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30
“목은 잘 씻고 왔냐, 목삐리리?”
“너야말로 무릎 꿇고 사과할 준비라도 해라.”
필수이수교양과목 초급검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원을 그리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원 안에 서 있는 진파랑과 목민호.
목검을 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인생의 걸림돌을 마주한 것처럼.
“파랑이 형이 이길 자신이 있어서 대련을 하자고 그런 거겠지?”
“빙구 오빠가 빙구 오빠한 거지. 이제 와서 저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 난.”
“대장…, 대장은 어떻게 생각해? 파랑이 형이 이길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은하는 두 사람의 대련을 걱정하는 은혁에게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파랑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자기 딴에는 어떤 큰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는지 몰라도, 불안하기만 했다.
그가 아는 진파랑은 머리로 싸우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이번 삶에서 미래가 바뀌었다 해도 파랑이 두뇌파 플레이어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냥 바보 형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떡하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야말로 대련에서 져서 사람이 됐으면….”
“파랑 오빠가 민호랑 놀고 싶어서 대련하자고 한 거 아닐까?”
“””응, 그건 절대 아니야.”””
세 사람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은우에게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동시에 똑같은 대답을 들은 그녀가 말똥말똥한 눈을 깜빡거렸다.
꼭 순수한 눈빛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너희, 파랑 오빠랑 친구 아니야?
아쉽게도 세 사람이 그녀의 의문에 답할 시간은 없었다.
교관이 성가시다는 듯 한숨을 쉬고 대련에 대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대련 규칙은 지난번과 같다. 수업에서 배운 검술만을 사용해라.”
교관은 이러다 진도는 못 나가고, 수업시간에 대련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교관의 불만이 어찌하였든, 두 사람의 대련이 종을 울렸다.
이번에도 먼저 움직인 이는 진파랑이었다.
간결한 동선으로 땅을 박찬 그가 두 손으로 쥔 목검을 머리 위에서 내리쳤다.
민호는 지면과 수평으로 들어올린 목검으로 진파랑을 떼어내고, 그가 물러나는 사이에 빈틈을 가격했다.
“…큭…!”
마나가 실린 일격을 막아낸 파랑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파랑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발바닥으로 지면을 민 그가 민호를 몇 걸음이나 물러나게 했다.
힘과 힘이 충돌했다. 소 두 마리가 모래사장 위에서 머리를 맞대가며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
이제 중등아카데미 1학년에 불과한 민호가 아인의 신체능력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흐름을 끊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현재 진파랑은 우직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상대는 공격방향을 유도하기 쉬웠다.
그는 마치 투우사라도 된 것처럼 한 가지 생각만을 하고 있는 파랑을 뒤로 보내버리기로 했다.
그사이, 파랑의 등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왜 웃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의 예상은 반은 틀렸다. 그는 목검을 부딪치고 있는 파랑이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는 모습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꺼~억
“…….” “아이구…,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내가 아까 점심을 많이 먹었나 봐. 이렇게 트림이 다 나오…”
뿡
“이제는 방귀도 다 나오네.”
코앞에서 트림을 맞은 민호는 입을 다물었다.
코 속에서 뭉게구름처럼 퍼져가는 냄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맡아보는 악취였다.
“…이 자식이!”
예상을 벗어난 공격을 당한 민호가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진파랑이 그때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머리! 허리! 머리! 다리! 꺼억!”
“…큭, 이게 진짜…!”
파랑이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민호는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날아든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트림이나 방귀 공격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럼에도 민호는 제대로 된 반격을 구사하지 못했다.
겨우 주도권을 되찾는가 했더니, 파랑이 공격은 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빠른 속도던지.
그는 늑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방귀를 끼며 뛰어다니는 진파랑을 전력을 다해 쫓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속이 흔들렸다.
점심을 워낙 많이 먹었던 결과, 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힘이 부쳤다.
“안 쫓아오고 뭐 하냐, 목쫄보!”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당연한 거 아니겠어!?”
도망다니던 파랑이 민호의 증세를 기민하게 포착했다.
곧장 선회한 그가 검을 내려치고, 공격이 막히자 허리를 숙여 옆으로 검을 휘둘렀다.
