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2
겨울방학을 맞이한 은하의 일과는 집에서 늘어지는 일이었다. 소파에 누워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동생 은애를 돌봐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아부~”
“오빠가 입술 내밀고 다니면 못생겨진다고 했지?”
은애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했다. 그때마다 은하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혼내는 데에도 은애는 뭐가 그리 좋은지 달라붙었다.
“엄마, 누나는?”
“누나는 친구들이랑 놀러갔지.”
그러던 중 은하는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은아를 찾았다. 은애가 달라붙으면 은아가 어디에선가 나타나 같이 달라붙고는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은하도 친구들이랑 놀러가지 그래?”
“아부~!”
“…은애가 가지 말라니까 집에 있을래.”
“엄마가 민지 데려올까?”
“…엄마,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은애도 가지 말라고 보채고 있지 않은가. 아직 어리면서도 분위기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은애는 그가 어디 가지 못하도록 옷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그게 또 귀여워서 은하는 은애를 안아 올렸다. 유치원 아이들과 다르게 은애가 얼마나 삶의 활력소가 되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하양이가 놀러오라고 했었는데.
학예회를 마무리했을 때였다. 하양의 아버지는 고블린으로부터 하양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러 왔다. 방학이 되면 친구들이랑 카페로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그때 은하는 하양이 아버지와 둘이 산다는 걸 알았다.
그 동안 그는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신연령이 32살이나 더 많은 그는 아이들을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라도 은연중에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는 무관심했다.
이제부터는…,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야지.
관심을 가진다는 말도 잘못되었으리라. 대등한 입장에서 아이들을 마주해야 한다.
그에게 그 아이들이 없는 미래는 이제 상상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조만간에 놀러가기는 해야지.”
여하튼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초대한 것이다.
은하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가보기로 했다.
보기로 했는데.
“대~장~! 놀자~!”
“얼른 나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거 다 알아.”
“은하야~ 놀~자….”
은하는 점심이 되었을 때 집으로 들이닥친 아이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안 놀아.”
내가 언제 논다고는 했어도 오늘 논다고는 하지 않았단 말이지.
정신을 차린 그가 휙 하고 몸을 돌리려 했건만,
“어머. 어서와, 밖에 춥지? 코코아 마실래?”
“네! 저는 코코아 마실래요!”
“아주머니, 저는 우유면 돼요.”
“…고, 고맙습니다.”
“…알았어. 간다, 가.”
어머니가 아이들을 들이려 하니 백기를 들 수밖에. 자고로 본진에 적을 들이는 장수는 없는 법이었다.
“우~하~! 우하!”
“은애야. 오빠 나갔다 올게.”
은하는 엉엉 우는 은애를 떼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여동생이랑 헤어지는 게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하아. 너희가 웬일이야.”
“헤헤, 대장이랑 놀려고 왔지.”
“”맞아!””
은혁이 대장이라 부르니 그를 따르던 마방진과 연성진도 은하를 대장처럼 여기며 따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피식거리니 은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저번에 하양이네 아빠가 놀러오라고 했잖아. 오늘 놀러가려고 불렀지.”
상황을 설명해준 사람은 민지였다. 날씨가 추운지 코끝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주지. 이거 민폐란 거 몰라? 안 되겠다. 넌 오늘부터 민폐지야. 인정?”
“…하나도 재미없거든. 하양아, 인정?”
“응? 으응? 응, 인정?”
가는 길에 벌이는 아무 말 대잔치였다. 아직도 두 사람의 말다툼에 익숙해지지 않은 하양은 리본을 이리저리 쫑긋거리며 답했다.
“응, 인정?”
“”어, 인정~””
반대로 은혁과 방진, 성진은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워들은 그들은 뒤따라오면서 저희들끼리 놀고 있었다.
하양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 해피니스는 성북동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숲 속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카페는 근처 카페에 비교해보면 굉장히 작았다.
가게 문을 여는 순간 커피콩을 볶는 냄새가 아이들을 반겼다.
