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28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좀처럼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 한서연은 자신이 살이 많은 것처럼 보였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저렇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화면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얼굴이 예쁘게 나오도록 각도까지 계산하며.
[…너희가 행복하기를 빌게.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카메라를 향해 영상편지를 보내는 자신.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무덤덤하게 그것을 시청하고 있었다.
오글거림은 없었다.
죄책감은 처음부터 없었고.
이미 며칠 전에 방영됐기 때문인지 감흥은 이제 덜했다.
[─다음 뉴스입니다.]화면이 바뀌었다.
앵커는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 모여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자식을 잃어버린 중등아카데미의 학부모들, 그들의 슬픔에 동조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전에 광화문 광장에 가득 모여 있던 이들의 텐트는 이제 화면에 듬성듬성 나올 뿐이었다.
“…징하네.”
한참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한서연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을 두 손에 쥐고는 입을 열었다.
징하다.
그것은 그녀의 생각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한 달이란 시간은 학부모들에 대한 동정여론을 뒤집어놓는데 충분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텐데…. 저러다가 거리로 나앉을 게 뻔한데, 그런데도 물러설 수 없다는 건가?”
그녀는 최근 한 달 동안 있던 일을 떠올렸다.
처음, 여론은 학부모들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자식의 죽음에는 문제가 있었다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학부모들은 그들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시위를 벌였다.
매스컴은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보여주었고.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를 원했으며, 타인의 죽음에 대한 관심을 잊고, 마지막에는 결국 반복되는 상황에 짜증을 토로했다.
매스컴이 매일 몇 번이고 내보내던 기사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더군다나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다수가 소위 잘 사는 사람들이란 소문이 불거지기까지 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녀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던 이유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매스컴에서 온갖 제보영상이 빗발치기도 했고.
[…오늘도 갑질 사건이 제보되었습니다. YH제당의 사장….]정부의 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누군가는 여론이 반전되는 순간에 재계그룹의 부패와 비리, 갑질 등을 세간에 퍼뜨렸다.
사람들은 자식의 죽음에 오열하던 어머니가 백화점에서는 남의 자식을 무릎 꿇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분노했다.
사장의 말에 따라야만 하는 직원은 회사 연수생활의 일환으로 진검으로 산 닭을 잡아야 했으며, 어떤 이는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구타를 당했다.
어느 기업의 임원은 유흥업소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다 현장에서 체포되는 일도 있었으며, 죽은 이와 혈연관계에 있던 사람이 클럽에서 마약을 복용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잔뜩 있었다.
더군다나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이 낮에는 단식투쟁을 벌이다 밤에는 이성을 텐트로 불러들여 음주가무를 벌인 일이 드러나기도 했다.
원래부터 재벌에 대해 부정적이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들을 심판하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선녀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재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처음부터 관리를 잘하지, 잘하지나 못하면 자숙이라도 하고 있던가. 어휴….”
아무것도 모르면 폭풍 속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을.
한서연은 아는 사람의 갑질행위를 화면으로 보고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선녀정부가 단독으로 해낸 일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학생의 죽음이 이득이 된 사람들과의 합작이라 할 수 있었다.
머리가 좋은 이들은 폭풍을 이용해 그동안 남들에게 보이기 꺼려하던 부분을 날려 보냈다.
누군가는 자신의 부패를 떠넘겼고, 누군가는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자 전부터 위협이 되던 이들을 죽였다.
그것은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 기회를 이용해 할아버지의 수족이 되어준 사람들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그룹과 다르게 재빨리 언론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내부가 흔들리지 않도록 정리했다.
은아 아버지가 건의했다고 했나.
시리우스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일을 사전에 막는데 일조한 사람은 바로 노은아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자신과 아버지도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시리우스그룹도 지금쯤 갑질 사건에 휘말렸을지도 몰랐다.
덕분에 시리우스그룹은 선녀정부로부터 몇 가지 규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회계감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도준 이것도 보기와 달리 대단하네.
전에 나한테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말했을 때도 느낀 거기는 하지만….
난 놈은 난 놈이란 말이야.
다시금 화면이 바뀌었다.
한서연은 영원그룹에 대한 뉴스와 유도준을 직결시켰다.
영원카드도 회계감사 대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 영원그룹에서 몇몇 계열사도 회계감사를 피해가지 못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선녀정부가 영원카드를 지목하고, 몇몇 계열사를 철저하게 수색하겠다 말한 이유는 갑질 사건 때문이었다.
