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40
플레이어들은 마에스트로의 세계를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렀다.
대개 일상을 영위하는 일반인에게 플레이어는 특별한 부류로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선민의식을 가졌다.
그런 그들이 마에스트로의 세계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평가할 정도라면 마에스트로들이 얼마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게 정말이야? 벽해수가 이번에 후원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거.” “내가 교관님이랑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니까. 동해재단에 지원하려는 것 같아.”
“그냥 얌전히 있을 것이지….”
그럴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 사이에서 마에스트로는 적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그들 대다수가 중등아카데미 때부터 재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의 업계는 좁았으며, 학연과 지연이 만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벽해수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비록 중등아카데미에 입학했더라도 다른 지망생들과 달리 후원을 받지 못했으니까.
더불어 태어나고 자란 배경 자체가 워낙에 다르기도 했고.
아카데미에서 온전히 생활하려면 집안의 사정이 남다른 이들로부터 밉보이지 말아야 하건만, 실력까지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튀어나온 못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망생들은 그를 업신여기고 괴롭혔다.
마음에 안 들어.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법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콧대 높은 이들이 자신들과 나이가 엇비슷하면서도, 심상치 않는 실력을 보여주는 그를 반길 리가 없었다.
만약 현명한 마에스트로라면 그를 절차탁마할 대상으로 여겼겠지만, 아직 어린 지망생들에게 벽해수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특히 그와 나이가 같은 일회용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너 잘 되는 꼴은 못 보지.
그러다 일회용은 벽해수가 후원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로서는 벽해수가 후원을 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만약 벽해수가 후원을 받게 되면 그를 배척하는 게 어려워질 테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고등아카데미 선배들하고 벽해수의 공방을 찾아가고 있었다.
벽해수가 동해재단에 제출하려는 디바이스를 가로채기 위해.
“…바보 같은 자식. 그러게 누가 보안도 되지 않는 공방을 쓰래?”
최하층에 위치한 벽해수의 공방은 잠금장치가 망가졌을 만큼 낡았다.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연 그는 공방으로 들어갔다.
어디에 있지?
디바이스를 찾으러 주변을 살피던 일회용은 이내 시선을 테이블 위로 향했다.
한손직검이 하나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
그런데 한손직검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것을 평범한 디바이스라 평할 수 없었다.
검에서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으니까.
“…마나가 착 감기는데?”
도신이 새까만 색으로 되어 있는 검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밤과 같이.
어떠한 색도 허용치 않고 오로지 암흑과도 같은 색을 품은 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홀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옆에 있던 누군가가 검을 덥석 손에 쥐기도 했다.
남자가 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푸르스름한 기운이 칼날을 고르게 감쌌다.
“어라?” “왜? 무슨 일인데?”
“이상하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마나 효율이 좋아진 것 같아서….”
“세상에 그런 디바이스가 있겠냐. 딱 보니까 아무 문장도 새기지 않은 모양인데.” “역시 기분 탓이겠지?” “어디 나도 만져보자.”
그들은 제각기 검을 확인했다. 마나 전달률이 상당히 좋았던 데다, 검신을 둘러싼 마나가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처음 검을 확인했던 남자의 말대로 마나 회로가 확 트이는 감각이었다.
마치 검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그들은 무심결에 벽해수의 재능에 감탄이 나오면서도, 이대로 그가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일단 들키지 않게 나가자.”
“야, 그 검 내가 가져도 되냐?”
“내가 제작방법을 분석해서….”
검의 처분을 어떻게 할지 차치하고 벽해수의 공방을 나가려 했다.
문 앞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가져가서 어쩌려고?” “”””…….””””
기척도 없었다.
등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문 앞에 웬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뒤늦게 그의 존재를 발견한 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가 발하는 기운이 흉흉했으니까.
뭐, 뭐야….
일회용은 소년이 한 걸음을 내딛자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비단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려는 이가 없었다.
신장으로나 수적으로나 자신들이 더 우세하건만.
그것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결단코 앞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왜? 가져가서 해수 형이 후원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그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소년은 콧방귀를 끼며 자문자답했다.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일회용은 오해하고 있는 거라며, 변명거리를 떠올리려 했지만 끝내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소년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공기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
“…….”
