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64
종평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밤에 늦게까지 놀았던 이들은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는 짐을 챙겼다.
비조봉 정상으로 올라, 5일에 걸친 종평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힘들지만 재미있기도 했는데….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시원섭섭하네.
민지는 문득 자신이 챙기고 있던 짐을 내려다보았다.
덕적도에 도착한 첫날만 하더라도 짊어지고 가기 힘들 만큼 빵빵했던 가방은 어느새 홀쭉해져 있었다.
대신 그녀는 부피가 줄어든 만큼 삶의 보람을 얻었다.
그동안 무언가를 잃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텅 비어 있던 곳에 무언가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이럴 수 있으면 좋겠어.
살아 있다는 실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충족감.
무엇보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개개인이 하나의 흐름이 돼 서로를 보완해주는 일체감.
그녀는 파티원들과 정상을 오르며 이 섬에서 있었던 일을 돌아보았다.
자신은 섬에 도착하기 전과 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뭐할 거야?”
“밥부터 먹을 거야. 그리고 잘래.”
“리더로서 마지막으로 말하겠는데, 돌아가는 대로 씻어라, 좀.”
“음…, 나는 부모님이랑 할아버지한테 전화하려고. 다들 걱정하고 계실 거야.”
정상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
은우가 활기 찬 얼굴로 물었다.
민지는 그 말을 듣고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민지 너는?”
“…….”
길이 있었다, 갈림길이.
그동안 자신은 이 길 앞에 멈춰, 줄곧 무거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두 길에 굳이 수식어를 붙인다면.
하나는 이상적인 길이었고.
하나는 현실적인 길이었다.
자신은 여태껏 이상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빛나고 싶었다.
반짝이고 싶었다.
은하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 전투 대비. 산 아래에서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몬스터들이 감지되고 있어. 파랑 오빠는 얼른 다른 파티에 알려줘!”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정하양! 몬스터들의 수는 얼마나 돼!?”
“약 30…. 아무래도 은하네 파티가 몬스터를 유인하고 있는 것 같아.”
“하…, 노은하 이 자식.”
“음…, 그럼 위험한 거는 아니지? 은하가 은하한 거잖아.”
몬스터 무리의 갑작스런 출몰.
그럼에도 파티는 경계하기 보다는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양이 은하의 존재를 언급했기에.
때마침 서나가 텔레파시를 보내서 산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황을 알렸기 때문이다.
파이어볼
그리고 잠시 후.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아래에서, 길도 아닌 부근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하늘로 솟구친 불꽃이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불기둥이 사라졌을 때, 불이 붙은 몬스터들이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뒤이어 그들을 추격하듯 뛰어나온 이들이 있었으니─.
“─배수빈! 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제발 불을 지를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달라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얘들아, 미안. 이건 내 잘못이야. 내가 전달하는 게 한 박자 늦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한 사람은 배수빈이지.” “뭐? 이년이!”
“왜, 쌍년아.”
은하의 파티에서 몰골이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뭇거뭇한 걸 얼굴에 묻힌 은혁은 몬스터를 칼로 찌른 다음에 제대로 생사도 확인하지 않고 곧장 또 다른 몬스터를 죽여 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몬스터들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었다.
거대한 활을 쥔 카에데의 움직임은 기상천외했다.
그녀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어느새 나무 위로 뛰어올라서는, 그러다가 다시 지면 위를 내달려서는 화살을 쏘아댔다.
그런 그녀와 투덕거리는 배수빈. 수빈은 이내 흥 소리를 하고 나서는 두 사람을 보조하는데 집중했다.
살상력이 높은 마법이 떨어지면서 강대한 몬스터가 죽거나 약해지고, 무리가 주춤했다.
“…와우….”
“…미친놈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파랑과 민호가 정신을 차리고 신음했다.
파랑은 푸른 늑대 귀를 바짝 세워 그들이 벌이는 전투에 열중했으며, 민호는 질린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다른 학생들 역시 반응은 대다수가 비슷했다.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고.
기겁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거 도준이 아니니?” “…도준이 맞는 것 같아.”
한편, 은하의 파티원들이 분주하게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있는 가운데.
텔레파시로 상황을 지시하는 듯한 서나의 곁에서 유도준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준은 허리를 곱게 피는 일 없이, 마치 프랑스의 유명화가가 그려낸 이삭 줍는 사람들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었다.
마석이었다.
눈이 좋은 이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은우는 얼떨떨한 얼굴을 했으며, 하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민지의 눈에는─.
“─이건 아직 은혁이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야. 그래도 잘 막았어.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
은하의 지시를 받으면서 움직이는 파티원들이 빛나 보였다.
다른 학생들이 무시하려고 한들, 그들의 존재감은 감출 수 없었다.
저들이 아무리 꾀죄죄하다고 해도, 그들은 지금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길이 있었다, 갈림길이.
그녀는 이제 선택하기로 했다.
─나답게 살래.
나는 못 따라가.
김민지는 끝내 인정했다.
자신과 저들은 다르다는 것을.
자신은 저렇게까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보강하는 플레이는 자신하고 맞지 않았다.
맞지도 못했고.
