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50
1학기도 끝을 고하고 있었다.
벌써 다음 주부터 여름방학이었다. 물론 학생들은 그 전에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다.
『문제 3. 국제마나관리기구에서 필수적인 포지션으로 규정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포지션(전투직 부문)을 10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단, 올라운더는 제외할 것).』
은하도 다른 학생들처럼 시험문제를 푸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다행히 필수이수교양과목 ‘플레이어 입문학 I’의 마지막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로 볼펜을 빙빙 돌리던 그는 잠시 첫 문장에서 망설인 이후 답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다.
플레이어는 체내 마나와 전투 스타일을 기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일반적으로 전투직군으로 알려진 포지션은 열 가지였다.
문제에서 그중 올라운더를 제외하고 서술하라는 이유는 올라운더가 여러 포지션의 역할을 겸임했으며 무엇보다 파티의 포메이션을 전위, 중위, 후위로 나누는 방식에서 나온 직업군이었기 때문이었다.
포지션을 나누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나머지 아홉 가지 포지션은 파티의 포메이션 배치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게 낫겠지.
중간에 펜을 멈추었던 은하는 다시 문제를 풀었다.
올라운더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전위, 중위, 후위로 나누어 설명하기 편했다.
몬스터를 마주하고 싸우는 전위는 딜러, 헌터, 가디언이 있었다.
그리고 전위와 후위를 보조하면서 파티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중위에는 레인저, 네비게이터, 텔레파시스트, 캐스터, 서포터가.
마지막으로 몬스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후위에는 스나이퍼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시험문제를 풀어보자 얼추 1000자 원고지를 채울 수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푼 사람은 없겠지?
이론은 그다지 공부하지 않았지만 시험문제가 어렵게 와닿지 않았다.
어쩌면 플레이어 입문학 I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
시험지를 제출하러 일어섰을 때는 교실에 절반가량이 자리에 없었다.
담당교관에게 시험지를 제출하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은하는 그대로 찝찝한 얼굴을 하고 교실을 나섰다.
때마침 교실 바깥에서는 친구들이 다음 시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 “왜 바보 형이 나보다 먼저…. 형, 솔직히 말해봐. 서술형 문제라고 해서 풀지도 않고 나왔지?” “어째 너 은근히 사람 무시하는 것 같다? 다 풀고 나왔거든? 그것도 못 풀면 사람이냐?” “이럴 리가 없는데….”
은하는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파랑만큼은 시험문제를 풀었을 리가 없었다.
뜻밖에 그 대답은 책을 읽고 있던 배수빈이 알려주었다.
“교관님이 수업시간에 말했었잖아. 이 부분에서 문제 출제할 거라고. 그리고 저번 주에 뭐가 나올지 다시 알려주기도 했는걸.”
“…난 왜 들은 게 없지.”
“흥! 보나마나 잠이나 잤겠지, 뭐.”
은하는 허탈하기만 했다.
완벽한 답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답을 알고 있던 문제였으니.
…이래도 되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배수빈을 쪼아서 다음 시험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수밖에 없었다.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던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다음 주부터 성적이 발표된다지만 지나간 일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집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집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1학기 종강파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학기가 끝날 때면 학생들이 자유로이 교류할 수 있는 파티를 개최했다.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였다.
후원으로부터 자유롭다면야.
“대장, 꼭 새 교복을 입어야 해? 어제 입었던 교복도….”
“그냥 새 거나 입어. 파랑이 형도 털 관리 좀 잘하고.”
“네가 하도 달달 볶아서 샤워까지 하고 왔다니까! 그렇게 신경 쓰이면 냄새 좀 맡아보든가!”
“이제부터 말도 조심하고.”
시리우스그룹으로부터 한도 없는 후원을 받고 있는 은하는 원한다면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앨리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정하양을 제외하고. 그녀는 앨리스의 직계로서 파티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종강파티에는 학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니까.
정재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은 서로가 교류를 다지고, 유망주들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인 거지.
더군다나 올해 중등아카데미에서는 10대 재계그룹의 혈연들이 상당수 재학하고 있었다.
