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가정의 달, 5월.
다음 주에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 아카데미 학생들은 연휴를 맞이하여 자택으로 귀가했다.
은하도 마찬가지.
그동안 주말에만 집으로 돌아왔던 그는 대략 일주일이나 되는 연휴를 집에서 마음껏 즐기는 중이었다.
“오빠, 이거 봐봐! 이거 어제 내가 학교에서 그린 거야!”
“가족들 그린 거야? 잘 그렸네.” “그치?” “이러다 화가 해도 되겠는데?” “정말!?”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등을 기대고,허니버터맛 포테이토칩을 먹고 있던 은하는 올해 초등학생이 된 은애가 가져온 그림을 살폈다.
조그마한 가방에서 꺼낸 그림에는 가족들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크레파스가 삐뚤빼뚤한 테두리를 삐져나오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건 엄마고…, 이건 누나 맞지?”
“와, 오빠는 한 번에 알아맞히네! 어제 아빠는 누가 언니고 엄마인지 못 알아봤는데….” “아빠가 눈이 이상해서 그런 거야. 네가 얼마나 똑같이 잘 그렸는데.”
“그치, 그치? 나 그림 잘 그리지?”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위치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있던 은애가 활짝 웃었다.
드디어 자신의 예술성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큰일 날 뻔했네.
하마터면 나도 아빠처럼 은애한테 미움 받을 뻔했어.
은하는 내심 십년감수했다.
어머니가 귀띔해주지 않았더라면 어제 하루 종일 우울해 하고 있던 아버지와 같은 꼴이 날 뻔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은아와 어머니의 차이를 분간한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래도 화가는 안 할 거야!” “그러면 나중에 커서 뭐 할 건데? 혹시 플레이어는 아니지?”
은하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은애가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하면 극구 반대할 생각까지 하며.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진지한 생각을 품을 필요는 없건만.
다행히 그녀는 무난하게 답했다.
“꽃이랑 동물들이랑 재미있게 노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네. 은애 너한테 딱이겠다.”
작년부터 기프트를 통제하기 위해 마나제어기술을 배우고 있는 은애.
은하는 이제는 동식물과 친근하게 감정을 교감할 수 있게 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은 온실 속에 살기 바랐다. 자신과 은아가 플레이어가 될 테니, 은애는 평화롭게 살아도 되리라.
“오빠, 그러니까!” “그러니까 왜?”
“서현이 언니한테 연락 좀 해주면 안 될까? 응? 응응?”
“…그 누나한테?”
소파 위로 뛰어오른 은애가 그에게 바짝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과자를 먹고 난 후에 손에 묻은 소금기를 닦으려던 그는 당황했다.
왜 갑자기 서현이 나오나 싶어서.
의문은 금세 풀렸다.
“있잖아, 전에 서현이 언니네 집에 놀러갔던 적이 있잖아.”
“…2년 전이었나? 있었지.” “그때 서연이 언니가 보여준 꽃, 그거 또 보고 싶어!” “꽃? 식물원에서 볼 수 있을 텐데, 굳이 시리우스그룹 본가까지 가서 봐야 하는 꽃이야?”
“서연이 언니가 그랬는걸. 그 꽃은 언니네 집에서만 피는 꽃이라고….”
“그건 그 누나가 거짓말한 거겠지. 서현 누나 말도 믿으면 안 되지만 서연 누나 말은 더 믿으면 안 돼.”
“초롱이랑 햇님이도 말한 건데….”
은애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입술을 삐죽 내미는 게 귀여웠다.
결국 여동생을 그대로 둘 수 없던 은하는 서현에게 톡을 보냈다.
연휴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로부터 금세 답장이 왔다.
「서현」: 은애 편할 때 오라고 해. 그래도 은애 볼 시간은 있으니까.(오후 13:23)
「서현」: 너도 오니?(오후 13:25)
은애를 혼자 보내기는 불안했지만 서현에게 맡겨도 되리라 판단했다.
답신을 보낸 그는 은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내 은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에서 색칠도구를 가지고 나왔다. 새로운 영감이라도 떠오른 것인지,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뭐 그리는 거야?” “서현이 언니! 언니네 놀러갈 때, 선물로 가져갈 거야.”
“…파이팅.”
