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57
“넌 악마야….”
“뭐래. 이게 다 너희들 좋으라고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개새끼….”
더 이상 일어날 힘도 없던 민지는 몬스터를 해치우자마자 바닥에 축 주저앉았다.
전위에서 기세 좋게 날뛰다가 다친 진파랑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가까스로 극혐쥐들을 물리쳤더니 은하가 근처에서 발견한 황색던전에 친구들을 또다시 집어넣은 것이다.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또한 사전에 포션을 잔뜩 챙겨놓고 친구들이 다칠 때면 친절히 포션을 나눠주기까지 했으니.
친구들은 은하가 건네주는 포션을 싫어도 억지로 마셔야 했다.
“좋아, 잠깐 휴식. 모두 포션으로 마나를 회복해둬.”
“…이제 그만 하면 안 될까? 응?”
“맞아. 우리 모두 이제는 몬스터도 잘 죽일 수 있다구.”
휴식 후에 다시 전투가 있으리라.
그것을 직감한 하양은 때가 묻은 얼굴로 절실하게 부탁했다.
서나도 나섰다. 두 손을 모아서는 간절하게 빌었다.
애들이 지치기는 했지.
은하는 사정하며 비는 두 사람과 더 이상 입을 놀릴 힘도 없는 은혁, 지칠 대로 지친 민지와 졸고 있는 파랑을 살폈다.
확실히 너무 굴리기는 했다.
위험도가 낮은 황색던전이라지만 연속으로 세 개의 던전을 공략한 건 중등아카데미 학생인 친구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친구들을 굴렸던 이유는 의외로 그들이 파티 플레이에 있어 서로를 잘 보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가능성의 끝을 보고 싶었다.
무심결에 혹사시켜버릴 정도로.
“…알았어. 여기서 끝내자.”
“””””와─!!!!!”””””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은하는 난데없이 두 팔을 벌리고 기쁜 함성을 토하는 친구들에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던전공략을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힘든 모습을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도로 물렸다가는 친구들이 단체로 발광해버릴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마석도 모았으니 나쁘지는 않네.
은하는 손에 든 보따리 속에 담긴 마석을 확인했다.
제9위계와 제8위계 몬스터가 떨군 마석 중에는 질 좋은 마석이 몇 개 있었다.
기프트를 담을 수 있는 아티펙트를 제작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몬스터를 쓰러뜨린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으니 친구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러줘야 했다.
“얘들아, 이거 마석은….”
“아, 몰라! 네가 알아서 해!”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싶어!”
“이런 몰골로 돌아가면 수녀님이 날 보고 미쳤냐고 할 게 분명해….”
“너희 마석에 대한 분배는….” “밥! 나는 집에 가자마자 밥부터 먹을 거야! 이상한 소리 말고 어서 밖으로 나가자니까!”
“대장, 나도 배고파….”
친구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은하는 친구들에게 마석의 분배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려다 포기했다.
쓸모없는 마석은 브루노를 통해서 단군 플레이어조합에 팔기로 하고, 남은 마석은 아티펙트를 만드는데 쓰기로 했다.
그러면 쟤네들에게는 정화의 별을 나눠줘야겠네.
얼마 전에 아지트로 삼고 있었던 적색던전에서 정화의 별 한 송이가 피었다.
한 송이라면 친구들이 먹을 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남는 장사이리라.
“시간도 늦었으니 저녁이나 먹으러 집에 가…. 어?”
“뭐야. 너 왜 그래? 꼭 이제 와서 말이라도 바꿀 사람처럼….”
하수구를 나가려던 은하는 한순간 시야 끝에 걸린 노란 부분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민지가 불안한 어조로 투덜거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로지 노란 장소에 시선이 갔다.
…던전이 하나 더 있네?
단순한 황색던전이 아니었다.
하수구 전체에 부분적으로 생성된 황색던전은 던전이 되어가던 던전에 불과했다.
던전의 생성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갑자기 생기거나, 천천히 생기거나.
던전이 갑작스럽게 발생할 때에는 던전의 핵석을 품은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반대로 던전이 천천히 생성될 때는 던전 내부에서 태어난 몬스터들이 핵석을 두고 보스 몬스터의 자리를 다투는 경우였다.
지금까지 친구들이 공략한 던전은 보스 몬스터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던전이었다.
그런데 감지망을 전개해보니, 시야 끝에 있는 황색던전은 감지망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범위가 넓었다.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기에 보스가 있다고.
