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58
선녀정부가 들어선 이후, 종로구는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
현재 종묘 정전
에 설치된 코쿤이 국내에 설치되어 있는 코쿤 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울은 멸망한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상흔을 딛고 일어났기에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출 수 있었다.
특히, 강북 지대는 빠른 시간 안에 당시 태어난 몬스터를 몰아냈다.
그것 외에도 강북 일대의 상황이 행정기능의 중심지로서 여러 모로 부합되기도 했으니까.
적색던전 위에 건축한 플레이어 아카데미라든가, 현 마나관리기구의 전신이었던 마나관리국이라든가.
그러한 이유로 강북 일대는 번영을 맞이했다.
6년 뒤, 몬스터들이 강북 일대를 침공하기 전까지.
“아무 전조도 없이 코쿤이 깨지고, 놈들이 한강에서 나타날 거라는 걸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어.”
그렇게 투덜거린 은하는 보문동과 숭인동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는 빈민가를 찾았다.
여기는 오랜만에 와보네.
선녀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만 해도 숭인동은 종로구의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선녀정부는 종로에 밀집한 행정기구를 다루는데 주력하기 위해 기존의 종로구를 해체하고, 구역을 인근 행정구역으로 재편성했다.
예를 들어서, 혜화동과 숭인동은 성북구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부촌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혜화동과 달리 숭인동은 행정구역을 나란히 하는 보문동과 함께 열악한 환경을 자랑했다.
언덕 위에 허름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양상은 개발도 어려워, 이제는 성북구에서 손을 댈 수 없는 빈민가로 거듭나고 말았다.
그 말은 곧 빈민가에 사는 이들이 사회의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정보를 해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어느 이성의 하룻밤을 산 권력자는 베갯머리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댈지도 모른다.
권력자에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설마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이성이 마찬가지로 정보를 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또한 어느 권력자의 집에 근무하는 사람이 시중을 드는 이들의 정보를 팔 거라는 것 또한.
그 외에도 숱하게.
빈민가와 상류사회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빈민가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았다.
그렇기에 공식적으로 얻지 못하는 정보는 빈민가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또 원더런들이 뜬소문 여러 개는 기가 막히게 주워오니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었다.
사회의 그늘 속에 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것에 따라 사는 방식은 어렵게도 수월하게도 바뀔 수 있었다.
슬슬 따라붙기 시작했네.
보문동과 숭인동 일대에 자리 잡은 빈민가는 수많은 정보가 거쳐 가는 교차로였다.
이전 삶에서는 성북구의 뒷골목을 장악한 자가 정보를 거머쥘 것이란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발을 들이민 빈민가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뒤에서 따라붙는 이들이 나타났다.
내가 유인한 거기도 하지만.
성북구에서 가장 큰 빈민가는 길이 미로처럼 복잡했다.
회귀 전에 몇 번 방문을 했었던 그도 안내인이 없어서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불렀다.
이 골목길에 사는 이들에게는 다소 무례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체내 마나를 발현한 것이다.
이 구역에서 군림하고 있을 놈들이 자기 집 앞마당에서 설치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생각했던 대로 몇 사람이 조용히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몇 명이지?
…4명, 아니, 5명인가.
은하는 일부러 지나다는 길에 있던 대문을 발로 뻥 찼다.
쩌렁쩌렁한 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기척을 죽인 채로 따라붙던 놈들이 자신의 행동에 적의를 드러냈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한 명 더.
오른쪽으로 몸을 꺾은 모퉁이에서 길을 가로막고 서 있던 남자.
덩치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는 어깨를 떡 벌린 채로 서 있었다.
“어린애가 여기에는 웬일이야?”
“뭐하는 놈인가 싶어서 따라왔는데 고작 이런 애가 우리들을 도발하고 있었던 거라고?”
어느새 그는 포위당해 있었다.
다른 모퉁이에서 모습을 보인 이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은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대로 여섯 명이었다.
