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3
봄바람이 부는 날.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기대감으로 부품 마음을 가진 채 교장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했을 뿐인데,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에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아이들은 지루하고 긴 연설도 경청하고 있었다.
“하암~”
물론 은하는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고는 감흥도 들지 않은 그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었다.
“창피하게 뭐하는 짓이야. 교장선생님이 말씀하고 계신데….”
“이래서 애들이란….”
먹민지 네가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가슴 설레는 일이 막 일어날 것 같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미안하지만 안 일어나. 현실은 시궁창이니까. 이래서 될놈될 안될안이라고….
“…그래, 마음껏 즐겨라. 내 몫까지.”
“너 진짜 재수 없는 거 알지?”
“응, 그래~”
민지는 지금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잔뜩 기합이 들어 있었다. 왈가닥처럼 뛰어다니는 그녀답지 않게 치마를 입은 것만 보더라도 그랬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은하는 등을 꼿꼿이 편 채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민지는 머지않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얘들아,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하양은 행여나 선생님이 혼내지는 않을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민지와는 다르게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부담감에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은혁은.
“대장, 이 학교에는 강한 애들이 얼마나 있을까? 언제 짱 먹을 거야?”
“안 먹어. 넌 좀 가만히 있어라.”
“대장이 1학년 중에서 제일 강하다고 하면, 나는 그 다음이려나. 헤헤.”
“제발 그만….”
은혁은 민지 이상으로 초등학교에 가지는 꿈이 상당했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점점 피곤해지는 은하였다.
은혁에게 괜히 검술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은혁이 통 사정을 하는 바람에 은하는 검술이며 마나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알려주고 있었다.
조만간 굴려야지, 이 녀석.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은혁을 험하게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는 은하였다.
[─이것으로 여러분들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기대합니다.]그러는 사이 교장선생님의 연설이 끝났다.
“하아.”
은하는 연단에서 내려가는 교장선생님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1학년 4반! 이제부터 선생님을 따라오세요.”
강당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지정된 반으로 이동하는 차례였다.
은하가 배정받은 반은 4반. 신기하게도 민지, 하양, 은혁도 4반으로 배정되었다.
올 한 해도 그른 건지도.
강당에서 반으로 가는 동안, 아이들의 아무 말 대잔치에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것 같았다.
4반으로 가는 행렬을 따라가는 은하는 초등학교 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갔다.
“은하야~”
“아우!”
복도에는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있던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어머니에게 안겨 있던 은애 역시 그를 보고는 안아달라며 두 팔을 내밀었다.
“이따 봐.”
“아우!”
“거기서 뭐해! 얼른 안 오고!”
은하가 손을 흔들어주고 떠나니 은애가 투정을 부렸다. 마음 같아서는 은애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민지의 손에 잡혀 반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호명하는 순으로 자리에 앉으세요!”
4반의 담임 유지나는 유약해보이는 외모의 여성이었다. 테가 둥근 안경을 쓴 그녀는 긴장이 되는지 의식적으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교탁에 선 유지나는 출석부를 펼쳤다. 그녀는 출석부에 기재된 가나다 순으로 아이들을 창가 쪽에서부터 자리에 앉게 했다.
출석부에 앞 번호에 위치한 은하는 창가 자리에 배정되었다. 민지와는 몇 좌석이 떨어져 있는 데다, 창밖을 내다보는 자리가 마음에 들던 차에,
“자리는 키 번호를 정하면 다시 배정할 거예요.”
쳇.
좋다 말았다.
그의 실망을 감지한 것일까.
민지가 얼굴이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서는 고소하다는 비웃음을 선사했다.
저거 벌써부터 원래 성격 나오네. 그래, 네가 무슨 범생이가 되겠다고.
“…이제부터 자기소개를 할 거예요. 출석번호 1번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면 돼요.”
4반의 담임 유지나가 꺼낸 말에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거의 울상이었다. 그런 상태로 자기소개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자리에 앉는 아이는 완전히 울기 직전이었다.