자신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삶이, 밝게 빛나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저 애들처럼 강하지 않은걸.
김민지는 냉정하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압박감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몸이 가뿐해지고,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한때 재능의 벽에 직면했던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벽을 넘어섰다.
자신은 더는 강해지지 못하리라.
대신 자신은 이제 노련해지리라.
어떤 의미에서 그건 강해지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비록 저들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빛나는 거는 빛나는 거기는 한데, 그래도 저렇게는 못 살지….
동시에 민지는 체념하고 포기했다.
솔직히 그녀는 자신이 꿈꿨던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그것을 행하는 게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절감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고행은 결국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렇게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따라갈 수도 없겠지만.
“아…, 후련해.”
포기하니 허전했다.
인정하니 후련했다.
허전하기에 후련한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체념이라고 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퇴보한 것도 아닌데.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는 것처럼 꿈을 잃었기에 새로운 꿈을 꿈꾼다. 이상을 잃었기에 현실을 직시한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민지는 그것이 잘못된 삶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씁쓸할 뿐, 과거가.
다만 기대될 뿐, 미래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래.
그러니까…, 너희들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
이윽고 민지는 자신의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이들과 파티를 해서 즐거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역시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들도 언젠가 노은하의 파티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밖에 못하리라.
…쓸쓸해지겠네.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저들에게 저들의 길이 있듯 자신에게 자신의 길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아주 운이 좋으면.
자신의 길과 저들의 길이 언젠가 교차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다시 서로를 대등하게 마주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떠나보낸 날을 추억하는 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는 날이.
아, 인생….
인생이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때를 고대하며.
민지는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어른이 되었다.
☆
잠을 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잠을 덜 잤을 뿐.
은하는 파티원이 한 명씩 교대하며 잠을 자게 했다.
친구들의 원성을 듣기는 했지만, 은하가 틈만 나면 리틀 비들이 사는 벌집을 건드렸기에 그들로서는 결국 몬스터와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유도준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 너어어는 지이인짜…!!”
물론, 파티원들이 노예가 아니고서 그의 말을 곱게 따랐을 리 없었다.
급기야 더 이상 참지 못한 이들이 한밤중에 반란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미쳐 버린 사람은 바로 배수빈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기는 했어.
은하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했다.
자신이 진심을 다하지 않았더라도, 고삐가 풀릴 대로 풀린 그녀의 힘을 막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배수빈이 은하를 향해서 파이어볼을 날린 순간, 파티원들이 그때를 기점으로 달려들었다.
험한 꼴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은혁까지 검을 들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밍이 이상해.
배수빈이 날뛴 것은 그렇다 쳐도,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합을 맞춘 듯이 나를 공격한 거지?
그러다 보니 날은 금세 밝았다.
은하는 비조봉 정상이 거의 얼마 남지 않은 부근에서 전투를 벌이는 파티원들을 바라보았다.
한 번 기절했다가 깨어난 수빈은 카에데와 말싸움을 나누면서 전위를 보조하고 있었다.
어제 자신과 검을 겨누었다가 당한 은혁은 전보다 매끄러운 동작으로 비탈길을 구르고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영 수상하다는 말이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기분 탓이겠지.” “흠….”
“너 원래 찍는 거 못하잖아.” “아니, 나 엄청 잘하는데?”
“그럼 증거 있어?”
그는 자신의 옆에서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서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서나는 죄를 지지 않았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서는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과연 이 여우의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얘가 분명해.
아니, 얘밖에 없어.
은하는 거의 확신했다.
지난밤에 일어난 파티원의 반란은 서나가 지시한 것이라고.
그녀가 자신 몰래 텔레파시를 써서 파티원들과 작당을 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서나에게는 그만한 벌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뭐, 됐어.
그만큼 서나 얘가 이번에 얻은 게 많다는 뜻일 테니까.
그는 짐짓 모르는 척하는 그녀에게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반기를 들려고 했던 것이 아닌 이상.
지금으로서는 그녀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쁘게 여겨야 마땅했다.
여우는 늑대와 달랐다.
[야!! 나도 끼워줘! 나도 갈까!?]정상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푸른 늑대가 절대 굴복하지 않는 개라고 한다면.
자신의 옆에 있는 이 노란 여우는 아무리 교활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주인에게 반기를 들려고 하지 않는 개라고 할 수 있겠다.
서나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자신이 그녀를 지켜주는 한.
그리고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넌 내꺼거든.
진파랑은 당연한 것이고.
서나는 회귀 전 그가 필요로 하던 인재, 텔레파시스트였다.
“…너 지금 나한테 뭐 했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기분 탓이겠지.”
“아니야. 이건 기분 탓이 아니야. 나 지금 소름 돋았다구. 뭐 했지?”
“아닌데. 증거 있어?”
그때 느닷없이 양 팔을 쓸어내리고 은하를 째릿 노려보는 진서나.
은하는 관심법이 극에 달한 듯한 여우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수빈과 은혁, 카에데가 깔끔히 정리한 길을 걸었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
아카데미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쏟아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꼴찌인가 보네.”
“…그래, 너희가 꼴찌다.”
