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4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가정의 달에 일어난 사건이 일단락되고 겨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은 온통 떠들썩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예대상을 진행하고, 올해는 어느 연예인이 받았네 말았네 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은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데 바쁜 모양이었다. 최근 아버지가 퇴근이 늦어지는 이유도 그렇다는 모양이다.
동네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가는 날만을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리다, 어리도다. 사실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는… 오케이, 여기까지.
그런 일상으로 돌아온 은하는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유치원도 연말은 피해갈 수 없었다.
유치원에서는 이 시기가 되면 학예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하긴, 회귀 전에 내가 가족을 잃고 정신을 놓고 살았었지. 그때는 유치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했었으니까.
여하튼 그런 상황이었다.
학예회가 다가올수록 타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열성을 들여가며 연습을 시켰다.
연습을 피해 빈둥거리던 은하는 어느새 타요 선생님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세상에 악기라니. 노래라니. 율동이라니.
은하가 못하는 삼박자가 갖춰진 학예회였다.
회귀를 했어도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였다. 은하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마나와 같이 음악이라는 예술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은하 본인도 핸드벨 하나 흔들지 못하는 건 의외였지만.
“선생님! 은하가 또 틀렸대요!”
먹민지 너….
핸드벨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은하였다.
뒤돌아 민지를 노려보는 그였지만, 민지는 오히려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내밀어 보였다.
“은하야, 집중해야지.”
“…네에.”
먹민지 너 가만 안 둬. 나중에 두고 보자.
속으로 이를 갈며 은하는 다시 연습에 참여했다.
늘푸른솔반이 학예회에서 연주하는 곡은 ‘징글벨’, ‘미리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이었다.
회귀 전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질리도록 들었던 곡이었지만 막상 노래를 부르자니 쉽지가 않았다.
“선생님! 은하 음정이 어긋났대요~!”
하, 넌 전생에 나한테 원수라도 졌니.
“나 이번에는 제대로 불렀거든?”
“크게만 부른다고 잘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니?”
크게 부르면 반은 먹고 들어가거든? 서로 싸울 때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노래는 소리만 크면 장땡이다 이거야.
하긴 먹는 것만 좋아하는 네가 뭘 알겠니.
“너 지금 또 나 먹보라고 생각했지!?”
헉! 어떻게 알았지?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순간 속으로 뜨끔 하는 은하였다.
민지에게서 속마음을 들킨 그는 타요 선생님에게 연습이나 하자면서 화제를 돌렸다.
물론 다음번에도 틀렸다. 이번에는 율동이었다. 종을 흔들며 몸을 좌우로 흔들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는 동작이었는데 한 박자씩 빨랐다.
“네가 느려서 그런 거야. 더 빨리 안 되냐?”
“네가 너무 빠른 거야!”
“두, 둘 다 싸우지 마~!”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급기야 은하와 민지는 이제는 일상이 된 눈싸움을 벌이며 시비를 걸었다.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다투면 말리는 사람은 정하양이었다.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민지를 따라 소꿉놀이에 어울리거나, 보온병에 담아온 보리차를 마시며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던 하양은 이럴 때마다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커다란 눈망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눈물바다가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한 두 아이는 서로 흥 소리를 내며 서로를 피했다.
“하, 너는 그런 것도 못하냐. 완전 바보 아니야?”
그리고 싸움이 일단락되나 싶으면 빠지지 않고 들어오는 최은혁의 시비.
언제부터는 은혁이 데리고 다니던 아이들도 은하와 어울리고는 했는데, 은혁은 뒤끝이 센 것인지 1년이 다 되어 가고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아, 너 핸드벨 거꾸로 들었다.”
“뭐, 뭐…! 이, 이건 잠깐 쉬려고 그런 거야!”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 하고 있네.
핸드벨을 거꾸로 쥐고 있던 은혁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은하가 1년 사이에 알게 된 은혁이란 아이는 남한테 시비는 잘 걸어도,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최은혁 너도 똑같거든? 너희 두 사람이 우리 반에서 제~일 못한다고!”
“뭐!? 우리 엄마가 나 노래 엄청 잘 부른다고 했거든! 너 혼나볼래!?”
“하아, 선생님. 오늘은 연습 그만하면 안 돼요?”
“싸우면 나쁘다니까…. 아빠가 싸우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준다고….”
이러니 늘푸른솔반은 늘 난장판이었다. 세 사람이 싸우는 사이에 남자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었고, 여자아이들은 핸드벨 소리에 젖어들기 바빴다.
정하양은 정하양대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혼자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너~희~들~!”
“””히익─!!!”””
“선생님이 싸우지 말라 그랬지?”
더 이상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타요 선생님이 짐짓 엄한 미소를 그리며 서 있었다.
늘푸른솔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안다.
점잖게 타이르는 얼굴 뒤에는 악귀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건 그렇고 나는 왜.
나는 도중에 빠졌다고. 병풍 같이 서 있던 게 전부였는데 나는 왜 혼내는 거야.
“은하는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거구나?”
“아, 아니요!”
타요 선생님이 억울해하는 은하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찹쌀떡처럼 늘어나는 볼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그야말로 혀를 뽑으려 드는 염라대왕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는 떡장수들이 “찹쌀~ 떡~!”하며 찹쌀떡을 파는 계절인데.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은하야?”
“네! 반성하고 있어요.”
“흠, 그러니? 그럼 세 사람 모두 악수! 모두 사과하렴.”