매스컴에 처음으로 제보된 영상은 영원그룹 회장의 차남의 장남이 합동분향소에 참가한 당일 클럽에서 흥청망청 놀다 폭력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를 몰락시키려 하는 듯이 하루걸러 청년의 패악을 언론에 제보하였다.
그러다 영원그룹에서 갓 성인이 된 청년이 임원을 맡았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니.
낙하산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청년에게 씌워진 의심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청년이 사퇴를 표명했다고 해도, 여론은 청년과 영원그룹의 관계를 철저히 조사하라 소리치고 있었다.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뜻인가….”
이번 사건으로 영원그룹은 욕이란 욕은 오지게 먹었다.
그녀는 유도준의 소행이란 확신을 품고 있었다.
직계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자신도 영원그룹의 승계분쟁에 참전하겠다 의사표명을 했던 유도준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왜냐하면 영원그룹의 주가가 연일 하락을 기록하고 있던 가운데, 그때 유도준의 활약상이 매스컴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룹의 힘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가 몬스터들로부터 죽어나가던 이들을 지키려 했다는 미담은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다.
영원그룹은 두 명의 직계에 의해 주가가 내려가고 올라가는 현상을 며칠째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몰락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승계분쟁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시리우스는 어떻게 해야 하려나.
누구를 회장으로 밀어줘야 우리가 득을 볼 수 있지?
한서연은 영원그룹의 2대 회장으로 유력시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떠올렸다.
그녀는 그들 다음으로 그의 얼굴도 새로 추가하기로 했다.
그녀는 앞으로 유도준에게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유도준이 쟁쟁한 후계자들을 물리치고서 영원그룹의 2대 회장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선택받은 직계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나온 메시지를 읽었다.
“…이 오빠가 은근히 과감한 면이 있다니까?”
갤럭시그룹의 직계.
그녀보다 한 살이 많은 최정훈이 단톡방에 있는 직계들에게 통보한 것이다.
여름에 있을 모임은 취소하지 않고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단, 죽은 이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회의 전에 기도회를 갖자고.
그러니 그럴 듯한 기도회를 위해서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면서.
적당히 알아서 데려오라고.
“─재미있겠네.”
머지않아 폭풍이 지나가리라.
그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돼 있으리라.
그래서 최정훈은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국내에서 제일가는 그룹의 왕자는 늘 그렇듯 왕족의 품격을 보이며, 거만함을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하긴, 갤럭시면 그럴 만도 하지.
사전에 폭풍이 부는 것을 대비한 그룹은 시리우스그룹만이 아니었다.
재계 10위 안에 드는 그룹 중에는 갤럭시그룹을 비롯해 루미너스그룹, 앨리스그룹도 거센 폭풍에 휩쓸리지 않았다.
시리우스를 포함해 네 개의 그룹은 이번 사태에서 그나마 안전한 축에 속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밖에 이 일과는 하등 관련 없는 정재계의 사람들도.
그렇기에 자신의 부를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직계들은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기도회에 참석하리라.
“흠…, 그럼 나도 누구를 데려갈지 골라볼까?”
1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한서연은 여름에 있을 모임을 위해 나이 제한이 25세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훑기로 했다.
☆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많은 걸 바꾸었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갔다.
남을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친구의 죽음을 잊지 못하던 이들은 끝내 자퇴를 선택하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아카데미에 남은 학생들은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잊으려 했고, 그런 식으로 무력감을 떨쳐내려고 했다.
“…한 학기가 금방 지나갔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학기가 끝나 있었다.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은하는 순식간에 지나간 한 학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은하는 종평에서 일어났던 사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 학기에는 오로지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 이러다 늦겠네.
얼른 가야겠다.
그러던 그는 이내 멈췄던 발걸음을 떼었다.
현재 아카데미는 여론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국민들이 정재계의 갑질행위에 분노하고 있더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아카데미가 종평을 행하는 장소를 지정하는데 비리는 없었나, 정확한 절차를 따라서 진행됐는지 철저히 규명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에 선녀정부는 여론의 뜻에 따라 아카데미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적당히 쑤시고 넘어가겠지만.
아니면 아카데미에다 돈을 찔러준 사람들을 조지거나.
선녀정부는 현재 재벌그룹 죽이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그룹이라면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회계감사를 때려버리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선녀정부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뜯어내고 있었다.
은하는 신나게 칼춤을 추고 있을 임가을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여하튼 선녀정부가 아카데미를 조사하는 게 형식적인 일이기는 하나, 아카데미는 혹시라도 뒤탈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번 학기에 예정된 종강파티를 취소하기로 했다.
