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35
대개 던전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강하다.
놈들의 마나는 던전에서 기인하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던전의 마나는 곧 놈들의 마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놈들은 숨을 쉬는 것처럼 던전의 마나로 체내 마나를 채우고, 던전은 자식과도 같은 몬스터들에게 호응해준다.
삐 이이이 익? 익?
그중에서도 던전과 함께 태어나는 보스 몬스터는 던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던전의 섭리가 보스 몬스터를 위해 발현되는 것이다.
원령
은하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광선을 고등제어기술로 튕겨냈다.
그러나 일부는 감수해야 했다.
트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삐에로가 허공에서 꺼낸 낫을 휘둘렀기에.
다급히 방벽을 전개해 충격을 막은 은하는 자신을 중심으로 흐물거리는 마법을 수십 개의 눈을 향해 쐈다. 마치 원혼처럼 반투명한 형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눈알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브루노 아저씨한테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나.”
혼자 제6위계 몬스터를 상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 버려야 마땅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던전이었고, 놈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적어도 위계 하나는 높은 몬스터일 거란 전제를 잊지 말아야 했다.
일단 잡몹부터 죽여야 해.
곳곳에서 편재가 발생하고 있었다. 던전이 보스 몬스터를 지키기 위해 수하 몬스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놈들이 가세한다면 불리해질 터.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꾸에…!
끼이이…컥!
크르르….
던전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다.
부하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으로, 던전의 마나는 그만큼 위축하는 법.
던전을 안전하게 공략하는 방법은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있었다.
그래야 보스 몬스터가 약체화했다.
거실에서 뒤로 물러난 은하는 곧장 새로이 태어난 몬스터들을 죽였다.
삐…이익?
그 뒤를 따라왔던 보스 몬스터가 멈칫했다.
은하가 던전을 나가는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따 보자.”
누가 익살꾼인지 모를 만한 행동.
그는 녀석이 던진 대거 나이프가 쇄도하기 전에 문을 닫았다.
“…골치 아프네, 이거.”
던전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는 결코 던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확한 이유는 해명되지 않았으나, 아마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먹이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란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나왔다가는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살리지 못하고 약체화되기도 할 테니.
기프트를 사용할까?
안 돼, 그건 위험해.
작전을 다시 짜야 했다.
문 앞에 기대고 앉은 은하는 일단 커피우유를 마시면서 체력과 마나를 회복했다.
규모가 작은 적색던전이란 생각에 혼자서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건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공략하기란 무리였다.
그렇다고 기프트가 발현될 때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위험했다.
기프트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반동으로 인해 약해질 수 있으니.
만약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뒤에 새로운 몬스터가 출몰해버렸다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었다.
결국 이것밖에 없겠네.
“…잘 쓸게요, 줄리에타 누나.”
이내 베레타의 탄창을 교환한 그는 믹스후르츠 포션을 죄다 마셨다.
버프가 몸 안에서 꿈틀거릴 때쯤, 사전에 줄리에타에게 부탁해 놓았던 일회용 아티펙트를 꺼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아티펙트.
그동안 모아두고 있던 마석으로는 이만한 아티펙트를 구하기도 제법 힘들었다.
과거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만들 때 남아 있던 마석을 전부 털어놓은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이거라도 어쩔 수 없지.
기프트를 저장해두는 아티펙트는 아직 필요한 때가 아니니까.
실험이기도 했다.
아티펙트의 성능에 따라서 저장된 기프트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앰플리피케이션.”
귀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는 황금색 기운이 그의 몸을 감쌌다.
모든 능력을 증가시키는 기프트, .
다만 해당 아티펙트의 성능으로는 눈에 띄는 향상을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수준이었다.
삐삐삐삐!
“안녕, 또 왔어. 근데 왜 문 앞까지 나와 있는 거야?”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삐에로. 어깨를 들썩이는 녀석은 익살꾼답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냈다.
제 딴에는 방심하고 들어오는 그를 놀라게 할 작정이었던 모양이지만, 은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일점돌파
맹고슈 끝자락에 모이는 마나.
나선형처럼 모인 마나가 살벌한 기운을 발하며 녀석을 노렸다.
삐쩍 마른 삐에로가 기이한 형태로 몸을 구부리며 공격을 피해냈다.
졸지에 녀석을 지나치게 된 그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불길을 맞았다.
