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66
눈꽃요정이 서울에 나타났다.
놈들은 편재에 영향을 미쳤다.
하여, 마나관리기구의 지시를 받은 플레이어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편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어, 엄마….”
하지만 그들이 서울에서 일어나는 편재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다.
편재는 갑자기 일어나는 법이었고, 때로는 예측치도 못하게 일어나는 법이었다.
끼에에에엑!
양천구 목동의 어느 학원 건물.
화장실에서 출몰한 고블린은 곧장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던 학생을 물어뜯었다.
입가에 피를 흥건히 묻히고 나온 고블린은 주변에 있던 이들을 보고 히죽 입가를 끌어올렸다.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문을 잠그는 거야!”
고블린의 출몰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래층에서 비명이 들리나 싶더니 갑자기 몬스터들이 아래층에서부터 튀어나온 것이다.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이 패닉에 빠진 것은 당연지사.
“올라가! 울지 말고 어서!”
그럼에도 아직 정신을 놓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얼이 빠진 사람들을 달래며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편재가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몬스터들이 얼마나 출몰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데 힘썼다.
옥상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면 플레이어들이 나타나리라.
그러니─.
“성진이 너부터 올라가!”
“넌 어쩌려고!”
“나도 금방 뒤따라갈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
[─목동 인근 학원가에서 제7위계 고블린을 비롯해 상당수의 몬스터가 출몰했습니다. 마나관리기구에서는 3층 남자화장실을 시작으로 주변에 편재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중이며….한편, 모 학원의 학생이 몬스터를 막아내는 도중에 중상을 입고 현재 중환자실에서 의식불….]
눈꽃요정은 존재감이 워낙 작아서 가까이 있지 않는 이상 감지망에도 잘 걸리지 않는 몬스터였다.
그러다 보니 눈꽃요정으로 인하여 서울 곳곳에 편재가 연일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해가 바뀌었건만.
서울에 사는 이들은 눈을 치우느라 새해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키가 좀 큰 것 같은데….”
“허, 은하 네가 아무리 키가 커도 아직 아빠를 넘어서기는 일렀다.”
선력 11년, 은하는 16세가 되었다. 나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서본 그는 이제 165를 조금 넘는 듯한 모습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서 자칭 180이라고 말하는 아버지가 험상궂은 얼굴로 크하하 웃고 있었다.
은하가 보기에 180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덩치가 있어서 괜히 키가 더 크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까 지각이라 하지 않았어? 일, 안 나가도 돼?”
“…아빠 출근할게. 은애야, 휴일에 출근하는 아빠한테 볼에 뽀뽀….”
“아빠! 잘 다녀오세요!”
“…오냐.”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눈꽃요정이 바람을 타고 북한산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편재도 서서히 줄어들게 될 터.
여하튼 눈꽃요정이 서울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은하는 집을 나섰다.
하, 내 팔자야.
올해도 고생하겠네.
오늘도 눈이 내렸다.
눈 오는 날에 북한산을 찾는 이는 아마도 자신밖에 없으리라.
은하는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결국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래를 바꾸겠다고 다짐했기에.
망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기에.
“…이쯤이면 적당하려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산에 도착하고도 산 속 깊숙이 발을 내민 은하는 입김을 내뱉으며 읊조렸다.
도처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 사람의 발걸음은 없었으며, 간간이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만이 듬성듬성 찍혀 있을 뿐이었다.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은하는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미하게 마나가 느껴졌다.
눈꽃요정들이 여기 가까이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오래 걸려도 좋으니까 제발 많이 좀 모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은하는 홀스터에서 병을 꺼냈다.
평범한 병이 아니었다.
전에 지하시장에서 구매한 재료로 벽해수에게 제작을 의뢰했던 병.
병 안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제7위계 코프스 네펜테스의 꿀.
마나가 농축된 꿀은 몬스터들이 군침을 삼킬 만한 것이었다.
퐁
은하는 마개를 땄다.
마나가 청정한 지대에서 자생하는 노송나무로 만든 마개는 꿀 성분을 숙성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제5위계 이프리트의 불씨를 넣고, 제7위계 별무늬 대왕조개의 진주를 갈아 만든 병은 꿀의 성분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원천봉쇄했고.
