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31
정재계의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 그 시각.
YH호텔 최상층 스카이라운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스파에서는 파티가 한창이었다.
물속에서 첨벙첨벙 노는 이들이며, 호화로운 음식을 즐기는 이들까지.
어딘가에서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노래가 들려오기도 했다.
많이도 모여 있네.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누군가의 위에 서는 그들에게 있어 그들 아래에 있는 이들의 죽음이란 아무 의미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는 단지 이 자리에 모이기 위한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여론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한 가림막.
“저거 플레니튜드 아니야? 뭐야,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왜 저쪽 오빠들은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거야?”
“내가 시키지 말라 했는데….”
호텔 최상층에 입장한 한서연은 수영복을 입고, 가운을 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 물에 들어가 있던 듯 머리가 흥건히 젖어 있는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손에는 샴페인 병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최정훈은 자신이 사라져 있던 사이 술이나 퍼마신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목소리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이쪽이야!” “야, 정훈아! 예장이가 쏜다고 해서 마신 거니까 얼굴에 힘 좀 풀어라.”
“그래, 야. 여기서 마시는 걸로만 끝낼게. 우리가 이제 애도 아니고, 어디 가서 문제를 일으키겠냐.” “이따 대리부를 거야.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걱정 말라고! 이참에 너도 하나 마실래?”
“서연이도 오랜만이다. 너도 어때? 다들 이렇게 모였는데 술이 없으면 섭하지 않겠어?”
“근데 한서연 너, 걔 안 데려왔냐? 애들 사이에서 엄청 예쁜 여자애를 전속으로 뒀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걔는 안 왔어?”
“그래, 우리도 얼굴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예쁘면 서현이한테 붙잡힌 예장이가 예쁘다고 하냐?”
“아이, 형들! 내가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 했잖아!”
답이 나오지 않는 이들이었다.
한서연의 뒤를 따라오게 된 은하는 그들의 한심한 작태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심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술기운에 들뜬 것 같은 그들은 은아의 외모에 대해서 한창 가십거리를 삼고 있었던 듯했다.
누나를 데려오지 않기를 잘했어.
속으로 짜증을 억누른 은하는 한편 은아를 데려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스카이라운지로 올라올 수가 있는 사람들은 그룹에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제한을 낮추더라도 그들을 보좌할 사람 한 명 뿐이었다.
이에 은하는 한서연에게 부탁해서 은아가 아니라 자신을 데려가 달라 말을 건넨 것이다.
당연히 한서연은 흔쾌히 동의했다. 은하를 데려가는 것으로 유도준과 정하양에게 과시할 수 있었으니까.
한편, 시리우스 측에서는 공청기와 계열사의 직계들이 스카이라운지로 올라왔다.
공청기의 동생 공백기는 기도회에 남기로 했다.
형식상의 기도회에 지나지 않아도, 최소한의 형식은 보여줘야 했기에.
공백기는 시리우스의 후원을 받는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표로 참석해서 기도를 올리고 있으리라.
“뭐…? 예장이가 은아가 예쁘다고 했다고?”
“서, 서연 누나, 그게 아니야!” “아니기는 뭐가 아니니? 하여간…, 서현이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면서도 은근슬쩍 은아를 쳐다보고 있었구나?”
“있지, 누나…, 진짜 하늘에 맹세코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저번에 공항에서 만났을 때, 예쁘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전부라고.”
“그래, 알았어. 그러면 서현이한테 알려줘도 상관없지?”
“야, 진짜 그러기냐!”
우연히도 생각이 일치했다.
은하가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중, 서연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최예장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남자들에게 핀잔을 준 것이다.
근데 최예장 저것도 아직 미성년 아닌가?
그러던 은하는 얼굴이 벌겋게 물든 최예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예장은 자신보다 3살이 많았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는데에도, 최예장은 다른 이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술을 마실 수도 있지.
은하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저들이 몇 살에 술을 마시든 간에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등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법적으로 준 성인으로 취급받기에 음주가 허락되었으니.
회귀 전에 최예장과 비슷한 나이에 술을 마신 전적인 있던 은하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도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유도준은 오히려 더했다.
“이거 예장이 형이 쏘는 거라고? 그럼 공짜 술을 안 마실 수 없지!”
유도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술병이 쌓여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저희들끼리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그를 환영했다.
현재 25세 이하의 영원그룹 직계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유도준.