고작 이걸로 뭘 할 수 있다고.
이 정도 불길이라면 끄떡없었다. 두르고 있던 망토에 마나를 주입해, 몸에 두를 정도로 확장시켰다.
활짝 펴진 검은 장막을 뒤집어쓰고 불길을 떨쳐냈다.
삐리리리리리
이 정도는 예상했다.
놈이 불길 속에서 달려들 것을.
아직 맹고슈에는 마법을 사용하고 잔재한 마나가 묻어 있었다.
그것을 방사형으로 흩뿌렸다.
미침
뒤로 물러나는 삐에로.
천보로 검을 휘두르기 편한 거실로 물러난 그는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복도를 달려오는 놈에게 베레타를 겨냥했다.
리볼버 쏜
탄환 세 개가 거대한 가시가 되어 놈을 요격했다.
어깨와 다리를 가시에 꿰뚫린 놈은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거대한 낫에 마나를 실었다.
붉은 기운이 낫 주변을 감싸더니, 거실로 들어선 놈이 낫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작동하는 트랩.
은하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막을 필요가 뭐 있어?
놈만 쓰러뜨리면 끝이다.
원령을 전개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삐에로에게 달려들었다.
마나 소모가 상당하기는 했지만, 위험한 순간에 압축해두고 있었던 방벽을 구형으로 펼쳤다.
녀석의 공격이 방벽에 부딪쳐 튕겨나가는 사이, 녀석의 가슴 아래까지 접근했다.
바일런트 베놈
흉흉한 기운을 품은 맹고슈.
녀석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베레타가 등 뒤에서 놈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가 사전에 떨어뜨렸던 베레타에 실 가닥처럼 가늘게 형성한 마나를 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총성이 울린 것은 한순간.
총구를 향해 등을 돌린 채로 있던 놈이 옆구리를 꿰뚫렸다.
놈의 몸이 서서히 기울었다.
은하는 그 순간을 노려 검게 물든 맹고슈로 놈의 어깨를 잘라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팔이 뜯겨져나간 놈이 비명을 내며 다른 공간 속으로 숨어들었다.
아직 놈은 모습을 보이지 않건만, 던전에 괴상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필시 공간에 숨어 있는 놈은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으리라.
그가 틈을 보일 기회를.
하지만 시간은 놈에게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빼빼빼…시시시시….
“효과가 생각보다 늦었네.”
브라운관에서 기어 나온 삐에로가 바닥에 쓰러져 숨을 꺽꺽 쉬었다.
어떻게든 독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저 마지막 발악에 불과했다.
그는 이제 움직이기도 힘들어하는 삐에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해 미간에 베레타를 겨눴다.
“…쳇….”
하지만 던전의 보스는 이대로 혼자 죽을 생각이 없던 모양이었다.
은하는 난데없이 공간을 뚫고 나온 대거 나이프를 보고 혀를 찼다.
녀석의 장기였다.
한 번 맞춘 상대를 반드시 맞추는 성가신 마법.
그 마법이 던전의 섭리를 받아들여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용의주도한 자식.
뺨을 스치고 지나간 칼날에 독이 묻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상처부위가 따가워지기 시작하더니 강한 통증을 유발했다.
해독제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어차피 독은 무용지물이었으니까.
일단 제6위계 몬스터의 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제5위계의 독도 어쩌면….
어느덧 통증이 사라졌다.
삐에로를 지키듯 공간을 헤엄치는 대거 나이프를 쳐내고 있던 은하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로 조금 전에도 대거 나이프가 스치고 지나갔는데에도 피부를 베인 흔적은 남아 있어도 그뿐이었다.
거의 모든 독의 최정점에 위치하는 도마뱀의 왕의 섭리는 체내에 침투한 독을 흔적도 없이 파괴했다.
…삐?
“놀랐냐? 사실 나도 놀랐다.”
웬만한 독은 중화시킬 수 있다지만 갑자기 중독되면 놀라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은하는 태연한 얼굴로 놈의 미간에 초대형 가시를 쏘았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가시를 방어하려던 삐에로는 이윽고 발작을 멈췄다.
소멸 현상이 일어났다.
이내 보스 몬스터의 소멸을 확인한 적색던전이 크게 요동쳤다.
───!!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 보스 몬스터를 잃은 던전이 활동을 멈출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이 현상을 ‘던전이 죽어가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 이상 던전은 침식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마나를 사수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으니.