“검, 달라고. 지금 말하고 있잖아.”
“여, 여기….”
죽음이 지척에 있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일회용은 생존본능이 고하는 대로 짜증을 부리는 소년에게 두 손으로 검을 내밀었다.
이내 새까만 한손직검을 받은 소년은 검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더 이상 물러날 데 없이 벽에 바짝 붙어 있는 그들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학습 능력이라고는 없는 것들…. 아카데미에는 왜 이런 놈들만 잔뜩 있는 건지….”
“”””…….””””
소년이 혼잣말을 하며 혀를 찼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이 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것이 꼭 뱀이 몸을 얽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 감각을 일게 했다.
이윽고 싸늘하게 식은 얼굴이 히죽 입가를 끌어올렸을 때에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딴 놈들 때문에 해수 형 미래가 망가졌다니….”
일회용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소년은 악마란 것을.
만약 이 세상에 악마가 존재한다면 악마는 바로 이 소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죗값을 치러야겠지?”
그러지 않고서 이리 잔인한 얼굴로 입가를 찢고 낄낄거리지 않으리라.
일회용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소년이 대뜸 모루 위에 놓여 있던 망치를 움켜쥐는 순간, 남아 있던 사고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으, 으아아아아─!!”
다만 괴상한 소리만 나왔을 뿐.
손목을 덥석 붙잡혀 무릎을 꿇은 일회용이 실성한 사람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공포에 휩싸인 심신은 바보 같이 그것만을 반복했다.
살려줘! 잘못했어!
손만은 안 돼!
그는 어떻게든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소년의 손길이 워낙 세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소년이 손에 쥔 망치는 붙잡힌 손등 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소년이 처음으로 자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 안 돼!
차라리 다른 데를…!
손을 다쳤다가는─.
“─그래서 뭐?”
마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소년은, 악마는 자신이 알 바냐며 대꾸했다.
악마는 무를 생각이 없었다.
“괜찮아, 하나만 부술 거니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일회용이 그것을 부정하려는 사이, 악마는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힘껏 내리쳤다.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뼈가 우지끈 박살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렸다.
☆
김민지 이거, 예언이랑 관련 있는 기프트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발치에는 벽해수의 공방에 침입한 놈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부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오늘 해수로부터 동해재단에 보낼 디바이스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동해재단에서 심사하기 전에 은하가 먼저 디바이스를 시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은하 역시 그가 만든 디바이스에 흥미가 있어서 공방을 찾았다.
그런데 공방을 찾았을 때, 해수는 무언가를 사러 나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때마침 벽해수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방에 침입해 있었고.
회귀 전에도 놈들이 이런 식으로 해수 형을 방해해서, 후원을 받지 못했던 걸까.
은하는 잠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문 밖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놈들은 해수가 동해재단에 신청할 디바이스를 훔치려 했다.
더 이상 그들을 지켜볼 수 없었던 그는 체내 마나를 발현했다.
저들 때문에 해수가 암울한 미래를 살았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회귀 전의 해수처럼 그들의 손모가지를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 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여러 명은 문제가 될 테니까.
벽해수가 이들로부터 손을 잃어도, 이들이 온전히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수에게 아무런 배경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치에 쓰러져 있는 이들은 후원받는 등급은 제각기 다르더라도 나름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증거가 남아서는 안 됐다.
모든 일에 자신의 그림자를 지워야 운신의 폭이 컸다.
무엇보다 디바이스를 만들기 위한 해수의 망치로 놈들의 손모가지를 부수고 싶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벽해수는 말했다.
이 망치는 자신의 영혼이라고.
그것을 이들의 피로 묻히고 싶지 않았다.
“아, 아아….” “으으으….”
그래서 은하는 공포를 주입했다. 이들의 저항의지를 굴복시킨 후에 망치로 손등을 살며시 때린 공격을 환상이란 공포로 덧씌웠다.
그 결과, 놈들은 고통에 신음하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고.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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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는 공포를 다루면 다룰수록, 마법을 다루는 감각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정신이 붕괴하지 않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직감으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암시도 쓸 수 있었다.