술을 마시던 직계들은 술에 취해 흐트러진 면모를 보이면서도 은연중 눈을 빛내며 그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뻔히 아는 유도준은 그들의 탐색에 실실 웃었다.
“좋아! 먹고 마시자! 야, 은하 너도 한 잔 어때?” “나는 됐어.”
아주 신이 났다.
직계들과 연을 맺기 위해 참석했을 유도준은 시작부터 거나하게 술을 들이켰다.
그러자 곳곳에서 박수가 쏟아지고, 그에게 흥미를 보이는 직계들이 곧 잔에 술을 따랐다.
아무래도 그들은 그를 취하게 해서 그가 가진 패를 보려는 속셈이리라.
그러나 회귀 전, 그의 주량에 대해 알고 있던 은하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었다.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온 유도준은 은하가 알기로 술에 취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코가 비뚤어지는 사람은 아마 유도준이 아니라 저들이리라.
“흠, 흠. 어쨌든 은하 너도 정말로 오랜만이다. 너한테도 말하는 건데, 나는 정말로 너희 누나한테 관심은 하나도 없으니까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아주라.”
“…네, 오랜만이에요. 형.”
서연에게 집요하게 추궁당하는 게 민망했던 모양이다.
한창 그녀와 대화를 주거니 받던 최예장은 헛기침을 하면서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그는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되레 더 무안해진 최예장은 결국 끙 소리를 내며 할 말을 찾으려 했다.
“아, 맞다. 은하 너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어.”
그러고는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여동생 최예진을 은하의 앞으로 불러들이면서.
“내 여동생이야. 너랑 동갑이라서 전부터 소개시켜주고 싶었어. 예진아, 이쪽은 내가 전에 말한….”
“나도 알고 있어. 우리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한 애인데. 안녕, 우리는 일단 구면이지? 내 기억으로는 전에 하양이 생일 파티에서 본 것 같은데 나는 최예진이라고 해.”
YH그룹의 직계 최예진.
은하는 눈높이가 거의 같은 소녀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 최예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이 얼른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내가 너무 창피한데…. 안 잡아줄 거니?”
“…노은하라고 해.”
한참이나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가 넌지시 불평을 토하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다.
사람을 상대하는데 익숙해 보이는 그녀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그렸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사실, 전부터 은하 너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서현 언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거든. 어쩌면 우리, 앞으로 긴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두 사람 다 나이도 같으니 친하게 어울려봐. 솔직히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쉽게 어울리지도 못하잖아. 서로 친한 사이가 되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겠어?”
많은 것을 함축하는 말.
그녀의 손을 놓은 은하는 가만히 호감을 표시하는 최예진과 최예장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의도를 눈치 챈 은하로서는 떨떠름하기만 했다.
YH는 시리우스와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자신까지 끌어들일 속셈인 것이다.
정말이지 뱃속에 야심이 똘똘 찬 남매라고 할 수 있었다.
“저도 은하랑 나이가 같은데 그럼 셋이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요?”
“아…, 하양이도 있었지, 참. 내 정신 좀 봐, 깜빡하고 있었네.” “아까부터 나도 계속 있었는데…. 나한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은하한테만 말을 걸고 너무하는 거 아니니?” “…미, 미안해. 오랜만이야, 하양아. 그동안 잘 지냈니?”
그때, 한서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최예진을 탐색하고 있던 중.
정하양이 은하를 두둔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은하를 뒤로 보내면서, 최예진의 손을 반갑게 잡아 쥐고는 친근한 행세를 했다.
나이가 같으며, 재계 10위 안으로 손꼽히는 그룹의 두 직계는 동시에 영혼 없는 웃음을 흘렸다.
“하양이 너 너무 예뻐졌다. 이제는 서현 언니보다도 네가 더 예쁜 거 아니니? 서현 언니, 서현 언니 하며 뒤를 쫄쫄 따라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에이, 서현 언니가 얼마나 예쁜데.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근데 예진이 너는 요새 피곤했나봐?”
“…응?”
웃음 속에서 주고받는 잽.
그 순간 잽으로만 끝날 것 같던 싸움에 본격적으로 펀치를 날린 건 정하양이었다.
“전보다 여드름이 많아진 것 같아. 요새 경영 수업을 받느라 피곤했던 모양이야. 천천히 쉬면서 해. 응?”
“…아하하…,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러는 하양이 넌….”
되받아치려던 최예진.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말을 흐렸다.
“왜애?”
하양이 해맑게 웃었다.
웃음만큼이나 피부가 해맑았다.
