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49
곽우혁.
마나관리기구의 등급평가 기준으로 SSS등급에 속한 플레이어의 인생은 어찌 보면 참 기구했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던 창해클랜이 해체되지만 않았더라면 능히 서브로드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아가 신서영을 대신하여 십이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의 인생은 창해클랜이 해체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가까스로 제2기 십이좌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그를 지지하는 창해클랜은 세상에서 사라졌으며, 그가 새로이 들어간 단군클랜에서는 유독 텃세가 심했다.
그러다 보니 곽우혁은 십이좌로서 자신을 어필하지 못했고, KK클랜의 황산군에게 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단군클랜에 영입된 그는 파티원들의 텃세에 시달렸고, 다음 해에 SAS등급이라는 성적을 받게 되었다.
단군클랜에서는 SBA라는 등급을, 자존심이 떨어지는 등급을 받았고.
빌어먹을 놈들…!
실력도 없는 놈들이….
창해 클랜로드 길성준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던 그는 본인은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독선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텃세가 줄어들었지만, 단군클랜의 사람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독선적인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곽우혁 그의 마음 같아서는 클랜을 나가고 싶었지만, 다른 S급의 클랜에서는 영입의 손길을 내어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단군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다 그의 인생을 전환할 만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캐치 유어 플레이어.
마침 방송에 출연하려던 캐스터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우연찮게 그에게 출연기회가 들어온 것이다.
새내기 플레이어들에 대해 알리는 예능 프로그램.
그러나 새내기 플레이어들에게만 홍보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패널로 참가하는 자신도 대중에게 자신의 실력을 각인시켜준다면 필시 다른 S급 클랜에서 흥미를 가지고 접근해오리라.
“어? 곽우혁 플레이어?”
단군클랜에게 자신이 나가겠다고 뜻을 강하게 고집한 그는 그리하여 촬영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아카데미 교관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신서영과 오랜만에 재회를 가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
“여기 오면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이네요. 은퇴하고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썩 좋아 보이네요.”
비꼬는 듯한 말투.
신서영은 곽우혁을 만난 반가움은 아주 잠시, 눈매를 가늘게 떠서는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패널로 나온다는 사람이 곽우혁 플레이어였구나. 나오면 말을 하지.”
“말을 하면 뭐해요? 같이 밥이나 먹자고 그러려고 했습니까?”
곽우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생각으로, 솔직히 따지자면 창해클랜을 해체하게 된 배경에는 신서영이 중심에 있었다.
저 혼자 잘난 것처럼 유세를 떨던 창해클랜의 서브로드 신서영.
그녀만 아니었더라면 자신의 삶은 순탄대로를 걷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곽우혁의 발언은 자연히 거칠어졌다.
“아니. 내가 너하고 밥을 왜 먹니? 네가 나오는 거였으면 제작진한테 나 안 나올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 “…뭐, 뭐요?”
“까불지 마렴. 이제 너하고 내가 아무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네 밑으로 보이니?” “…….”
창해클랜을 S급으로 올린 공신이자 십이좌의 일좌를 차지했던 그녀의 기백은 어디를 가지 않았다.
오히려 플레이어로서 실력은 다소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의정부에서 단신으로 몬스터 군세를 막은 만큼 그만한 위압을 지니게 되었다.
곽우혁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또각 하고 굽을 밟는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눈동자 속에 형용할 수 없는 기백을 느끼고.
마치 천년 묵은 구렁이를 보는 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승천할 듯한 용을 대면한 감각이었다.
“─부탁인데.”
그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경고였지.
“우리 촬영만 조용히 끝낸 다음에 조용히 헤어지자. 너 얼굴을 보면 자꾸 길성준 그 새끼 얼굴도 덩달아 생각나니까.”
약간 억울한 면도 있었지만.
곽우혁은 으름장을 놓는 그녀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그녀를 욕했다.
제길, 이제는 싸우면 나한테 발릴 사람인 주제에….
쫄면 어떡하냐, 이 멍청아.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확 차 버린 그는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제작진이 부탁한 것이다.
새내기 딜러들의 실력을 확인할, 동시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만한 미션을 만들어 달라고.
내 마법 실력을 보여주지.
이 왜 이라 불리는지 시청자들에게 내 진면모를 똑똑히 보여주마.
조금 전에는 새내기 서포터를 위한 미션을 만들고 온 참이었다.
