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02
삐 삐 삐 삐─
임가을은 결국 규칙적으로 울리는 신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조금만 더 잠을 자고 싶었다.
필시 자신이 여배우였다면 조금 더 눈을 붙여도 되었으리라.
어리광을 부려도 되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머나먼 꿈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자신이 선녀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뜨고 말았다.
“여기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것 같았다.
임가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어디에서 자고 있었던 건지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병원이었다.
“…또…. 쓰러졌었나 보네.”
그녀는 팔에 꽂힌 링거를 보고는,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병원에 몇 번이나 입원했던 그녀는 이제는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가 있었다.
내가 어쩌다가 쓰러졌더라.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기절을 하기 직전에 기억하는 것은 종묘 제단에서 코쿤에 체내 마나를 주입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전부터 몸이 그리 좋지 않았었는데 결국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래, 또다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녀로 취임하고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되고는 했던 일이었다.
“깨어나셨군요.”
그때 VVIP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박상진 호위사.
병실에 들어온 그가 선녀에게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걱정이 아니라, 언짢은 얼굴이었다.
무뚝뚝한 얼굴을 와락 찌푸린 그는 그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서슴없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주치의 말로는 며칠은 더 쉬어야 한다고 하던데…. 몸은….”
“…응, 괜찮아.”
“제가 건강은 꾸준히 관리하라고 말을 했을 텐데요.”
“오빠는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은 말을 아끼겠습니다.” “치.”
임가을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린애를 꾸짖듯이 말하는 그에게 눈웃음을 날렸다.
그럼에도 박상진은 꿈쩍하지 않고 침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나, 며칠이나 자고 있었어?”
“오늘로 이틀째입니다.”
“이틀이라…. 다행히 그렇게 오래 자지는 않았네. 국정운영에 문제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과로를 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잖아?”
임가을은 혀를 샐쭉 내밀었다.
이제 30대 중반에 이르렀음에도 나이에 걸맞은 외모는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20대라 불릴 법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란 그런 것이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힘.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아니라.
더군다나 을 소유하고 있는 선녀는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줘서는 안 됐다.
국민들에게 선녀란 존재는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래야 국가가 안정된다.
이 시대에 국민들이 국가 수장에게 바라는 것은 인간다운 리더가 아닌, 몬스터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초인이었으니까.
자신이 취임하기 전만 해도 세상은 기득권층과 플레이어들이 반목하고,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고, 정부는 무능력하다고 욕만 먹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임가을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국민들이 정부가 무능력하다 하면 무능력한 것이다.
늦장대처라고 비난을 한다면 결국 늦장대처인 것이다.
차악보다 최악을 먼저 해결하느라 힘을 쓰지 못했다고.
정부에게 몬스터가 들끓는 국가를 구석구석까지 감시할 수 있는 힘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보다 더 큰 문제가 터지지 않은 이유는 정부와 지자체, 또한 클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막말로 열 가지 문제 사항 중에서 아홉 가지를 해결하고, 겨우 하나가 터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변명할 수 있는 말이 많다고 해도,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변명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욕받이를 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기도 했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할게. 파일, 가지고 왔지?”
“…당분간은 여기에서 요양을 하며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나야 좋지. 이거부터 하면 되는 거지?”
“네.”
무엇보다 선녀정부는 각계각층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하나의 문제는 꼭 고구마 줄기처럼 복수의 이권과 얽히고설켜 있었다.
하나를 건드리는 순간 잘못했다가 다수를 건드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선녀정부가 수립되기 전부터 국가 기저에 깔려 있던 문제였다.
선녀정부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끌어안아야 했다.
그나마 자신의 이익을 손에 넣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면을 보이는 클랜은 양호한 수준이었다.
능구렁이처럼 행동하는 기업 또한 결과적으로 국가의 발전을 도우니 어느 정도 묵과해줄 수 있었다.
문제는 양지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음지, 어둠의 세력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하시장을 어떻게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난리가 나겠지.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어둠은 어둠이 관리한다.
십이좌 백서진이 내세운 원칙이었다.
선녀정부는 그것을 인정해주면서 여러 방면에서 정부가 수립되는데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의 대표자인 백서진이 십이좌로 선발되면서 어둠의 만행은 선녀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알면 놀라겠지.
임가을은 서류에 결재사인을 하다 야트막하게 웃었다.
멸망 이후의 한국은 어둠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사회가 기능했다.
세상이 한 번 멸망한 이후, 세상은 소수의 희생을 외면하는 걸 대신해 다수의 생존을 지킬 수 있었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는 법인데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이제 와서 암부를 도려내게 된다면 한국은 다시금 멸망할 것이다.
그러니 어둠이 필요하고.
그러니 악이 있어야 하며.
