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36
중등아카데미는 이례적으로 학생을 추가선발하기로 했다.
원서접수기간은 여름방학 중순부터 2학기 초까지.
응시자는 문화제가 끝나는 시기에 입학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아카데미는 내년에 입학하는 033기의 입학시험까지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올해는 문화제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시국이 시국이기도 했으니.
여론이 정재계를, 주로 재벌가를 규탄하고 있다고 해도 아카데미도 여론의 폭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었다.
자칫 문화제를 개최했다가는 혹여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카데미에서는 문화제를 감행하기로 했다.
아카데미 문화제는 채용시장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문화제의 순기능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국민들이 플레이어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나, 내년에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고등아카데미 3학년 2학기부터는 아카데미의 허락을 받은 클랜에서 플레이어들을 교관으로 차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모든 클랜에게 주어진 기회도 아니었고, 선택받은 클랜도 저마다 배정된 인수가 달랐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그것 외에도 학생들하고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희망했다.
동시에 클랜에 입단하려는 이들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원했고.
“…물론, 올해는 작년과는 다르게 문화제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들만 들이기로 결정했고. 아, 너희 가족은 예외다.”
은하의 반 교관은 학생들을 살피며 작년과 달라진 문화제에 대한 말을 꺼냈다.
일반인은 입장에 제한이 있다. 단, 학생들의 가족은 예외에 해당한다.
올해 문화제에는 추첨으로 선발된 일반인의 입장만을 허용한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은 입구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면 입장할 수 있다. 단, 문화제에 참가하는 관계자들은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아카데미에 신청서를 보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플레이어 업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에 플레이어를 고용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도 또한 문화제에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사업계획서를 증빙할 필요가 있으며, 아카데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입장할 수 없었다.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아카데미는 엄밀한 심사를 통해서 문화제에 입장할 수 있는 기자들을 통제할 것이다.
그만큼 아카데미가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빽빽한 규정이었다.
그래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야 많겠지만.
몬스터 군단에게 서울이 침공당한 해에도 아카데미는 문화제를 거르지 않았다.
그때도 아카데미는 욕을 먹었지만, 그럼에도 문화제 입장티켓은 빠르게 품절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5일 동안 진행되는 문화제이건만, 각 요일에 입장 가능한 티켓이 전부 매진된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삶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옆 반이랑 같이 문화제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으니, 서로 싸우는 일 없이 잘 해보기를 바란다.”
한편, 교관은 그 말을 끝으로 반을 나섰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회의를 하게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그러자 2학기에 회장으로 선출된 학생 두 명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다 같이 문화제를 즐겁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잘해보자.” “모두 문화제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손을 들고 말해줘!”
두 명의 회장.
031기는 전체 인원 중 3할 가량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반을 하나로 합쳐서 문화제에서 부스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중등아카데미 2학년은 두 반을 합쳐서 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난 작년처럼 군만두나 굽지 않으면 아무거나 해도 되는데.
하양과 배수빈의 사이에 앉아 있던 은하는 턱을 괸 채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화제에서 하고 싶은 건 없었고, 애당초 관심도 없었다.
북적거리고 시끌벅적한 데다 괜히 힘만 쓸 뿐이었다.
그나마 문화제의 장점이 하나 있기는 했으나─.
“─은하야, 여기.”
“이게 이번에 부문대회에 출품되는 아티펙트 명단이야?”
“아직 미정인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설명을 들어보니 그게 전부인 것 같아.”
그는 하양이 건넨 프린트에 고개를 파묻었다.
서로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은 한창 프린트의 내용을 쳐다보았다.
아카데미 학생은 문화제 기간 동안 부문대회와 종합대회에서 우승하여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등아카데미 학생의 경우 종합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결국 은하의 시선은 부문대회에서 취급하는 아티펙트에 가 있었다.
올해도 별 거 없네.
고등아카데미의 부문대회는 조금은 쓸 만한 아티펙트가 몇 개 있었지만 중등아카데미의 부문대회에 출품된 아티펙트는 그저 그랬다.
은하의 눈길을 끌 만한 아티펙트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하양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네비게이터 부문으로 하나 나가려고. 다른 아이들도 올해에는 부문대회에 나간다던데 은하 너는 안 나갈 거야?” “나는 흥미 없어.”
은하는 이내 보고 있던 프린트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부문대회에 출전할 생각은 없으니 친구들이 부문대회에 나가는 것이나 지켜보기로 했다.
