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82
피가 튀어 올랐다.
소년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던 슬레이어에게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설마 자신이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남자가 자빠졌다.
급소를 빗겨가서 찔렸을 테건만.
하늘을 향해 쓰러진 남자는 입에서 연신 피를 토하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어리다고 봐줬더니…!”
“야! 너 왜 이…컥…!”
남자와 친분이 있던 슬레이어들이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슬레이어들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토하는 피를 뒤집어쓰고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순식간에 세 명이 죽었다.
슬레이어들이 토해낸 피는 다시금 근처에 있던 슬레이어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다.
권지나를 비롯한 슬레이어들은 곧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마! 맹독이다!”
맹독도 단순한 맹독이 아니었다.
감염되는 순간 즉사에 이르고 마는 맹독.
마나 저항을 통해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독이었다.
더군다나 피부에 닿기만 하더라도 감염을 일으킬 만큼 전염성을 띄고 있기까지 했으니.
그녀는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슬레이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덕분에 멍청이처럼 앞으로 나서는 슬레이어들은 더 이상 없었다.
“이걸로 끝이야?”
그러는 가운데, 소년은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포위를 당했다는 심각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듯이.
오히려 포위한 사람들을 오만하게 깔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돼. 우리랑 같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상대해야 해.” “…지나 네 말을 듣는 건 싫지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아니, 어쩌면.
어쩌면 소년은 포위당한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들을 유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순간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쉽사리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실력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슬레이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여기서 죽여 버려야 해.
괜히 방심하고 시간을 끌었다가는 우리가 당할지도 몰라.
슬레이어들과 눈짓으로 말을 나눈 그녀가 허리춤에서 꺼낸 두 자루의 단검을 거꾸로 쥐고 지면을 박찼다.
동시에 헌터 슬레이어들이 재빨리 뛰어나갔다.
그럼에도 소년이 조금 전에 보여준 마법을 떠올리면 투입되는 인원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트랩 발동
그동안 존재감을 감추던 딜러들이 소년의 등 뒤에서 나타나는 그때.
그녀는 사전에 설치해놓은 트랩을 작동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은 딜러들의 공격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던 듯이 가뿐히 피해냈다.
그러나 설마 소년이 뛰는 방향으로 곳곳에서 지면이 폭발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했다.
한순간 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황급히 방벽을 전개해 폭발로부터 몸을 지킬 요량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그녀가 염두에 두고 있던 부분이었다.
“시발! 죽어라!”
“크하하하! 이건 또 몰랐지?”
가디언들이 뚫어준 길로 달려 나간 헌터들이 총구의 방아쇠를 당겼다.
폭발 속에서 소년은 막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네비게이터와 텔레파시스트를 통해 진즉 소년의 위치를 포착하고 있던 그들은 연기가 가리고 있는 너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고위계 몬스터 레이드.
그동안 솔로 플레이만을 지향하던 슬레이어들이 오랜만에 합심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계는 여기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5, 4, 3, 2, 1…, 0.
Shoot!
사격 개시, 파이어!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스나이퍼와 기회를 노리고 있던 레인저들 또한 일제히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사이 영창을 마친 캐스터들까지 폭격에 가담했다.
몬스터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너무 과한 처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손색을 봐주지 않았다.
그만큼 소년이 선보인 맹독은 가히 치명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손색을 봐주지 않듯 소년 또한 손색을 봐주지 않았다.
─오만의 반격
인비져블 트래커
“…커헉…!”
“어, 어째서…!”
“꺄아악─!!”
“다, 다리가…! 아아악─!!”
상황이 반전했다.
먼지가 이는 일대 속으로 쏟아지던 마법이 난데없이 방향을 바꿔서는 시전자에게 날아든 것이다.
마법을 제때 방어하지 못한 이들은 단 일격만으로 치명상을 입었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부상을 입었다.
권지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큭…! 어서 태세를 정리해!”
그녀가 후끈 달아오르는 옆구리를 손으로 짓누르며 목이 터져나가도록 외쳤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덮쳐든 폭격에 귀가 먼 슬레이어들은 궁지에 몰려 제 성격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언제 연계를 했냐는 듯이 누군가를 방패로 삼거나,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인비져블 트래커
리볼버 쏜
인비져블 트래커
천보
광무
바일런트 베놈
그때 사라지지 않은 먼지를 몸에 휘감고 모습을 드러낸 소년.