“…무늬만 플레이어인 놈이 하나,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녀석이 둘, 전형적인 건달 셋.”
“뭐야? 얘 지금 뭐라는 거냐?”
“여기가 어디인 줄도 모르고….”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
그와 나이 차이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남자는 마지막 말을 마저 끝맺지 못했다.
남자들이 반응하지 못하는 속도로 달려 나간 은하가 그의 팔을 붙잡고 엎어치기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어디서 우리 어머니 욕을 하고 있어?”
“”””…….””””
순식간에 한 명이 나가떨어졌다.
골목길을 막고 있던 남자 네 명은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생존감각에는 민감한 그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운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서 이강혁한테 전해.”
은하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기절한 남자의 등을 밟으며 말했다.
이강혁.
회귀 전에 성북구의 모든 골목길을 제패했던 남자를 떠올리며.
“─내가 왔다고.”
☆
“아니! 은하야! 올 거면 올 거라고 진작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랬으면 내가, 어? 애들 딱 데리고 널 마중하러 갔을 텐데!”
“내가 번호가 어디 있다고?”
안에 심술이 들어 있을 것만 같은 볼살.
이강혁은 빵빵한 볼살을 흔들면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을 보지 않은 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언제였지?
그만큼 관심도 없었다.
은하에게 이강혁은 아무 의미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강혁은 장기말이었다.
그래도 이강혁은 성북구 빈민가를 제패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전 삶에서 이강혁은 이른 나이에 성북구의 빈민가를 장악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니 찾고자 하는 정보가 있다면 이강혁에게 의뢰하는 게 나았다.
이 시기의 이강혁은 아직 어쭙잖은 건달에 불과했지만, 그의 잠재력은 어디 가지 않았을 테니.
“그나저나 너희들한테는 실망했다! 어떻게 내가 동생처럼 아끼는 애를 때릴 생각을 할 수가 있냐!?”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지가 잡아오라고 해놓고….”
“그리고 우리가 때린 게 아니라, 쟤한테 일방적으로 맞은 건데….”
한편, 이강혁은 은하를 이곳으로 안내한 부하들을 크게 꾸짖었다.
부하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서.
근데 저건 왜 자꾸 친한 척이지?
은하는 그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강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기에.
“그래, 은하야! 정말 오랜만이다! 애들 시켜서 먹을 거라도 가져오게 할까?” “아니, 됐어.”
“그래! 그럼 술이나 마실래?”
“…….”
은하는 순간 혹했다.
이강혁이 보란 듯이 초록색 병을 꺼내들었을 때에는 크게 갈등했다.
그때 은아가 누누이 충고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유혹에 졌을지 몰랐다.
“…됐다니까. 놀러온 것도 아니고.”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이강혁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주인처럼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편한 자세로 앉아 있던 그가 술병을 치웠다.
그러고는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온 은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은하 네 이야기라면 잘 들었지. 중등아카데미에 차석으로 입학하고, 얼마 전에는 재벌 3세들을 상대로 압승을 했다면서?
내가 그 이야기 듣고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를 거다. 역시 너는 은아 동생이라니까!”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은하를 추켜세우는 이강혁.
이 시기의 그는 빈민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 건달에 불과할 텐데도, 대략적인 정보는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은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강혁은 그가 보인 표정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왜? 뭐 이런 걸로 놀라고 그래? 아, 내가 네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란 거구나? 나한테 이런 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야!”
마치 자신을 과시하듯 어깨를 피며 떵떵거리는 이강혁.
은하는 그러려니 받아넘겼다.
일일이 상대해주기도 귀찮았다.
“그런데 웬일로 은하 네가 여기를 찾아온 거야? 너,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고 찾아온 거는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은하는 머리를 칙칙한 노란색으로 염색한 이강혁에게 대꾸했다.
성북구의 빈민가가 뭔지도 모르고 찾아왔을 리 없었다.
이유가 있었기에 찾았다.