카페 내부는 좁으면서도 천정이 높은 구조. 인테리어 역시 숲 속 오두막을 떠올리게 했다.
“안녕.”
하양의 아버지는 숲 속 분위기에 어울리는 앞치마를 걸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민지가 앞치마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곰을 보고 눈을 빛냈을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매너. 아이들은 은하와 민지를 선두로 고개를 숙였다.
“얘들아 안녕. 은하도 안녕. 앞으로도 하양이랑 친하게 지내주렴.”
근데 어라?
은하는 안경을 고쳐 쓰는 하양의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낯이 익었다.
하지만 기억을 뒤져보아도 하양의 아버지에 대한 단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들은 빛이 환히 들어오는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배고프지? 아저씨가 맛있는 점심 만들어줄게. 마시고 싶은 음료는 있니?”
“나! 나! 나! 저는 초코가 먹고 싶어요!”
“”저는 망고주스요!!””
“아저씨, 저는 요거트 마시고 싶어요.”
“아빠, 나도 요거트.”
“응, 그래. 그리고 은하는?”
“…네?”
생각에 잠겨 있던 은하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음료. 아저씨가 뭐 마시고 싶은지 물으시잖아.”
“아, 미안. 저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으로요.”
“…응?”
침묵이 찾아왔다.
은하는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은 이유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고는 황급히 메뉴를 수정했다.
“바나나주스요! 저는 바나나주스면 돼요.”
“그래. 에스프레소는 어른이 되면 마시자. 근데 아저씨도 더블샷은 못 먹어.”
“나보고 드라마 좀 그만보라고 했으면서. 얼마나 드라마를 봤으면 그런 어려운 말이 튀어나오니?”
“역시 대장이야! 나는 마법 주문인 줄 알았다니까!”
“나,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가 만들어줄게. …그때까지 연습할 테니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으로 포커페이스를 잃은 은하는 귓가가 새빨개져 있었다.
“저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으로요~”
“그만해, 제발.”
민지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하양의 아버지가 점심을 가져올 때까지 민지는 아이들과 은하의 대사를 따라했다.
“에스프레소 더블샷으로요.”
하양까지 은하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는지 따라하고 있었다. 그것도 눈썹을 모으는 시늉까지 똑같이.
“잠깐만. 하양아 한 번만 더.”
…제발.
점심을 가져다준 하양의 아버지가 눈을 빛냈다. 주머니를 뒤적거린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미간에 눈썹을 모은 하양을 촬영했다.
“얘들아, 김치~!”
“””김치~!”””
“…김치….”
이어진 단체촬영. 사진에는 은하가 쥐고 있는 포크가 부들부들 거리는 것까지 담겨 있었다.
“우와! 이거 맛있다!”
“이게 베이컨이야?”
방진과 성진은 하양의 아버지가 가져온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입가에 소스가 묻는지도 모르고 손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반면에 민지와 하양은 얌전히 나이프를 놀리고 있었다. 하양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는지 팬케이크를 자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장, 이 계란 요리 엄청 맛있어.”
“계란요리가 아니라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밥 먹을 때는 말 걸지 마.”
“오케이.”
입에 음식이 있을 때에는 입을 열지 말라는 말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은혁이었다.
“우와, 이거 짱 맛있다!”
망고스무디를 마시던 방진이 화제를 유도했다. 옆에서 음료를 마시던 성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제 알았니? 하양이네 아빠가 요리를 얼마나 잘하시는데.”
“근데 왜 네가 생색을 내는 거야?”
“하양이는 내 친구니까.”
“알았어, 먹보야.”
“내가 먹보라고 그러지 말랬지?”
“알았어 먹민지.”
“먹고자 진~화~! 잠만보~!”
“최은혁 너~!”
“아하하….”
아이들이 모이면 화제가 이리저리 튀기 일쑤였다. 이래서 은하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소파에 드러눕고는 했던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수다를 떨어서 즐거웠다. 특히 은혁이 장단을 맞춰 치고 들어오니 절로 엄지손가락이 올라갔다.