소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도망치는 이들에게 거대한 가시를 날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가속한 소년은 마치 물리법칙을 위배한 움직임으로 하늘을 날아가서는 어느 헌터 앞에 착지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불규칙적인 칼부림.
근처에 있던 슬레이어들은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칼에 베였다.
몇몇 슬레이어들은 맹독에 당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피를 흩뿌렸다.
다시금 죽음의 연쇄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소년은 죽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죽음을 만들려고 움직이느라 열성을 다하고 있었다.
“─네가 대장이구나?”
“…큭…!”
그러다 권지나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이 스산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남아 있던 거리를 단숨에 좁힌 건 직후였다.
반사적으로 손에 쥔 검 두 자루를 교차시킨 그녀는 위에서 떨어지는 검격을 막아내느라 이를 악물었다.
무슨 놈의 꼬마가…!
오랫동안 전장에서 있었던 것처럼 공격과 동시에 마나를 교란시키는 고등제어기술을 사용한 소년.
마나관리기구 등급으로는 적어도 A등급에 속하는 솜씨였다.
겨우 중등아카데미 1학년 학생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바일런트─.
또 그 공격이다.
그녀는 소년이 내리치는 검에 맺힌 마나가 검은색으로 변하자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당하는 순간 끝이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그녀는 재빨리 귀에 찬 아티펙트를 발동시켰다.
─나비의 가호
그 순간, 버러지를 보는 것만 같던 소년이 눈빛을 바꾸었다.
그녀는 소년의 눈에 깃든 이채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
아티펙트, 나비의 가호.
은하는 헌터 슬레이어가 발동시킨 아티펙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살아 있는 나비처럼 움직이는 마나 입자가 자신의 공격에 반응해 달려들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마나제어능력에 간섭하기까지.
확실했다.
헌터 슬레이어가 발동한 이어링은 시전자의 근처에 존재하는 상대에게 견제를 가하고, 마나 컨트롤을 교란시키는 아티펙트 나비의 가호였다.
이걸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
횡재했다.
은하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주고는 발현한 마나를 손에서 놓았다.
바일런트 베놈을 포기했다.
천보
나비의 가호는 소모하는 마나만큼 지속시간과 효과가 정해졌다.
은하는 헌터 슬레이어에게 날아든 나비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는 맞지 않는 힘이었다.
기껏해야 위급한 순간에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은하는 몸에 붙은 나비의 인분을 탁탁 털어내고 자세를 취했다.
윤이별이 나비의 가호를 여기에서 얻었던 거였구나.
온태양의 세 번째 부인이자, 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던 네비게이터.
그녀를 대표하는 아티펙트가 바로 나비의 가호였다.
이전 삶에서 윤이별은 호신용으로 나비의 가호를 사용하고는 했다.
나비의 가호는 체내 마나가 많은 캐스터나 서포터 혹은 네비게이터가 자신을 보호하는데 사용하기 좋은 아티펙트였다.
눈앞에 있는 헌터가 아니라.
쌍둥이 애들이 그렇게 갖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아티펙트였는데….
아마도 윤이별은 설악산에 잠적한 슬레이어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아티펙트를 얻은 것이리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쌍둥이들을 떠올린 은하는 양 옆에서 협공하는 슬레이어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제 저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도망가더라도 그냥 보내줄 것이다.
그만큼 나비의 가호는 눈이 가는 아티펙트였다.
인비져블 트레커
천보
마나 크래셔
그녀의 눈앞에 뛰어올라 있는 힘껏 검을 내리쳤다.
금속음이 부딪치는 소리.
힘에서 밀린 그녀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리기 위해서 원령을 사용하려 했다.
그 순간, 나비들이 시야를 덮었다.
다시금 마나 교란이 일어났다.
이딴 건…!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마나 교란을 해주면 될 뿐.
그는 한서현의 조언을 듣고 떠오른 미완성 마법을 발현했다.
흐름을 거세게 만들었다.
자신의 마나에 노출당한 나비들이 미친 듯이 파닥이며 들쭉날쭉 하는 몸을 제어하려 애썼다.
그녀가 불러들인 나비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미완성 마법은 그가 원령을 사용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큭…!”
결국 그녀가 지면에 처박혔다.
그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는 한편, 나비의 가호가 부서지지는 않게끔 내리치려는 지점을 정확하게 노리려 했다.
…성가신 놈들.
그때 정신을 차린 레인저들이 사격을 가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탄환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려야 했다.
오만의 반격은 더 이상 쓸 수가 없고….