속이 더부룩한 감각을 참아가면서 파랑을 막아내는 민호였으나, 점점 빈틈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러던 도중 그는 깨달았다.
파랑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가오게 만들도록 끌어들이면 될 뿐이었다.
어라? 목쫄보, 갑자기 왜 이래?
이제 지쳤냐?
그래서 그는 속이 좋지 않은 티를 연기했다.
동시에 일부러 빈틈을 만들어줬다.
아무것도 모르는 파랑이 바보 같이 달려들었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민호가 몸을 옆으로 비꼈다.
“─어?” “멍청한 놈.”
드디어 잡았다.
그는 늑대 귀를 내려다볼 수 있는 파랑의 뒤통수를 보기를 고대했다.
이것으로 목덜미에 목검을 향하면 대련은 끝날 터였다.
파랑이 손 안에 쥐고 있던 모래를 뿌리지만 않았다면.
“…윽…! 누, 눈이…!”
“내가 이런 것도 예상 못 했겠냐? 뛰는 놈 위에 나는 진파랑 있으시다 이 말이야!”
캬하하 웃는 소리가 참 거슬렸다.
하지만 승부가 났다.
모래가 눈에 들어가 시야를 빼앗긴 목민호가 눈을 떴을 때에는 파랑이 목검으로 그의 목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번처럼 날 내려다보면서 거만을 떨었던 목쫄보는 어디로 갔을까?”
“…이딴 식으로 이겨서 좋냐?”
“뭔 소리야? 플레이어가 될 거라면 하나만 알아두라고, 목삐리리.”
“…….”
“노련한 플레이어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란 걸.”
파랑을 노려보던 민호는 그 말에 아무 반박도 못했다.
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지금 파랑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신세였다.
더럽고, 치사하고, 무식한 놈이.
이런 부류는 좋아하지 않았다.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파랑이 말한 대로 결과가 전부인 세상이었다.
그는 목검으로 목을 톡톡 건드리는 파랑으로부터 교훈을 하나 배웠다.
세상에는 참 많은 부류의 사람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이런 걸로 이겼다고 쪼개지 마.”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야, 임마! 그리고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형이라고 불러라?”
“어이가 없어서…. 네가 했던 짓을 돌이켜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나 보지?”
정직하게 검을 휘두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플레이어의 세계는 그가 어렸을 적 입문했던 검도의 세계와 달랐다.
앞에서 낄낄 대는, 상종하기 싫은 늑대 아인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정직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마찬가지로.
수고했어. 눈은 괜찮아?
괜찮아.
그는 파랑의 친구들 사이에 끼어 자신을 응원하고 있던 소꿉친구와 시선을 교환했다.
붉은 쵸커가 눈에 아른거렸다.
떠오르는 감정을 삼키고, 목민호는 담담하게 화답했다.
양보만 해서도 살아갈 수 없다.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승자, 목민호.”
“아, 왜요! 제가 이겼잖아요!”
“결과적으로 네가 이기기는 했지. 근데 나는 수업에서 가르친 검술만 사용하라고 했을 텐데? 눈에 모래를 뿌리라는 비겁한 짓은 알려준 적이 없는 걸로 안다만.” “그, 뭣이냐…, 전략이었거든요!”
“…트림을 하고, 방귀를 끼는 건 그나마 이해한다. 하지만 모래를 뿌리는 건 용납 못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너는 스포츠맨십 좀 배워야겠다.”
한편, 교관은 혀를 끌끌 찼다.
파랑이 아우성을 쳤어도, 교관은 승패를 뒤집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목민호는 절로 웃음이 다 나왔다.
파랑을 비웃기 위해 다가간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쩌냐. 내가 이겼다는데.”
“…이기긴 뭘 이겨! 이긴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거든!?”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야.”
“이게 사람 짜증나게 하고 있네!?”
파랑과 티격태격 다투는 목민호.
두 사람의 대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은하와 친구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파랑이 형, 진짜 야비하다.”
“쪽팔리니까 당분간 빙구 오빠한테 다가가지 말아야겠다. 내가 정말….”
한숨을 푹푹 쉬는 은혁과 민지.
은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틀에 얽매이지 말라 그랬지, 저딴 식으로라도 이기라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저 늑대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은하는 오늘도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에 혀를 내둘렀다.