그러다 더 이상 몬스터를 만들지도 못하는 수준이 되면 소멸하는 것이 던전의 최후였다.
“왜 이래? 이건 내 꺼야.”
푸른빛에 녹색 빛이 가미된 마석.
보스 몬스터의 마석이었다.
은하는 바닥에 착 달라붙은 마석을 힘껏 뜯어냈다.
던전을 구성하는 핵석을 잃었으니, 이 던전은 더 이상 회생불능이었다.
이건 브루노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처리해달라고 해야겠다.
모든 플레이어는 던전을 발견하면 의무적으로 던전에 대한 보고서를 마나관리기구에 제출해야 했다.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 또한.
하지만 그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당연히 마나관리기구에 보고할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정의 보상금이 나오기는 해도, 몇 년 동안 발견되지 않을 던전을 세상에 공개하는 일이 아까웠다.
아지트로서 괜찮지.
채굴장으로도 괜찮고.
이 던전은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몬스터를 만들어낼 것이다.
은하는 녀석들을 죽이면서 경험을 몸에 익히고, 마석을 얻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수수료를 떼이지 않는 던전을 세상에 공개하겠는가.
뽕을 뽑을 대로 뽑을 생각이었다.
“내가 이걸 얼마나 되찾고 싶었는데….”
삐에로가 소멸한 자리에 남아 있던 노란색 보석.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은 손으로 감쌀 수 있는 크기였다.
그가 스킬석에 마나를 불어넣자, 노란색 빛이 보석 안쪽에서 환하게 퍼져 나왔다.
스킬석 인비져블 트래커.
한 번 공격한 상대의 상처부위를 인지범위 내에서 눈을 감고서도 노릴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인비져블 트래커일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뭐, 맞겠지.”
스킬석은 몬스터가 소멸하는 경우 아주 간혹 마석과 같이 떨어뜨리는, 소멸한 몬스터를 구성하던 섭리가 담긴 마석이었다.
하나의 스킬석에는 하나의 섭리가.
그런 연유로 그때 나오는 스킬석이 어떤 섭리를 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복불복이었다.
이미 세상에 공개된 스킬석이라면 네비게이터가 라이브러리를 조사해 섭리를 알아내는 일도 가능하지만, 섭리가 라이브러리에 기재되지 않은 스킬석은 스스로 조사해야 했다.
일단 스킬석은 챙겼고, 나머지는….
은하는 부하 몬스터들이 떨어뜨린 마석을 가방에 담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던전의 마나가 마석을 매개체로 삼을 수 있었다.
도중에 만들어진 몬스터까지 죽여 마석을 챙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던전을 찾은 목적 중 하나는 이미 완수했다.
나머지 하나가 더 남아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옷장인가 찬장인가 어디 안에 있었는데….”
아주 가끔, 던전의 영향을 벗어나 제 색을 유지하는 매개체가 있고는 했다.
던전의 섭리가 녹아든 지대에서도 온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그것은 던전과 다른 섭리를 담고 있었다. 혹은 마나함유량이 풍부해 무언가의 재료가 되는 역할을 했다.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포괄적으로 아티펙트라고 불렀다.
“아, 찾았다.”
짙은 붉은색 옷장을 열었다.
이 던전을 찾은 두 번째 목적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붉은색 양복 밑에 수북이 자라 있는 하얀 꽃들.
옷장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마나를 영양분으로 삼고 있는 하얀 꽃은 던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진짜…, 이 던전은 노다지야.
아티펙트 중에서도 포션의 재료는 ‘영약’이라 부르기도 했다.
옷장 속에 숨어 있던 하얀 꽃들은 영약이었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쉽게 찾기 힘든 정화의 별.
은하는 8송이나 되는 정화의 별을 발견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을 찾은 보람이 있었다.
적색던전에서 자라는 정화의 별을 한 송이도 아니고 무려 여덟 송이를 발견했으니.
무엇보다 이 꽃은 일반적인 포션의 재료 따위가 아니었다.
“몇 송이는 엘릭서를 만드는데 쓰고, 몇 송이는
달여 먹어야겠다.”
엘릭서.
기적과도 같은 치유능력을 지닌, 이전 삶에서 정석훈의 최고급 프리미엄으로 통했던 포션의 재료였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