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297
지하 5층을 공략할 때에는 제법 고생을 해야 했다.
필드 몬스터가 출몰했던 것까지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지만, 하필이면 물리공격에 내성을 가진 것은 물론 마법공격에 특화된 몬스터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몬스터가 출몰한 위치는 주위가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있는, 고립된 지형이었다.
그곳에서 다 쓰러져가는 대웅전을 지키는 몬스터는 좁을 길을 통해서 건너오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류연화가 먼저 길을 뛰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으…, 이번에는 조금 힘들었어.” “누나, 체내 마나는 괜찮아? 이거라도 마시면서 회복해.”
“역시 날 챙겨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번에 은하와 창진은 전투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물리공격에 내성을 지닌 몬스터는 두 사람의 공격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정도였다.
놈이 금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독 계열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놈을 따르는 몬스터들을 처리해야 했다.
결국 연화가 전위에서 견제를 하고 은아가 후위에서 마법을 난사하면서 녀석을 상대해야 했다.
바일런트 베놈이 전혀 통하지 않는 유형도 있을 줄이야….
한편, 은아를 지키는 것밖에 못한 은하는 바일런트 베놈의 한계점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패혈증을 일으키게 만드는 맹독은 제아무리 생명체라고 할지어도 피가 흐르지 않는 몬스터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전 삶에서는 맹독 계열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던 은하는 이번에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회가 있다면 부식계열 스킬석을 얻어야겠어.
제8위계 철인에게서 해당 스킬석을 얻을 수 있기는 했다.
다만 제8위계의 섭리로는 원하는 마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쉽지만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연화 누나, 수고했어요. 이거라도 마시면서 좀 쉬세요.” “잘 마실게.”
생각을 접은 은하는 가지고 있던 텀블러를 연화에게 넘겼다.
수건으로 흘러내린 땀을 닦고 있던 그녀는 그가 건넨 커피우유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은하 역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그녀가 마시고 남긴 커피우유를 쭉 들이켰다.
“저기, 은하야, 나는…?”
“형은 괜찮지 않아요? 우리 누나 옆에 붙어 있기만 해서 체내 마나를 소모하지 않았을 텐데….”
“…응, 미안해….”
“자요, 하나 더 가져왔어요.”
설마 연화와 은아에게만 주겠는가.
은하는 배낭에서 꺼낸 텀블러를 시무룩하게 돌아서려던 창진에게 던져주었다.
포션이라면 던전 공략을 위해 제법 많이 챙겨온 참이었다.
오히려 예상 외로 포션을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많이 남기까지 했다.
“고마워, 포션 잘 마실게. 그런데 이제 슬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좋아.”
“괜찮네요.”
아카데미 학생들은 던전 끝에 있는 황폐한 대웅전에 들어가서 자신들이 던전을 공략했다는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한편으로는 기념으로 가지기 위해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일정 주기로 대웅전에 보관하는 향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웅전 안에 흐르는 마나를 머금은 향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해주는 효과를 지닌 아티펙트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얘들아! 얼른 이리와! 들어가기 전에 사진 찍자!”
먼저 대웅전 돌계단을 오른 은아가 세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자 연화와 창진은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은하는 제자리에 있었다.
“은하야! 안 오고 뭐해!?”
저 멀리서 은아가 소리쳤음에도, 은하는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파티원들로부터 몸을 돌린 은하는 낭떠러지로 걸어갔다.
이 아래에…, 있겠지?
한 발만 더 내딛으면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낭떠러지 끄트머리에 선 그는 이내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깊이 깔려 있었다.
감지망으로도 구조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영역.
저곳은 던전의 섭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던전도 아니고, 원래 세계도 아닌, 던전과 원래 세계 사이에 걸쳐 있는 경계세계.
저곳에 빠지게 되면 삶도, 죽음도 보장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지만.
“노─은─하─!!”
저 멀리서 은아가 불렀다.
손을 흔들어 자신은 괜찮다고 화답한 은하는 감지망을 거둬들였다.
이런 데에 있으면 누가 알겠어.
죽으려는 게 아닌 이상 경계세계에 떨어지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 죽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어렵게 던전 최심부까지 도달해서는 경계세계에 뛰어내릴 리 없었다.
그렇기에 적색던전 플레이어 아카데미는 오래 전에 공략되었음에도 낭떠러지 아래를 탐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 아래에 히든 피스가 있음에도.
“뭐라 설명할 방도도 없으니….”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파티원들에게 히든 피스가 있다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자신조차 믿기지 않았으니까.
파티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누나! 나 잠깐만 다녀올게!”
그래서 그는 혼자 뛰어내리는 길을 택했다.
근거가 없다면 증거를 보여주면서 대충 얼버무리면 될 거라 생각해서.
선 처리, 후 보고였다.
“은하야─!!”
저 멀리서 은아가 부르짖는 소리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은하는 추락하는 감각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던전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충격이 몸 전체를 뒤흔들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듯한 감각.
필시 이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은하야─!!”
은하는 늘 그랬다.
아무것도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홀로 생각하고, 홀로 결단한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말해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괜찮아.
이제 어린애도 아닌걸.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심한 때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하게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자신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은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도 남동생은 여전히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했다.
정말 어린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은하면서.
“노은하!!”
은하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을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 나간 은아는 바닥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메아리치는 소리만 울릴 뿐 저 아래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감지망을 전개했지만 어둠 너머의 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짧게 혀를 찬 그녀는 석장을 쥐고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노은아! 너까지 뭐하려는 거야!”
