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22
중등아카데미 1학년 필수이수교양 ‘플레이어의 첫걸음’ 수업시간.
1학년 학생들은 대강당에 모여서 주임교관의 수업을 받고 있었다.
300명을 수용하고도 공간이 남는 대강당은 돔 형태로 감싸는 방벽을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지난 수업에서도 한 번 말했지만,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몬스터를 죽이지 못하는 플레이어는 플레이어라 할 수 없습니다.”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한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머리로 수긍하는 일과 몸으로 실감하는 일은 달랐다.
몬스터는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되, 생물이기도 했다.
바로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에 불과했을 그들이 갑자기 생물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이 설사 몬스터라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으로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올해 안으로 몬스터를 죽이세요.”
학생들은 숨을 삼켰다.
주임교관은 말했다.
학생들이 2학기 기말고사에서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만약 몬스터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때는 알아서 하라고.
학교를 떠나든가.
악착 같이 버티든가.
단, 후자의 경우에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말라고. 졸업할 때까지 몬스터를 죽이지 못하면 고등아카데미로 진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고.
“오늘 수업부터 여러분들은 여기서 몬스터를 죽이는 훈련을 할 겁니다. 본 교관은 여러분이 뒤처지지 않고 따라오기를 바랍니다.”
주임교관은 수련동에서 오늘부터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 덧붙였다.
말을 마친 뒤에는 마석을 꺼냈다.
대기 중이던 각 반 담당교관들이 방벽 안에 영역을 구분하는 방벽을 전개했다.
“여러분들에게 경고 하나 하자면, 교관의 입회 없이 마석을 이용해서 편재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몇 년 전에 이 새벽백화점에 일으킨 테러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석에 마나를 주입한 주임교관이 강조하며 말했다.
이윽고 조그마한 방벽 안에 떨어진 마석이 편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기 중에 녹아든 마나를 빨아들인 마석이 몸부림치듯 바닥을 구르더니 푸르른 아지랑이에 휩싸였다.
한 곳을 중심으로 응집된 기운.
마치 심장처럼 뜀박질하는 편재가 중심부에서부터 몬스터를 불러냈다.
끼르르륵
학생들은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를 마주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몬스터의 존재를 미디어에서 접한 대다수는 생물의 규격을 벗어난 듯, 이질적인 형태를 지닌 존재를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에 붙은 마나를 털어낸 몬스터가 포식자의 시선으로 노려보았을 때, 학생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끄르르르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시선.
그제야 학생들은 몬스터의 공포가 어떠한 것인지 몸소 느꼈다.
또한 플레이어가 된다는 의미를.
“…못해. 저걸 어떻게 죽여.”
공포만으로 겁에 질린 이들.
주임교관은 고개를 젓는 그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이 몬스터는 제8위계 철인입니다. 주로 철을 부식시켜, 건물을 부수는 몬스터이지요.”
“저게…, 제8위계란 건가요?”
“일상생활에 물리적 피해를 주니, 제8위계 몬스터로 분류됩니다. 아, 인간을 공격할 때에는 달라붙어서 죽을 때까지 삭게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주임교관은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반면에 학생들은 조그만 악마처럼 쭈그리고 앉아 키득거리는 몬스터를 별 거 아니라고 여기기 힘들었다.
“오늘은 철인으로 공부할 겁니다. 먼저, 여기서 누가 나와서 철인을 죽여보지 않겠습니까?”
“”””…….””””
“아무도 없으면 제가 지목하지요. 어디 보자…, 거기 배수빈 학생?”
“…네.” “앞으로 나오세요.”
지목당한 배수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임교관은 그녀의 상태를 알면서 모른 척하며, 친절하게 그녀의 손에 검을 쥐어주었다.
“여러분은 오로지 무기를 사용해 몬스터를 죽여야 합니다. 몬스터를 견제하는 목적으로 마법을 사용해도 되지만, 마법을 사용해서 몬스터를 죽이면 안 됩니다.”
철인을 가두고 있는 방벽은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밖에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주임교관은 경계선에 다가간 그녀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배수빈 학생에게 조언을 하자면, 철인을 상대할 때에는 몸에 방벽을 두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철인이 달라붙어 몸을 삭게 할 테니까요.”
“…네.” “위험한 순간이 되면 담당교관들이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다고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배수빈은 떨리는 마음을 안은 채, 방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순간, 철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큭…!”
보호마법을 펼친 그녀가 달려들던 철인을 막아냈다.
동시에 그녀는 철로 이루어진 몸이 들이박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어!?”
서둘러 자세를 취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튕겨나간 철인이 덮쳐들었으니까.
