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84
일주일이라는 짧은 방학이 끝났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학생들은 결국 기말고사를 맞이해야 했다.
특히 중등아카데미 1학년 학생들은 기말고사와 별개로 몬스터를 죽이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일부에서는 납치를 당한 학생들이 몬스터를 죽이게 만드는 것은 다소 시기적절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관들 대다수는 시험을 치르는데 찬성을 했다.
중등아카데미 2학년부터는 실전을 포함하는 수업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 전에 몬스터를 죽일 줄 알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은혁이 너랑 목민호는 시험에서 면제되었다는 거지?” “아니야, 대장. 면제된 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시험을 통과한 거야!”
“부러운 놈들….”
그러는 한편, 시험에서 면제받은 학생들도 있었다.
은하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며 신나라 좋아하는 은혁과 민호에게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듣자하니 두 사람은 교관들 앞에서 슬레이어들의 부락에 출몰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험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듣고 은하는 괜히 은밀하게 행동했다면서 자책을 했다.
단순히 몬스터만 죽이는 거라서, 시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귀찮은데….
몬스터를 죽이는 시험은 기말고사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제각기 시간이 비는 때 훈련동에서 시험을 받으면 됐다.
은하는 중간에 비는 시간을 이용해 시험을 응시할 생각이었다.
은혁과 민호를 보낸 그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을 찾았다.
같이 시험을 응시할 사람을 찾아.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갈래? 나도 오늘 내일 중으로 응시할 생각이었거든.”
때마침 하양과 수다를 떨고 있던 차은우가 손을 들었다.
은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즘 들어 은우가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아지기는 했더라도, 확실하게 포섭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가인의 파벌에 속해 있기도 했으니까.
그것은 목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커피 마시고 일어나자.”
“응, 잠깐만, 사실 내가 뜨거운 걸 잘 못 마셔서….”
“괜찮아. 천천히 마셔.” “…아…!”
“내가 천천히 마시랬지?”
“나도 나름 천천히 마신 건데…. 이럴 거였으면 아이스 카페라떼로 주문할 걸.”
뜨거운 카페라떼를 마시던 은우는 그만 혀를 데인 모양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그녀는 날름 혀를 내밀어 보였다.
겨울이라 목도리를 두르고 있어서 평소 목에 차고 있던 새빨간 쵸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그 모습이 나름 나이에 어울리게 귀엽게 보였다.
우수에 찬 느낌도 들지 않았고.
“…응, 누구 톡이지?”
그러나 그것은 잠시에 불과했다.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파인톡이 도착한 걸 확인한 은우는 아래로 휘어진 눈꼬리를 더욱 휘어, 입가를 살며시 끌어올렸다.
마치 억지로 웃는 것처럼.
“은하야, 미안한데….”
그러고는 그녀가 운을 뗐다.
“혹시 한 사람 더 같이 가도 될까? 지금 같이 가자고 톡이 와서….”
“…나는 괜찮아. 누군데?”
그 순간 은하는 직감했다.
차은우를 알게 된지 어언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언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지 모르지 않았다.
“…가인이한테. 정말 괜찮아?”
“…오고 싶으면 오….”
“”””…….””””
뽀각
어쩔 수 없이 은하는 최가인이라는 발암덩어리를 감수하기로 했다.
미안해하는 은우에게 답하려 하자, 샤프심이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대화를 중단할 정도로 큰 소리가.
기계처럼 고개를 돌려서야 은하는 샤프심이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볼펜이 부러져서 울린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 하양아! 너 지금 손에 잉크 묻었잖아!” “어? 그러네? 미안, 내가 모르게 힘을 세게 줬나봐.”
과연 힘을 얼마나 세게 주었으면 볼펜이 친구들이 고개를 들어 올릴 소리를 내면서 부러진단 말인가.
은하는 서나가 건넨 물티슈로 손을 닦는 그녀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나도 지금 시험 보러 갈래.”
“하양이 너는 다음 수업이 있잖아.”
서나가 점잖게 그녀를 타일렀다.
하양이 볼을 부풀렸다.
체내 마나가 흐트러졌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은하는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최가인이 자신을 포섭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한서현의 비호 아래에 있는 시간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은하는 최가인의 비호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여차하면 은우가 잘 도와줄 거야. 그렇지?”
“…응, 내가 잘 막아볼게. 미안해.”
미안하다는 듯이 사과하는 차은우.
이제는 그가 최가인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그녀는 고개를 숙여가며 사과했다.
과도한 사과였다.
차은우는 이게 문제였다.
괜히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 은하는 일단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는 말해줘야 해?”
“알았어. 우리는 가자.”
“응.”
“나도 같이 가.”
그러던 때였다.
바깥 전경을 구경하고 있던 수빈도 같이 시험을 치르겠다면서 일어난 것이다.
그제야 하양은 안도한 듯했다.
서나가 귀띔을 해줬나 보네.
이전 삶에서 친구가 한 명만 있던 배수빈은 눈치가 없었다. 더군다나 마이웨이를 지향하기까지 했으니.
그런 그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배려했을 리 없었다.