학생들은 자신을 향해 형용할 수 없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은하는 경외감이 어린 듯한 시선을 무덤덤하게 넘기며 목민호에게 눈을 향했다.
목민호가 떨떠름함 얼굴을 한 채 투덜거렸다.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라며.
“걱정 마. 너도 언젠가 은혁이처럼 저렇게 될 텐데 뭘.”
“…….”
은하가 그 말을 남긴 순간.
정론을 늘어놓던 목민호는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을 한 그는 더 이상 은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은하야! 도준이가 쓰러졌어!]“차은우!” “응, 알았어!”
후방에서 들려온 텔레파시.
은하는 유도준이 쓰러졌다는 말에 차은우의 이름을 불렀다.
때마침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던 은우가 파랑을 데리고는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다.
은하도 고개를 돌려보니 유도준이 정상을 몇 걸음 남기
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생하기는 했지.
하양과 눈을 마주친 은하도 이내 그녀와 함께 유도준에게 다가갔다.
유도준도 종평 내내 고생을 했다.
그는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석을 주워 담는 역할을 했다.
마지막 날에는 밤중에 숲을 뒤지며 마석을 주워 담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야, 은하야.”
“어, 말해봐.”
은우의 치료를 받는 유도준.
도준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나쳐서는 은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은하는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손톱에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영원그룹의 직계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었다.
“…나 죽는 거 아니지?”
“…너 죽는 거 아니거든?”
“내가…, 내가 이 지경이 돼서야 깨달은 게 있어.”
유도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반면 그의 눈은 열망이 어려 있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 이대로 절대 못 죽는다. 꼭, 반드시 살아서 다 거머쥘 거야.”
“어…, 그래야지.”
무슨 당연한 소리를.
은하는 얼떨떨해하며 주억거렸다.
그러나 쓰러질 정도로 고생을 한 그는 이제 죽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 모양이었다.
눈이 독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하자.”
독기를 열망으로.
영원그룹의 왕좌에 앉기로 결심한 유도준이 끊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말을 이었다
“─나 다시는 버스 안 탈래.”
“어…, 그래, 미안하다.”
유도준이 기절했다.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불렀던 이유가 그걸 말하기 위해서였다니.
“흐어어어어엉…! 드디어, 드디어 다 끝났어! 이제 집에 간다!!”
“나는 이제 자유다!!”
한편, 은하는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정상에서 최은혁이 무릎을 꿇고는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배수빈은 두 팔을 들어서는 드디어 노은하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외치고 있었다.
“…후우….”
그들과 다르게.
호시미야 카에데는 저 멀리 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눈을 감고서 고개를 올린 그녀가 활을 높이 치켜들었다.
화살이 없는 국궁.
그러나 그녀가 시위를 잡아당기자 마나로 이뤄진 화살이 활에 걸렸다.
호시미야 카에데는 꼭 스트레스를 발산하려는 것처럼 상공을 향하여 화살을 미친 듯이 날렸다.
그러고는 체내 마나를 방전하고는 풀밭에 털썩 몸을 뉘였다.
영리해.
잘 기억하고 있네.
영리했다.
은하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데는 혹시라도 자신이 무언가 명령을 내릴까 사전에 체내 마나를 모두 소진한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자신은 결코 건드리지 않았으니.
5일이라는 시간이 그녀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길들여졌다.
그에 비해서─.
─쟤네는 저러다 고생하는 거지.
은하는 혀를 끌끌 차며 상대적으로 덜 영리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잘 거야!”
“…고기. 소고기를 먹어야겠어.”
그럼에도 고생을 했으니 이번에는 봐주기로 했다.
“으이구, 넌 정말 사람도 아니야.”
“왜 이래. 나도 졸립거든?”
은하도 오랜만에 고생을 했다.
파티원들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항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던 그는 정신적으로 피로해 있었다.
그때 민지가 팔짱을 낀 채로 와서 핀잔을 주었다.
은하는 가볍게 대꾸했다.
애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
따지고 보면 이번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이 처음으로 사귀게 된 친구.
친구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녀의 기분이 지금 어떤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은하는 그녀가 이전처럼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습에 누그러졌다.
“야, 너 거기 앉아 봐.”
“뭐? 갑자기 왜?” “헬기 타고 인천으로 돌아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 아니야.”
“그래서?”
“그때까지 눈 좀 붙이게.”
은하는 풀밭에 민지를 앉혔다.
그러고 자신도 앉아서 그녀의 등에 등을 기댔다.
두 다리를 쫙 피고 앉으니 슬슬 피로가 몰려왔다.
“하…, 너 진짜….”
“몰라, 나머지는 너한테 맡길게.”
“에휴…, 그래, 자라, 자.”
끝내 민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에게 등을 내주었다.
즐거운 웃음을 터뜨린 민지는 점점 가까워지는 프로펠러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맞았다.
“…야, 근데 너 냄새나는데.” “넌 냄새 안 나냐?” “그래도 너보다는 덜 나거든?”
“시끄럽다. 잠이나 자자.” “에휴…, 내가 못 살아. 너는 정말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뭐래.”
은하는 콧방귀를 끼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으니까.
리라이프 플레이어 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