는 같이 시간을 보내주던 사람.
할머니는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것이 고민이었든 속마음이었든 단순한 잡담이었든.
하지만 그는 끝내 할머니에게 생각이나 고민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괴로움은 마음속에서부터 곪아 그를 죽어도 죽지 않는 의 길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왜 안 주무시고 나오셨어요?”
“은하가 안 자고 나와 있으니까.”
“치이.”
할머니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며 은하를 놀렸다.
회귀를 포함해서. 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난 은하는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어라?
은하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그답지 않은 반응에 속으로 놀랐다.
그러던 그는 과거 자신이 버렸던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되찾았음을 깨달았다.
아아. 그런가. 나는 이런 걸 바라고 있었구나.
회귀 전에는 그토록 터지지 않았던 말문이. 할머니를 마주하니 이제는 술술 나오고 있었다.
은하 본인도 몰랐을 정도로 그는 할머니에 대한 반가움과 그리움, 마지막으로 가족을 잃은 그날 이후로 포기했던 어린아이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꿈을 꿔서. 우리 그이가 또 나왔거든.”
“할아버지요?”
은하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도 않았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은하에게 가족이란 아물지 않는 흉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하는 할머니에게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할머니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그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는데. 가족을 잃은 미래를 바꾼 지금,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할머니는 은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또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사슴이 외로워하니까 밖에 나가보라지 뭐니.”
“그래서 밖에 나온 거예요?”
“그래서 나왔는데 예쁜 사슴이 있지 뭐니.”
“하하. 뭐예요 그게.”
사슴이라니. 은하는 자신을 사슴으로 비유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사람들이 미쳤다고 수군거리며, 눈이라도 마주쳤다가는 기겁을 해대던 노은하였다는 것을 모르는 할머니는 손자인 그를 귀여운 아기사슴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처절한 과거를 보낸 은하로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수밖에.
“뜨거운 우유라도 마실래?”
“아니요. 괜찮아요.”
“어머, 진짜?”
어머니는 또 언제 온 거지.
어느새 기척도 없이 다가온 어머니. 그제야 은하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녀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누나도? 에이. 누나는 아니야.
할머니와 어머니는 옅은 미인의 상이었지만 은아는 명랑한 미인의 상이었다. 은아가 성인이 되면 두 사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이건 누가 마셔야 할까?”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쟁반에 들고 있던 머그컵을 가리켰다.
“나! 나! 나!”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린 은하가 어머니에게 부리지 못할 것도 없었다. 크라켄을 쓰러뜨린 이후로 어딘가 홀가분해진 그는 손을 뻗어 머그컵을 받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를 입에 댔다. 은하가 혀를 데이고 눈살을 찌푸리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후후~ 하고 마셔야지.”
“엄마가 불어줄까?”
“나도 불 수 있어.”
“정말?”
이제는 어리다고 놀리기까지.
너무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도 창피한 은하는 뜨거운 우유를 식히며 입가에 가져갔다.
“그런데 엄마도 참.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했잖니.”
그 사이 할머니와 어머니는 은하를 사이에 끼고 수다를 떨었다. 툇마루는 충분히 넓었는 데에도 두 사람은 아침 기운이 서늘하다는 핑계로 그에게 달라붙은 것이다.
아, 그랬던 거구나.
어머니가 꺼낸 화제는 며칠 전 할머니가 쓰러진 것에 대한 거였다.
“옆집 할멈이 극성스럽잖니.”
“그래도. 저녁 먹는데 전화 와서는 쓰러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할머니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한 이유도 나이 때문에 하루 경과를 지켜보자는 것이었고.
역시. 할머니는 아직 괜찮으시다니까.
“그날 잠깐 한눈을 팔았었거든.”
“한눈을 왜 팔았는데?”
“이런 걸 백일몽이라고 하나? 계단을 오르는데 글쎄 그이가 보이는 거야.”
“엄마….”
“나 아직 노망 안 났어, 얘. 끝까지 들어봐.”
또 할아버지인가?
조금 전에도 할아버지에 대한 꿈을 들었던 은하였다. 할머니가 또 다시 할아버지에 대한 꿈을 거론하니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이가 막 손을 휘젓더라고. 여기 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어?”
“처음에는 나도 죽을 때가 된 건가 싶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내가 아니라 너희한테 말하는 거였나 봐.”
“아….”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탄성했다.
꿈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기묘했다. 실제로 가족들은 잘못했다가는 크라켄에게 휘말려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할아버지…. 그럴 거면 좀 확실하게 해주시지.
은하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이왕 꿈에 나타나서 말해주려면 제대로 말해서 가족들이 출몰장소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막아줬으면 좀 좋았을까!
덕분에 할머니를 걱정한 어머니는 인천으로 가겠다고 했고, 은하는 죽기 살기로 크라켄을 상대하게 됐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신기하지? 조금 전에도 그이 꿈을 꿨거든. 그이가 밖에서 예쁜 사슴이 외로워하고 있다고 그래서, 밖에 나가 보니까 은하가 있지 뭐니.”
“응? 사슴?”
“왜?”