반면에 민지는,
저거 준비해왔구나!
만면의 미소를 띤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혜화동에 살고 있는 김민지라고 합니다. 유치원은 도안유치원을 다녔고, 유치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을 듣는 것도….”
한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모습에 은하는 기가 찼다. 독하다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근데 뭐 이리 길어.
중간부터는 듣기도 힘들었다.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처음 꺼냈던 몇 마디가 전부였다.
유지나도 마찬가지였는지,
“오늘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민지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민지야, 다음에 시간 날 때 마저 해주겠니?”
“네, 그럼 어쩔 수 없죠.”
민지는 아쉬워하며 자리에 앉았지만, 아이들은 안도해했다.
그녀 덕분에 아이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과하지 않게 해야 좋다는 것을 배웠다.
다행히 그녀가 말하는 동안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있던 아이들은 이제 헤매지 않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음 사람은… 노은하. 은하야, 자기소개 해보겠니?”
“네.”
은하는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민지가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야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자고로 자기소개는 간결하게.
“내 이름은 노은하고, 도안유치원에서 왔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다른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은하는 정말 간결하게 마쳤다.
“으, 은하야, 그게 다니?”
“네.”
아이들의 관심은 받고 싶지 않은 은하였다.
아이가 참 당돌하고 단호하다.
교사생활이 오래되지 않은 유지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은하에게 당황해하더니, 이내 다음 학생을 불렀다.
“네, 저는….”
“저는 성북유치원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시간은 점점 흘러, 어느새 교실 복도 근처에 앉아 있던 하양이 자기소개를 할 차례가 되었다.
“다음은 정하양. 하양아, 자기소개 해보겠니?”
“네, 네!”
긴장했다. 의자를 드르륵 거리며 일어난 하양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분홍색 리본은 다우징이 수맥을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엇갈리는 중이었다.
“저, 저는 정하양이고요….”
아이들의 시선을 받고 움츠려든 하양.
힘내.
하양아 힘내!
그대로 자리에 앉고 고개를 숙이고 싶었던 하양은 앞자리에서 응원해주는 은하와 민지를 보고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은하랑 민지처럼 도안유치원에서 왔어요. 저는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요, 차 마시는 것도 좋아해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많이 말 걸어주세요!”
하양의 자기소개는 아이들의 박수로 마무리되었다.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안도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은혁이가 발표할 때까지 바깥이나 보고 있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은하는 문득 시야에 스치는 형체에 멈칫하고 말았다.
어?
“다음. …진서나.”
하양의 뒤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여자아이의 머리가 하늘하늘 흘러내리는 금발이어서가 아니었다.
여우를 연상케 하는 삼각 귀. 그리고 따옴표를 닮은 여우 꼬리.
마지막으로 체내 마나에 영향을 받아 변질된 붉은 눈동자까지.
저거 진짜야?
와, 신기하다!
저거 몬스터 아니야?
쟤 이상한 것 같아.
아까 엄마가 그랬는데 쟤랑 놀면 안 된대.
아이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리는 건 당연했다.
그녀는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몬스터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서나야. 자기소개 좀… 해주겠니?”
4반 담임인 유지나조차 그녀를 부를 때에는 조심스러웠다.
유지나의 경계심을 읽은 것일까.
아니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진서나라고 불린 아이는 탁 해진 눈동자로 고개를 숙였다. 볼륨감이 있던 꼬리는 힘을 잃은 것처럼 아래로 축 쳐졌다.
“…진서나입니다. 유치원은 나오지 않았어요. 앞으로… 잘, 지내자.”
서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의 의미를 읽은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서나는 은하보다도 더 짧게 자기소개를 끝냈다. 아이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박수를 치지도 않았는데에도 그녀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서나의 자기소개가 끝났는 데에는 아이들의 시선은 그녀를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은 근처에 있던 아이들과 수군거렸고, 근처에 있던 아이는 살랑이는 꼬리를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아…!”
“와, 신기하다.”