031기에 갤럭시그룹의 최가인과 KK그룹의 직계가 있는 것은 물론, 029기에는 단군그룹의 홍진우까지 있었다.
그런 자리에 지켜줄 사람들 없이 정하양 혼자 내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앨리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친구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파티는 너희가 소위 ‘그들’만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자리라고 할 수 있어.
말 하나,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해. 그놈들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놈들이거든.”
“”…….””
“그 자리에서 너희의 모든 행동은 곧 너희가 몸을 담고 있는 그룹과 하양이의 체면에 연결될 거야. 아예 그 자식들과 상종할 생각하지 마.”
초등학생 때 참여했던 계열사 파티와는 완전히 다를 터였다.
이전에 참여했던 파티는 모두 그룹의 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룹의 혈연들은 파티를 주관하는 그룹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운신의 폭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종강파티는 다를 것이다.
그 자리에는 그들보다 권위가 높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눈치를 봐야 할 존재도 마땅히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후원을 받고 있거나 받지 못한 이들은 만만찮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으리라.
고등아카데미 때는 얼마나 심했는데….
은하는 이전 삶에서 고등아카데미 종강파티에 참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좋지 않은 기억만 있었다.
그때 파티회장을 박차고 나온 이후 파티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분 나쁜 자리면 애들은 왜 종강파티에 참여하려는 거냐?” “만남의 장이고, 교류의 장이니까.”
은하는 파랑의 투덜거림에 답했다.
종강파티는 정재계에 사는 이들에게는 서로 교류를 다지기 위한 자리였고, 그들의 후원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과 연을 맺기 위한 자리였다.
혹은 이성과의 만남을 원한다거나.
생각처럼 즐길 수 없는 파티였지만 기회의 장소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여흥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매 학기 종강파티에는 아티펙트를 게임 경품으로 내걸고는 했다.
아카데미 학생을 대상으로 건네는 아티펙트는 의외로 상당한 성능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이번 학기의 아티펙트는 이전 삶에서 최준호가 소지했던 아티펙트인 오만의 반격이었다.
설마 최준호가 아카데미에서 오만의 반격을 얻은 거였을 줄이야.
민지로부터 오만의 반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깜짝 놀랐다.
오만의 반격은 아카데미 학생에게 게임 경품으로 나누어줄 정도로 과소평가할 수 있는 아티펙트가 아니었다.
단군클랜의 최준호가 이란 이명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만의 반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딱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웬만한 마법은 되받아치는 힘은 반격의 카드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한테 필요한 거야.
이전 삶에서 은하는 방어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몬스터를 쓰러뜨리는데 검을 휘둘렀다.
죽기 쉬운 전투 스타일이었다.
지킬 것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이번 삶에서는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전 삶에서 이룩한 전투 스타일을 바꿀 수도 없는 법이었다.
따라서 보호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펙트가 절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방어 효과만 아니라 카운터 효과까지 가지고 있는 오만의 반격은 그가 바라는 바에 적합했다.
“어쨌든, 우리도 슬슬 출발하자.”
준비를 하다가 늦었다.
서나에게서 톡이 온 것을 확인한 은하는 예법을 연습 중이던 은혁과 몇 번이고 꼬리를 빗고 있던 파랑을 불렀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사람을 대동하고 파티가 열리는 교양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양동에 가까워질수록 한껏 꾸민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인톡을 확인해보니 여자아이들은 이미 입장했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대로 직행하기로 했다.
머지않아 회장 앞에 도착했다.
“너희는 들어가자마자 하양이한테 붙어 있어야 해.”
이 앞부터는 전장이었다.
그는 몰라도 친구들은 그러한 마음으로 임해야 했다.
☆
종강파티의 드레스코드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교복을 입었다.
간혹 파티용 드레스나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파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은혁과 파랑과 헤어진 은하는 회장을 거닐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 기회를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은혁과 파랑에게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은하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만은 예외였다.
아버지는 시리우스그룹 회장의 오른팔로 통하는 총괄비서실장이었고, 한서현과 한서연의 총애를 직접 받고 있는 데다 아카데미에 차석으로 입학했으니까.