“우리 보스전만 하고 가자.” “안 돼! 절대 못 해! 너 미쳤어!?”
“민지 말이 맞아. 아까 우리들끼리 제8위계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는 데에도 힘이 부쳤는데, 어떻게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겠니?” “…저기에 있는 던전 말하는 거지? 조금 위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은하야, 저건 힘들 것 같아….”
“몰라! 나는 안 해!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친구들이 각자 반대했다.
은하가 조금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친구들이 말한 대로 그들은 황색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았다.
실력이 아니라 바탕이.
경험을 조금만 채운다면 친구들은 저위계 보스 몬스터 정도는 수월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내가 너희들 보고 싸우라고 그랬냐?
한편, 은하는 어이가 없어서 쯧쯧 혀를 찼다.
친구들이 언젠가는 보스 몬스터를 죽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친구들에게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라는 이야기는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할 거야. 너희는 멀리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은하는 친구들의 항의를 일축했다.
냉큼 입을 다문 그들이 표정으로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괜한 걱정이었다.
쓰러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단지 친구들에게 보스 몬스터가 어떠한 존재인지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장,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
은혁이 참전의사를 밝힌 것이다.
☆
설마 은혁이 말을 꺼낼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하로서는 마다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감각은 필시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
“하양이랑 서나는 던전의 경계선에 발을 걸치고 있어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
“응, 알았어.”
이 세상의 섭리는 던전의 섭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은하는 하양과 서나에게 경계선에 발을 걸치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라도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하양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서나에게 정보를 전달할 것이다.
혹은 보호마법을 전개하거나.
그리고 서나는 하양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은하와 은혁에게 전달해줄 것이다.
“나는 왜…. 나도 힘들다니까?”
“형은 가까이에서 엄호만 해주면 된다니까. 엄호나 해주면서 상황을 서나에게 텔레파시로 전해줘.”
계획과는 다른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만약을 대비해 파랑도 전투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럼 들어간다?” “알았어, 대장.”
“쳇.”
블루클로를 꺼내드는 진파랑.
굳은 얼굴로 답하는 최은혁.
은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조그만 황색던전에 발을 들이밀었다.
수하 몬스터는 없었다.
보스 몬스터 하나를 유지하는 걸로 힘이 벅찬 황색던전이었다.
친구들이 경험하는 데에는 딱 좋은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구, 으으으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자라 있는 거대한 곰쥐.
세모꼴로 튀어나온 입술 밑으로는 날카롭게 각진 이가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
“쫄지 마.” “아, 안 쫄았어!” “…응.”
제7위계 몬스터 그로테스크 래트(Grotesque Rat).
파랑과 은혁은 놈을 마주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동시에 손발이 싸해지는 감각.
한순간 공포에 마비된 두 사람은 은하가 말을 걸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던전의 핵석을 품고 있는 보스는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라.”
두 사람이 보스가 발하는 기운에 기가 죽었다.
그래서 은하는 병에 걸린 것처럼 침을 뚝뚝 흘리는 놈을 향해 마나를 방출했다.
끄으으윽
살기라면 지지 않았다.
되먹다 만 쥐새끼에게 진짜 살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그는 두 사람을 힐끔 돌아보았다.
의도했던 대로 두 사람의 자세에 불필요한 힘이 빠져 있었다.
“─파랑이 형.”
“진파랑 나가신다 이거야!”
검은 가시나무를 고쳐 쥔 은하가 진파랑의 이름을 불렀다.
파랑은 처음 파티를 짰을 때처럼 딜러보다 앞으로 뛰어나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일부러 속도를 낮춰 달리는 은하를 뒤따라가며 블루클로에 체내 마나를 주입했다.
어디까지나 진파랑의 역할은 놈을 교란시키는 것에 있었다.
파랑은 은하가 녀석의 꺾인 팔을 막아내는 사이, 단숨에 옆으로 돌아 블루클로를 휘갈겼다.
“…뭐야? 별 거 아니네!”
한껏 마나를 머금은 푸른 발톱은 녀석의 가죽과 털을 종잇장처럼 잘라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랑은 그동안 마나를 배분하느라 온힘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가 놈을 상대하는 이상 힘을 비축해둘 필요가 없었다.
마나 크래셔
한편, 상처를 입은 놈이 반응했다.
은하는 놈이 드러낸 빈틈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그사이 파랑은 빠른 기동성을 살려 놈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물장구를 튀기며 뒤로 물러난 그는 놈이 은하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자, 등 뒤를 선회해서 공격을 가했다.