마법을 채 전개하지 못한 그녀는 어깨를 조이기 시작한 철인에게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철인은 두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보다 세게 어깨를 조이고, 다리로 그녀의 허리를 옭아맸다.
“……!”
허리가 우그러지는 듯한 감각.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방벽을 전개할 정신이 없었다.
철인이 조이는 부위가 뜨거워지며 몸을 달구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교복에 부여된 보호마법이 철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철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그녀에게 기다리는 결말은 죽음밖에 없었다.
“─중지!”
그녀가 재기할 가망이 없다 판단한 주임교관이 선언했다.
그러자 8반 교관이 그녀를 구하러 방벽을 향해 뛰었다. 마나를 실은 발길질로 철인을 떨쳐내고, 그녀를 부축해 방벽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드러누운 배수빈.
교관들이 그녀에게 문제가 없는지 살폈다.
그들을 뒤로하며 주임교관이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움직이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오늘 수업에서는 철인에게 디버프를 가하고, 그룹원들이 함께 철인을 죽이는 수업을 할 겁니다.
하지만 2학기 기말고사에서는 아무 제한도 가하지 않은 제8위계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겁니다.”
안도하는 학생들을 곯리려는 듯이.
주임교관은 히죽거리며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해보기 전에, 움직이는 철인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주세요. 한 명만 시범을 보여서는 섭하니.”
“”””…….””””
“어디 없나요? 그럼 제가 다시…, 아, 거기 손 든 학생 나와 주세요!”
주임교관은 눈을 빛냈다.
교관들 사이에서 말이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던 것이다.
어디 얼마나 하는지 볼까?
주임교관은 해당 학생의 콧대를 꺾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손짓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본인이 누구인지 소개해─.”
“─1학년 6반 7번 노은하입니다.”
은하는 대뜸 말을 잘랐다.
☆
처음부터 철인을 상대하라니.
철인은 제8위계 몬스터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데다,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어 죽이는데 저항감을 불러오는 몬스터였다.
은하는 주임교관이 철인을 꺼냈을 때부터 그 의도를 읽어냈다.
학생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하고, 학생들을 공포로 관리하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주임교관은 일부러 3등으로 입학한 수빈에게 디버프도 가하지 않은 철인을 쓰러뜨리라고 지시했다.
쓰러뜨리지 못할 거라고 알면서도.
어쩌면 그 의도에는 학생들의 콧대를 꺾을 생각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애들을 공포로 관리하고, 자존심을 꺾으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플레이어의 세계는 그런 세계였다.
도리가 아니라 욕망으로 움직이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세계.
그러니 은하는 주임교관의 교육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철인에게 당한 수빈이었다.
“그래도 꼴좋다.”
“맞아. 지금까지 지 혼자 잘난 척, 아주 장난이 아니었잖아.”
“쟤 싸가지 없더라. 뭐만 물으면 바쁘다면서 안 알려주더라고.”
그녀에 대한 동정여론도 있었지만, 그녀를 비웃는 여론이 더 많았다.
배수빈은 성격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날 선 것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툭 쏘아붙이기 일쑤였고, 성적을 먼저 생각한 나머지 매몰찬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인과응보라 할 수 있었다.
능력주의가 만연하는 아카데미에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꼴이었으니.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학생들이 기회가 오자마자 입을 연 것이다.
“어디 없나요? 그럼 제가 다시…, 아, 거기 손 든 학생 나와 주세요!”
그렇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은하는 이전 삶에서 생사를 함께한 배수빈을 비웃는 사람들을 이대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들었다.
닥치고 보고 있으라는 의미에서.
주임교관이 공포를 뿌렸던 것처럼, 그 역시 공포를 뿌리기로 했다.
“”””─…….””””
학생들을 비롯해 교관들마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방벽 안으로 들어간 은하가 철인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다.
끄르….
“일어나.”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는 철인을 발로 찼다.
철로 이루어진 몸체가 꼭 고철처럼 바닥을 굴렀다.
은하는 조금 전에 검으로 잘라낸 철인의 팔을 들어올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려서는 학생들에게 던졌다.
철인의 팔은 방벽에 가로막혔지만 그의 전투에 몰두하고 있던 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충분했다.
끄…르르르르
비틀거리며 일어난 놈이 하나 남은 팔을 힘없이 흔들며 도망쳤다.
미친 듯이 방벽을 두드렸다.
뒤에서 은하가 다가오자,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낑낑 울었다.
끄끄ㄹ….
녀석은 마저 울지 못했다.
