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26
폭풍이 몰아쳤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사망한 소식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졌다.
원주시청에 신고 접수가 들어오자, 귀가 좋은 기자들이 빠르게 기사를 전파했다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구조현장까지 들이닥친 기자들은 몸이 성치 않은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찍어냈다.
국민 여론이 흔들린 건 당연지사.
매스컴은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 피해상황을 중계하며 여론을 계속 흔들었다.
여론은 학생들의 죽음에 애도하고, 그들의 부모와 함께 슬퍼하는 한편, 나아가 이번 사태의 책임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지 규탄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자연재해였다.
학생들은 그저, 하필 운이 나쁘게 편재가 발생한 재해지점에 있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방향성이 없는, 터지기 일보직전에 이르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쏟아내기를 갈구했다.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선녀정부가 또 실수한 거지.
대체 정부가 하는 일이 뭐냐?
아카데미는 왜 그런 데를 골랐대?
난 죽은 애들이 불쌍하다.
근데 마나관리기구가 잘 좀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몬스터 웨이브를 감지하지 못하면,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
횡성군은 망한 도시니 그렇다 쳐. 근데 원주시청은 왜 사건이 터지고 즉각 지원을 가지 않은 거야? 거기 밀림이 얼마나 험하면 험하다고….
비난의 대상은 많았다.
비난의 대상으로 지목된 기관들은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분탕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번 일이 누군가의 음모니 아니니 하는 소문을 퍼뜨렸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모르는 일에 호기심이 많은 법이었고, 음모론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몇몇이 인터넷에서 제법 신빙성 있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가령, 사망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국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그룹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면서. 실종된 이들은 대다수 그들이었고, 몇몇 사체에서는 마치 몬스터에게 당한 게 아니라 사람에게 당한 듯한 흔적이 발견되었다며.
…그럴 리가 없어! 왜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그러는 거야!
아니야! 아직 살아있어! 좀 똑바로 찾아보란 말이야!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고작 15살밖에 안 된 아이가 그런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해봐! 당장 가서 찾아오란 말이야! 아아아악!
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 말했어? 뭐? 이 개자식들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닥치고…, 빨리 가서 책임자 내려오라 해!
너희들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너희 같은 새끼들한테 그런 소리나 들어야 하는 사람 아니야. 똑바로 말해! 그 주둥아리, 잘못 말했다간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원망과 호기심 그리고 슬픔.
원색적인 감정은 여론을 자극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수업을 중단하고,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광역시청마다 조그마한 분향소가 설치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사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모두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도착했다.
어느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화사한 꽃을 가득 채운 공간에서는 동물처럼 우는 것밖에 못했다.
그곳에서 언어로 완성되는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목 놓아 우는 소리만 나돌 뿐.
간헐적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갔다.
…많이도 왔네.
은하는 그곳에 있었다.
☆
조객록에 서명을 마친 뒤에 들어간 은하는 합동분향소를 둘러보았다.
실종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이 좌우, 정면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노란색, 하얀색으로 다채로운 꽃은 사진 주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사망한 교관 네 명의 사진은 모두 정면에서 최상단에 걸려 있었으며, 반대로 사망한 플레이어들의 사진은 최하단에 걸려 있었다.
한편, 학생들의 사진은 왼쪽에서 오른쪽 벽까지 반 별로 나뉜 채로 걸려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 다음에 오른손으로 꽃줄기를 잡으세요.”
“…네.”
은하는 입구에서 헌화에 사용되는 꽃 한 송이를 받았다.
하얀 꽃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그는 자신의 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진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 죽은 이들의 학부모였다.
상복을 입고 온 사람들은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하는 그들의 머리 위에 고정된 사진을 바라보았다.
우리 반 애들이 다른 반에 비해서 제일 많이 죽었다던데.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헌화를 하고 깊이 고개를 숙여서 절을 한 은하는 시계방향으로 돌며 다른 반의 사진을 살폈다.
쟤는 확실하게 죽었고….
이 반에 걔 사진이 없다는 것은 결국 죽지 않았다는 거네.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는 없었다.
그저 담담히 앞으로 자신이 죽일 이들을 차분히 정리할 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건웅이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왜 네가 죄를 지은 것처럼 사과를 하니.”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4반으로 향했을 때였다.
은하는 상복을 입은 학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KK그룹의 직계 김건웅을 발견했다.
그는 KK그룹 계열사의 학생들이 죽은 이유가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은하는 김건웅을 죽이기 위해 몰래 그의 뒤를 밟은 적이 있었다.
몬스터들이 밀려오던 상황 속에서 그는 학생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서 몬스터들을 막으러 뛰쳐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은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김건웅, 바로 그였건만.
만약 그가 목숨을 내놓았더라면, 그를 위해 죽었을 사람들은 아마도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은하는 김건웅이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이 약해지기를 바랐다.
그동안 김건웅은 심지가 굳셌기에 좀처럼 그를 다룰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정신을 개조할 수만 있다면 굳이 죽일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다.
“…안녕. 오랜만이다.” “그래, 안녕.”
그러던 은하는 고개를 올린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참을 바라보던 두 사람.
