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4
이후, 모든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수행하는 나이에 체내 마나를 검사해야 하는 법령이 시행되었다.
그래서 도안초등학교는 입학식을 치르고 며칠 후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내 마나를 검사하고 있었다.
체내 마나를 검사하기 위해 파견된 직원은 한국마나관리국의 마나 측정 전담반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아침부터 180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마나를 측정하는 중이었다.
“아, 아프지 않겠지?”
3반의 마나 측정이 끝나가는 중이었다. 이제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하양은 어제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주사를 놓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무섭다고. 아까 2반의 연성진이랑 마방진이 그랬는데 하나도 안 아프대.”
민지는 하양을 비롯해 불안해하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활발한 성격으로 아이들과 친해진 그녀였다.
“뭐, 수정구에 손을 대는 것뿐인데.”
여전히 아이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은하는 벽에 기대 툭 하고 내뱉었다.
마나 측정 검사는 마나를 감지하는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대면 끝나는 작업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복잡한 검사를 요구할 수 없으니, 체내 마나가 얼마나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 마나가 엄청 많으면 어떡하지?”
“훗, 이제 내 숨겨진 힘이 알려지는 건가.”
“크윽! 내 안의 흑염룡이 지금 날뛰고 있어!”
아이들이 처음으로 체내 마나를 검사하니 설레발을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은하는 간단하게 끝나는 작업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짜증이 났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했다. 특히나 험상궂은 눈매를 지닌 그가 인상을 쓰고 있으니, 그에게 접근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장! 이제 우리 반 차례래!”
한 명만 빼고.
“하아….”
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반에서 저마다 그룹, 소위 파벌을 만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재 파벌에 들어가려고 고군분투를 하거나, 이미 들어가 있는 아이들은 그 자리를 지키려 했다.
은하는 아이들의 사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부러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기니 아이들이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은혁이었다. 민지나 하양은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려 노력하고 있다지만, 머리에 검 생각으로 가득 찬 그는 은하만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은혁 특유의 친화력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간혹 말을 걸고는 했다.
“난 조용히 학교생활 하고 싶은데.”
“응? 왜 그래, 대장?”
“하아, 됐다. 그래서? 이제 줄 서야 해?”
“응! 선생님이 얼른 오래!”
자리로 돌아가니 유지나가 아이들에게 줄을 세우고 있었다. 1학년 담임은 처음이라는 그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다루는데 어려워했다.
“자~ 얘들아, 조용히! 제일 먼저 검사 받고 싶은 사람?”
“저요!”
아이들이 마나 검사를 기피하니 유지나는 먼저 하고 싶은 아이를 찾았다.
번쩍 손을 드는 아이는 은혁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펄쩍 뛰어오른 그는 제일 먼저 마나 검사를 받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 은혁이. 은혁이가 먼저 해볼래?”
“네!”
은혁은 의기양양한 기세로 앞으로 나갔다.
이미 90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상대한 마나 관리국의 직원은 피곤한 기세로 수정구를 가리켰다.
“저기에 손을 얹으면 돼.”
“헤에.”
연단 위에 설치된 수정구는 은혁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큼지막했다. 신기한 마음으로 수정구 위에 한쪽 손을 얹었다.
수정구는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마나를 측정하는 구조로 제작되어 있었다.
그의 마나를 인식한 수정구가 중심부에서부터 옅은 빛을 뿜었다. 빛은 수정구의 절반에 이르는 영역을 채우고는 서서히 약해졌다.
“어때요? 어때요?”
“흠, 또래에 비해 많은 편이네.”
지금까지 측정했던 아이들 중에는 체내 마나가 특출하게 많은 아이들은 없었다. 대다수가 평균에 달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은혁은 달랐다. 평균을 꽤 뛰어넘는 양이니 미래가 궁금해지는 아이였다.
비슷한 수치만 기록하던 직원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은혁을 향했다.
평균 이상이라는 말에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연단을 내려갔다.
“먼저 받고 싶은 사람? 없으면 출석번호 순으로 진행할게~”
출석번호 1번부터 연단에 올라 마나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마나관리국의 직원은 아이들의 마나가 평균치에도 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흥미를 잃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소리치기에는 지난 나이였지만,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던 아이들은 체내 마나를 확인하고는 실망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흥, 체내 마나가 평균이면 뭐가 어때서. 안 그래?”
민지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씩씩하게 내려온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은하를 보며 툭툭 내뱉었다.