애초 학생들이 죽어나갔는데 파티를 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아카데미는 죽은 학생들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할 테니 학생들 모두가 행사에 참석하라는 공지를 남겼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시험이 끝나도 당장 집에 가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쨌든 정재계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
폭풍을 피해가지 못한 그룹은 하나도 없었다.
갤럭시도, 시리우스도 조금이나마 피해를 보았다.
앨리스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앨리스그룹은 내부를 단속하면서 피해를 최소화시켰을 뿐이다.
앨리스그룹이 우호적인 건 좋아.
하지만 너무 성장했어.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에게 말했듯 앨리스그룹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든 사건의 흐름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하지 않았다.
이번 삶에서 앨리스그룹의 성장이 너무나 가팔랐기에.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앨리스그룹이 선녀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그쪽이 더 기업의 이익추구에 맞기 때문이다.
기업은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앨리스그룹은 선녀정부에 충성하는 게 아니었다.
기업과 정부는 서로 이용하고 있는 관계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는 앨리스그룹이 만약에 선녀정부에 등을 돌리게 되는 일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어느 한 그룹에 일방적으로 힘을 밀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은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앨리스그룹의 성장세를 깎아냈다.
“─은하 너도 거기 가는 길이지?”
“어. 시험은 어떻게 됐어?”
“음…, 그럭저럭 본 것 같아.”
그렇기에 은하는 길을 가다 만난 하양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요새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번 사건으로 그녀와 친하게 지낸 앨리스그룹의 계열사 아이들도 몇몇 목숨을 잃었기에.
그러는 상황에서 그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룹의 분란을 막으러 분주해하는 모습도 보았으리라.
“얼굴이 반쪽이 됐네. 누가 이렇게 달걀처럼 갸름해지랬어?”
“그래도 이제 방학이니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래도 볼은 쭉쭉 늘어나네.”
“으…, 놀리지 마….”
다소 야윈 정하양.
귀엽게만 보이던 그녀는 야위어서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은하는 동그랗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이 더 좋았다.
뺨을 늘리는 맛이 없기도 했고.
“이제 방학인데 하양이 너는 뭘 할 거야?”
아카데미는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학생들이 형형색색의 풍선을 날리며 죽은 이들을 기리기로 했다.
그녀와 운동장으로 나가던 은하는 점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걸 느꼈다.
“원래는 집에서 푹 쉬려 했는데…, 조금만 쉬다 아카데미에 복귀해서 훈련을 하려고.”
“그러다 또 얼굴이 반쪽이 될라. 건강 챙기면
서 해.”
이번 사건으로 많은 학생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하양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가 방학에 아카데미에 남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렇기 때문이리라.
그녀만이 아니라 목민호, 최은혁도 아카데미에 남기로 했다.
배수빈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있지─, 은하야.” “왜?”
캠프파이어가 보였다.
운동장으로 나간 은하는 앞서 나간 하양이 건넨 말에 대꾸했다.
거대한 캠프파이어를 앞에 두고서 풍선을 들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던 하양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결심한 건데…, 나는 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다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을 수 있게.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교관들의 신호를 받고서 헬륨가스가 들어있던 풍선에서 손을 놓았다.
형형색색의 풍선이 밤하늘 속으로 날아올랐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이들은 이제 시끄럽게 굴던 것도 잊고서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비게이터가 될 거야.”
밤하늘을 등진 정하양.
은하는 그녀 뒤편으로 날아오르는 풍선에서 시선을 떼며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슬픔을 억누르는 눈빛이 그의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네비게이터가 돼서 은하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더 이상 네가 혼자 싸우지 않도록, 내가 네 힘이 되고 싶어.”
과거, 툭하면 눈물을 흘리곤 하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은하는 슬픔을 머금은 눈빛 속에서 굳은 심지를 발견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그러나 그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일을 일으켰다.
마치 그 마음을 읽은 것일까.
“만약 이런 일이 또 일어나더라도 괜찮아. 그래도 나는 네 힘이 되고 싶으니까.”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은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밤하늘로 시선을 향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고마워.”
자신은 그녀가 마음앓이를 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견뎌낼 것이라고 믿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사이, 그녀는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에게 미안하고, 동시에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 해보자.” “응.”
이제 폭풍우가 지나간다.
그러나 폭풍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리라.
은하는 점이 되어 사라지는 풍선을 올려다보며 미래를 되새겼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