도중에 트랩을 설치하다가 누군가자신이 풀어놓은 뱀을 밟아서 그만 정신을 잃기는 했지만.
마나를 통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뱀을 만들 줄 아는 은 그가 소환한 뱀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서영, 그년 제자가 노은아라고 했던가?
내가 네 제자 골탕 좀 먹이려고 미션에 아주 힘을 들였단 말이야. 아카데미 학생이 어찌할 수 없는 걸 걔가 아무리 잘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곽우혁은 콧방귀를 끼었다.
여하튼 그는 주변 지리를 조사하려 마나로 만들어낸 뱀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쿨럭!”
곽우혁은 캐스팅을 이어가던 도중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대체 어떤 새끼가….
누군가가 자신의 뱀을 죽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조금 전 자신의 뱀을 죽인 인물과 동일인물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손톱에 흙이 들어가도록 힘을 준 곽우혁은 연결이 끊긴 뱀이 보내온 영상을 되새겼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
어긋난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뱀을 지끈 지르밟던 소년.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소년은 뱀을 지르밟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미친놈이든 말든─.
이런 날에 아카데미에 있다는 건 출연진이라는 소리겠지?
내 눈에 띄면 진짜 가만 안 둔다.
─ 앞에서 기는 것밖에 더하겠는가.
☆
이 자식은 뱀을 어디까지 풀어놓은 거야?
곽우혁이 풀어놓은 뱀은 수련동 근처에도 있었다.
친히 뱀을 밟아 죽인 은하는 이제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민지가 들었다면 귀틀 틀어막았을 음정과 박자로.
중독성이 느껴져야 하는 곡은 새삼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 같은 노래로 탄생한 것이다.
물론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근데 연화 누나는 왜 부른 거지?
수련동으로 들어온 은하는 사전에 연화가 톡으로 보낸 내용에 따라서 수련실을 찾았다.
피곤해서 잠이나 마저 자려 했더니 연화가 잠시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톡을 보냈던 것이다.
휘릭
은하는 류연화가 수련을 하고 있는 수련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공기가 갈라지면서 발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
그러나 그녀는 수련실 중심부에서 자신의 키에 버금가는 창을 쥐고서 스텝을 밟고 있었다.
“…….”
아니, 춤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녀가 창을 쥐고서 펼치는 동작은 어디까지나 기본동작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절도 있게 연결해가며 그녀만의 스타일로 체화하고 있었다.
연푸른 긴 머리칼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 휘날렸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햇빛을 머금은 창날
은 예리한 빛을 발하며 궤적을 그려나갔다.
그녀가 행하는 모든 동작이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엮어지는 모습.
창이 아닌 검을 사용하는 은하도 매료되는 장면이었다.
…역시 류연화야.
류연화.
공방일체에서 최강자로 정평 났던 그녀는 점점 회귀 전의 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있으면.
그녀는 필시 세대교체도 되기 전에 이 나라 최강자로 불리게 되리라.
그럼에도 회귀 전과 다른 점 또한 있었으니─.
“─아, 은하야.”
회귀 전의 류연화는 이런 식으로 친근함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잘 벼린 창이었지만, 이번 삶에서 그녀는 예리함 속에서 ‘류연화’라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나도 촬영하는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서 훈련을 하고 있던 거예요?”
“지금 촬영 중이야.” “네?”
그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그는 곧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제 보니 스태프 몇몇이 구석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은하는 아차 싶었다.
“이거…, 저 때문에 다시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을걸? 내가 도중에 그만둔 거였으니까. 괜찮죠?”
류연화가 스태프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태프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예요? 지금 땀이 많이 나는데….”
“이거 땀 아니야.”
“네?”
“분무기 물이야. 고마워.”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는 그녀의 가방에서 꺼낸 수건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녀의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눈가에 맺힌 땀은 햇빛에 반짝였고,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녀는 땀을 흘린 게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하긴, 이 누나가 땀을 잘 흘리는 사람은 아니지.
은하는 금세 수긍했다.
류연화는 기프트 로 인해 더위나 추위를 잘 타지 않았으며, 땀도 그다지 흘리지 않았다.
땀을 흘리더라도 로 금세 몸을 달구는 열을 식혔으니.
“그럼 분무기 물은 왜 뿌리고 있던 거예요?”