이내 김건웅이 그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우리 반에 헌화하러 온 거야?”
“맞아.” “우리 반에 네 친구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김건웅은 은하가 손에 쥐고 있던 꽃에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는 의아한 눈치였다.
한서현이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후 이따금 그에게 후원을 권유하러 온 김건웅이 그의 인관관계를 모를 리 없었다.
4반을 찾아온 것이 이상하리라.
그러나 은하는 그의 의문에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그래도 같은 아카데미 사람인데 헌화 정도는 해야지.” “아…, 그래, 그렇구나. 그랬지.”
김건웅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가 말한 대로,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이 분향소에 참석할 수 있게 모든 수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되지 않은 이들도 죽은 이들에게 추모를 하러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소식을 들은 국민들 중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분향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은하 너랑 네 친구들이 부러워.” “뭐가?”
“모두 강하잖아. 그게 참 부러워. 너희가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몰라.”
김건웅이 돌연 그런 말을 꺼냈다.
그는 착잡한 시선으로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며 자책했다.
자괴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이전 삶에서는 항상 승승장구했던 얼굴은 이번 삶에서는 그늘에 가려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은하는 그가 이대로 기가 꺾이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태연하게 대꾸했다.
“우리가 강한 게 아니야.” “…….”
“너희가 약했던 거지.”
김건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몇 번이고 은하의 말을 곱씹는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그렇게 있어.
나는 네가 그렇게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너희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거냐?”
이내 자존심을 죽이고 침묵을 깨는 김건웅.
고개를 숙인 그는 제발 알려달라며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던 대로 훈련만 했을 뿐이니까.”
그러나 은하는 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대로 김건웅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기를 원했다.
그에게 원한은 없었지만, 미래에 그는 선녀정부에게 위험한 존재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만 다른 데로 갈게.” “…그래. 와줘서 고마워.” “너무 네 탓으로 생각하지 말고. 네 잘못 아니니까.”
“그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도 막지 못했을 거야. 그래도 어쩌면 나였다면─.”
─친구들을 사지로 내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은하는 그 말을 삼켰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김건웅은 이미 자신이 다음에 뱉을 말이 무엇일지 문맥상 유추했을 것이다.
곁눈질로 그를 슬쩍 쳐다본 은하는 몸을 돌렸다.
아아아아악! 내 아들이 왜 죽어!
죽기는 누가 죽었다고!
안 돼! 가지 마, 제발….
은하는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의 원성이 들렸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 속에 묻혔지만 그 소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한 듯싶었다.
…이번 달 안으로 시작되겠지.
그랬기에 그들은 모르리라.
누군가를 원망하던 이들은 언젠가 누군가의 원망의 대상이 된다는 걸.
그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이 가슴에 평생 남을지 모르나.
여론에 휩쓸린 사람들의 슬픔에는 기한이 있는 법이다.
그들이 계속해 슬픔을 강요한다면 언젠가 여론은 슬픔에 염증이 나서 등을 돌리고 마리라.
지금은 단지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나, 이 죽음은 언젠가 여러 의미로 덧칠될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따라서 죽은 자의 죽음은 온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것이니.
그들의 죽음이 의미를 지니는 순간 염증이 난 여론은 폭발하고 찢어져, 그러나 모두 득달같이 의미를 붙인 자들에게 달려들 것이다.
자신이 그들의 자식을 죽여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면.
다음에는 여론이 그들의 가슴에다 못을 박으리라.
그리고─.
─임가을이 움직일 거야.
여론이 반전되는 순간.
선녀 임가을은 조정자를 자처하며 그들의 가슴에 세 번째 못을 박을 것이니.
그제야 그들은 이성을 찾으리라.
그때가 되면 게임은 이미 끝났을 테지만.
“은하 너도 왔어?”
“그래. 오늘은 너 혼자야?”
“같이 온 애들도 친구들 조문하러 갔거든. 나야 일찌감치 끝낸 뒤에 쉬고 있었지.”
안에 있으려니 너무 시끄러웠다.
은하는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옥상 문을 열고 나가자, 유도준이 난간에 등을 기대 있던 중에 그를 반겼다.
목이 답답했던 것일까.
목덜미를 풀어헤친 그는 몸을 돌려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자진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꽤나 몰려 있었다.
“야, 은하야.” “왜?” “내가 전부터 생각했는데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단 말이야.”
유도준은 팔에 턱을 괴더니 푸념을 늘어놓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의 옆에 선 은하는 그를 따라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여기 온 사람들은 다 울고 있는데 나는 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딱 그런 생각이 나더라.” “어떤 생각?”
“세상이 이 모양인데 장례식장도 나름 벌이가 쏠쏠하지는 않을까…, 이참에 영원그룹 계열사 중에 이런 일에 특화된 계열사를 하나 세워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돈 많이 벌겠네.”
“아무래도 너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은 모양이구만?”
“표정관리 해라.”
은하는 유도준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괜히 이런 장소에서 감정을 보여서 뒤탈이 생기게 할 수는 없었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카메라로 자신들을 찍고 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더군다나 옥상에는 다른 사람들도 올라와 있었다.
