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77
진파랑이 이라 불린 이유는 단지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고 하는 성미 때문만이 아니었다.
한 번 기프트에 잡아먹히면 그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적군도 아군도 구별하지 못하는 미친개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기프트를 자각한 것은 좋은데…,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거면 차라리 다루지 말란 말이야.”
으왕….
은하는 기절한 진파랑을 툭툭 치며 한숨을 쉬었다. 짙푸른 늑대털을 몸에 두르고 있던 파랑은 점점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기프트 .
대개 아인에게 발현되는 기프트는 체내 마나를 신체에 두르는 것으로 규격을 벗어난 힘을 지닌 짐승으로 돌변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파랑의 경우, 아인의 베이스가 된 제5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블레이드 울프(Blade Wolf)였다.
“미친개로 돌변했으면서도 무기는 잘 착용하고 있네. 원래 그러라고 만들어준 물건이기도 하지만….”
이전 삶에서 파랑은 기프트와 함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던 클로를 사용했다.
그가 를 발동하면, 클로는 기프트에 동화하며 강철도 찢어내는 발톱으로 변했다.
강철조차도 쉽게 찢어내는 몬스터, 블레이드 울프.
그래서 은하는 사전에 벽해수에게 진파랑에게 사용하기 적절한 클로를 의뢰했던 것이다.
회귀 전에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 바보 형이 이 시기에 기프트를 개화했다니….
은하는 진파랑이 15세라는 나이에 기프트를 개화한 것을 기뻐하면서도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는 위험했다.
몸속에 깃든 야성을 이기지 못하면 그야말로 광견이 따로 없었다.
그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을 하는 맹견을 원했지, 광견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진파랑이 기프트를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했다.
일단 이 형부터 치료해야겠네.
아인의 신체능력은 평범한 인간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를 발동한 파랑은 웬만한 상처는 순식간에 치료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파랑의 체내 마나는 현재 기프트를 남용한 나머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치유능력이 더뎠다.
몬스터에게 공격이라도 당한 건지 몸에서 군데군데 피가 흘러나오고 있기도 했고.
“하양아, 포션.” “…응?”
“포션 좀 줘.”
“으, 응….”
포션을 챙겨오기 잘했다.
은하는 뒤로 손을 내밀어 하양에게 가방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정하양은 가방을 든 채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그…, 파랑 오빠 옷이….”
“아, 이거?”
시선을 힐끗거리며 말하는 정하양.
은하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알몸으로 누워 있는 진파랑을 가리켰다.
로 인한 결과였다.
신체가 급격히 커졌을 테니 옷이 찢어지지 않고 배길 리가 없었다.
마나가 가미된 원단을 사용해 만든 아카데미의 교복으로도 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진파랑은 손에 착용한 블루클로를 제외하고, 몸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이게 뭐가 부끄럽다고….”
은하는 남자의 신체를 보고 반응한 정하양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직 진파랑은 성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부끄러워할 일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럼 부끄러워해야지, 어떻게 안 부끄러워할 수가 있어….”
하양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은하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가 건넨 포션과 망토를 받아들였다.
이어서 고르게 숨을 내쉬고 있는 그에게 포션을 먹이고, 마지막에는 망토를 덮어주었다.
“근데 은하야. 파랑이 오빠가 여기 있다는 건, 다른 애들도 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뜻이겠지?”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은하는 말꼬리를 흐렸다.
진파랑이 를 사용했다.
그 말은 그가 생존본능에 의하여 기프트를 자각할 만큼 위험에 처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에 위험에 처해 있는 학생들이 보여야 마땅했다.
아니면 그들이 외치는 소리라거나.
그러나 이곳에는 진파랑 한 명밖에 없었다.
근처에 다른 학생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마침 잘됐네.”
그럼에도 은하는 만족했다.
진파랑만 있으면 되니까.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는 그가 있는 것으로, 설악산을 수색하는 건 한결 편해질 터였다.
조금 전처럼 하양이 결계를 부수고 내부를 샅샅이 뒤지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바보 형이 일어나면 물어보자.”
아주 작은 틈이라도.
결계에 아주 작은 틈이라도 낸다면 파랑이 그곳을 경유해서 텔레파시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서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적 있는 진파랑은 그녀가 감지망에 걸리면 상세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진파랑을 발견한 이상─.
“하양이 넌 힘을 비축해둬. 다음에 찾는 게 마지막이 될 테니까.”
─놈들의 부락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슬레이어들에게 납치당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의에 노출된 이들은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납치한 슬레이어들에게는 도덕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조차 안 되는 이유였을 뿐.
저들은 그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고, 학대하고, 괴롭히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고작 이것밖에 안 돼? 이래서는 다른 애로 교체해야 하는데….”
“…아직…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들은 자신들이 되고자하던 플레이어들이었다는 것.
저들이 자신들이 지금까지 만났던 플레이어들 혹은 미디어에서 보았던 플레이어들과 같은 부류란 것이다.
이상을 품고 있었던 학생들에게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 이런 걸로 겁을 먹고 그러냐? 너희 031기라면서. 0이 붙었다는 건 대다수가 잘 사는 애들이라는 건데, 너희가 하는 짓과 우리가 하는 짓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걸 모르겠냐?”
