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37
문화제는 첫 번째 날부터 성황을 맞이했다.
은하가 예상했던 대로 일반인에게 한정적으로 판매된 티켓이 순식간에 동이 난 것이다.
암표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그만큼 시국이 좋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플레이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히, 히, 히, 히.
거기, 오빠들.
붐비지 않는 부스가 없었다.
은하와 하양의 반도 마찬가지.
두 반은 귀신의 집을 운영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귀신의 집에 대한 유명세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마법을 가미한 귀신의 집이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며.
연인끼리 방문한다면 사이가 더욱 오붓해질 것이라는 소문을 포함해, 누구하고 방문하게 되더라도 출구를 나서는 순간 사이가 돈독해질 거란 소문까지 퍼졌으니.
그러다 보니 줄은 끊이지 않았다. 두 반의 회장은 결국 한 번 입장한 사람들은 재입장을 하지 못하도록 방침을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지만.
여친 없으면 나랑 사귈래?
“”””…….””””
커다란 대련장을 통째로 사용하여 인테리어를 구성한 귀신의 집.
어둡고 붉은 색조의 빛이 가득한 공간은 가만있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소품 역시 마찬가지.
담력시험을 하자면서 남자들끼리 귀신의 집에 방문한 이들은 그러다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나랑 사귀자.
히, 히, 히, 나 너무 외로워.
우물 속에서 기어나온 여성.
모퉁이에 몸을 반쯤 걸친 여성은 새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다.
이윽고 바닥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남자들을 향해 손을 뻗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
난잡하게 헝클어진 듯한 머리칼. 그 사이에서 드러난 눈빛은 붉은색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체처럼 새하얀 피부까지.
남자들은 우물 속에서 나오려 하는 그녀를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휴….”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정하양은 시야를 가리는 머리칼을 정리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처녀귀신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다.
“저 사람들, 겁은 엄청 많더라.” “아, 은하야. 거기도 끝났어?”
“일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들이 달려간 방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은하는 비명소리가 울린 방향에서 찾아왔다.
마나가 가미된 염료로 머리카락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붉은색 렌즈를 한쪽 눈에만 착용한 은하.
동시에 눈과 입을 제외한 부위를 철가면으로 가린 그는 그 모든 걸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프트가 바뀌려면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어쩔 수 없어도 분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 조금만 더 참자. 사탕 먹을래?” “이건 어디에서 났어?” “아까 시프트 들어가는 사이 몇 개 챙겨왔지!”
그렇지 않아도 단 게 당겼다.
은하는 하양이 하얀 소매 속에서 꺼낸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그가 먹는 것을 본 하양도 사탕을 하나 깠다.
이런 애가 처녀귀신이라니.
연애도 못하고 죽어서 억울하기는 하겠네.
당분이 몸에 스며들었다.
은하는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면서 짧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양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그녀의 동그란 얼굴은 전과 다르게 조금 갸름해져 있었다.
그리고 빠져 나간 부분을 채워주듯 성숙미가 한층 부각되었다.
아무리 후줄근한 분장을 했더라도, 소복 하나만 입고 있는 그녀에게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앳된 모습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성인 여성의 면모가 한데 어우러져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예쁘냐고 묻는다면.
“은하야, 왜? 사탕 더 먹을래?”
“…하나만 더 줘.”
예쁘다고.
이제는 대답할 수밖에 없으리라.
은하는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며, 자신을 향해 부드러이 미소를 짓는 하양에게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녀는 이상해하지 않는 눈치였다.
“─방금 무슨 생각했어?” “…….”
그러다 훅 치고 들어오는 정하양.
그녀도 포커페이스가 늘었다.
순간 말문이 막힌 은하는 불현듯 장난기가 샘솟았다.
어디 그녀가 당황하는 것을 한 번 봐야겠다.
은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답했다.
“너처럼 예쁜 애가 연애도 못하고 죽으면, 억울해서 처녀귀신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정하양.
은하는 그녀가 얼떨해하는 모습에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스마트폰이 없는 게 아쉬웠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깜빡거리는 그녀를 지금 이 순간밖에 볼 수가 없어서.
“…치.”
그러다 그의 장난을 깨달은 건지.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반격을 가했다.
“그러면 나 죽기 전에 연애라도 좀 시켜주든가, 모.” “그런 걸 왜 나한테 따지고 그래? 그런 건 네가 알아서 찾아야지.”