은하는 살며시 서나를 곁눈질했다.
여우 귀 사이에서 미미하게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필시 서나가 조언해준 것이리라.
“근데 생각해 보니까 타이밍이 참 절묘한 것 같아?” “응? 뭐가?”
“뭐기는. 우리가 시험을 보려는 때, 최가인이 딱 시험을 보겠다고 했으니까.”
“…그러게?”
카페를 나오면서 은하는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최근 은우와 민호가 자신들과 가까이 지내는 까닭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다.
두 사람과 친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최가인의 명령도 있었으리라.
가까이에서 자신을 감시하라고.
나야 환영이지.
은하는 속으로 최가인의 아둔함에 감사해했다.
그녀 덕분에 두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녀는 두 사람이 자신을 철석같이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곁에 보냈다.
자신이 두 사람을 포섭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두고 보라지.
언젠가 목민호와 차은우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테니까.
두 사람의 부모님은 갤럭시그룹의 계열사에서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마음속에 갤럭시그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게 맺혀 있을 것은 당연지사.
그러니 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최가인이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면 수고를 더는 셈이었다.
“누가 우리를 감시라도 하나?”
“에이, 설마….”
시간을 들여가며 두 사람에 대한 충성심을 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은하는 우스갯소리로 넘기면서도 은연중에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차은우는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최가인으로부터 자신을 감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또 다른 감시자가 자신과 그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리라.
정말 믿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약한 법.
감시자가 한 명이란 법은 없었다.
최가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까이서 자신을 감시하면, 다른 사람은 멀리서 그녀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근거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아주 작은 의심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의심에 품게 된다면,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리라.
의심의 씨앗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장 약한 부분에 파고들어,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진짜인지도 모르지. 요즘 최가인이 톡을 보내는 타이밍이 좀 기가 막힌 것 같지 않아?”
“…응, 그러게.”
은하는 그때가 기대되었다.
은우와 민호의 마음속에서 심어진 의심이 활짝 꽃을 피우는 때를.
그때에도 두 사람은 갤럭시그룹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못하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어.
앞으로도 자신은 별 것 아닌 일로 두 사람이 최가인을 의심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만약 최가인이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녀에게는 성군의 자질이 없었다.
언젠가 최가인은 후회하게 되리라. 그녀가 믿고 보냈던 두 사람이 결국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가 지을 얼굴이 기대되었다.
은하는 그때를 고대하며─.
“─그러고 보니 설악산에서 애들이 납치당했을 때, 최가인이 그랬는데. 납치당한 애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자기들부터 산에서 내려가자고.”
“…….”
─의심의 씨앗을 퍼뜨렸다.
☆
몬스터를 죽이는 시험은 응시자가 마법으로 몬스터를 죽이는 행동을 금지했다.
이 시험에서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손으로 직접 몬스터를 죽일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진정으로 생명을 죽인다는 행위이자, 몬스터의 소멸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지금까지 합격률은 98%라….”
시험은 한 명씩 진행되었다.
연이은 시험으로부터 잠시 해방된 교관은 모니터실에서 보낸 자료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기말고사 사흘째.
현재까지 합격률은 98%였다.
1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생활했던 학생들은 이제는 몬스터를 죽이는데 저항감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말이 시험이었지, 실상은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였다.
[교관님, 다시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알았다.”
교관은 천정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듣고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스트레칭을 마친 그는 문 밖에서 들어오는 학생을 주시했다.
“안녕하세요. 1학년 8반 22번 배수빈입니다.”
“…음, 그래. 오랜만이네.”
1학년 8반 배수빈.
교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수빈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8반 담당교관의 애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관은 생전, 8반 담당교관이 술자리에서 그녀는 언젠가 반드시 훌륭한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말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럼 바로 시험을 시작할게.”
“네, 잘 부탁드립니다.”
동시에 교관은 배수빈이 1학기에 제8위계 몬스터 철인을 상대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교관은 준비된 마석 중, 유망주에게 쓰는 마석을 골랐다.
학생들이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지 죽일 수 없는지 확인하는 시험.
그렇기에 학생들은 디버프를 받은 제9위계 몬스터를, 거기서 유망주로 분류되는 이들은 제8위계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다.
끼이이이?
교관이 그녀에게 던져준 몬스터는 제8위계 중에서도 상대하기 어려운 철인이었다.
철인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웬만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방어력을 자랑했다.
비록 철인이 디버프를 받았다지만,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하물며 배수빈은 일전에 철인에게 진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잘하는지 볼까.
교관은 배수빈이 얼마나 침착하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철인을 죽일지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한 번 당했던 상대에게 다시 당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복수를 할 것인가.
“…….”
그러나 교관은 상대를 평가하는 시선을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접어야 했다.
교관 자신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녀가 살기를 방출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제 14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이만한 살의를 품고 있다니.
“마침 한 번 죽이고 싶었는데….”
배수빈은 움직이지 않았다.
높이 뛰어오른 철인을 앞에 두고, 단지 그 장면을 타인의 일인 것처럼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기괴한 칼날.
