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24
환상이란 거짓에 불과하다.
따라서 환상마법의 진수는 거짓이 진실이게끔 믿게 만드는 것에 있다.
회귀 전, 제2기 십이좌 도완준이 대담에서 밝힌 말이다.
당시에 제2차 의정부 탈환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레인저가 꺼냈던 말은 환상마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말이었다.
“…결국 믿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거잖아?”
그 대담을 기억하고 있던 은하는 환상을 다루는 악마를 마주하고도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
끌끌, 고작 ㄴ 까짓 ㄱ 날 상ㄷ로 뭘 ㅎ 수 있ㅇ 것 ㄱ으냐.
제5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군상마(群像魔).
고위계에 속하는 악마는 띄엄띄엄 인간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힘없이 푹푹 빠지는 어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기운이 빠지게 만들었다.
“죽기 싫어서 도망이나 쳤으면서 이제 와서 큰 소리는….”
은하는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홀스터에서 자동권총을 꺼냈다.
시리우스 디바이스에서 개발했다는 자동권총 S-K5를 장전한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의 행색이 꾀죄죄했기에.
늑대와 같이 생긴 두상을 떠받치는 이족보행의 체구는 여기저기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었다.
그 피가 누구의 피인 것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녀석은 말하는 것과 다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숨을 격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동안 플레이어들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들을 죽이고 왔든 도망쳐왔든, 그런데도 허세를 부리다니.
과연 거짓을 진실로 속이려 하는 악마다운 모습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ㄹ도 너는 약ㅎ다.
허세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조금 전과 다르게 욱한 것 같은 어조가 숲속에 울렸다.
녀석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서는, 보석이 박힌 두 눈에 그를 담았다.
이 열기가 느ㄲ지지 않ㄴ냐.
ㄴ는 이ㅁ 나의 세계에 속ㅎ 있다.
네ㄱ 지옥과ㄷ 같은 불길 속ㅇ서 빠ㅈ나갈 수 있을 ㄱ 같ㅇ냐.
그 말이 숲속에 울려 퍼졌을 때, 은하는 문득 주변이 환히 밝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녀석의 말에서 환상을 연상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만 화염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러자 화염이라는 허상은 이윽고 놈의 마법에 의해 환상으로 변하고, 환상은 현실에 구현화되면서 진실이 되었다.
어느새 숲 전체가 타오르는 불길에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이ㄹ도 내가 약ㅎ 것 같으냐.
아ㄴ, 나ㄴ 강하다. 너보다.
“응, 지랄. 너보다 내가 더 강해.”
기세에 밀려서는 안 된다.
환상을 다루는 악마는 빈틈을 노려 의식을 공격하러 들어올 것이다.
자신이 여기서 반박하지 않는다면 놈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는 그것이 진실이게끔 환상을 구현하리라.
물론, 침묵 역시 마찬가지.
악마에게 있어 무언도 긍정이었다.
고위계는 고위계라는 건가.
감지망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놈한테 당한 모양이네.
쯧, 보나마나 방심하다 당했겠지.
상대가 힘이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제5위계 오버랭크란 위계는 어디를 가지 않았다.
녀석은 고위계였다.
대체적으로 몸집도 거대한 데다, 마법도 다룰 줄 아는 놈들은 홀로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는 손에 쥔 검은 가시나무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검게 물든 칼날은 마나를 머금더니 칼날 주위에 검은 기운을 방출했다.
천보
바일런트 베놈
이까짓 불길 따위.
이전 삶에서 강현철을 상대하느라 불길을 뚫는데 이골이 난 은하는 몸에 불꽃이 달라붙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불길은 환상이었다.
눈으로 구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것을 환상으로 받아들이면 어디까지나 이미지에 불과할 뿐.
다만 실재처럼 이글거리며 불타는 불길을 목격한 사람들의 무의식이 환상이라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지.
어, 어떻게…!
“이번에는 말 이상하게 안 하네?”
그러나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그는 불길이 무섭지 않았다.
이게 다 때문이었다.
미친 오징어가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기는 하네.
뜨겁든, 뜨겁지 않든.
이전 삶에서 를 상대하느라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데에는 이제 저항감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몸에 붙은 불꽃은 환상이 되어 나풀나풀 사라졌다.
그리고 당황한 녀석을 향해 달려간 그는 검신에 맺힌 기운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격이 빠르게 놈의 옆구리를 베어냈다.
