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70
벌써부터 함성이 들렸다.
연마다 종합부문대회가 진행되는 무대로 나아가던 은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대련을 보러온 것인지.
은하는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싸움이 뭐 그리 재미있다고.
졸업식 대련은 어디까지나 단순히 졸업을 기념하는 대회일 뿐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이 크게 주목할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류연화의 대련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해도.
게다가 류연화의 클랜 영입은 이미 레귤러스클랜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조금 전에 친구들이 보낸 톡을 보니 객석에는 정평이 나 있는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화 누나를 보러온 건가?
호기심도 잠시.
은하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마치 어두운 복도와 대비되는 듯이 눈부신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로 발을 내딛었다.
“…….”
천장에서 내리쬐는 조명보다도 더.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존재가 은하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곧 시선을 내린 은하는 대련장에 먼저 도착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눈을 향했다.
기백이 장난 아니네.
마치 푸르른 수국을 연상케 하는, 한 갈래로 묶은 머리칼.
불순물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얼음결정처럼 새하얀 피부.
호리호리해 보이는 그녀는 그러나 너무나 쉽게 꺾여 버릴 것만 같은 여성은 자신의 키만한 창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근력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녀, 류연화는 그곳에 선 것만으로 절로 주눅이 들 만한 기백을 발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방금 왔어.”
그러나 은하는 기죽지 않았다.
그녀의 기색이 평소와 다르더라도.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서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그가 그녀의 앞에 섰을 때, 객석에 있던 이들이 크게 환호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무시했다.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했을 뿐.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요?”
“응.”
연화가 대련을 제의했던 그날부터 두 사람은 아침 수련도 포기하고, 가급적 대련을 피했다.
오직 이날을 위해서.
그녀는 그동안 전력을 다하여 그와 대련을 벌이고 싶었던 것이다.
은하는 그녀의 마음가짐이 똑똑히 느껴졌다.
“한 판?”
“한 판.”
그럼에도 두 사람은 늘 그랬던 듯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두 사람이 냅다 무기를 뽑았다.
한매류
은빛바람
그녀는 시작부터 거침이 없었다.
등 뒤에서 순식간에 정면으로 꺼낸 창에 휘감긴 마나가 산개하는 듯이 찢어졌다.
푸르른 마나는 얼음 알갱이로 변해 순식간에 거센 폭풍이 되었다.
그리고 폭풍 속에서 은밀히 움직인 창이 은빛 선을 그으며─.
─마나 크래셔
그러나 그녀가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듯.
은하 역시 검은 가시나무에 담은 마나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그 순간, 폭풍이 서서히 그쳤다.
“”…….””
하지만 폭풍이 그친 뒤에 오는 건 또 한 번의 폭풍이요.
폭풍 전에는 고요한 법이었으니.
한매류(寒梅流)
빙판길
천보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둘은 즉시 발을 놀렸다.
은하는 뒤로 재빠르게 물러났으며, 연화는 마나로 만들어낸 얼음길로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한매류
장맛비
조명을 등진 류연화가 힘껏 창을 휘둘렀다.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은 고드름이 셀 수 없이 많이 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나하나가 묵직한 질량을 지니는 광범위 마법.
그는 그것들이 떨어져 내리기 전에 대련장 외곽으로 몸을 날렸다.
허나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련장 전체가 그녀의 사정범위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큭…!!”
처음으로 떨어진 고드름이 깨지며 냉기를 흩뿌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얗게 일렁이는 냉기가 대련장을 가득 메웠으니.
덩달아 시야가 가로막힌 그는 작게 혀를 차며 검을 휘둘렀다.
감에 의지하고 아무 짝에나.
광무
마치 검과 하나가 된 것처럼.
은하는 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검에 의해 부서진 고드름이 깨지며 주변에 냉기를 토해내는 것과 함께 그를 붙잡으려 하였으나.
은하가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의 몸놀림은 더욱 날렵해졌으며 더욱 날카로워졌다.
어느새 그가 체외로 발하는 마나는 날카로운 칼이 된 것처럼 벼려지며 억세게 쏟아지는 얼음비를 부쉈다.
버스트 카운터(Burst Counter)
어느덧 빗줄기가 약해졌을 때.
바닥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은하는 경기장에 감도는 잔재 마나를 향해 붉게 넘실거리는 칼날을 지면에 내리쳤다.
“……!”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터지고.
은하를 중심으로 파문이 퍼지면서, 퍼져나가는 파문에 닿은 잔재마나가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폭발이 폭발을 불러왔다.
대기 중에 녹아들던 마나는 다시 남아 있던 힘을 쥐어짜냈다.
그러나 폭발의 방향은 그가 아닌, 얼음길을 유유히 내려오던 그녀에게 솟구쳤다.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받듯이.
아니, 배로 돌려받듯이.
연쇄폭발이 그녀를 덮쳐들었다.