팝콘을 먹으면서 보면 나름 재미가 있을 것이다.
“배수빈, 너도 나가는 거지?” “응. 이따 캐스터 부문에 지원하게. 부문대회에서 우승하면 내년 학기에 포인트를 추가로 준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하양이는 못 이길 텐데?”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죽을래?”
은하는 배수빈의 심기를 건드렸다.
저번 학기에도 전교 1등을 못한 배수빈이 눈에 독기가 가득 담긴 채 반응했다.
게다가 하양과 같은 반이 되었기에 올해는 반 1등도 하지 못했으니.
그러다 보니 그녀는 부문은 달라도 하양에게 경쟁심을 보이고 있었다.
“두고 봐. 부문대회에서는 꼭 너를 이기고 말 테니까.”
“아하하….”
하양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서로 다른 부문이라 경쟁할 요소는 어디에도 없건만.
한 학기 동안 경쟁심에 불타오르던 배수빈에게 적응이 됐는지 하양은 괜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러면 과반수 찬성에 의해서 귀신의 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손도 안 들었는데?”
문화제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됐다.
귀신의 집.
은하는 어째 군만두를 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한편, 민지의 반은 목민호의 반과 문화제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무난하게 카페를 하는 걸로 협의한 학생들은 부문대회에 나갈 학생을 선발하기로 했다.
“그러면 딜러 부문에는 민호 혼자 나가는 걸로 할게! 나가는 사람은 더는 없는 거 맞지?”
각 반은 부문대회에 나갈 대표를 한 부문 당, 한 명 이상을 선출해야 했다.
인수에 제한이 없는 것이다.
물론, 문화제 부스를 운영하는데 차질이 없는 선에서.
“그러면 딜러는 이걸로 마감하고, 헌터 부문으로 갈게. 헌터 부문에 지원하고 싶은 사람!”
“잠깐! 회장! 나! 나! 나도 딜러에 지원하고 싶다니까!?”
“민호가 딜러 부문에 나갈 테니까, 빙구 오빠는 전략상 헌터 부문으로 나가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때 손을 높이 들어 올린 진파랑.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민지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부터 파랑은 딜러 부문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 학생들은 진파랑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야! 내가 목민호보다 잘한다니까? 최은혁도 이길 수 있다고!”
“찌질하네. 딜러 부문으로 나가서 망신이나 당할 텐데 가만히 있어.” “너이씨! 야! 너 뭐라 그랬어!?”
각 부문의 우승자는 한 명씩.
우승자를 많이 배출한 반은 문화제 마지막 날에 소정의 상금과 포상을 받았다.
그러니 각 반은 신중을 기울여서 부문대회에 출전할 사람을 결정해야 했다.
“서나네 반에서는 딜러로 최은혁이 나올 거야. 빙구 오빠가 은혁이한테 이길 수 있겠어?” “싸워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흥, 서나한테 들어보니까 저번에 은혁이한테 대련에서 졌다던데.” “그, 그건 내가 급똥이 와서 그랬던 거야!” “하, 더러운 소리 좀 하지 마.” “그래봤자 변명일 뿐이다. 진파랑.”
딜러부문으로 목민호가 나간다.
이것은 두 반의 학생들이 동의한 사항이었다.
귀차니즘이 만연하는 은하가 부문대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같은 학년 내에서 딜러로 손꼽히는 사람은 최은혁이었다.
그리고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목민호가 유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파랑을 투입하면 다른 부문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 반 학생들의 동의하에 파랑은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헌터부문에 나가는 것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
“딜러! 나를 딜러로 내보내줘!”
“회장! 빙구 오빠가 헌터부문으로 나가고 싶대!”
“야! 내가 언제!?”
“그럼 헌터부문은 파랑이 형으로 뽑는 걸로 할게. 다른 사람 중에서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지?”
다행히 민지는 두 회장과 죽이 잘 맞았다.
민지가 파랑을 추천했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최상단에 올렸다.
반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진파랑을 헌터부문에 출전시키기로 했다.
파랑은 툴툴거리는 것밖에 못했다.
저 오빠 달래주느라 힘들겠네.
다음으로는 캐스터 부문.
학생들은 하양의 반에서 수빈이나 하양 둘 중 한 명이 캐스터 부문에 출전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진즉에 캐스터 부문을 포기했다.
최소 인원을 맞추기 위해 아무나 한 명을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 김민지는 삐져 있는 진파랑을 달래려는 생각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빙구를, 아니 삐돌이를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여기에서 자신밖에 없으리라.