“그래도 이건 인정. 뭔가 강해지는 기분이야.”
“뭐, 그건 그래.”
아이스쵸코를 마신 은혁이 화제를 돌렸다. 언성을 높이던 민지도 굳이 화제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얼마나 맛있으면 그래?
브런치도 입에 맞았다. 요리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아이들이 이리도 음료를 칭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셔보기로 했다.
바나나스무디를 마신 은하는,
“…헐.”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지? 지금 내가 뭘 마신 거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은하는 다시 바나나스무디를 음미하기 위해, 아니 체내 마나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음료를 마셨다.
…미친.
마나가 차올랐다.
체내 마나를 다루는 센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어려지기는 했어도 그 감은 어디를 가지 않았다.
그의 센서는 미묘하게 변화한 체내 마나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미친, 미친, 미친. 대박, 대박, 대박.
확실했다. 바나나스무디가 마나를 회복해주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음료는 포션이라는 이름의 바나나스무디였다.
“말도 안 돼.”
“응? 맛없어?”
“아니. 진짜 맛있어.”
눈치를 보던 하양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하는 아직도 바나나스무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포션. 그것은 체내 마나를 회복하도록 돕는 약물.
플레이어들은 모두 포션을 소지하고 다녔다. 돈이 없더라도 몬스터를 토벌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포션을 챙겨갔다.
마나를 다루는 플레이어에게 포션이란 목숨과도 같았으니까.
문제는 초기에 제조된 포션이라 불리던 약물은 말 그대로 체내 마나를 회복하도록 돕는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대기 중에 녹아 있는 마나를 빨리 흡수하도록 보조해주는 약물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초기의 포션은 모두 주사기에 들어 있는 약물로, 살이 두터운 허벅지 부위에 바늘을 찌르는 물건이었다.
가격도 상당했다. 특정한 식물로 제조되는 터라 품질이 좋지 않은 포션이라도 최소 5만원을 주고 사야 했다.
“하양아. 너희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돼?”
그러던 어느 날, 포션 시장에 혁명이 일어났다.
은하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새로이 제조된 포션은 마나를 회복하는 속도를 보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체내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역할도 했다.
주사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새로운 포션은 가루약으로도, 알약으로도 그리고 마시는 음료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아빠는 성은 정이고, 이름은 석 자 훈 자야.”
“대~박. 우리 꼭 친하게 지내자!”
“응? 응응?”
의아해하는 얼굴로 리본을 쫑긋 거리는 하양은 알 바가 아니었다.
은하는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다.
정석훈.
은하가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포션시장의 혁명을 불러온 사람이었으니까.
정석훈의 기프트는 재료에 함유된 마나를 활성화시키는 이었다. 그는 을 통해 마나가 함유된 재료를 엄선하고, 엄선된 재료로부터 마나를 추출해 포션이라는 이름의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자신의 요리로부터 포션을 개발한 그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구하게 된다. 그가 직접 제조한 포션은 프리미엄이 붙어 최상급으로 취급받았고, 실제로 엘릭서라는 이름이 붙는 포션은 회생이 불가능한 플레이어를 살리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왜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찾았는데!
정석훈의 수제 포션 중에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이란 포션도 있었다. 에스프레소 더블샷은 마나 회복이 가장 좋은 포션, 아니 커피였다.
그런데 정석훈은 딸이 없다고 들었는데.
은하는 정석훈이 포션 시장에 나타나는 계기를 떠올렸다. 그러다 하양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위화감을 깨달았다.
“아.”
퍼즐이 맞춰졌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바나나스무디 맛있네.”
“응! 아빠가 만들었으니까.”
정석훈. 그는 몬스터로부터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정석훈이 집에서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몬스터는 마치 그때를 노린 것처럼 집에 숨어들었고, 집 안에 있던 그의 아내를 죽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피바다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딸만이 있었다고 한다.