그가 손으로 후려치듯, 검집으로 머리를 마구 때렸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깡깡 거리는 소리가 나고 녀석의 머리가 덜거덕거렸다.
한참을 맞다 보니 네모진 머리가 점점 구겨졌다.
“”””…….””””
철인의 마지막은 처량했다.
은하는 저항하기를 포기한 철인을 바닥에 드러눕히고, 녀석의 머리를 제외한 부위를 마구 찔러댔다.
마나를 씌운 칼날은 철인의 몸체를 이리저리 후비고, 잘라냈다.
그렇게 몸체가 흩어졌을 때에야, 철인은 마석을 남기고 소멸했다.
“끝났는데요?”
“그, 그래….”
주임교관은 몬스터가 그에게 굴복하는 모습에 압도된 나머지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자리로 돌아가는 그에게 얌전히 길을 비켜주었다.
“그, 그럼 이제부터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임교관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
“진짜 내가 그것만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니까!”
“…몬스터가 불쌍해지더라. 노은하 너는 진짜 악마야, 악마.”
남자아이들은 소화라도 시킬 겸, 밖으로 산책을 나왔다.
앞서 걸어가는 파랑과 은혁은 저희들끼리 오늘 수업에 있었던 일을 떠들어댔다.
그 정도로 은하가 선보인 전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에는 그동안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교관들이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을 정도였다.
그래봤자 내가 다 무시했지만.
능력주의가 만연하는 아카데미.
은하는 교관들이 건네는 말을 대충 흘러들었다.
그들이 반감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만한 능력을 선보인 그를 다시는 얕잡아보지 못할 터였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전투가 강렬하게 각인된 그들은 수빈을 비웃은 것도 잊어버렸다.
더군다나 그들도 직접 몬스터를 상대하기까지 했으니.
이날 수업에서 몬스터를 죽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늘 정말 재밌더라. 아카데미에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 “맞아, 손맛이 장난 아니던데?”
민지와 하양은 몬스터를 죽이지 못했다. 몬스터를 궁지에 몰기까지는 했으나, 검으로 몬스터를 죽이는데 저항감을 느꼈다.
서나는 어찌어찌 죽였다.
반면에 은혁과 파랑은 물 만난 고기처럼 몬스터를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특히 파랑이 형은….
파랑은 은하의 전투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몬스터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러다 반격을 당해 코피가 났고.
코를 막고 있는 휴지가 증거였다.
“근데 대장. 고대문학연구 동아리는 어때? 거기는 사람 많아?”
“3학년 4명, 1학년은 날 포함해서 3명이야.” “우와, 그쪽이 더 심하네. 문화탐방 동호회는 2학년이 4명, 1학년이 5명이야.”
동호회 선배들이 좋은 것 같지만, 동아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동호회에 들어간 은혁은 제 일처럼 푸념을 늘어놓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당장은 힘들더라도, 동아리로 인가받을 수 있을 거야.”
“대장이 그렇게 말하는 거면 정말 그런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문화탐방이라니…, 딱 들어보니까 재미없어 보이는데. 나처럼 트래킹 동아리나 하지 그랬어. 이름만으로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냐?”
“대장 말대로 사람들이 좋아 보이던걸, 뭘.”
은혁이 툴툴거렸다.
트래킹 동아리에 입부했다는 파랑은 낄낄거리며 그를 놀려댔다.
은하는 서로 장난을 치며 노는 그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거기 정말 좋은 동아리야. 미래에 온태양과 그 동료들이 들어가니까.
그러다 그는 문화탐방 동아리에 차은우가 입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동아리에 입부한 1학년 애들은 누구야?” “나하고 민지, 서나랑 9반의 목민호랑 차은우라는 애야. 둘 다 입학성적이 꽤 높더라.”
“목민호?”
“응. 대장, 아는 애야?”
“…잘 모르겠다.”
은하는 대충 얼버무렸다.
목민호.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실력은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해도, 서울침공에서 사망했다 보니 그만 까먹고 말았다.
그래서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이라 그에게는 이명도 없었다.
사후에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온태양의 대항마로 불릴 만한 이는 그밖에 없을 거란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목민호는 어때? 괜찮아?” “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야.”
“걔가 싫어하면 다가가지 마.”
목민호는 031기수로서 선민의식이 높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는 흙수저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태양을 멸시했다.
그러니 은혁이나 민지가 접근했다, 목민호에게 화를 당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목민호라….
사사건건 온태양과 대립했던 그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온태양이 31기수의 주역이라 하면, 목민호는 031기수의 주역이었다.
염두에 둬야겠네.
은하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을 참고해두기로 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