술에 취한 플레이어가 창살을 치며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깜작 놀란 은우는 오들오들 떠는 여자아이들을 감싸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눈물을 참아야 했다.
목민호가 자신을 대신해서 ‘게임’에 참가하고 있으니까.
여기 있는 이들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으니까.
“너희가 약하면 잡아먹히는 거고, 쥐뿔도 없으면 당하고 사는 거야.”
“…….” “그리고 그게 싫으면 강해져야지. 아니면 뭐라도 손에 넣든가.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술에 취한 남자는 벌게진 얼굴로 입술을 훔쳤다.
“─우리처럼 살든가. 이 세상에서 강한 쪽은 법을 지키는 쪽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쪽이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슬레이어들은 단지 욕구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
그러나 겁을
먹은 학생들은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민호야….
무엇보다도 은우는 야유를 받으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민호를 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는 손깍지를 끼고 기도했다.
제발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누군가 구해달라고.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부질없었다.
“야, 계속 저러니 재미없지 않냐?”
“어, 인정, 두 번 인정. 이상하게 애들이 몬스터를 무서워하지 않는데 이거 계속할 필요 있냐?”
“야, 게임 바꿔! 다른 거 하자!”
이제는 식량을 가지고 내기를 하던 플레이어들이 지루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남기한은 ‘게임’을 중단하고, 다른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럼 이건 어때?”
“……!”
남기한은 서포터에게 치료를 받던 은혁의 목덜미를 잡아채서는 경기장 한복판에 집어던졌다.
별안간 일어난 일에 낙법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은혁은 그대로 지면을 굴렀다.
“애새끼들이랑 몬스터랑 싸우는 건 재미가 없지만…, 애들 싸움은 또 얼마나 재미가 있겠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내 남기한의 말을 파악한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달궜다.
경기장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민호와 은혁이 흠칫해하는 중에.
무기를 빼앗긴 두 사람은 멀거니 서로를 바라보는 것밖에 못했다.
그러나 남기한은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불씨를 지폈다.
우선 목민호에게는─.
“─아까 그 여자애, 네 여친 맞지? 네가 이거 안 하면 나는 저 애를 몬스터들한테 집어던질 거야. 근데 네 여친도 몬스터는 죽일 수 있냐?” “…….”
그리고 최은혁에게는─.
“─여우 아인 좀 구해달라고 했지? 네가 이기면 한 번 생각해볼게.”
남기한은 이미 두 사람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을 가지고 있는 이는 지켜야 할 것 앞에서 약하다는 걸.
그래서 지킬 것이 없는 슬레이어는 누구보다도 강했다.
슬레이어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자신이 죽기 전에 상대를 죽이려 들었으며,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았으니까.
“어쩔래?”
“”…….””
그의 말은 도화선이 되었다.
먼저 주먹을 날린 건 목민호였다.
“민호야─!!”
저 멀리서 차은우가 목이 터져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뒤로 한 채로 균형을 잃고 뒷걸음질을 친 은혁을 다시금 때렸다.
“……!”
이번에는 최은혁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들어오는 주먹을 피해내며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모은 그가 기회를 노려 주먹을 날렸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돌격한 그는 목민호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가슴 위로 올라타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은혁은 끝내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다.
“…해.” “…….”
“…안 하면 내가 한다.”
개싸움이었다.
목민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명확했다.
지금까지 눈물을 참고 있다가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고 있는 차은우였다.
그는 은혁이 망설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반대로 은혁을 땅에 눕혔다.
위치가 역전되었다.
은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민호의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반대로 민호는 이를 악물며 은혁을 때렸다.
그러한 상황이 몇 번이고 주도자가 바뀌며 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며 때릴 뿐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하고 있었던 동시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야, 이게 귀를 막는다고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니?] [너 같은 애는 어릴 때부터 길을 들여놔야 해. 그래야 욕을 안 먹지.] [이게 어디서 자꾸 잔머리를 굴리려 들어?]한편, 우리에서 끌려 나온 서나는 심수지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물리적인 행동을 동반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었다.
텔레파시스트에게는 그들만의 공격이 따로 존재했다.
텔레파시를 통한 정신공격.
그것은 상대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굴복시키는 공격이었다.
텔레파시는 방어할 수 없으니까.
지속적으로 텔레파시에 노출되면 텔레파시를 발신한 사람의 정신으로 모르는 사이에 물드는 법이었다.
[이러지 마세요!] [어쭈? 얘가 이제는 반항도 하네?]쉬지도 않고 머릿속을 콕콕 찌르는 심수지의 텔레파시.
서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견뎌냈다.
서나는 그녀의 텔레파시에 흔들렸다가는 자신의 자아가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신공격에 대항했다.
아직 어린 그녀는 텔레파시스트의 정신공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의 텔레파시를 이대로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강렬한 마음을 담아 심수지에게 텔레파시를 쏘았다.
[알았으니까 이러지 마….]“…꺄악!”