그렇기에 은하가 병을 따는 순간, 농후함이 느껴지는 달콤함이 밖으로 퍼져 나왔다.
몇 달 동안이나 숙성시킨 성분은 눈에 아른 거릴 정도로 빛이 났다.
자, 와라.
은하는 안개가 병 주변을 맴돌자, 들고 있던 병을 눈 위에 두었다.
눈꽃요정은 겁이 많았기에.
그는 하늘을 떠다니고 있을 놈들이 꿀 냄새를 맡고 모습을 드러내게끔 거리를 벌렸다.
나무 뒤에서 대기했다.
…왔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 간간이 내리는 눈 사이로 반딧불이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하나둘 내려왔다.
조그만 광채로만 보이는 몬스터는 눈꽃요정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쟤네가 너무 작아 안 보이는 거지, 실상은 벌레처럼 생겼는데, 뭘.
슬프게도 둥그스름한 광채 속에는 흉물스럽게 생긴 벌레가 있었다.
그것이 눈꽃요정의 정체였다.
그는 놈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아 계속해서 모이는 놈들을 관측했다.
병 속에 들어가 꿀을 맛본 놈들은 배를 채운 다음 하늘로 올라가고, 다른 놈들이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가 꿀을 맛보았다.
“대체 누가 눈꽃요정의 정수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네.”
눈꽃요정은 꿀을 맛보고 부산물로 놈들이 두른 빛처럼 반짝이는 물을 배출했다.
‘배출’이란 표현은 틀리지 않았다.
아름답게 보이는 물은 안타깝게도 눈꽃요정의 정수라고 불리었지만, 실상은 놈들의 배설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놈들의 배설물은 놀랍게도 엘릭서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하여튼 힘들었다.”
어느새 병 안에는 황금색의 꿀과 빛이 나는 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은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동안 눈꽃요정의 정수를 얻으려고 노력을 했던 자신을 칭찬했다.
눈꽃요정은 쉽게 관측할 수가 없는 몬스터였으며, 환경에 예민했다.
무엇보다 눈꽃요정의 정수를 담을 병을 만드는 게 워낙 힘들었다.
고위계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고, 놈들에게 부산물을 얻어야 했기에.
“아무튼 이제 나는─.”
저 병이 눈꽃요정의 정수로 가득 차려면 시간이 걸리리라.
은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이놈들이나 상대해야지, 뭐.”
키에에에에엑─!!
코프스 네펜테스의 꿀은 몬스터를 불러들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꿀 냄새를 맡고 홀린 놈들은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
게다가 눈꽃요정이 흘리는 마나는 편재를 야기하는 효과가 있었고.
“…아주 줄줄이 나타나네.”
당연히 꿀에 취해버린 눈꽃요정은 흥분해서는 더 위험한 편재를 불러 일으켰다.
잇달아 편재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래서 그가 도심에서 눈꽃요정의 정수를 얻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그랬다가는 여러 모로 골치 아파지게 될 거라 생각했기에.
“…생각보다 좀 많네?”
그는 편재 속에서 태어나는 놈들과 속속들이 어딘가에서 출몰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생각해보니 북한산은 귀문지대에 속했다.
눈꽃요정의 정수를 얻는데 몰두해 그만 환경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뒤늦게 자책한 은하는 홀스터에서 베레타를 꺼냈다.
브루노 아저씨랑 같이 올걸.
아무래도 눈이 쌓인 산속에서 홀로 저 몬스터들과 싸워야 할 듯싶었다.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몬스터를.
그만큼 코프스 네펜테스의 꿀이며, 귀문지대의 특성, 눈꽃요정의 특성 세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일어나버린 결과였다.
크르르르르
가릉!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놈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은하는 자신할 수 있었다.
저들은 자신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광무
오히려 잘됐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기에.
은하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미친 듯이 베레타를 쏘았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눈 위로 몬스터들의 피를 흩뿌렸다.
첩첩산중에 울리는 총성은 매섭게 놈들의 숨통을 앗아갔다.
바일런트 베놈
마나 드레인
발자국이 없던 세상에서 발자국이 점점 새겨질수록.
새하얬던 눈밭은 점점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은하는 눈을 맞으며 칼춤을 추었다.
그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숨이 끊긴 몬스터가 입자로 변하며 사라졌다.