끼아아아아아
“왜, 빡쳤냐?”
진파랑은 키득거렸다.
이렇게 편한 전투가 없었다.
은하가 여유롭게 보스를 상대하니, 파랑은 지금까지 시험해보지 못한 움직임으로 녀석의 주변을 깔짝거릴 수가 있었다.
헌터의 역할은 딜러를 보조하면서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가하는 것.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파랑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딜러의 역할은 몬스터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
호리잔틀 프리크
검은 가시나무의 끝 부분에 모인 흉흉한 마나.
드릴과도 같은 양상을 띤 칼날이 수면을 차고 뛰어오른 놈의 복부를 꿰뚫었다.
끼, 끼기이익!!
녀석은 현실을 부정했다.
검에 꿰뚫린 채로 자신의 복부를 천천히 내려다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극심하게 흔들렸다.
“─최은혁.”
“응, 대장.”
“막타는 양보할게.”
“응.”
은하는 마음만 먹으면 그로테스크 래트 따위는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가감해가면서 녀석을 상대하기가 번거로웠다.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녀석의 복부에 찔러 넣었던 칼날을 힘을 주어 빼냈다.
그러자 공중에 떠올라 있던 놈이 머리가 수면을 향해 떨어지려 했다.
은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놈을, 자신의 죽음에 경악하고 있는 놈을 덤덤히 올려다보았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은혁이 이때만을 기다리며 칼날에 마나를 주입하고 있었으니까.
“─검에 온 힘을 실어서, 한번에.
마나 크래셔(Mana Crasher).”
검에 담은 마나를 쏘아내는 마법.
파괴력을 밀집시킨 검격은 녀석의 머리통을 반쯤 갈라놓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거의 숨이 끊긴 거나 다름이 없던 그로테스크 래트는 입자로 변하여 소멸했다.
“실전에서 마나 크래셔를 써보니까 뭐가 부족한지 잘 알겠지? 조금 더 마나를 끌어올릴 줄 알아야 해.”
마법이란 세상의 섭리에 이미지를 새겨 넣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마법을 사용할 때는 이미지를 확고히 잡을 수 있기 위한 주문을 읊조리거나, 기억하기 쉽게 직관적인 이름을 붙이는 게 편했다.
은혁이 마나 크래셔를 다루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읊조린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나저나 마법을 사용하기 직전에 읊조리는 영창이 너무 길어.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으려면 이미지를 잡는 영창은 최대한 짧아야 해.
쓰다 보면 익숙해질 일이었다.
언젠가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고…. 어라?”
은혁에게 충고하려 했을 때.
등을 돌린 은하는 서나에게 안긴 그를 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대, 대장….”
“이 바보야, 입 다물고 포션이나 얼른 마셔.” “야, 진서나. 입을 다물면 포션을 어떻게 마시라는…. 알았다, 닥치고 있을게.”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은혁.
더러운 물이 고인 땅에 무릎 꿇은 서나는 그에게 마나 포션을 먹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뭐라고 한소리를 하려던 진파랑은 텔레파시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입에 지퍼를 닫는 시늉을 했고.
최은혁 저거는 용감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서 있을 힘도 남겨놓지 않았다니.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마나를 쏟아 붓고도 위력이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니.
이미지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보나마나 마법을 전개하는 중간에 마나가 새어나갔을 게 뻔했다.
아직 훈련이 부족한 거야.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대로….
은하는 이내 생각을 관뒀다.
포션을 마신 그가 긴장이 풀렸는지 스르륵 눈을 감았기 때문에.
은혁이 편안한 듯이 잠에 빠졌다.
“노은하! 계속 서나한테 맡기고 있을 거야?”
“알았다, 알았어….”
손이 많이 가는 부하였다.
은하는 민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은혁을 들쳐 업었다.
“은혁아, 앞으로도 더 강해져라.”
그날, 은하는 보스 몬스터로부터 질 좋은 마석과 스킬석을 얻었다.
스킬석은 그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은혁의 손에 들어갔다.
그의 손에서 유난히 강렬한 광채를 발하였기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한테는 필요 없는 거기도 했고.
그로테스크 래트의 특징은 직감이 뛰어나다는 것.
직감이 뛰어난 은하에게는 어차피 필요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앞으로도 성장이 기대되는 은혁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섭리는 최은혁의 몸에 녹아들어, 전보다 뛰어난 직감을 선사하리라.
리라이프 플레이어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