마치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이나 하라는 것 같네. 이거 완전 답정너야.
친구를 사귀는 중인 민지가 은하에게 말을 걸어오니 별일이었다. 그만큼 체내 마나가 평균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내가 최은혁보다 못하다니….”
겨우 그것 때문이었냐.
은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뭐 왜?”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이 뭔지 알아?”
“뭔데?”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민지.
“나랑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거야. 인생은 원래 상대적인 거라고.”
“상대적?”
상대적이라는 말은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민지는 은하가 어른스러운 말을 하니 흥미가 있는 기색이었다.
“그래, 상대적. 상대적이 뭐냐면…. 아, 귀찮아. 그건 집에 가서 찾아보고.”
“그게 뭐야.”
“아무튼 그 중에서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이 내 마나랑 다른 사람의 마나를 비교하는 사람이라
는 거야.”
“그래?”
“체내 마나가 적으면 적은 대로 살면 되지. 네가 그걸 커버할 만한 걸 가지면 되는 거야.”
“흐음….”
마나가 힘이 되는 세상이었다. 앞으로 마나가 힘이 되는 세상은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신의 체내 마나가 많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은하는 회귀 전 평균에 미치는 마나만으로 살아왔다. 마나가 힘이 되는 세상에서 체내 마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은하는 부족한 마나를 보충할 만한 역량을 보이며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체내 마나에 실망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지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잡설이 길어졌다. 민지와 친한 여자아이들의 반짝이는 시선에 부담을 느낀 은하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기로 정했다.
“다음. 노은하! 은하야~”
마침 은하의 차례였다.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그는 재빨리 연단 위에 올라갔고, 망설임 없이 수정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은하의 체내 마나는─.
“호오. 이 학교 1학년들 중에는 네가 제일 많구나.”
이런.
수정구는 은혁보다도 짙은 색으로, 조금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기프트가 발현된 이후로 회귀 전 체내 마나의 절반을 회복한 그는 8살이라는 나이에는 체내 마나가 비상한 편이었던 것이다.
“장래가 기대되는 구나.”
이 나이에 체내 마나가 이만하니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어떠할까. 직원은 자신의 일인 것마냥 흥분해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뭐? 체내 마나가 적으면 적은 대로 살면 된다고? 좋겠네. 누구는 다른 사람 걱정도 해줄 정도라서….”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민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은혁의 체내 마나와 비교했을 때보다 더 화를 내고 있었다.
“하하….”
멋쩍어진 은하는 연단에서 내려오자마자 민지를 피했다. 어차피 검사를 마친 그는 반 아이들이 끝날 때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기로 했다.
“다음… 정하양. 하양아?”
“하양이 화장실 갔어요!”
어느새 하양의 차례가 되었지만, 긴장이 됐는지 화장실을 가고 자리에 없었다.
유지나는 하양을 마지막 차례로 돌린 다음에 다음 사람을 부르기로 했다.
“서나야. 올라갈래?”
유지나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진서나를 불렀다.
서나는 고개를 까닥이며 올라갔다.
“호오.”
직원은 연단에 올라온 서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인이 대다수인지라, 아인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마나관리국의 직원인 그는 아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그 역시 플레이어의 세계에서 아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을 올리렴.”
“…네.”
오히려 그녀의 체내 마나가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경직된 채로 있던 서나는 직원의 호의를 느끼고는 얼굴을 폈다.
여우꼬리를 살랑거리는 그녀가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흠, 이 반은 체내 마나가 상당한 애들이 많군.”
서나는 은혁에 해당하는 정도로 수정구의 절반을 빛으로 뒤덮었다.
“흥, 쟤도 꽤 하는걸.”
은하 옆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은혁은 서나의 체내 마나를 시큰둥하게 평가했다.
“네가 웬일이야.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더니만.”
“대장. 나는 민지가 아니라고. 나보다 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뭐, 그렇지. 그것보다는….”
아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은하는 굳이 뒷말을 꺼내지 않았다. 은혁이 그 말을 듣고 괜히 서나를 의식적으로 대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은하였지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이들 사이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음. 세나야~”
다음 차례는 서나와 이름이 비슷한 진세나.
그녀를 호명하는 유지나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했다.
은하는 다시 관심을 거두었다. 도안초등학교의 유일한 아인인 서나의 체내 마나에 흥미가 있었을 뿐, 다른 아이들의 체내 마나가 어떤지는 관심도 없었다.
사실 4반에 배정되자마자 아이들의 체내 마나를 살피기는 했지만.