은하는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어째 어디선가 했던 듯한 대화.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유정이도 그랬었지.
이전 삶에서 이유정도 그랬다.
너만 따라다니느라 일평생 연애도 못하고 죽게 생겼다고.
자기가 죽어서 처녀귀신이 된다면 그때는 모두 자신 때문이라면서.
은하는 그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그때 자신이 그녀에게 뭐라 대답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누구 생각했어?”
“엄청 예쁜 애.”
“…치. 은아 언니보다 더?”
“음…, 그러게.”
눈에 쌍심지를 켜며 묻는 정하양.
은하는 그녀의 질투를 모른 척하며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은아가 예쁜지, 이유정이 예쁜지.
둘 중 누가 예쁜 것인가.
역시 우리 누나가…. 음….
대답하기 난처했다.
은하는 결론을 지을 수 없었다.
노은아와 이유정.
지금 생각하면 두 사람은 분위기가 거의 똑 닮아 있었다.
헤어스타일까지 비슷했으니 더욱.
이전 삶에서 은하는 어렸을 적에 잃어버린 은아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감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감각이 말하건대.
두 사람은 닮았다고.
그렇기에 자신은 이유정의 말에는 꼼짝도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최고지.” “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입에 담았다.
그러니 하양은 더는 그에게 뭐라 추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타이밍이 좋게 손님들이 입장한 것이다.
저 앞에서 귀신 역할을 맡고 있던 학생들이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도 얼른 자리로 복귀하자.”
“응. 그러면 수고…, 어?”
“뭐야. 왜 그래?” “은아 언니 기척인데?”
“뭐라고?”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려던 은하는 냉큼 몸을 돌렸다.
감지망을 전개한 하양에게 다가가 그는 그녀의 정보가 틀림이 없는지 물었다.
하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은아 언니 기척을 모를 리가 없잖아. 게다가 여기 세트장은 거의 내가 만들었는걸?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다 내 감지영역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자신 있게 말하는 정하양.
실제로 그녀는 미로를 세워서는, 입구에서 출구로 이어지는 루트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게다가 때때로 미로의 구조를 바꿔 겁을 먹지 않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그녀가 하는 말이었다.
은하는 은폐마법을 몇 겹으로 두른 은아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지만, 그녀의 능력이라면 어쩌면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주변의 마나로 정보를 읽는 자질이 뛰어났으니까.
그런데 누나는 누구랑 온 거지?
연화 누나는 종합대회에 나가느라 첫날부터 바쁘다고 했는데….
하양은 우물 안으로 영차영차 하며 들어갔다.
은하도 덩달아 우물로 들어가서는, 엄폐물로 몸을 가리듯 우물 벽 위로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넌 네 자리로 안 가도 돼?” “누나 얼굴 좀 보고 가게.”
어차피 그의 자리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은아가 누구와 같이 왔는지 얼굴을 확인만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윽고 은아가 나타났다.
“여기는 더 을씨년스러운 것 같은데? 근데 정말 세트장 잘 만들었다.”
“으…, 은아야. 무서우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 내가 지켜줄 테니까.”
“응, 고마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꼭 너한테 의지할게.”
마치 데이트를 하듯.
은아와 한창진 사이의 거리는 거의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가까웠다.
두 사람의 손등은 걸어가는 도중에 계속 부딪치고 있었고.
저러다 손을 잡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한창진, 저 새끼가….
은하는 빠득 이를 갈았다.
연화가 오늘 바쁘다는 소식을 듣고 은아의 주변에 벌레가 꼬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야 했다.
그것을 잊고 있던 나머지 한창진이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은아야, 조심해!”
“꺄악!”
그때, 폐건물로 보이는 세트장에서 좀비로 분장한 학생들이 떨어졌다.
마나를 발현하며 바닥으로 무사히 착지한 좀비들이 은아를 놀라게 하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은아가 고작해야 그 정도로 무서워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창진은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지키려는 행동을 취했다.
“은아야, 괜찮아?”
“응. 도와줘서 고마워. 나 그런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거든?”
“내가 걱정이 돼서 그래.” “…고마워.”
어째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은하는 눈에 불을 켰다.
그러다 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우물 벽을 부서 버렸다.
마나로 보강된 스티로폼이었지만.
“하양아.” “…응. 왜?” “나 좀 도와주라.”