또한 1학기 동안 자신의 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과감히 보여주었으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를 건드리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피하거나 관찰하고 있을 뿐, 다가오려는 기색은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은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1학년 학생들에게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종강파티인 만큼 거의 대다수가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뜻은 1학기 내내 만나지 못했던 호시미야 카에데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 기회에 그녀와 안면이라도 터놓을 속셈이었다.
“─어?” “아야! 왜 이래? 말도 없이 멈춰서 접시 떨어뜨릴 뻔했잖아.”
그러던 중이었다.
회장 주변을 빙 돌아다니던 그는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올해 입학한 신입생인 것 같은데 어디서 보기는 어디서 봤겠어?”
“아닌데…. 본 것 같은데….”
정작 은하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그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러네. 유남훈도 029기였지?
유남훈.
이전 삶에서 도마뱀의 왕의 독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기프트가 어떠한 독도 중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고 단시간에 네임드 플레이어가 되었던 이었다.
“…아! 생각났다! 있잖아 너, 혹시 도안초등학교 나오지 않았어?”
“네, 맞아요.”
은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초등학생이었을 때 운동회에서 유남훈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외모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악의를 모르는 것처럼 선한 얼굴. 이라 불리며 솔로플레이를 지향했던 유남훈의 고독함과 살벌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안초등학교? 정말 거기에 나온 사람이야? 혹시…, 노은하?”
“우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걸 왜 모르겠어! 올해 입학한 신입이 실력으로 교관을 압도한다고 아카데미가 한창 떠들썩했잖아!”
“그랬나?” “…네가 맨날 밥만 먹고 자니까 모르는 거 아니야. 밥 좀 그만 먹어. 여기까지 와서 밥만 먹을 거니?”
“왜? 맛있는데….”
은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여성에 대해 여우비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녀는 유남훈이 으로 거듭난 계기였으니까.
이전 삶에서 플레이어 업계에서 유남훈의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그런 두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만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 킵.”
“킵?”
유남훈은 귀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가 은하가 조그맣게 중얼거린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하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초등학교 동문이라는 걸 알게 된 유남훈이 살갑게 말하는 걸 듣기만 했을 뿐.
“…그리고 여기 치즈케이크가 대박이니까, 이따 한 번 먹어봐.”
“내가 못 살아, 정말…. 선배가 돼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밖에 없니? 은하야,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우리한테 물어봐. 알았지?”
여우비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꿨다. 음식을 우물거리는 남훈을 혼내더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미소를 짓고 은하에게 상냥하게 말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은하는 두 사람과 파인톡을 교환하고 헤어졌다.
초등학생이었을 때에는 두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2년만 늦게 태어나지…. 그랬으면 고민하지도 않았을 텐데….”
은하는 그게 못내 아쉬웠다.
동기였다면 파티로 영입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 만들지도 않은 파티에 2년이나 일찍 졸업하는 두 사람에게 파티에 들어와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유남훈을 끌어들일 생각이라면 먼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뭐, 번호라도 교환한 걸로 됐어.
기분을 전환하며 호시미야 카에데나 찾기로 했다.
그런데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최가인이 보였다.
“…은하야! 내가 계속 톡 보냈는데 왜 안 보고 그러니?”
“쟤는 진짜 왜 저러지….”
최가인은 대체 자신의 무엇을 보고 저리도 호감을 표현한단 말인가.
그녀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은하는 모르는 척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인파에 휩쓸려 이쪽으로 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틈에 빠져나가서 그녀가 멀어진 다음에야 다시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 했는데─.
“─찾았다.”
인파를 헤치고 나오자 웬 소년이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기둥에 기대고 서 있었
던 것이다.
아니, 기다렸다.
은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름도 안 알려줘서 내가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원….
이름이 노은하라며? 그동안 널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어.”
유도준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얘도 있었지, 참….
은하는 그제야 영원그룹의 직계도 031기에 입학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동안 유도준이 워낙에 조용해서 그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아직은 만날 때가 아니었으니까.
리라이프 플레이어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