결국 타요 선생님을 뒤로 한 채 세 사람은 억지로나마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손을 잡고 흔들고, 서로 얼싸안으며 내뱉는 사과에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내가 조금 미안한 거 알지?”
내가 조금도 안 미안한 거 알지?
“…우우, 거 참 미안하네.”
내가 미안해할까 봐!
이를 가는 소리를 내는 민지와 은혁.
사과를 받은 은하도 활짝 웃는 얼굴로 답했다.
“응! 나도 미안.”
응, 나도 안 미안.
“너~희~들~!”
타요 선생님이 거기까지 마음을 읽은 것일까.
결국 은하는 「오늘도 은하가 민지랑 은혁이랑 싸웠습니다. 집에서 잘 타일러 주세요.」라는 글이 적힌 알림장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학예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마친 은하는 아리랑아트홀의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로부터 연습을 수도 없이 했건만, 아이들은 긴장이 되는 모양인지 오늘따라 말수가 적었다.
언제나 당당하게 굴던 민지조차 남몰래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이야 어떨지 뻔했다. 하양은 어미를 따라다니는 오리처럼 민지에게 바짝 붙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떨면 어떻게 해.”
그 동안 함께 고생한 아이들이었다.
은하는 아이들의 긴장감을 덜어주려는 생각으로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지금 산타 할아버지가 보고 있을걸? 너희들 선물 받고 싶지 않은 거야?”
아이들의 눈빛에 열기가 담기는 건 순식간.
말로는 센 척을 하면서도 우물쭈물하며 불안한 티를 내고 있던 은혁도 그 말을 듣고는 눈빛이 바뀌었다.
“오늘은 신나게 놀고, 내일 좋아하는 선물이나 왕창 받아 보자고.”
학예회를 연습하는 내내 산타클로스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우는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지 못할 거라는 말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열심히 한다.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한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의 얼굴에 점점 자신감이 차고,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여간. 여기서 노래도 제일 못하는 사람이 누군데 생색이래.”
민지도 이미 긴장이 풀렸다. 한숨을 내쉰 그녀는 그를 타박했고, 덩달아 긴장이 풀린 여자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 나, 오늘 아빠가 보러 온댔어. 아빠한테 좋은 모습 보여줄 거야!”
오늘 아버지가 보러 온다고 흥분한 하양은 힘이 잔뜩 들어 있었다. 요 며칠 사이 아버지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풀이 죽어 있던 그녀였지만, 원만하게 풀린 것인지 기분이 좋은 그녀였다.
“자, 시작하자! 모두 자기 자리에 서야지!”
타요 선생님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선생님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순간, 이윽고 무대와 객석을 나누던 장막이 천천히 올라갔다.
[다음은 늘푸른솔반 어린이들의 핸드벨 연주회입니다.]곳곳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 즐기면 되는 거니까.
뭐니 뭐니 해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학예회다. 회귀 전에는 어린애다운 생활도, 학생다운 생활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그였으니, 크라켄을 멸하고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회귀 전에 별의별 일을 다 겪은 그면서도 이런 일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객석에서 부모님을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눈을 반짝이는 은아.
“은하야, 여기야!”라고 소리치며 캠코더로 무대를 찍는 아버지.
아버지와는 반대로 ‘엄마가 보고 있어.’라며 손을 흔들며 입만 뻥긋거리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얼마 있으면 태어날 아이로 배가 잔뜩 부풀어 있었다.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시간. 존재하지 않았을 추억.
가족들이 보고 있어!
그것만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들어가서,
시선이 자꾸만 가족에게 쏠려서,
결국 은하는 실수를 했다.
“노은하….”
징글벨을 부르던 중에 그만 종을 세게 치고 말았다. 은은한 소리 속에서 쨍 하는 소리가 객석에까지 들릴 정도로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뒤에서 민지가 낭패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돈 마인드, 돈 워리.
뭐 어때. 즐기면 되는 거지.
은하가 한 번 실수를 했기 때문일까. 열심히 연주하던 아이들도 몇 번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자와 음정이 어긋난 첫 번째 곡은 징글벨이 아니라 벨글징이 되고 말았다.
벨글징, 벨글징. 그게 뭐야. 괜히 무섭네. 이거 누가 거꾸로 노래한 거야. 아, 나네.
회귀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흑역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곡인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도 마찬가지. 전반부에서 이어진 실수가 아이들 전체에게 번져, 아이들의 몸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고 말았다. 결국 율동도 무너진 것이다.
마지막 곡인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도 실패. 이미 실수를 왕창 저질러서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은 이왕 틀린 거 신나게 틀리자는 생각으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마지막 곡은 들어줄
만 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아이들의 실패에 깜짝 놀란 부모님도, 선생님도.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회장 곳곳에서 기분 좋은 웃음이 퍼졌다. 막이 내려갈 때에는 아이들 모두 “망했다! 야호!”하며 웃고 있었다.
어이, 인생 망했다고 하는 애 누구야. 어린 애가 벌써부터 인생 망했다는 이야기나 하고….
그러면서도 은하는 무대를 마치고 부담감을 덜한 아이들에게 뛰어들었다. 오늘만큼은 민지의 그룹, 은혁의 그룹, 은하의 그룹 관계없이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울렸다.
공연은 끝났는데에도 아직도 크리스마스 곡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겠지.
지금도 이렇게 들리고 있으니까.
I just want you for my own
More than you could ever know
Make my wish come true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내일이면 크리스마스다.
다들 원하는 크리스마스선물을 받기를.
모두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은 금세 지나가─,
─선력 2년.
노은하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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