그것을 몸에 두른 듯이 활보하는 은하는 어느덧 몬스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은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지망에 걸려드는 모든 몬스터를 죽였다.
기묘하고 신묘하게.
나는 칼춤을 출 테니 너희는─.
검과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
지면이 아닌 허공을 밟는 것 같은 부유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은하는 내심 신바람이 났다.
─마저 똥이나 싸라.
신들린 듯이 몬스터를 죽였다.
☆
“─눈꽃요정의 정수도 완료.”
엘릭서의 재료는 모두 네 가지.
정화의 별, 귀문밀화는 이미 진즉 손에 넣었다.
그리고 눈밭을 피바다로 바꿨을 때 눈꽃요정의 정수마저 손에 넣었다.
“이제 하나만 더 있으면 엘릭서를 만들 수 있겠네.”
어느새 눈이 그쳐 있었다.
눈꽃요정의 정수를 홀스터에 넣은 은하는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대충 주워 담았다.
마석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몬스터들의 숨통을 일격에 끊느라 마석이 있었을 부근을 노렸으니.
어차피 저위계 몬스터의 마석이야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었기에, 그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나머지 하나란 말이야.
그러다 은하는 엘릭서를 구성하는 나머지 하나의 재료를 상기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화의 별은 전생에서 얻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하기 수월했으며, 귀문밀화와 눈꽃요정의 정수는 과거 제조법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달빛의 축복이 문제란 말이지.
은하는 달빛의 축복에 대한 정보는 잘 알지 못했다.
엘릭서에서 가장 핵심이 된다는, 달빛의 축복을 회귀 전에는 본 적이 없었기에.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달빛의 축복은 굉장히 귀했으며,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그러다 보니 사진도 나돌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나마 말로만 들어봤을 뿐이었지.
달빛의 축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은하가 떠올리기로 달빛의 축복은 한밤에 빛을 발하며 피는 영약으로, 꽃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화의 별과 달리 그것은 환경변화에 예민했기 때문에 조금만 환경이 변화해도 말라비틀어진다고.
그렇기에 어디에서 피는지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번 이전 삶을 산 은하는 달빛의 축복의 소재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엘릭서의 재료를 구했던 사람은 온태양이었어.
온태양.
그는 이전 삶에서 처음으로 엘릭서를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동시에 개발해낸 사람이었고.
온태양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낸 은하는 그가 어떻게 달빛의 축복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소재지를 모르는 이상, 온태양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있었다.
결론은─.
“─최가인에게 있다는 건데….”
참으로 착잡한 결론.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전 삶에서 온태양은 최가인과 약혼을 맺었고, 우연히도 그녀가 가지고 있던 꽃이 엘릭서의 마지막 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태양도 또한 마지막에는 기연에 의지해버린 것이다.
그동안 모아왔던 재료가 우연히도 엘릭서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분명 기연이기는 했지만.
최가인에게는 이용가치가 있어.
그리고 이전 삶에서 그가 사용했던 기연을 이번에는 자신이 차지한다.
다시 말해, 최가인이 가지고 있을 달빛의 축복을 손에 넣는다.
정확히 말하면 최가인이 언젠가, 어디선가 얻게 ‘될’ 달빛의 축복을 선수를 쳐서 손에 넣어야 했다.
그것이 최가인을 살려둔 이유였다. 그녀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이상에는 그녀를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달빛의 축복을 얻겠다고 내가 미쳤다고 걔랑 약혼을 하냐.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생각한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애초 그녀는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그대로 버리는 패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갤럭시그룹과 연을 맺으면 하백련을 지켜낼 수가 없었다.
갤럭시그룹은 굴복시켜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자신이 복속될 게 아니라.
“…결국 달빛의 축복은 고등아카데미에 들어갈 때까지 못 찾겠네.”
은하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었다.
북한산을 빠져나왔을 때쯤 그제야 전파장애가 해결되었다.
톡이 뭐 이리 많이 왔어?
파인톡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보나마나 친구들이 시답잖은 대화를 나눈 것이리라.
그 예상은 반은 맞았고─.
“…….“
─반은 틀렸다.
「마방진」: 안녕하세요. 방진이 아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오후 03:03)
마방진이 죽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