크, 크ㅇㅇㅇㅇ…!
너, 너ㄴ너…!
옆구리를 부여잡은 녀석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금세 어둠에 동화된 녀석은 이윽고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지면이 흔들리고, 나무가 쓰러졌다.
숲을 불태우던 불길은 사라졌고,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놈이 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
바일런트 베놈.
패혈증을 일으키는 독은 놈에게도 통용되는 것이다.
“뭐야? 이것밖에 안 됐어? 실망이 장난이 아닌….”
통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아 있던 숨통을 끊으려 했던 은하는 뺨을 스치고 간 공격에 멈칫했다.
바람이 불었다.
정말 바람이ㄹ고 생각ㅎ느냐.
바람이 ㅇ리 날카로울 ㄱ 같ㅇ냐.
ㄴ는 이미 ㄴ 칼날 안에 들ㅇ와 있ㄱ늘.
은하는 고개를 들었다.
마치 별처럼.
밤하늘에 반짝이는 빛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별이 아니었다.
몇 개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공중에 늘어져 있는 칼날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너ㅇ 칼은 이리도 날카롭ㄱ나.
덕ㅂ에 잘 벼린 칼날을 ㅁ들 수가 있ㅇ으니.
“미친….”
녀석에게 독은 통용되지 않았다.
아니, 독은 통했다.
이제 보니까 녀석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패혈증에 의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사실은 살점이 아예 뜯겨나가 있었던 것이다.
네 ㄴ은 뭐ㅎ는 ㄴ이냐.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녀석이 조금 전보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하는 놈이 자세를 추스르기 전에 검은 가시나무를 휘둘렀다.
그러나 손에서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환영을 벤 것처럼.
검은 가시나무가 지나간 방향으로 녀석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처음ㅂ터 말ㅎ지 않았ㄴ냐.
너ㄴ 내 세계ㅇ 들어ㅇ 있ㄷ고.
ㄴ가 인지하는 것ㅇ, 느끼는 ㄱ이 모ㄷ 네 것ㅇ라 생각ㅎ느냐.
녀석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점은 감지망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인지능력과 감각을 다루는 악마가 그의 감지망에 교란을 준 것이다.
이래서는 감지망에 의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직감과 눈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 상황을 비웃듯.
눈에 보ㅇ는 ㄱ이 다ㄱ 아니다.
그ㄹ나 너는 눈ㅇ로 보는 것ㅂ에 못ㅎ는 구나.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불길 속에서 두 팔을 벌리며 나타난 악마.
그때, 밤하늘을 떠다니던 칼날이 그를 향해 우수수 떨어졌다.
어차피 환상이야.
은하는 녀석의 환상에 속지 말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를 악물고 뛰쳐나간 그는 그저 놈을 향해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환상에 불과했을 칼날 중 하나가 그의 팔뚝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어떤 칼은 그의 생각처럼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지만, 어떤 칼은 마치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상처를 주었다.
진ㅅ 속에 ㄱ짓을 숨ㄱ듯.
거ㅈ 속에 진ㅅ을 숨ㄱ니.
직감이 소리쳤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칼날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은하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칼날을 쳐냈다.
어라?
깡 하는 금속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줄 알았다.
그러나 칼날은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것이다.
반으로 부러진 칼은 환영이 풀리고 나뭇가지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은하는 녀석이 나뭇가지에 칼날의 환상을 덧씌워 공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교묘한 술수였다.
환상이 실재인 것처럼 믿게 하게끔 환상 속에 이런 실재를 집어넣고 있었다니.
이러니 환상이었어도 진짜 같았지.
은하는 방벽을 전개하여 떨어지는 칼날을 모두 떨쳐냈다.
칼날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악마를 향해서 검은 가시나무를 힘껏 휘둘렀다.
마나 크래셔
그대로 머리를 부서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놈은 조금 전에도 그랬듯이 검에 베이자마자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쿵
지면이 흔들렸다.
돌연, 지면이 쩌적 갈라지고 사이 틈새에서 뿌리와 같은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는, 거대한 뿌리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필시 이것도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놈은 아무것도 아닌 환상에 무언가를 섞어 자신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로 맞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반쯤 실재가 된 나무뿌리에 S-K5를 겨눴다.
리볼버 쏜
총구를 벗어난 탄환은 가시가 되어 환영을 꿰뚫었다.
사라지는 환영 너머로 놈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환영은 다시 형체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은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스티지안 아이
녀석이 환상을 조장한다면.