“응, 그래….”
두 사람을 떼어놓는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은하는 이내 하양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누나한테서 수작 부리는 오징어를 떨어뜨려 놓을 거야. 그때가 되면 하양이 너는 미로의 구조를 바꿔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해줘.”
“으, 응…. 그럴게.”
떨떠름한 기색을 보이는 하양.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고는 미로를 바꿀 준비를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떨어뜨리게?” “다 방법이 있지.”
은하는 손가락으로 붉은 렌즈를 낀 눈가를 만지면서 크크크 웃었다.
마치 척안이 욱신거린다는 듯이.
노은하, 15세.
15세라는 나이 앞에서 정신연령은 너무나 무색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그래, 운명의 데스티니였다.
이따금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가는, 어떤 플레이어는 인생의 라이프 중 가장 상상력이 왕성한 시기라고도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 시기밖에 만들지 못하는 마법을 만들어보라고.
감히 우리 누나한테 손을 대?
우물을 나온 은하는 기둥에 숨어서 한창진의 눈을 쳐다보았다.
은아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창진이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스티지안 아이
최근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제5위계 오버랭크 군상마의 섭리는 스티지안 아이와 무척 잘 어울렸다.
스티지안 아이가 더해지면 지금껏 환영을 실재로 만들기 위해 상대를 속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왜냐하면 스티지안 아이는 상대의 심층세계를 자극하는 것이었으니까.
한창진의 마나 저항력이 높더라도 상관없었다.
군상마의 섭리가 스티지안 아이를 강화시키기도 했으니까.
한 번이라도 눈이 마주친 순간.
한창진은 별 거 아닌 것이라 해도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어디 구울한테 잡아 뜯기는 공포를 당해보시지.
아니나 다를까.
한창진이 흠칫했다.
하지만 마나 저항력이 높은 그는 한순간 나타났다 사라진 구울들이 허깨비라고 생각한 모양새였다.
팬텀 아이(Phantom Eye)
그러나 찰나라도 좋았다.
찰나라도 그가 구울을 떠올렸다면, 은하는 환영 마법을 사용해 그에게 구울을 보여줄 수 있었다.
“여기에 왜 구울이…. 은아야, 조심해!”
“창진아, 갑자기 무슨…, 꺄악!”
한창진의 눈에는 이제 갑작스럽게 나타난 구울들이 은아에게 달려드는 환영이 보일 것이다.
창진은 일말의 주저도 하지 않고, 은아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쥐고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창진의 반응에 깜짝 놀란 은아는 그를 붙잡으려다 실패하고 말았고.
그리고 바로 그때.
“하양아, 지금이야.”
“으, 응…”
드디어 두 사람이 떨어졌다.
은하는 하양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 그가 하란 대로 미로를 바꾸었다.
필시 미로 안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알 바야?
하양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해도, 은하는 다른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하양에게 고맙다고 전한 뒤, 난데없이 미로의 구조가 바뀌면서 홀로 떨어진 은아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아!!”
하얀 머리칼을 나부끼고.
붉은 렌즈를 반짝이며.
은하는 구울의 역할에 충실한 채 은아에게 달려들었다.
부스 바깥에서 석장을 맡긴 은아는 난데없이 달려드는 그를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전투자세를 취했다.
“…은하야!?” “잡아먹어주마!”
은아는 뒤늦게 분장을 한 구울이 자신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은하는 장난스럽게 소리쳤고.
두 사람은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은하는 은아를 깨물려 했지만─.
“잡아먹기는 누가 잡아먹어! 내가 널 잡아먹을 건데! 얌!”
“……!”
은하를 덥석 껴안은 은아는 냉큼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설마 자신이 깨물릴 줄은 몰랐던 은하는 몸을 흠칫했다.
그녀에게 물려본 건 아기였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거 다 네 짓이지?”
“…들켰네. 누나, 올 거면 온다고 말을 하지.”
“너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지!”
눈을 가늘게 모아서는 뚱한 얼굴로 은하를 노려보는 은아.
그러던 그녀는 이내 피식 웃어서는 오랜만에 은하 성분을 충전했다.
은하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노은하, 그는─.
“근데 너 머리가 왜 이러니?”
“안 어울리지?”
“아니! 내 동생은 뭐든 잘 어울려! 이왕 한 김에 사진이나 찍자!”
─누군가에게는 괴물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순한 양
이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