“의뢰를 하러 왔어.” “…의뢰?”
이강혁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입을 다문 그는 조금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은하를 훑어보았다.
“의뢰를 하러 왔다라….”
턱을 쓰다듬으며 다리를 꼬고 앉는 이강혁.
분위기가 바뀌었다.
은하는 방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이 어수룩한 면모를 걷어내는 순간을 기민하게 파악했다.
어느새 그들은 자신을 의뢰자로서 관찰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의뢰를 하러 왔다는 건 그렇게 좋은 정보는 아닌 거겠지.”
이강혁의 말이 맞았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의뢰할 내용은 브루노에게 부탁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브루노도 사회의 어둠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을지라도, 빈민가를 꿰차고 있는 이강혁의 정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무슨 의뢰인데?” “사람 좀 찾아줘.”
“사람 찾는 건 우리가 전문이지.”
간략히 의뢰내용을 들은 이강혁이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복잡한 골목길을 꿰고 있을 그에게 사람을 찾는 일이란 까다로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데리고 있는 부하들도 일제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니.
하지만 단순히 사람을 찾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 하나를 찾는 일이었으면 그냥 브루노 아저씨한테 부탁했지.
그가 찾는 사람은 사회의 어둠에 묻혀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자신이 찾는 사람은 필시 아주 깊은 어둠 속에 있을 터였다.
그것을 들으면 이강혁과 부하들이 필시 까무러칠 정도로.
“찾는 사람은….”
“근데 은하 너, 내가 너랑 친해서 공짜로 찾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은하는 말을 이으려 했다.
그런데 이강혁이 대뜸 그의 말을 끊은 것이다.
체내 마나를 발현하면서.
“…….”
이강혁은 중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고등아카데미 3학년에 입학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체내 마나를 다루는데 어느 정도 도가 튼 모양이었다.
은하의 성미에는 차지 않았지만.
체내 마나가 줄줄 샜다.
효율이 형편없었다.
그가 이강혁이 분출한 살기에 기가 죽었을 리가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게 어이가 없어서.
그뿐이었다.
“우리 꽤 비싸. 너는 모르겠지만, 이 골목에서 한가락 하고 있거든.”
“…….”
“네가 말하는 사람을 찾아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네가 그만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말이야.”
설마 자신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고작 그런 이유로 기분을 상하게 살기를 드러냈다는 것인가.
은하는 이강혁에 대한 평가를 하향했다.
이제 보니 겉멋만 들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고 파악했을 테건만.
“…대가라면 지불할 거야.”
“네가? 어떻게?”
은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이강혁이 코웃음을 쳤다.
“혹시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카드로 정보료를 지불하겠다는 건 아니지?”
“…….” “은하 네가 사회물을 안 먹어봐서 그러나 본데, 우리는 카드 안 받아. 현금으로 거래하지.”
알고 있다.
그래서 질이 좋지 않은 아티펙트와 마석을 가방에 잔뜩 담아왔다.
자신이 설마 그것을 몰랐을까.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도 뭐…, 은하 너는 초등학교 동창이니 싸게 못 해줄 것도 없지.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이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온 그가 은하와 몇 걸음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위치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욕심 많은 볼살을 흉측하게 접어 올렸다.
이제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 번만 은아 좀 소개시켜주라.”
두꺼비 같이 생긴 그가 말하는 걸 기다리던 은하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번 의심하고, 다시 의심했다.
혹시나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지금 이 새끼가 뭐라 그런 거야?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어디서 감히.
은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건하게 의뢰하려던 생각은 아예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체내 마나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에 따라 방 안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저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는 두꺼비만 제외하고.
“아니…, 그냥 너는 내가 은아랑 한 번만 만나게 해주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은하 너는 사랑의 큐피드가….”
그러던 이강혁은 헉 소리를 내며 숨을 삼켰다.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은하가 입가를 끌어올릴 때까지.
“─일단 한 번 죽어봐야겠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