어째서 딸만이 살아있었는지는 미스터리로 여겨졌다. 몬스터가 허기를 충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모종의 일로 몬스터가 자리를 피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이제야 딸만이 살아있었다는 미스터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몬스터는 체내 마나가 풍부한 하양을 먹기 위해 집에 숨어들었고, 아내를 죽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하양이 무의식적으로 흘린 마나에 소멸했거나 도망쳤을 것이다.
여하튼 아내를 잃은 정석훈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뿐인 딸 정하양. 그는 아내의 몫까지 딸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꿈도 희망도 없는 법.
정석훈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몬스터로부터 아내를 잃었던 것과 같이 딸마저 잃게 된다.
“고블린.”
그것은 몇 달 전, 유치원을 습격한 고블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고블린의 습격사건에 대해서 강의했던 이유는 정석훈이 포션 시장에 뛰어드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귀 전, 하양은 고블린에 의해 사망했으리라.
은하는 막대한 마나를 지닌 하양이 미래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정석훈의 딸을 구하게 된 셈이로군.
몬스터로부터 아내도 딸도 잃은 정석훈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몬스터에 대한 증오였다. 자신이 몬스터를 멸하는 플레이어가 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우연한 일을 계기로 이란 기프트의 소지자였음이 밝혀지면서 포션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재계서열 8위에 해당하는 앨리스 그룹에서는 정석훈의 사업에 투자를 제의했다.
그의 능력과 재력이 합쳐지니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그는 시장에 뛰어든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포션 시장을 휘어잡았고, 앨리스 그룹은 포션 시장의 절대왕좌로 등극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앨리스 그룹은 은하가 죽기 전에는 대한민국 재계서열 3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룹의 회장 자리는 앨리스 그룹 회장의 차녀와 재혼한 정석훈이 이어받았다.
“와….”
은하는 조금 전부터 바닥을 드러낸 바나나스무디를 쭉쭉 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양이 넌 앞으로 제일 친한 친구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미래는 하양이 죽지 않는 미래로 바뀌었다. 아마도 정석훈이 앨리스 그룹의 회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정석훈이 포션 시장에 뛰어드는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경영자의 소양
을 가지고 있었고, 주변에서 그의 능력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은하는 미래에 재벌이 되어 있을 하양을 생각하며 친해지기로 했다.
속물이라고 하지 마라. 원래 사람은 그런 거니까.
나 원래 이기적인 놈이야.
회귀하기 전부터 양심을 버린 은하였다.
그리고 정석훈의 포션이 어떤 포션인데!
정석훈이 포션시장에 뛰어들면서 세간에 이란 기프트가 알려졌다. 이익에 민감한 제약기업에서는 을 지닌 사람들을 고용해 포션을 만들게 했다.
하지만 정석훈의 포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정석훈은 앨리스 그룹의 힘을 빌려 다른 기업의 포션 제조자들을 모조리 포섭해버렸다. 포션시장은 결국 정석훈의 독점 아닌 독점으로 지배된 것이다.
이윽고 정석훈의 이름에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의 이름이 날이 갈수록 높아질수록 그의 포션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은하도 처음에는 막대한 돈을 들이면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구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조되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사야만 했다. 당연히 효능은 떨어졌다.
그러니 은하는 하양을 통해 정석훈과 친분을 다지기로 했다. 미래에 프리미엄이 붙는 포션을 얻기 위해.
빌붙을 생각은 없었다. 정당히 값을 주고 구하리라.
내가 내 돈 주고 사겠다는데 뭐 어쩌라고!
“하양아.”
“응?”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누가 너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말해. 내가 가만 안 둘 테니까.”
“…응, 고마워.”
빨대를 입에 문 채로 얼굴을 붉히는 하양.
은하는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가장 맑고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생은 인맥이지 암.
친구 하나 잘 뒀다.
그렇게 은하는 얼마 남지 않은 초등학교 생활도 뒷전으로 밀었다.
오로지 포션을 생각하며.
─어느덧 선력 3년.
노은하, 초등학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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