“은하가 저 아래로 떨어졌어. 내가 내려가서 데리고 올 테니까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줘.”
“저 밑이 던전이 아니란 걸 몰라? 저기 떨어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단 말이야!”
“그럼 은하가 돌아오지 못할 거란 말이니? 그럴 리가 없잖아!”
“노은아, 내 말 들어.”
은아는 자신을 말리려 드는 창진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은아의 심기를 살피며 눈치만 보고 있던 창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이게 흥분 안 하게 생겼어?”
혼내는 듯한 어조.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노은하, 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어떻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뛰어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은 물론, 저 혼자서 짊어지려 하는 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못 미덥니?
은하가 말해주면 믿어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에게 바라고 또 바랐다.
홀로 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홀로 나아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은하가 설마 자살이라도 하려고 뛰어내렸겠어?”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미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은아는 고개를 홱 들고는 창진에게 쏘아붙였다.
조금 전에 보여준 모습은 사라지고 창진은 시선을 피하며 사과했다.
“…너 진짜 두고 봐….”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참고 참아도 이번에는 못 참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만 커져서는 홀로 짊어지려고 하는 남동생에게 혼쭐을 내주기로 했다.
너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라고.
나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은하가 생각 없이 뛰어내리지는 않았을 거야.”
한동안 말이 없던 연화가 침착하게 운을 뗐다.
그러나 그녀와 몇 년이나 함께했던 은아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그녀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자신과 창진 외에는 마음을 주려 하지 않으려던 그녀가 이런 식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은하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괜히 질투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만큼 남동생은 사랑스러우니까.
진짜…, 노은하 나쁜 놈.
동시에 그만큼 걱정을 하게 만드는 남동생.
참 미운 동생이었다.
밉고, 그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렇기에 은아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또 은하가 말해줄 때까지를 계속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걸.
“노은하
바보야! 은애 반만이라도 닮아보란 말이야!”
“…맞아, 바보야.” “너희…, 이제 괜찮은 거지?” “이게 괜찮아 보이니!?”
“네 눈은 장식이니?”
“…….”
그녀들에게 대차게 까인 한창진은 얼른 은하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
정신을 얼마나 잃었던 것일까.
물방울이 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도 이곳을 가리고 있던 섭리가 멀미를 일으킨 것이리라.
“아우, 머리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휘청거렸다.
이마에 손을 얹고 눈살을 찌푸린 은하는 힘이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다행히 디바이스는 무사했다.
왼쪽 허리춤에는 검은 가시나무가 있었다.
칼집을 두어 번 두드린 그는 이내 푸른 암반으로 둘러싸인 길로 발을 내딛었다.
천장도 낮고, 비좁은 길이었다.
길을 헤맬 필요는 없었다.
길은 갈림길이 존재하는 일 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주변에 몬스터가 없네.
온태양도 처음에 떨어졌을 때에는 정신을 잃었을 거야.
그런데도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던 이유는 몬스터가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네.
이곳은 경계세계가 아니었다.
단지 던전이 감추고 있던 것일 뿐.
그렇기에 은하는 망설이는 일 없이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다.
만약 경계세계였다면 뛰어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온태양도 참 운이 좋지.
떨어진 데가 경계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었던 곳이었으니.
31기의 주역으로 통했던 온태양은 보이지 않는 신분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신분을 타파하기를 원했다.
특히 031기와 31기의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는 했다.
아카데미에서 기득권이라 불리던 031기 학생들에게는 온태양이 정말 눈엣가시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031기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031기만이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31기 학생들과 31기 중에서도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에게 갖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사고를 가장해 그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다.
진짜 대단한 녀석이지.
죽을 위기에 처하면 그것이 도리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궁지에 처하면 운이 좋게도 때마침 누군가에게 구해지거나 했으니까.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필시 온태양은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일 것이다.
는 죽지 않았으니까.
죽음은 성장의 배경이 되었으며, 궁지는 반격의 계기가 되었다.
자신과는 달랐다.
죽음은 절망의 배경이 되었으며, 궁지는 무력함의 계기가 되었던 와는.
…거의 다 왔나 보네.
온태양과 같은 기수에 속한 은하는 고등아카데미 1학년 때 일어난 일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이 아카데미에 위치한 적색던전에 탐사를 하러 갔던 그날, 온태양은 던전 최심부에서 이곳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같이 파티를 하고 있던 학생들이 사고를 가장해서 그를 민 것이다.
그들은 온태양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
“…더 이상 길이 없네. 그럼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걸 텐데….”
그러나 온태양은 죽지 않았다.
그는 경계세계에 떨어진 게 아니라 아직 공략되지 않은 지역에 떨어진 것이었으니까.
온태양은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해, 자신을 민 학생들을 규탄했다.
그것이 온태양이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몇 번이나 겪고, 살아남았다.
“…찾았다.”
푸른 암반으로 둘러싸인 동굴.
그곳에서도 새하얀 빛이 내려앉는 벽면.
바로 그곳에 은하가 찾고 있던 게 파묻혀 있었다.
과거,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석가여래좌상.
오랫동안 적색던전의 영향을 받은 불상은 벽면에 일부 파묻힌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온태양이 참 운이 좋다니까.
세상에 이런 걸 다 발견하고.
온태양의 디바이스.
성검, 구국(求國)의 검.
이전 삶에서 그의 성검을 구성하는 재료 중 하나였던 석가여래좌상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