최예진의 얼굴은 그대로 경직되어 버렸다.
그녀는 자존심이라도 챙기기 위해 뭐라도 말을 하려 했지만─.
“─아, 아직은 괜찮나 보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여드름은 우리 나이에 반드시 한 번은 난다는 모양이니까.”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안 그래도 아버지한테 피부에 좋다는 포션을 만들어달라고 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아, 혹시 하나 만들어지면 너한테도 나눠줄까?”
“…그, 그럴래?”
본전도 못 찾고 마지막에는 하양의 말에 혹해버린 그녀였다.
만약 그녀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마는 모습이 눈에 보였으리라.
하양이도 정말 많이 달라졌어.
그 후로도 두 사람은 겉보기에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기억하던 울보 하양이 언제 저렇게 멋있어졌다는 사실에 내심 깜짝 놀랐다.
그러는 가운데 은하한테 다가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안녕. 얼마 전에 보고 또 보네?”
“안녕, 형.” “뭐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였어? 은하 너, 나 모르게 유천이 쟤는 또 언제 만난 거니?”
“이유천 네가 얘를 어떻게 알아?”
루미너스그
룹의 직계 이유천.
은하가 스카이라운지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빛으로 아는 척을 해왔던 그가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이다.
은하는 이번에는 반갑게 맞이했고,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척을 해오자 한서연과 최예장이 말을 붙였다.
두 사람이 말을 붙인 이유는 서로 달라도, 두 사람은 같은 눈빛으로 은하와 유천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이유천은 두 사람의 의문에 아무렇지 않게 답해주었다.
“별 거 아니야.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었거든.”
“둘 다 꽤…, 친해 보이네?”
“누나, 한 번 같이 밥을 먹게 되면 친해지게 되는 법이야.”
“이상하네. 나는 그렇게 했는데도 은하랑 친해진 것 같지가 않은데…. 은하야, 나중에 우리 둘이서 같이 밥 먹지 않을래?”
“우리 누나도 있는데 그냥 셋이서 밥 먹어요.”
“큭…, 이 누나 차였네?” “아무래도 예장이 넌 서현이한테 오늘 있었던 일이나 말해야겠다.” “자, 장난이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서로 티격태격하는 한서연, 최예장.
이유천은 두 사람을 지긋이 보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던 최예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의도를 감추기 위해 웃는 것이라면.
“어쩌면 네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 손수건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말 잘됐다.”
“어? 그거 가지고 왔어?”
“그러엄.”
이유천의 미소에는 아무런 목적도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지 남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다가왔다.
“사실은 여동생이 아버지 손수건을 가지고 있던 네가 정말 궁금하대서 오늘 여기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말이야.”
“…아. 그래?”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고 싶었는데 미안하게 됐다. 근데 만약 여동생을 여기에 데려왔더라면 다른 사람들이 집적거리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 오지 않은 게 좋았던 걸 수도 있겠네.”
이런 식으로 다른 직계처럼 그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다.
솔직히 재계 10위에 드는 그룹의 직계면서 다른 직계처럼 영악하게 행동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이전 삶에서 그를 정재계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인상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아, 내가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여동생이 너한테 관심 있어 한다고 여동생이 은하 널 좋아한다는 듯한 괜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해.” “…….”
이유천은 시스콤이라는 것이었다.
은하는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이유천이 자신의 여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도,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게 될 일은 없었다.
절대로, 하늘에 맹세컨대.
하늘은 태어나기 전에 무너졌지만.
트럭으로 줘도 안 가질 거거든?
진심이었다.
그러니 은하는 유천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네 여동생에게 관심을 가질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고.
괜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지 말라고.
그러나 이 시스콤은 자신의 말은 믿어주지도 않으리라.
“정말 밖에 내놓기 무서워. 그러다 누가 훅 납치해가지 않을까 해서…, 마음 같아서는 내가 평생을 데리고 살고 싶다니까.”
이유천, 그에게 있어 모든 남자는 여동생을 노리는 잠정적인 늑대로만 보일 테니까.
자신이 하는 말은 필시 거짓말이라 단언할 것이다.
“아하, 그래? 나중에 사진이라도 보여줘. 어디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보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상대는 직계였다.
사이도 나쁘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은하는 에둘러 말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유천은 여동생에 심취해 말에 담긴 가시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뭐? 여동생 사진을 보여 달라고? 봐서 네가 어쩌려고?”
“…….”
처음으로 이유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웠다.
이유천은 늑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은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은하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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