그들이 들을 수도 있었다.
“아, 참. 이거 돌려줄게.”
“그거 계속 가지고 있어. 어차피 너 주려고 만든 거니까.” “그래? 그럼 사양 않고 가질게.”
유도준이 품속에서 체인에 꿰인 반지를 내밀었다.
은하가 종평
전에 건넸던 아티펙트였다.
다행히 유도준은 아티펙트를 쓸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은하는 주저하지 않고 반지를 다시 품에 넣는 그를 마주했다.
유도준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했다.
“왜 이걸 나한테 줬던 건지 이유는 묻지 않을게. 궁금하기는 하더라도 이제 와서 원인을 따지는 것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할 테니까.”
아마 유도준은 눈치 챘으리라.
이번 일에 은하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굳이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유도준은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영원카드가 흔들리고 있어. 영원카드만이 아니야. 영원그룹 내에서 몇몇 계열사가 흔들리고 있어.”
유도준은 왕좌를 노리고 있다.
그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은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덤덤히 자신이 구상하는 바를 늘어놓았다.
“큰 형 쪽 세력이 약화된 시기에 내가 슬퍼할 틈이 어디에 있겠어? 슬퍼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해주고, 나는 칼을 들어야지.”
“내가 도와줄 건 없고?” “아직은 없을 것 같아. 나 혼자서 할 수 있어.”
유도준이 확신에 차서 답했다.
여론의 폭풍이 강타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폭풍이 그친 이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풍은 언젠가 지나가는 법이다.
어차피 폭풍에 모든 게 휩쓸릴걸, 그것을 가장해서 위험이 되는 것을 폭풍에 날려 보내면 어떤가.
폭풍이 온다고 움츠리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유도준처럼 움직여야 했다.
“근데 시리우스 쪽에서는 아무래도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모양이더라? 한서연 그 누나 짓인 것 같은데…,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냐?” “원래 그 누나가 성미가 급하잖아. 어차피 시리우스그룹은 잔가지만 칠 생각일 거야.”
폭풍 속에서 움직이는 자가 한 명 또 있었다.
유도준의 이야기에 어깨를 으쓱인 은하는 한서연을 뒤로하며 화제를 바꿨다.
“그것보다 저번에 내가 말했던…, 명왕클랜의 주식은 구하고 있어?”
“그거 구하기가 장난이 아니더라. 시중에 나온 주식이 얼마 없어서, 그렇게 많이 구하지는 못했어. 이제 싹싹 긁어모아서 시장에 풀리는 게 없는 것 같더라.” “그래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어. 그리고 전에 말했던 것처럼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내가 그걸 왜 파냐? 칼이 있어야 그룹을 관리할 수 있는데 말이야.” “아무튼 잘할 거라 믿을게.”
명왕클랜이 클랜전에서 패배하는 미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은하는 그때를 떠올리고는 이윽고 선녀 임가을을 떠올렸다.
임가을이 잘해주면 좋겠는데….
이만큼 밥상을 깔아줬다.
줘도 못 먹지 않기만을 빌었다.
☆
청와대.
임가을은 집무실에서 다리를 꼬며 합동분향소에 대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펜대만 굴리고 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머, 안 됐네.”
화면에는 통곡하는 이들의 얼굴이 유독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내용과 다르게 기쁨에 차 있었다.
목소리는 슬픔에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한없이 냉정하게 화면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처음 원주시 마나관리국의 보고를 받았을 때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꼰 다리를 까닥거렸다.
구두가 답답했는지 구두를 벗어서, 맨발로 까닥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큰일은 나만 난 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국가안보실에서 보내온 연락.
메시지를 읽은 그녀는 입가를 환히 끌어올렸다.
그녀의 생각대로 각 그룹의 활동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과감하게 찌르는 다른 그룹과 기업들.
그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과 기업이 알아서 세력을 깎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는 나중에 주의를 주면 되는 일이고….”
자신은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서로를 먹기 위해 싸우다 지친 그룹들에게 경고를 해주면 된다.
그때는 저희들도 잘못한 게 있으니 알아서 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틈을 노려 최근 대기업에서 반대를 하는 규제입법을 진행할 것이다.
이것 역시 자신이 추진하지 않아도 자신과 뜻이 맞는 국회 사람들이 해줄 테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손해 볼 건 없겠네.”
메시지를 읽어보니 인터넷에서는 이번 사태가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자연재해이므로 책임소지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자식의 죽음에 그만 이성을 잃고 누군가를 욕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고.
한편, 장례식장에서 갑질을 부리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그녀는 앞으로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선녀정부에 손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니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네?
책임이 불분명한 자연재해.
그러나 선녀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여론에 답을 주어야 했다.
마냥 선녀정부의 무력함을 호소할 수 없으니 어떤 부분에서는 책임을 지어줘야만 했다.
“─그럼 누구 옷을 벗기면 되려나.”
그녀는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머릿속에 저장된 블랙리스트를 떠올렸다.
여론이 단두대에 오를 이를 원하니 정부는 거기에 호응해주는 수밖에.
단, 단두대에 오르는 이는 자신이 결정하리라.
임가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거운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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