“다음은 서포터 부문! 은우야, 네가 나가는 게 어때?” “응, 한 번 나가보고 싶어.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볼게.”
“서포터 부문은 은우가 나가니까 이걸로 끝내도 되겠고…. 그 다음은 레인저 부문인데….”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에 어느새 부문대회에 나갈 학생들이 거의 결정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부문은 레인저 뿐.
두 회장은 레인저 부문에 누구를 내세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두 반에서는 레인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이 없었다.
그나마 괜찮을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민지 네가 나가볼래?” “내가?”
같은 반 회장이 민지를 지목했다.
그녀는 설마 자신이 지목당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눈을 깜빡거렸다.
“음….”
민지는 회의적이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레인저 부문에서 우승을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운이 좋으면 가능할지도.
어차피 레인저 부문에서 누군가는 나가야 했다.
민지는 남은 사람 중에서 그나마 자신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 문화제에서 은하는 어쩌다가 구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머리색을 하얗게 염색하고, 벽해수에게 부탁해서 입가를 드러낸 철가면을 써야 했다.
붉은 렌즈는 덤이었다.
솔직히 은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구울은 그런 존재가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뭔데?”
“누나도 구울이 뭔지 몰라요?”
“이야기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은하 너는 본 적 있니?”
“…저도 없어요.”
연화와 매일 아침마다 수련을 하던 은하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사실 그는 구울을 본 적이 있었다.
신도림이 을 발현하고 죽은 자들의 시체를 구울로 만들어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피부가 벗겨진 시체가 비쩍 마른 들개로 변모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그때 장난이 아니었는데.
눈이 푹 파인 들개형 언데드.
그것을 들개라 표현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때 네 발로 뛰어다니던 구울은 살아있는 존재에 반응해서는 개처럼 달려들었다.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도 않아서 토벌하느라 힘을 써야 했다.
나중에 이유정은 허리가 쑤신다며 은하에게 마사지를 부탁했을 정도였다.
‘왜 내가 해야 하는 건지….’
‘시끄러. 너 때문에 끌려간데다가 거의 무보수로 일한 셈이었으니까 이거라도 받아야지. 안 그래?’
‘…이번만이다.’
‘아으…, 거기. 거기가 쑤셨어.’
‘여기는?’
‘응, 거기도. 아…,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도 될 것 같아.’
‘…….’
‘…조금 더…, 더 아래로….’
‘도대체 얼마나 아래인 거야?’
그때 여러 해프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정이 웬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꼬신 거였다.
그것을 일부러 무시해버린 은하는 나중에 된통 깨졌고.
“지금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요?” “음….”
과거에서 깨어난 은하는 이번에도 류연화의 시선을 피했다.
어째 주변이 서늘한 것 같았다.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건만.
조금 전에 대련을 하느라 흘러내린 땀은 어느새 얼어서 바닥에 투두둑 떨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네 반에는 이번 문화제에서 어떤 걸 하는데요?” “우리는 이번에 아무것도 안 해. 고등아카데미 3학년은 그냥 즐기면 되거든.”
“아, 그렇죠.”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연화는 올해로 고등아카데미 3학년이 되었다.
내년에 졸업을 하게 되는 그녀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문화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물론, 성적이 좋은 그녀는 진즉에 레귤러스 클랜에 입단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였지만.
그것은 같은 클랜에 입단하기로 한 은아나 한창진도 마찬가지였다.
아, 부럽다.
은하는 류연화가 부러웠다.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돼서.
자신도 얼른 플레이어로 거듭 나서 사회로 나가고 싶었다.
물론, 마음이야 그렇기는 했지만 고등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그날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래서 말인데 은하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네? 어떤 거요?”
오늘도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은하는 가볍게 샤워를 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따라 일어난 그녀가 그에게 말을 꺼낸 것이다.
류연화가 자신에게 부탁을 하다니 굉장히 의외였다.
“이번에 027기 졸업생 대표를 하게 됐는데….”
“정말요? 잘 됐네요. 그런데요?”
“졸업생 대표는 학생들을 대표로 사람들에게 무위를 보여야 하잖아.”
“네, 그런 게 있기는 했죠. 누나는 누구랑 대련을 하기로 했어요? 설마 우리 누나랑 하는 건 아니죠?”
“아니야. 내 대련 상대는─.”
이윽고 은하는 그녀의 부탁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은하 너한테 부탁하고 싶어.“
리라이프 플레이어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