은하는 고민했다.
과연 8살 여동생에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줘도 괜찮을 것인지.
은애가 상처받을지는 않을지.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기름 묻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이 누나한테 말해놔야겠네.
은애의 그림을 보게 되더라도 제발 화는 내지 말아달라고.
여동생은 지켜야 마땅한 존재였다. 은애가 상처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필시 은애를 귀여워하는 한서현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리라.
그런데 여기에 눈치는 조금도 없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이게 나라고? 네 손이 아무리 개발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날 강아지인지 늑대인지 모를 동물로 그릴 수가 있냐?”
점심이 이미 지난 무렵에야 일어난 파랑은 수건으로 머리를 탁탁 털며 은애가 학교에서 그렸다는 그림을 평했다.
그런 뒤에는 한서현을 그리고 있던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거 사람은 맞지? 왜 손가락이 3개밖에 없어?”
“…….”
“…하….”
은애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집에서 은애를 울리는 사람은 이유를 불문하고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을.
예외는 오로지 어머니와 할머니, 나아가 은아밖에 없다는 것을.
“아무래도 형은 나한테….”
은하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파랑에게 응징을 가하려 하는데─.
“─은애 누나 괴롭히지 마!”
“뭐야!? 너는 대체 어디…커헉…!”
때마침 집으로 놀러온 어베니어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정의의 철퇴를 휘두른 것이다.
파랑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금 꿈나라에 빠졌다.
☆
친구들은 연휴를 맞이하여 집에서 푹 쉬고 있다고 한다.
중간고사 전교 1등을 노리고 있는 배수빈은 집에는 돌아가지도 않고 기숙사에 틀어박혀 공부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류연화는 수련을 하고 있다 하고.
여하튼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휴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물며 진파랑마저도 지금 집에서 퍼질러 자고 있지 않은가.
행당역에서 하차한 은하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주택가만 보였다. 주민들도 연휴를 즐기는 모양인지 조용한 거리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연휴를 즐기고 싶은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위치가 빈민가 쪽이었을 텐데….”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았다.
행당역은 역을 중심으로 빈민가가 상왕십리 방면에 밀집해 있었다.
건물이 무너진 채로 방치된 구역은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빈민가의 사람들은 언제 붕괴할지도 모르는 구역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쟤 뭐야?”
“누가 버젓이 저 길로 들어와?”
“저 놈 어떻게 할 거야?”
빈민가 초입.
은하는 일부러 눈에 띄는 길목을 버젓이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길목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골목길 사이에서 들으라는 듯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
그는 굳이 그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이곳은 거주민의 위험도가 낮았다. 주의해야 할 상대는 없었다.
단지 그는 신경을 끄라는 의미에서 체내 마나를 가시화해서 위압감을 조성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시선을 주기도 했다.
다 갔네.
어느새 소리가 잦아들었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 위한 냄새를 기민하게 포착해냈다.
섣불리 자신을 건드렸다가는 되레 당하고 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떨쳐낸 그는 조용히 빈민가에서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지역으로 향했다.
“여기 어디인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사선으로 기울어진 건물 주변에서 마나감지망을 전개했다.
거미줄처럼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감지망이 파문을 일으켰다.
반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건물이었나?”
기울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마나감지망을 전개하고─.
“─여기네.”
퍼져나가던 파문 하나가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부근에서 마나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증거였다.
세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편재가 발생했거나.
누군가 은폐마법을 전개했거나.
혹은 던전이 존재하거나.
이전 삶을 기억하고 있는 은하는 세 번째 경우를 확신했다.
건물 어딘가에 자신이 찾고 있는 던전이 있다.
몇 층에 있는 거지?
층까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니 일일이 확인해볼 수밖에 없나.
마나감시국은 국내에 현존해 있는 던전의 분포를 감시하고 있다.
국내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지부에서 감지망을 전개해, 사라지는 반응을 관측하면 될 뿐.
현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난 던전은 외부로부터 접근을 차단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나관리기구의 관측으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던전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3층은 아니고….
그럼 4층인가?
감시국은 웬만한 기운이 아니고서 원거리에서 건물 내부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통제국이 일일이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던전의 침식이 미약한 곳은 감지망에 걸려들지 않았다.