쉬지 않고 날아드는 놈들의 탄환이 성가셨다.
방벽을 전개한 채로 피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는 상황에서 딜러와 헌터들이 달려들고 있었으니.
아니야, 할 수 있어.
감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은하는 놈들의 공격을 받아치기로 결심했다.
이전에 강현철과 전투를 치르면서 그의 불꽃을 받아친 적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렸다.
더불어 조금 전에 오만의 반격을 발동했을 때의 감각을 되새겼다.
받아쳐라, 카운터
이름을 읊조리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영창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두 번째 미완성 마법은 마음처럼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날아드는 마법의 궤도를 어긋나게 만들고, 아주 가까이 있던 상대에게 극히 일부의 데미지를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상황을 뒤집었다.
은하는 검은 가시나무를 두 손으로 쥐어서는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칼날이 바람을 찢고, 바람의 길이 만들어졌다.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이내 체내 마나와 겹치며 거대한 드릴로 변했다.
인비져블 트래커
천보
일점돌파
목표로 하는 곳은 폭격에서 떨어진 지대.
지면에서 발을 떼고 나아가는 검에 몸을 맡긴 순간, 인비져블 트래커가 자신이 바라는 위치로 이끌었다.
이윽고 후방에 착지한 그는 칼날에 맺힌 마나를 주변에 흩뿌렸다.
인비져블 트래커
미침
마나로 이루어진 가시가 나무 위에 있던 레인저와 스나이퍼를 노렸다.
갑작스런 공격에 나무에서 떨어진 그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우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놈들을 쓰러뜨려야 해.
바일런트 베놈으로 위협을 가하고, 스티지안 아이로 딜러를 순간적으로 위축시켰다.
어느 정도 후방을 정리한 은하는 도망칠 길을 찾고 있던 헌터 슬레이어의 정신을 빼앗았다.
“어디를 가려고?”
“……!”
리볼버 쏜에 허벅지가 꿰뚫린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이참에 다리 하나까지 잘라낸 그는 그녀가 지르는 비명을 무시하면서 집요하게 자신을 노리던 딜러들을 죽였다.
“이것들이…, 사람 힘들게 하고 있어….”
미친 듯이 칼부림을 부리고 있자니 자신을 공격하던 슬레이어들이 점점 줄어들고, 일부는 줄행랑을 쳤다.
은하는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도중에 바닥에 내려놓은 배낭에서 포션을 마신 은하는 등을 보인 채 쓰러진 헌터 슬레이어를 뒤집었다.
“…독하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를 하나 잘렸다고는 하더라도 그녀는 죽을 정도로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슬레이어는 더 이상 자신에게 살 길이 없다고 판단한 건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으로 독한 사람이었다.
고통스럽게 죽을 바에 차라리 직접 죽고 말겠다니.
은하는 눈을 뜨고 죽은 슬레이어를 내려다보면서 손을 움직였다.
“…대박.”
손 안에 들어온 나비의 가호.
은하는 당장 이어링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자신의 주변에 마나의 색을 띠는 나비가 몇 마리 나타났다.
역시 나하고는 맞지 않네.
나비 모양의 이어링은 발동하는데 상당한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소량의 마나를 쓰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졌다.
근접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원령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것도 보류해야겠네.
은하는 아티펙트에 부여한 마나를 회수했다.
언젠가 자신이 만들 파티에 들어올 사람에게 전하기로 했다.
아니면 윤이별을 파티원으로 들일 생각이었으니 그녀에게 넘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 나비의 가호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정하양, 배수빈, 차은우 세 명이었다.
체내 마나를 어느 정도로 보유한 진서나도 범위 안에 넣기로 했다.
“…잠깐.”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그녀를 떠올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누나한테 주면 되겠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호신용 도구 하나 없이 밖에 내보낼 수는 없지.
2년 뒤에 은아가 졸업한다.
머지않아 플레이어 업계에 입문할 그녀를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했다.
그녀의 실력이야 아주 잘 알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비의 가호는 분명 그녀에게 훌륭한 호신용 아티펙트가 될 것이다.
“윤이별한테는 나중에 다른 거나 주면 되지, 뭐.”
은아가 제일 중요했다.
그는 이어링을 받고 기뻐할 그녀를 생각하며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슬슬 떠나야겠네.
잠시 후 플레이어들이 도착했다.
챙길 것을 챙긴 은하는 이제 그만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도망친 슬레이어들은 플레
이어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이로써 종합능력평가 마지막 밤이 막을 내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