“뭐하는 짓이야. 엄마가 걔한테 손대면 안 된댔어!”
“아….”
“응? 왜?”
“나도 몰라. 쟤 건드리지 말랬어.”
“…….”
그것은 호의 어린 관심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우리 속에 있는 동물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시선.
무언가를 들은 아이들은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혐오 어린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아인이 우리 반에 있을 줄은 몰랐네.
반면 은하는 다른 아이들을 대할 때처럼 무관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인(亞人). 사람들은 편재된 마나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가 변질된 채 태어난 아이를 아인
이라 불렀다.
하지만 아인은 대다수가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아인은 이 남긴 아물지 않는 흉터였다. 몬스터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몬스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외견을 지닌 아인을 볼 때마다 의 참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인은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직접적으로 몬스터를 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신 몬스터의 흔적을 가진 아인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인은 결단코 몬스터가 아니었음에도.
단지 태아 상태에서 편재된 마나의 영향을 받고 유전자가 변질됐을 뿐인 것을. 몬스터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감추지 못한 사회는 이들을 한낱 몬스터로 몰아갔다.
“분풀이를 하고 싶으면 몬스터를 죽여야지.”
왜 애꿎은 애들을 괴롭히는 건지.
은하는 상대가 아인이더라도 차별의식이 샘솟지 않았다. 회귀 전 플레이어였던 그는 아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부모는 대개 아인을 낳으면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까 무서워 태어난 아이를 버리고는 했다.
버려진 아인은 유전자가 일치하는 부모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진 채로 죽거나, 어떻게든 홀로 살아남거나, 운이 좋으면 고아원이나 교회에서 데려갔다.
그런 대우를 받는 아이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이 발을 내미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몬스터를 증오하고 죽이는 플레이어의 세계였다.
그러니 회귀 전에 아인을 팀원으로 들였던 그에게 아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다음. 진…세나.”
아이들의 시선은 다음 출석번호에 해당하는 아이가 자기소개를 하려 일어났는데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은혁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눈에 띄었으니까.
“안녕! 나는 도안유치원에서 온 최은혁이라고 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취미는 검을 휘두르는 거고, 운동을 아주 좋아해! 다음에 시간 되면 운동장에서 다 같이 축구하자! 요즘에는 대장한테서 마나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어!”
“대장?”
한 아이가 반문하고, 은혁은 눈을 반짝이며 이어나갔다.
“맞아! 너희들 대장이 누군지 모르지? 우리 대장이 누구냐면 바로 저기에 있는….”
제발 그만!
은하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유치원을 졸업해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은혁이 초를 치고 있었다.
최은혁 넌 오늘부터 빡세게 구를 거다. 내가 지옥이 뭔지 보여주고 말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그리고 이 반의 짱은 우리 대장이니까 넘볼 생각하지 말고!”
“은혁아, 이제 그만 자리에 앉으렴. 그리고 짱이라느니 그런 말은 쓰면 안 돼요.”
아이들이 은혁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던 중, 유지나가 그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은하를 흘겨보고는,
“그리고 은하는 이따 끝나고 남아줄래? 아무래도 밖에 계신 부모님이랑 면담을 해야 할 것 같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은하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했지만, 이미 유지나는 다음 아이를 호명하고 있었다.
대장~!
은하의 심정도 모르고 환한 웃음으로 반기는 은혁.
“하아….”
“하아, 부끄러워. 제발 어디 가서 도안유치원 나왔다고 하지 좀 말아줄래?”
이미 모범생의 탈을 버린 민지가 입술을 삐죽이며 뒤돌아보았다.
“하아, 집에 얼른 가고 싶다.”
이제는 시비를 받아칠 기운도 없이 한숨만 쉬는 은하.
창피하고 부끄럽다며 비웃는 민지.
칭찬해달라는 얼굴로 바라보는 은혁.
얘들아, 싸우면 안 돼!
마지막으로 눈치를 보며 입술만 뻥끗거리는 하양까지.
초등학생이 된 첫날은 그런 하루였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