마나농도나 아티펙트의 원인으로 감지망이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마나관리기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던전이 존재했다.
은하가 찾고 있는 던전도 그러한 던전 중 하나였다.
“─여기네.”
4층 413호.
은하는 붉게 변색된 문 앞에 섰다.
붉은색은 적색던전의 침식상태를 알려주는 색이었다.
색이 진해질수록 난이도가 오르고, 침식의 범위에 따라 공략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은 침식상태가 협소하고 색은 진했다.
침식이 문 안쪽 공간에만 미치니, 감지망으로 식별하지 못했을 만도 했다.
그러면서 공략난이도가 높았으니, 이른바 쭉정이라 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꺼려할 만한 던전.
이게 알짜배기인 줄도 모르고….
그렇기에 적색던전 무학현대아파트 103동 41
3호는 아무도 찾지 못한 던전이었다.
이전 삶에서 안개꽃파티가 우연히 빈민가에서 거주하던 아이들로부터 괴담 같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영원히 찾지 못했을 던전.
당시 안개꽃 파티원들은 운이 좋게 발견한 적색던전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던 모양이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적색던전의 첫 발견자였던 그들은 공략한 던전에서 예상 못한 이득을 취했다.
은하는 베레타를 장전했다. 브루노에게 빌린 맹고슈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온통 새빨간 공간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8위계 몬스터의 숨통을 끊었다. 녀석의 소멸현상을 확인하자마자, 복도를 밟았다.
트랩이 발동했다.
양쪽 벽면에 나타난 여러 눈들이 그를 응시했다.
광선과도 같은 마법이 일제히 그를 노린 것은 순식간.
원령
은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레인저가 없었으니 트랩을 해제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체내 마나를 소모해서 트랩 자체를 뜯어내기로 택했다.
먼저 보호마법으로 쇄도해오는 광선을 튕겨냈다.
이후 체내에서 흐물흐물 올라온 원령이 벽면을 이리저리 오가는 눈알들을 덮쳤다.
이리하여 현관 입구를 돌파했다.
“수가 적어서 상대하기 편하네.”
우당탕 소리 내며 복도를 달려오는 제7위계 몬스터들.
베레타로는 놈들의 단단한 갑옷을 뚫지 못하리라.
마나 크래셔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을 맹고슈로 때려눕혔다. 재빨리 놈의 등을 밟고 나머지 두 놈을 상대했다.
검을 휘두르기 비좁은 공간이었다. 서포터의 존재가 절실한 상황에서 두 놈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밟고 있던 놈은 맹고슈로 급소를 몇 번 찔러주니 소멸했다.
“저 앞인가….”
이 던전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 모두 그가 회귀 전에 던전에서 얻은 성과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있는 거실로 이동했다.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나와.”
아직 낮이건만.
베란다 너머에는 노을을 떠올리는 붉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색던전이란 그런 곳이었다.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난 별세계.
베란다 너머로는 나가지도 못하는 세계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이 던전의 최심부는 거실이었고, 최심부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삐이이이이
마치 주전자가 물을 끓이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처음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던 그는 베란다 창문을 통과한 놈을 노려보았다.
삐에로 모자를 쓰고 있는 녀석이 창문에서 몸을 완전히 빼냈을 때, 사방이 온통 붉은 벽으로 변모했다.
원래 이 방에는 베란다가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적색던전과 호응하고 있는 보스 몬스터의 농락이었을 뿐이다.
노을을 보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대거 나이프로 심장을 찌르기 위해.
삐이이익?
제6위계 몬스터 교활한 어릿광대.
온몸이 새까만 삐에로가 기이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은하는 한 바퀴 돌린 머리를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려서 원위치 시키는 놈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토해주기만 빈다.”
베레타로 놈을 겨누었다.
놈이 경망스러운 행동을 관뒀다. 단지 대거 나이프로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했을 뿐.
리볼버 쏜
먼저 움직인 사람은 은하였다.
총구를 빠져나간 마나합금 탄환이 거대한 가시가 되어 날아갔다.
빨리 끝내고 쉬러 가야지, 원.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 교활한 어릿광대에게 나오는 스킬석 인비져블 트래커(Invisible Tracker).
그것은 노은하의 집념이 발현한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