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
며칠을 자지 못한 날이 있었다.
선녀 임가을의 부재를 틈탄 몬스터들이 서울을 둘러싼 코쿤 외벽에 일제히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그까지 전선으로 불려갔을 정도로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허무하게 부서져나가는 코쿤의 장막.
삽시간에 몰려드는 몬스터 대군.
불타는 도심.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
잠을 잘 시간도 없었다.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몬스터가 나온다면, 그야 겁에 질릴 수밖에.
그런 싸움이 그야말로 몇날며칠이나 계속되었다.
그때 은하는 사람은 잠을 자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5일 이상이 지났을 때에는 몸이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에 말려들어 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도.
어느덧 눈을 떴을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다른 행정구역을 순회 중이었던 임가을의 귀환을 계기로 상황이 반전한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십이좌를 필두로 몬스터를 토벌하고, 도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민들은 몬스터를 토벌하고 돌아온 플레이어들을 광화문에서 환영해주었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그들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지만, 정작 은하는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가.
그는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울컥하는 플레이어들의 심정도.
단 하나, 그가 거기서 느낀 게 있었다면 부모 틈에 끼어 있던 아이들에게서였다.
이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플레이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부럽다는 감정이, 어처구니없게도 솟아올랐다.
그래,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구나.
그 순간만큼, 그는 그들이 되고 싶었다.
아니, 아기가 되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푹 쉬고 싶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아부.”
개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생활이 지겨워죽겠다.
일어난다.
밥을 먹는다.
싼다.
잔다.
일어난다.
그런 일과가 반복되고 있었다.
하루에 20시간 이상이나 자야 한다니.
한 번은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버티려고 했을 때도 있었다.
회귀 전에 몬스터 대군을 상대했을 때를 떠올리며 버티려 했건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머니의 자장가가 얼마나 사악하던지!
노래가 끝나기 전에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들 때가 대다수였다.
배는 또 어찌나 고픈지 원.
텅 빈 배가 아우성을 치느라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던 모유도 어느덧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활이 벌써 몇 개월이나 이어졌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쌓여서 괜히 불만만 늘어났다.
그런 때에 아버지는 틈만 나면 그를 보러오고는 했다.
아버지는 그가 노려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지 “우리 은하, 아빠가 오기만 기다렸구나!”하며 험악한 눈매로 웃고는 했다.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 숨통이 트이는 일이 있었다는 것.
그렇다.
뒤집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꺄아~ 사진! 사진을 찍어야 해!”
언제나 차분하던 어머니도 그가 뒤집기를 성공했을 때에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참고로 이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낙담했다는 모양이다.
그때 이후로 어머니는 종종 그를 요람에서 내려주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뒤집기를 하고 있었다.
“은하야 파이팅!”
어느새 옆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누나 은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콧김을 내뿜는 모습이 아버지와 꼭 닮았다.
“아우.”
어서와.
그런 의미로 입을 열었지만 과연 은아는 알아들었을지.
“응, 누나 왔어!”
아이끼리는 통하는 걸까.
이번에는 은아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차~”
은아는 은하를 살며시 안아들었다. 어머니처럼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은아 딴에는 그가 다치지 않게끔 애를 쓰고 있었다.
“헤헤~”
뭐가 그리 좋은 건지.
그런 은아를 보고 있자니 자신까지 불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노은아.
은하보다 4살 많은 누나.
하지만 누나에 대한 기억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보다도 희미했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늘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다는 것과 가족을 잃었던 그날, 은아가 그를 지키겠다고 끌어안아주던 때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녀를 얼마나 원망하고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그건 그렇고.
“은하야, 배고파? 맘마 먹을래?”
“은하야, 졸리니? 누나가 자장가 불러줄까?”
“은하야, 쉬야 했니?”
은아는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아버지 어머니의 그 딸이 아니랄까봐, 말이나 행동이 빼다 닮았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어도 그에 대한 관심이 무지막지했다.
“아우바우아우.”
날 좀 내버려둬.
“알았어!”
알기는 뭘 알아.
은하의 칭얼거림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은아는 그를 더 귀찮게 하고 있었다.
아, 이런. 답도 없다.
“은아야~ 은하 좀 보살펴줄래?”
“응~!”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어머니는 은아를 더 부추기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그는 은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처음 시도했을 때와 다르게 익숙해지고 나니 몸을 뒤집는 거야 이제는 쉬운 일이었다.
그 다음은 기어 다니기이다. 기어 다니기는 요 며칠째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는 얼른 걷고 싶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가만히 누워 있는 생활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일단 배밀이부터 시작이다.
며칠 전 어머니는 그가 기어 다니려고 용을 쓰던 모습을 보고는 “먼저 배밀이부터 해야 하는데.”라며 중얼거렸다.
배밀이가 뭘까.
그때 어머니는 그가 물고 있던 공갈젖꼭지를 흔들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내 쪽쪽이!
공갈젖꼭지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배로 바닥을 밀며 앞으로 나아가던 노은하.
그제야 그는 배밀이를 터득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배에 힘을 주는 요령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짜리몽땅한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는 했지만 성공이었다.
이제는 무릎을 앞으로 밀면 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손을 뻗는 간격을 주의하고, 무릎으로 바닥을 민다.
“역시 내 동생은 천재야!”
그런 그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은아가 새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누나야. 대체 어디를 껴안는 거니.
왜 내 엉덩이에 얼굴을 문지르는 거야.
“냄새가 너무 좋은 것 같아~”
“아부우~”
으, 나 좀 기어 다니자. 그리고 내 엉덩이에서 떨어져.
“꺄아~! 귀여워!”
기어 다니기보다 말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결국 은하는 이쯤에서 기어 다니는 연습을 그만두기로 했다.
모처럼 요령을 잡았건만.
하아, 어쩔 수 없다.
“어머, 무슨 일이니?
그때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어머니가 부엌에서 몸을 내밀었다.
“엄마, 은하가 기었어!”
“아부.”
누나야 내 엉덩이는 베개가 아니라니까. 어머니가 말 좀 해봐요.
은하가 불만 어린 의미로 볼을 부풀렸지만 어머니도 은아처럼 해석한 모양이었다.
“엄마도 은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정말 말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우리 아들, 이러다 말도 빨리 배우는 거 아니니.”
그래, 얼른 배워야겠다.
불만을 표하지 않고서는 못 참겠다.
“은하야, 한 번 기어볼래?”
어머니가 내민 팔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조금 전에 배웠던 요령으로 어머니에게 기어간다.
“아~! 치사해!!”
뒤늦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 은아가 볼을 부풀렸지만 이미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대로 그를 안아 올린 어머니는 “참 잘했어요.”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고는 “다음에는 이렇게 앉는 거야.”라며 자세를 알려주었다.
이윽고 손을 놓은 어머니.
은하는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으려고 버텼다.
하지만 어머니가 손을 떼자마자 그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어머니가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머리를 찧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걸음마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천천히 해도 돼. 늦어도 괜찮으니까.”
걸음마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타이르는 말.
하지만 그 말은 마치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자라도 된다고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가.
이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하암~
아기의 체력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더 이상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은하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누나가 입을 맞춰 부르는 자장가를 들으며.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