마나로 이루어진 칼날은 거미의 다리처럼 꿈틀거리더니 날아드는 놈을 푹 찔렀다.
웃었다고?
교관은 꼬챙이 신세가 되어 공중에 매달린 철인을 올려다보는 배수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유쾌하게, 어깨를 떨며.
휘릭
그녀가 아무 짝에나 손을 움직이자 철인을 꿰뚫고 있던 마나의 칼날이 반응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철인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려 했다.
퍽
배수빈은 거의 일어나려던 철인의 복부를 짓밟았다.
이윽고 그녀는 철인의 위에 올라타 시험용으로 나누어준 칼을 들었다.
“은하 말대로 단단하네? 뭐─.”
─아무렴 어때.
교관은 그녀가 마지막에 흐린 말이 어째서인지 들리는 것 같았다.
여하튼 철인을 내려다보며 한 번 히죽 웃어준 그녀는 몇 번이나 칼로 철인을 내리쳤다.
고철을 쾅쾅 때리는 소리만 났다.
교관은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지, 칼을 내리칠 때마다 희열에 잠기는 그녀를 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교관님, 끝났는데요?”
“어어…, 그래, 잘했다.”
교관은 도중에 정신을 놓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몬스터에게 악귀와도 같은 미소를 보인 그녀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교관은 세상을 떠난 8반 담당교관이 보고 싶어졌다.
대체 그녀를 어떻게 교육시켰으면 그녀가 이토록 꺼림칙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것이냐고.
교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배수빈을 훈련장 밖으로 내보냈다.
안타깝게도 잠시 물을 마실 시간도 없었다.
다음 응시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1학년 6반 노은하입니다.”
“…그래, 은하 잘 왔다.”
올해 031기 중에서 군계일학으로 통하고 있는 남학생.
교관이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르면 간첩이었다.
아버지는 시리우스그룹에서 총괄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권력자였으며, 누나 노은아는 플레이어 아카데미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신성이었으니. 더군다나 은아는 박혜림과 신서영과 연을 맺고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노은하가 제안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 같은데….
그러던 교관은 얼마 전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문화제 때였다.
그때를 기점으로 십이좌 강현철이 노은하에게 를 제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은하의 실력이라면 에게서 의 제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더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그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럴 리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때 은하 본인도 “저는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이참에 은하 네 실력이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겠네.”
“그래요?”
교관은 실력자를 반겼다.
아마도 은하는 플레이어 업계에서 십이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교관은 은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반면에 은하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듣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만 했다.
그래도 아직 애지.
마나제어능력은 나쁘지 않겠지만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다른 거지.
어디 얼마나 빨리 몬스터를 죽이나 확인이나 해볼까.
교관은 준비된 마석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은 제8위계 마석을 집었다.
제8위계 불꽃의 꼬마악마.
조그마한 악마는 불꽃을 일으키며 화재를 유발하는 몬스터였다. 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데다, 크기도 작아 공격하기 까다로웠다.
교관은 철인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를 불러내기 위해 마석에 마나를 담았다.
“…뭐!?”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닥에 던진 마석은 교관의 마나를 흡수한 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마나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이나 시험을 치렀으니, 주변에 많은 마나가 떠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편재가 일어나지 않은 게 이상했을 정도였다.
막아야 해!
교관은 황급히 편재를 상쇄하려고 체내 마나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몸집을 부풀린 편재는 교관의 손이 닿기도 전에 몬스터를 탄생시켰다.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가 눈을 번뜩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교관은 침음을 삼켰다.
히히히
제7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교관은 뒤늦게 공간에 잔재해 있던 마나를 없애지 않은 자신을 후회했다.
제6위계에 버금가는 몬스터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혼자 상대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녀석을 안전하게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명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른 교관을 부르기에는 너무 늦었다.
교관은 어쩔 수 없이 은하를 보호하면서 몬스터를 상대하기로 했다.
상대하기로 했는데─.
“─제8위계가 아니어도 상관없죠?”
“…뭐? 은하야, 위…허…어…?”
백 번 양보해서.
제7위계 오버랭크 몬스터가 자신을 주시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었어도.
은하가 손에 쥔 무기가 시험장에서 건네주는 디바이스가 아니라 전용 디바이스였다고 해도.
어떻게 제7위계 오버랭크 몬스터를 한 번에 절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단 말
인가.
교관은 반으로 갈라진 사체가 자신에게 쏟아지던 중에 소멸하는 것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올해 14세밖에 되지 않은 소년은 싱겁다는 듯이 검을 칼집에 넣고 있었다.
“이제 가도 되죠?”
“…어, 그래….”
미련도 없이 등을 돌리는 노은하.
교관은 허탈하기만 했다.
자신에게 저런 실력만 있었더라도 아카데미에서 교관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탄하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등아카데미 1학년 학생이 제7위계 오버랭크 몬스터를 단신으로, 일격에 소멸시켰다.
위계가 강함을 대신하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위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은하는 했다.
상처 하나 없이.
“하늘도 너무하시지.”
하늘은 오래전에 한 번 무너졌다.
뒤늦게 그것을 떠올린 교관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