민지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당분간 진파랑에게는 말도 붙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형한테 만들어준 클로를 그냥 뺏어, 말아?
벽해수에게 부탁해 괜히 품질 좋은 클로를 만들어준 것이 후회되었다.
연습을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신의 털보다 우선시해서 클로를 광이 나도록 닦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진파랑이 뭐라 그랬던가.
블루클로(Blue Claw)라나 뭐라나.
차라리 블루클럽이라 불러라.
머리 자르는데 사용할 거면.
목을 확 비틀어버리고 싶다.
은하는 허허 웃으며 민호와 다투는 진파랑을 살기 어린 눈으로 보았다.
이전 삶에서나 이번 삶에서나 도통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 같지도 않은 형이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기는요. 그놈의 승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죠, 뭘.”
아침 훈련을 마친 은하와 연화는 이제는 지정석이 된 자리에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
오늘은 그녀가 웬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왔다며 도시락을 내밀었다.
류연화한테 이런 취미도 있었구나.
새삼 신기한 기분이었다.
창만 휘두를 줄만 알았던 류연화가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있었다는 게.
듣자하니 은아가 중등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을 때, 늦게 일어나던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주다가 취미가 됐다는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은하는 “누나가 류연화를 어떻게 바꿔놨기에….”라며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던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때? 은아가 계란 샌드위치를 좋아해서 은하 너도 입에 맞지 않나 생각했는데….”
“맛있네요. 그리고 저도 계란 샌드위치 좋아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안도해하는 류연화.
창을 휘두르던 때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이가 얼음이 녹을 것만 같은 얼굴을 하니 은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람다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샌드위치도 괜찮고.
누구랑 다르게….
그녀가 가져온 샌드위치는 평범한 샌드위치였다.
민지가 만든 샌드위치를 생각하면 평범한 맛도 맛있다고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은하 너는 디바이스 따로 안 만들어도 괜찮아?”
“디바이스요? 목검으로 충분해요.”
은하는 손에 쥔 목검을 가리켰다. 사실 그도 파랑의 클로를 만들 때, 벽해수에게 자신에게도 디바이스를 만들어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들어봤자 쓸모가 없었다.
중등아카데미 학생은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 외부로 디바이스를 반출할 수가 없었다.
고등아카데미 학생이 아니고서야 디바이스를 반출할 수도, 외부에서 휴대할 수도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교관이 나누어주는 전용 디바이스를 사용해야 했다.
적어도 1학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수업에서 개인 디바이스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디바이스를 제작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밖에서 사용할 디바이스는 브루노 아저씨가 가지고 있으니까.
올해까지는 목검으로 참아야지 뭐. 내년에 해수 형에게 수업시간에 쓸 디바이스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고등아카데미에 진학하면 내 전용 디바이스를 부탁하고….
고등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지 자신의 전용 디바이스를 만들어야 하기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전 삶에서 애용한 ‘노 원 크라이’를 만들고 싶지만…, 이 시기에 그만한 재료를 모으는 게 과연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아, 종 쳤다.” “슬슬 샤워하러 일어나야겠네요. 샌드위치 잘 먹었어요, 누나.”
“응, 다음에는 네가 좋아하는 걸로 싸가지고 올게.” “귀찮지 않아요?”
“내가 지금도 가끔 은아 깨워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있어.”
“…누나….”
은하는 연화에게 미안해졌다.
연화는 별 거 아니라며 대꾸했다.
“은하 너는 뭘 좋아해?” “음…, 누나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저도 좋아해요.”
“은아랑 입맛이 비슷하구나?”
“그렇죠, 뭐.”
어느새 아침 연습을 같이하기로 한 두 사람이었다.
최하층 수련장을 나선 두 사람은 정답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내일도 이 시간에 올 거지?”
“그럴 것 같아요. 못 올 것 같으면 연락을…, 아, 그러고 보니 번호를 교환 안 했네요.” “…그러게.”
중대한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같은 장소에서 만났을 뿐, 따로 언제 만날 것인지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폰 좀 줄래? 번호 찍어줄게.”
“누나도 폰 주세요.”
습기가 가시지 않은 숲속 한복판.
그들은 풀잎이 발하는 향기 속에서 번호를 교환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