물론 눈으로 살펴서는 체내 마나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웠다. 은하는 체외로 흘러나오는 마나를 보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양의 체내 마나가 궁금했다. 눈으로 보기에도 막대한 마나를 흘리고 다니는 그녀가 수정구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이제 하양이만 남았네.”
“선생님! 하양이 저기 와요!”
“그래. 하양아! 이제 마나 측정 좀 해보겠니?”
“네, 네!”
몇몇 여자아이들과 화장실을 다녀온 하양이 허둥거리며 연단에 올라갔다.
“흠.”
직원은 하양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은하는 은혁에게 마나를 가르치는 동시에 민지나 하양에게도 마나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었다.
특히 마나를 다루는 법은 하양에게 필요했다. 지난번 사건처럼 몬스터는 그녀가 흘리는 마나를 탐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양은 전부터 체외로 흘러나오는 마나를 무의식적으로 갈무리하고 있었다. 마나를 다루는 센스가 뛰어났던 그녀는 은하가 알려준 덕분에 마나가 체외로 무분별하게 흘러나오지 않는 중이었다.
그녀의 마나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려면 작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연이은 검사로 피곤했던 직원은 눈을 집중해 그녀의 마나를 파악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정구는 그녀가 감추는 마나까지 측정할 테니까.
“아, 안 아프겠지?”
그리고 하양이 수정구에 손을 올리자,
“…헐.”
대박을 예상했어도 초대박을 예상하지 않았다.
은하는 수정구의 모든 영역을 눈부신 빛으로 메우는 것도 모자라, 강당을 빛의 세계로 도배하는 그녀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꺄악!”
하양은 수정구가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내보내니 깜짝 놀라서 손을 뗐다.
이윽고 수정구에 빛이 약해지는가 했더니,
쩌적
“아….”
수정구에 균열이 가더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앞에 있던 하양은 울기 직전인 얼굴로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수정구가 무너질 줄은.
직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얼굴로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하양과 부서진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엇이 일어난 걸까.
수정구가 부서질 정도로 마나를 견디지 못했다고?
말도 안 된다. 어린 나이에 이만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면 몸이 버티지 못했을 텐데….
“아저씨, 이거 처음부터 고장 난 거 아니에요?”
머릿속에서는 하양을 마나관리국으로 데려가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직원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질 것을 짐작한 은하는 하양이 연단에 올랐을 때부터 근처에 서 있었다. 수정구가 부서지자마자 연단 위로 올라온 그는 하양을 뒤로 감추며 직원에게 말했다.
“고장? 이게 고장이 났다고?”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직원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구가 부서질 만한 마나를 가진 아이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체내 마나가 폭주하여 진작 죽었을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직원이었다. 어느새 직원은 머릿속에서 수정구를 여러 학교에서 사용하느라 과부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아, 그럼 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새 수정구는 없고…. 다음에 할 때 다시….”
“아뇨. 어차피 평균일 텐데요 뭘.”
“음….”
플레이어의 직감으로는 여자아이의 마나를 다시 확인해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가 완강하게 말하니 직원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괜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흠, 평균으로 하지.”
“아저씨가 너 평균이래.”
“정말?”
“응.”
자신의 체내 마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하양은 눈물로 젖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휴우, 다행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마나 폭주를 일으키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제어하고 있었던 한편, 그녀의 아버지 정석훈이 만든 음식을 먹고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는 직원은 은하의 말대로 수정구가 과부하를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나도 미리 얘네 아버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다닐걸.
하양의 체내 마나가 많은 이유에는 분명 정석훈의 요리가 상당수 기여했으리라. 어릴 때부터 포션을 먹으면서 체내 마나를 늘려왔던 셈이다.
내심 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하는 앞으로 하양의 카페에 자주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수정구가 부서진 건에 대해 경위서를 써야 하는 직원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도 수정구가 부서졌었는데. 노… 은아였나? 그래,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긴 했지.”
이전 사례가 있었는지 직원은 하양에게 정밀검사를 권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은하는 이전 사례가 바로 자신의 누나였다는 이야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누나, 수정구가 부서졌다는 이야기는 안 했잖아.”
은아는 학교에서 마나 측정을 했더니 체내 마나가 평균보다 높았다는 이야기만 했었다.
이제 보니 그때 그녀는 부모님에게 혼날까봐 수정구가 부서졌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리 누나, 거짓말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하나 보네.
은아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한 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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