그러니 차별을 방관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려 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여기서 내가 선녀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는 거지?”
“병원장 정도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언론에서는 내가 쓰러졌다는 건 아예 모르지?”
“의 힘을 이용했으니 선녀님께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임가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말하지만 선녀는 국민들에게 굳건한 상징으로 존재해야 했다.
자신이 쓰러진 사실이 알려진다면 전국 곳곳에서 민심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특이 이 시기에는 조심해야 했다.
이 시기는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코쿤에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그래도 종묘 하나는 끝내놨으니 나머지는 쉬엄쉬엄 해도….”
“아직 강남에 하나 더 있습니다. 경기도에도 비슷한 크기의 코쿤이 하나 더 있고요.”
“나는 이 시기가 싫더라. 선녀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주면 내 부담이 줄어들 텐데….”
임가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토로했다.
그녀는 투덜거리며 박상진이 내준 커피를 마셨다.
“아무쪼록 건강은 잘 챙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는 호위사로서 말하는 거야? 아니면 여배우 임가을의 전 매니저 박상진으로서….”
“계속 장난치지 말고.” “…치….”
박상진은 임가을의 뺨을 잡아 늘렸다.
얼굴이 풀린 임가을은 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박상진은 가만히 받아주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청와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럼 나 혼자 여기에 남겨두려는 거야?” “곧 이정현 호위사가 올 겁니다. 그리고 누누이 말씀 드리는 거지만, 병원에서는 철저히 정체를 감추고 있었으면 합니다.” “알았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분장과 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이 병원에서 관계자들은 자신을 순위가 낮은 그룹의 방계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내 어깨를 으쓱인 그녀는 목을 가다듬으며 목소리 톤을 변조했다.
“흠흠…, 안녕하세요! 봄여름이라고 합니다!”
봄이 온 듯, 화사한 목소리였다.
☆
고등아카데미 3학년은 3개월 동안 클랜이나 연관된 업체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에 와보네.”
앨리스병원.
레귤러스 클랜이 아니라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보내기로 결심한 은아는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은 몇 년 전에 은하가 입원한 병원이었으니까.
줄리에타가 어베니어를 낳기 위해 입원한 병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은아는 인턴으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묘했다.
사실은 클랜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원래 은아는 입단이 내정되어 있는 레귤러스 클랜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싶었다.
클랜 사람들과 미리 친해질 수도 있는 데다, 박혜림과 같이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혜림이 강력히 반대하며 병원에서 인턴을 해보도록 권유한 것이다.
‘클랜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네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다양한…, 경험이요?’
‘응, 맞아. 병원이 좀 빡세거든.’
그때 해맑게 웃으며 답한 박혜림.
은아는 혹시 그녀가 일전에 그녀를 피해 다녔던 일을 아직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혜림 언니가 없는 말을 할 사람은 아니야.
서포터의 주역할은 보호와 치료, 그리고 보조라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은아는 혜림의 영향으로 보호와 치료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역시 누군가를 지키고 치료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은하는 맨날 다치고만 다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병원은 그녀가 일을 하기 괜찮은 장소였다.
이곳에는 다친 사람이 굉장히 많이 있었으니까.
3개월 동안 인턴을 하게 된다면 치료마법을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런 마음으로 병원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우선 접수처에 인사를 하고─.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기에서 인턴을 하게 된 노….” “꺄아아아아─!!”
“비켜! 다들 비켜!”
“수술실! 지금 몇 번 수술실이 비어 있는지 확인해!”
“환자 상태는!?”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느닷없이 입구 바깥에서 응급차가 멈춰서더니, 구조대원들이 들것에 실린 사람들을 데려온 것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한가해 보이던 관계자들이 피를 흘리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는 혼비백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복도에 가만히 서 있는 게 방해였다.
그녀는 우왕좌왕하면서 허겁지겁 벽에 등을 붙였다.
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그러던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응?”
모르는 번호.
고개를 갸웃거린 은아는 곧 전화를 받았다.
[노은아 씨 맞으시죠?]“네, 맞는데요. 죄송한데, 누구….” [앨리스병원 정형외과 레지입니다. 제가 노은아 씨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지금 어디에…. 아.]
“…네?”
전화를 받고 있던 은아는 계단에서 내려온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여성은 곧 귀에 대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리고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여성은 대뜸 자기소개를 했다.
“노은아 씨, 맞으시죠?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오셨네요. 이 상황에서 반갑다고 말하기는 그렇고…, 오늘 노은아 씨에게 병원을 안내하게 된 임도희라고 합니다. 레지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노은아라고 합니다.” “어차피 내 밑에 있을 것 같은데 말 편하게 할게요. 그래도 되지?” “네, 괜찮아요.” “그래, 그러면 얼른 따라와. 오늘 굉장히 바쁠 테니까 멘탈 잘 잡고.”