“그게…. 이번에 우리 홍보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나는 수련을 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로 했거든.”
“아, 그렇구나.”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은아도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드느라 콘셉트 촬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자신을 어째서 부른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나 혼자 찍으려고 하니까 자꾸 긴장이 돼서….” “…아….”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연화.
그제야 은하는 그녀가 카메라 앞에 혼자 서면 얼굴 표정이 굳는다는 걸 깨달았다.
방송으로도 나오지 않았던가.
은아가 곁에서 떠나자마자 연화가 쭈뼛쭈뼛 서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모습이.
카메라를 들이밀어 인터뷰를 하자 얼굴에서 표정이 싹 사라지는 것을.
덕분에 그녀가 방송을 통해 얻은 별명이 기프트 를 차용해서 류빙화였다.
애칭으로는 빙화 혹은 빙하라고.
그래도 창을 휘두를 때에는 얼굴이 빙하는 아니었는데….
그러나 그녀는 창을 휘두를 때는 자신과 주위를 분리하는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다.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
굳이 이유를 캐묻고 싶지 않았기에 은하는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평소대로 대련을 하면 되는 일인 거죠?”
“응.”
디바이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다행히 스태프들이 촬영에 쓰이는 디바이스 몇 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디바이스의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라 대련을 하는 것이어서 은하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휘두르기에 알맞은 길이의 검을 고른 그는 스태프들의 주의를 새겨들었다.
되도록 연화가 카메라를 등지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런데 학생…, 몇 학년이에요?” “그건 왜요?”
“아니, 그냥…. 좀 어려 보여서요.”
“중등아카데미 2학년이에요.”
“고등아카데미 2학년이라고요?”
“중등아카데미 2학년이라고요.”
“”””…….””””
스태프들은 그의 신상을 확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 중에 으뜸으로 통하는 그녀의 대련상대가 고작 중등아카데미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스태프들을 뒤로 하며 대련장으로 나아갔다.
“한 판?”
“한 판.”
이제는 아침마다 대련을 할 때마다 습관처럼 주고받는 대화.
은하가 키득거리며 검을 겨눴다.
그녀도 창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공간에 드리운 햇살을 받은 그녀의 주변에는 먼지 입자가 나풀거리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가 문득 아름답다는 생각을 품을 무렵─.
─한매류
은빛바람
류연화는 시작부터 거침이 없었다.
조명이 필요 없을 것 같던 세상은 거짓말처럼 얼음 알갱이로 뒤덮이고 창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만 낭랑히 울렸다.
☆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카메라만 보면 얼음장 같은 얼굴을 지우지 못하던 류연화가 대련상대로 지목한 사람이 고작 중등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기에.
방송으로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PD는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을 계속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편견은 두 사람이 대련을 시작하며 처참히 깨져나갔다.
“…야, 쟤 누구야.”
“저도 모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전 인터뷰라도 할 걸….”
“아까 중등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라 그랬었지? 사람 하나 시켜서 얼른 중등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노은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와, 당장.”
PD는 으름장을 놓으며 두 사람의 대련에 집중했다.
고작 중등아카데미 2학년 학생이 아카데미와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류연화와 자웅을 겨루는 모습은 과히 충격이었다.
아카데미에 저런 사람이 있었건만, 그런 것도 조사하지 않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에서 이 장면을 어떤 식으로 편집할 것인지 열렬히 생각하고 있었다.
“노은아의 동생이랍니다.” “은아? 은아한테 동생이 있었어?”
그러다 조금 전에 은아와 은하가 촬영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PD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류연화와 대등한 실력을 지녔고, 노은아의 남동생이라는 위치.
화제가 되기 충분한 인재였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인지 메인 작가한테서 연락이 오기까지 했다.
이대로 촬영만 하고 끝낼 거냐고.
“…누가 지금 회의실로 뛰어가서 출연 계약서 한 장 프린트해 와.”
촬영 한 번으로는 섭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은하가 있는 걸로 연화의 표정도 저리 예쁘게 나오니 적어도 오늘 하루는 붙잡아둬야만 했다.
게스트든 패널이든.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은하에게 출연을 제의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화면 죽이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액션 영화 한 편 나오겠는데요?”
한편, 스태프들이 계속 넋을 잃고 두 사람의 대련을 쳐다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주위의 시선도 잊은 채 대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