[네가 알기는 뭘 알아? 이거 참, 고집이 세네. 야, 너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 못 살아.]그러나 서나의 텔레파시는 완전히 심수지에게 닿지 못했다.
자신의 정신을 잡고 흔들려 하는 텔레파시를 느낀 심수지가 서나를 걷어찬 것이다.
이어서 목덜미를 잡고 일으켜서는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공격과 폭력.
텔레파시스트로서 험한 일을 겪은 그녀는 어떻게 하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 언니가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텔레파시스트는 클랜에 들어갈 때는 텔레파시 면접을 본단다. 그런데…, 가끔 못된 클랜은 텔레파시스트를 클랜의 색으로 물들이려고 하거든.] […귀를 기울이면 안 돼. 듣지 마, 서나야.] [잘 들어, 이 년아.]심수지가 서나의 여우 귀를 잡고 질질 끌고 다녔다.
귀를 붙잡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텔레파시를 중단해야 했다.
아인에게 귀란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귀를 붙잡히면 그녀는 텔레파시를 쓸 수 없었다.
그러는 상황에도 심수지의 텔레파시는 그녀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너처럼 고집이 센 텔레파시스트를 받아주는 클랜은 별로 없어. 우리는 무전기의 역할만 하면 그만이니까.]“…….”
[네가 무능력하면 무능력할수록,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 고집 꺾어, 얘. 이 언니가 오늘 널 찬찬히 바꿔줄 테니까.]“…요.”
[응?]“…진서나에요.”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니?]“…저는 이 년이 아니라 진서나라고요. 진, 서, 나.”
[…….]서나는 굴하지 않았다.
텔레파시를 쓸 수 없다면 입으로 말하면 된다.
그녀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진서나.
이 이름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몰라도,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이름에 애착이 생겼다.
교회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행복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니 말하겠다.
몇 번이고.
“─진서나에요, 전.”
확실하게 자신을 주장하겠다.
서나는 다시 붉은 눈을 치뜨면서 심수지를 올려다보았다.
[얘,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뭐 때문인지 몰라도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네가 누구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넌 그냥 많고 많은 아인 중 한 명일뿐이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텔레파시나 사용할 수 있는 무전기라고, 무전기.]“…언니는 그랬나요?”
[…….]우리에서 끌려 나온 뒤부터 심수지의 텔레파시에 노출되었다.
그래서 서나는 심수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심수지라는 사람에 대해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은 곧 그녀의 정신에 감염됐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저는 안 그럴 거예요.”
허나 서나는 자아를 잃지 않았다.
처음으로 정신공격을 받고 놀라기만 했을 뿐.
심수지의 텔레파시는 마음속에서 공허하게 울리기만 했다.
다시 말해, 그녀의 마음에 조금도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저라서 괜찮대요. 제가 아인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제가 진서나라서 좋은 거래요.”
[…너….]“언니는 그런 말을 해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꺅…!”
[그래, 좋겠네. 그렇게 좋은 친구들을 둬서 말이야. 그런데 그게 어디 밖으로 나가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니? 다들 바쁜데 너한테 관심이라도 가져줄 것 같아?]진서나는 그동안 자신감이 없었다.
언제나 거절을 당할까봐 웬만해서 자기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진서나는 그동안 자존감이 낮았다.
언제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이는 친구들을 만나도 변하지 않은 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여전히 자신감이 없으며,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친구들을 믿었다.
‘너니까 괜찮은 거야.’
‘괜찮아. 나도, 대장도, 민지도, 하양이도 우리 모두 너를 좋아해.’
‘네가 아인인 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우리 친구란 게 중요한 거지. 너 행복해져도 돼. 내가 장담할게.’
그날, 여우비가 내리던 날.
은혁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 말은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려 진서나라는 존재를 지탱해주었다.
여전히 자신은 부족하다 생각하나,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강렬히 품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을 의심치 않았다.
“…언니는…, 불쌍한 사람이…!”
[네가 뭘 안다고 지랄이야!]그녀는 저 멀리서 민호와 싸우는 은혁이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진파랑이 죽지 않았다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
하양이, 민지가 어떻게든 구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진서나!]“…그래, 나 여기 있어….”
─이런 때에는 은하가 나타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진서나는 두 손을 들어, 귀를 붙잡고 있는 심수지의 손목을 와락 붙잡았다.
[이게 지금 무슨…!]“…아아악! 이 미친년이!”
그녀는 심수지의 손목을 물었다.
심수지가 몸부림을 치면서 그녀를 집어던졌다.
뒤에 있던 나무기둥에 몸을 부딪친 그녀는 컥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죽여 버릴 거야.]화가 난 심수지가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땅바닥에 늘어진 서나는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여우 귀를 까딱였다.
스파크를 튀겼다.
[내가 말했지? 텔레파시를 써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은폐마법이 이곳을 가리고 있는 이상─.]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으려고 하던 심수지는 이내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나 여기 있어.]이미 채널은 연결되었다.
파랑이 조금 전에 텔레파시를 보낸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진서나 여기 있다구.]그 순간, 결계가 흔들렸다.
요란하고, 격렬하게.
이윽고 결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