임도희가 대뜸 몸을 돌렸다.
은아는 그녀를 성큼성큼 따라가며 병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3개월 동안 인턴으로 생활하면서 앨리스병원의 모든 과를 체험한다는 모양이었다.
“교수님은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특히 지금 방문해야 하는 응급의학과 차 교수님한테 말꼬투리 잡히고 싶지 않으면, 그냥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네, 네….” “그리고.”
“…네?”
그러다 휙 돌아서는 임도희.
그녀는 며칠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것 같은 얼굴로 쏘아붙였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봐주는 건데, 앞으로 화장할 시간 같은 거는 없을 거야. 교수님들 중에는 화장하는 거 싫어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니까 주의해.” “…네, 알겠습니다.”
보습에 도움이 되는 기초 화장품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은아는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치근덕거리는 놈들이 있으면 될 수 있으면 알아서 직접 해결하고 힘들다 싶으면 나한테라도 말해줘. 근데 나는 날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그럴게요!”
“대답 하나는 좋네. 아…, 젠장….”
걸어가면서 주의사항을 말해주던 임도희가 욕지기를 입에 담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안경을 고쳐 올린 그녀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보고는 재빨리 입술을 움직였다.
“야, 고개 숙여, 고개.” “네? 고개요?” “얼른!”
“네!”
레지던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교수에게 고개를 숙이는 임도희.
은아도 그녀를 따라서 인사했다.
그제야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 챈 교수가 턱살이 있는 얼굴을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찢어진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서는 은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래, 자네가 레귤러스 클랜에서 내정된 사람이라면서?”
“네! 고등아카데미 3학년 노은아라고 합니다!”
“호오….”
지목당한 은아가 고개를 올렸다.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확인한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은아…, 노은아…, 은아라. 그래, 앞으로 3개월 동안 잘 해보자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와서 언제든지 말해도 되고. 괜히 혼자서 끌어안으려 하지 말았으면 해.”
“네! 감사합니다!”
“목소리도 아주 좋고…. 내 딸처럼 생겨서 마음이 더 가는 구만.”
은아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교수는 담배냄새가 배어 있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윽고 교수는 따라오던 사람들을 데리고 그녀를 지나쳤다.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면서 사라졌다.
한편,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던 임도희는 떡이 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흉부외과 김 교수님야. 에이씨, 하필이면 저 자식한테 걸리냐.” “왜요, 언니?”
“나중에 말해줄게. 말해두겠는데 저쪽하고는 연관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일단 이따 시간 남는 대로, 화장실로 뛰어가서 화장부터 지워.”
“네, 그럴게요.”
은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날, 앨리스병원 관계자 사이에서 아카데미에서 파견된 노은아에 대한 소문이 두 가지 나돌았다.
하나는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소문.
다른 하나는 그녀의 마법 실력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소문이었다.
☆
한편, 은하는 은아의 인턴생활이 굉장히 걱정되었다.
은아라면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의 첫 사회생활과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플레이어로서의 노은아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병원 인턴으로서의 노은아는 그녀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터였다.
그래도 인턴을 하는 곳이 앨리스병원이라 다행이기는 한데….
누나도 힘들지만 할 만하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걱정인 것은 매 한가지.
결국 은하는 며칠 전부터 토라진 하양을 달래기 위해 기를 썼다.
그리고 겨우겨우 그녀를 달랜 그는 은근슬쩍 운을 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누나가 이번에 앨리스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데 말이야….”
“응, 나도 그 얘기 들었어. 혹시나 언니가 잘하고 있을지 걱정이 돼서, 내가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려놓기는 했는데….”
“역시 하양이 너밖에 없어!”
“치, 그럼 나한테 잘해야지. 맨날 날 놀리기만 하고….”
“앞으로 깍듯하게 모실게.”
“그래서 할아버지가 병원에 전화를 한
다고 했어.”
“나중에 너희 할아버지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은하는 어떻게든 화제를 이어갔다.
앨리스그룹의 회장 민준식이 미리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는 기뻤지만, 전화 한 통으로 은아가 좋은 대우를 받을지 알 수 없었다.
괜히 낙하산이라는 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기에 노림수는 다음에 꺼내는 말에 있었다.
“주말에 누나가 어떻게 일을 하나 보러 가려고 하는데, 하양이 너도 같이 갈래?” “병원에? 음…, 그래! 좋아!”
그냥 병원에 앨리스그룹의 직계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은아와 하양의 친분을 보여주면서.
그냥 낙하산이 아니라 아주 튼튼한 낙하산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겸사겸사 병원 일이 바빠서 주말에 보지도 못하는 은아를 보기도 하고.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역시 인생은 인맥이야.
은하는 하양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속으로 영악한 미소를 지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