“앞으로 오른손은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는 거야. 알았지?” “어어어….”
그들의 손은 망가지지 않았다.
다만 마나 저항력이 약해진 순간에 오른손을 쓰지 못할 거라고 암시해,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에스트로에게 손은 그들의 영혼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잃은 그들이 마에스트로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은하는 자신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이들이 결코 비관적인 운명을 딛고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러나 벽해수는 일어났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벽해수야말로 가장 뛰어난 마에스트로라고 생각했다.
“해수 형한테는 말할 수 없으니…, 멀리 돌아가서 꺼지도록 해.”
쓰러진 이들에게 암시를 건 은하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명령했다.
좀비처럼 자리에서 흐느적 일어난 그들이 공방을 나섰다.
정신이 붕괴한 것은 아니었으니, 조만간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
어떠한 이유도 모른 채.
다시는 해수 형한테 다가가지 말라고 암시도 걸어놓기도 했으니까.
이제 문제는 없겠지.
공방에 홀로 남은 은하는 해수가 만들었다는 디바이스를 찾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한손직검이었다.
전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새까만 색을 품고 있는 것을 빼고.
벽해수의 특징은 최대한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 것이었으니 평범해 보일 만도 했다.
하지만 성능은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회로랑 이어졌어.”
검에 마나를 불어넣은 은하는 눈을 크게 떴다.
마나 전달률이 빠른 것은 물론이고 검을 잡는 순간 회로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손과 검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검신이 체내 마나를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더군다나 칼날에 덧씌운 마나효율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어때? 효과 죽이지?”
“장난이 아닌데요?”
때마침 벽해수가 손에 봉지를 들고 공방으로 들어왔다.
은하는 검
의 성능을 솔직하게 평가했다.
흡족해한 벽해수는 봉지에서 꺼낸 캔음료를 그에게 던졌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서 제일 잘 만든 작품이야. 은하 네 덕분에 만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건 내가 쏘는 거야.”
해수는 테이블 위로 편의점음식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피식 웃은 은하는 사양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은 마주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검은 은하 네가 가져. 심사가 끝나는 대로 너한테 줄게.” “그럼 잘 받을게요. 마침 딱 맞는 디바이스가 필요했는데.”
벽해수가 자신의 치수를 잴 때부터 어렴풋이 예감하기는 했다.
그러지 않더라도 검이 마음에 든 은하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수에게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아, 맞다. 형, 재단 말인데요….” “응, 왜?” “시리우스에서도 후원심사가 있는 모양이에요.” “시리우스? 그건 처음 듣는데….”
당연히 처음 듣겠지.
내가 자리 만들어달라고 했으니까.
은하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는 해수가 부담스럽게 여길 것 같았다.
그가 아는 벽해수라면 그러리라.
그래서 우연히 들은 정보라는 양, 벽해수에게 넌지시 권했다.
벽해수는 흥미가 당기는 눈치였다.
이윽고 캔음료를 하나 비운 그는 시리우스재단에 지원서를 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은하야.”
“네. 왜요?” “넌 언제까지 나한테 존댓말이나 할 거냐?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이였어?”
“…….”
“너랑 나랑 2살밖에 차이 안 나. 그러니까 좀 편하게 불러라. 너라면 날 막 부려먹어도 된다니까?”
해수가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입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들은 은하는 그저 가만히 눈을 깜빡거렸다.
이내 그는 겸연쩍어하는 해수에게 화답했다.
“…알았어.”
이전 삶에서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벽해수를 편하게 대했다.
은하는 오랜만에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와 편하게 말을 섞는 날을.
이번에는 형 하고 싶은 거 다 해!
은하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러고는 한 가지 부탁이 떠올라서 입을 열었다.
“그럼 나 하나만 만들어주라.”
“어떤 거?” “밀화를 사용한 액세서리.” “밀화? 송진이 굳어서 보석처럼 된 호박 말하는 거지? 그런 액세서리는 어디에 쓰려고?”
은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귀문밀화를 만들 생각이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리라이프 플레이어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