“사실 나도 아까 꿈을 꿨는데….”
사슴이라는 키워드에서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꿈 이야기는 또 기묘했다.
어머니의 꿈에도 할아버지가 나오셨다니. 할아버지, 당신은 대체….
“아빠가 갑자기 우리 집에 사슴 한 마리를 안고 들어오시는 거야. 내가 ‘그거 먹을 거예요?’하고 물으니까, 아빠가 ‘얘가 이걸 왜 먹니! 이렇게 귀여운 애를.’하면서 나한테 사슴을 넘기는 꿈이었어.”
“어머….”
“응?”
작게 감탄한 할머니가 어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 설마….”
“에이~”
영문을 모르는 은하는 입가에 컵을 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머니 왜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래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두 사람이 부득불 아니라고 말하니 은하는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넘겼다.
원래 예지몽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그였다. 꿈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은하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어머니가 불쑥 은하에게 물었다.
그 동안 장래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은하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그는 가족을 구하겠다는 생각만 해왔으니까.
“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은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가족을 구하겠다는 목표를 이룬 그로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구해줘
살려줘
도와줘
그때 어디선가 까르륵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니?”
소스라치게 놀란 은하를 걱정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바로 가까이에서 들린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억지웃음을 보인 그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손을 잡아주니 소리는 사라졌다.
“…모르겠어.”
회귀 전 은하는 몬스터를 죽이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플레이어로서의 길을 걸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더 이상 몬스터를 죽일 이유가 없었으며, 악의가 도사리는 플레이어의 세계에서 악착 같이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크라켄을 물리치고 나서부터였다. 마음 어딘가가 공허했다. 기쁨과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아서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몰라도 된단다.”
“응?”
할머니는 그것을 꿰뚫어본 것일까.
“몰라도 돼. 은하는 아직 어리니까 찬찬히 알아 가면 되지. 기쁜 일도 겪고, 힘든 일도 겪으면서. 친구도 많이 만들고, 싸우기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하면서. 그러면 언젠가 은하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될 거야. 그때도 모르면, 알 때까지 살아가면 되는 거지.”
막무가내로 살라는 소리와 다름없지 않은가.
은하는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할머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네. 할머니 말이 맞아. 앞으로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시간은 우리 은하 편이니까. 은하는 은하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뭐야.”
“노은하의 은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주를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니까. 은하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내 이름에 그런 뜻이 있었어?
새삼 노은하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게 된 그는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광대한 스케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 은하가 얼마나 넓은데.”
할머니도 동참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내는 두 사람. 이쯤 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어서 은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웃었다.
누가 모녀 아니랄까봐.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리도 엉뚱한 면모가 있을지 몰랐다. 웃음이 너무 나와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엄마가 응원해줄게. 은하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게. 엄마가 믿어줄게. 은하가 무엇을 해도 된다고.”
좌우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를 부드러이 안아주었다.
은하는 적당히 데워진 우유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머리를 훑는 손길에 몸을 맡겼다.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서늘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 엄마! 나도 따뜻한 우유 마실래!”
“은아 일어났니? 더 자지 그랬어.”
“후후, 이리오렴. 할머니가 마시던 거라도 마실래?”
“마실래! 마실래!”
혼자서는 잠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이불을 돌돌 만 은아가 복도를 걸어왔다. 그러고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람을 보고는 치사하다며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와~! 하늘 예쁘다! 그치 은하야?”
“응. 그러게.”
할머니의 옆에 걸터앉은 은아는 머그컵을 손에 쥔 채 콧노래를 불렀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대화거리를 쏟아내며 아침 기운을 만끽하는 그녀였다.
“아! 잠깐만.”
세 사람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던 은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복도를 소리를 내며 달려가서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으으, 뭐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버지가 잠에서 깼다.
은하는 가볍게,
“아빠 굿모닝!”
휙 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할머니. 이거요.”
“어머.”
은하가 건넨 것은 유치원에서 접었던 카네이션이었다.
카네이션을 받을 줄 몰랐던 할머니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회귀 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미소를 지으면서,
“고마워. 이웃들한테 자랑하게 현관에 걸어놔야겠다.”
어? 그런 이유였어?
회귀 전 은하가 만든 카네이션을 현관문이나 집안 곳곳에 걸어놓고는 했었던 할머니.
설마 카네이션을 걸어놓은 이유에 이웃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뭐 어때.
“…그 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입을 여는 은하.
회귀 전, 눈을 감는 그날까지 그를 보살펴주었던 할머니. 그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는 없다.
지금 카네이션을 받은 할머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간직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하지만 은하는 카네이션을 받고 기뻐하는 할머니에게서 죽는 그날까지 그를 보듬어준 할머니를 겹쳐보았다.
할머니는 모르시겠지.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두 번째 삶을 얻은 그는 이전 삶에서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만큼 이번 삶에서는 할머니에게 즐거운 추억만을 줄 생각이니까.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서늘했지만, 머그컵에서는 여전히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미래는 바뀌었다.
이제부터 보내는 미래는 또 다른 미래가 되겠지.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행복한 미래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굿 바이,
굿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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