자신은 공포를 조장하겠다.
보이지 않는 걸 구현한다는 점에서 환상과 공포는 매 한가지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환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면 공포는 속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것.
은하는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더할 나위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
물론, 고위계에 속하는 몬스터가 그의 공포에 말려들 리 없었다.
녀석은 마나 저항을 하느라 잠시간 주춤한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찰나의 흐트러짐은 환상을 몰아내는데 일조했다.
이놈들이 언제부터 있던 거야?
재빨리 감지망을 전개한 그는 이내 주변에 몬스터들이 잠복해 있었음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몬스터였다는 것까지.
아무래도 몬스터들은 자신이 놈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틈에 은근슬쩍 거리를 좁히거나, 나무 사이에 숨어 존재를 위장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물며 조금 전에 지면에서 나온 나무뿌리도 나무로 위장하고 있던 몬스터들의 수작인 듯 싶었다.
네 ㄴ, 방금 나ㅎ테 무ㅇ을….
“당한 대로 갚아주려고 했는데 왜.”
한편, 악마가 손을 휘저었다.
손끝에 맺힌 전격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은하는 혀를 차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환상을 다루는 악마라지만 녀석이 마법을 다루지 못할 리가 없었다.
녀석을 중심으로 방출된 전격은 곧 하늘로 솟구치고, 가락으로 나뉘어 하늘에서 떨어졌다.
콰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지면이 불에 타오르고, 구덩이가 생겼다.
지면이 갈라지며 뿌리가 솟구치고, 공중에서 암반이 날아들며 사방에서 정신없는 공격이 들어왔다.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실재인지.
은하는 알 수 없었다.
다시금 감지망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뭐.
어디에서부터 환상인 것인지.
그것을 알 필요는 없었다.
어느새 지형이 조금 전에 있던 숲속과 완전히 달라져 있다 하더라도, 주변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악마와 몬스터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환상이든 실재든 노리는 것은 바로 자신일 테니까.
오만의 반격
인비져블 트래커
무엇이든 되받아쳐주겠다.
은하는 그러한 의지를 담아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티펙트는 강렬한 빛을 발하며, 환상을 몰아내고, 실재를 받아쳤다.
튕겨나간 전격은 아무 데나 떨어져 몬스터들을 불살라버렸다.
곳곳에서 탄 냄새가 감돌았고, 버젓이 살아남은 이들은 얼마 없었다.
이, 인간, 너어…!
“왜, 이 괴물아.”
연기가 걷힌 너머에서 다른 이들과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악마.
털이 바짝 타버린 녀석은 분노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피를 철철 흘려대던 옆구리는 녀석 자신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낙뢰를 받고 그렇게 됐는지 불에 지진 자국이 나 있었다.
“악마도 공포를 느끼려나.”
녀석은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르게 마나 저항력이 꽤나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놈에게 공포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인가.
자동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운 그는 무언가를 씨부렁대며 환상을 만드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죽음이 무ㅇ인지 알ㄱ 해주ㄱ다.
태어ㄴ 것을 후ㅎ하게 해ㅈ마.
ㅍ시 ㄴ는 이 지옥을 ㅂ게 된 걸 깊이 후ㅎ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귓등으로도 쳐듣지 않았다.
은하는 학생들을 죽이는데 사용한 아티펙트 의 효과가 끝났음을 깨닫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이게 끝이었구나.
의 아티펙트만 제작하느라 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네.
은하는 쩝 입맛을 다셨다.
줄리에타의 기프트를 견딜 수 있는 아티펙트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어, 이번에도 을 품은 아티펙트를 몇 개 만들지 못했다.
그마저 하나는 브루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모두 사용한 결과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과일맛 포션이라도 가져올걸.
버프라도 받을 수 있다면 편하게 저 악마와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버프형 포션이 없는 게 아쉬웠고, 자신을 지원해줄 서포터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뭐, 어때.”
은하는 몬스터의 마굴처럼 보이는 공간을 둘러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어차피 놈은 다 죽어가고 있었고, 자신은 지원을 받지 않고도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굳이 연연해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내 힘도 이게 끝이 아닌데.”
자신에게도 기프트가 있었다.
은하는 조금 전부터 심장 내부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는 기운에 몸을 맡겼다.
체내 마나는 기프트가 발동될 만큼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힘은 더는 억누르지 못할 정도 체외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기프트
이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