한매류(寒梅流)
금강(金剛)
대련장 외곽을 두르는 보호마법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귀를 멀게 하는 폭발이 터져나가며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마침내 세상에 빛이 걷혔을 때.
산산조각이 난 바닥 위에는 하나의 구체가 있었다.
몇 겹으로 이루어진 얼음의 구체는 간신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툭
투둑
정말 간신히.
폭발이 조금이라도 더 길었더라면 구체는 완전히 깨져 나갔을 것이다.
…대단하네.
힘없이 스러지는 얼음 알갱이.
보호마법이 부서진 자리에 서 있던 류연화는 여전히 은하를 바라보면서 입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다만 가쁘게 숨을 쉬면서.
그것은 은하도 마찬가지였지만.
한매류─
마나 크래셔
이제부터 2차전이었다.
☆
과연 연화 누나야.
이라 불릴 만해.
은하는 그녀와 검과 창을 부딪치며 생각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법을 직격으로 당하고도 멀쩡했기에.
버스트 카운터.
아티펙트 오만의 반격을 교본으로 그 나름의 방식으로 구성한 마법은 잔재한 마나를 강제로 재활성화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오만의 반격에 미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을 하련만.
그러나 그녀는 체내 마나를 소모해 숨을 헐떡였을 뿐이었다.
감탄과 동시에 한탄이 교차했다.
나도 체내 마나가 많았다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를 단지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라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막상 이런 식으로 전력을 다하여 대련해보니 재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체내 마나가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자신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으면서 광범위 마법을 전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내 마나가 적은 그로서는 버스트 카운터를 전개한 것만으로도 힘이 떨어질 정도였다.
또…!
불행히도 그의 체내 마나는 더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 삶의 자신보다 체내 마나가 다소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좌우 양쪽에서부터 해
일처럼 덮쳐오는 얼음을 마주하고 혀를 찼다.
도망칠 수 없었다.
결국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규격외야.
대체 어떻게 싸우란 거야?
솔직히 은하는 내심 당황했다.
죽여도 되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그는 살인에 적합한 마법을 쓸 수 없었다.
이게 진짜 전투였다면 조금이라도 이런 낌새가 보이기 전에 상대에게 칼을 찔러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정당당한 대련이었기에 그는 정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예전에 강현철 그놈이랑 싸울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류연화의 가 너무나 성가셨다.
발현하는 순간 얼음으로 변화하는 기프트는 쓰임새가 아주 다양했다.
얼음이란 날카로운 무기가 되면서 상대를 사로잡는 구속구가 되기도 했으니까.
발현될 때마다 부가적으로 주변에 냉기가 일렁거리기까지 하니 더욱.
류연화는 자신의 기프트를 이용해 공방을 자유로이 전환하는 한편으로 광범위 공격을 가해왔다.
또한 은하가 가까스로 마법을 뚫고 고난을 벗어나는 순간─.
챙
─냉기 속에 숨어 있던 류연화가 바로 가까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광범위 공격에 치중한 사람들은 근거리 공격에 취약하기 마련인데, 그녀에게는 약점이랄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난이도로는 몇 년 전 이탈리아의 트레디치 젠코 마이론을 쓰러뜨린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비져블 트래커
리볼버 쏜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류연화에게 비겁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순수하게 창술을 단련해온 그녀는 은하가 이전 삶에서 살기 위해 익힌 전투기술에 빈틈을 드러내곤 했다.
물론, 류연화는 워낙 빠른 속도로 잡기술에 대응하면서 전투 도중에 성장해갔지만.
…더 강해졌어.
무너져 내린 얼음의 쓰나미로부터 어찌어찌 살아남은 은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류연화를 평가했다.
류연화는 이번 대련을 통해서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얼음이 파도처럼 생동감 있게 넘실거리고는 왕관 형태로 치솟는 모습을 보면서 은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기술은 이 된 류연화가 궁지에 몰아넣은 상대방을 향하여 필살기로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한매류(寒梅流)
미정(未定)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마법.
그녀가 이 자리에서 진화를 했다는 반증이었다.
은하는 경악해서 이를 악물었다. 류연화가 이 대련에서 깨달은 바를 알고 싶을 따름이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은하는 자신의 상황을 확인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어느새 그는 그녀가 깔아놓은 덫에 붙잡혀 있었다.
그는 연신 눈으로 뒤덮인 바닥에서 발을 떼려 하고 있었지만 신발창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검은 가시나무는 어떤가.
한파 속에 눈이 쌓인 나뭇가지처럼 칼날 곳곳에 눈과 얼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칼자루를 쥔 손은 꽉 달라붙어서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이래서 가 무서운 거야.
불꽃이라면 뚫으면 그만이었지만.
얼음은 이리도 성가셨다.
그녀가 대련을 시작하고부터 계속 광범위 마법을 사용했던 것도 바로 자신을 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리라.
스티지안 아이
팬텀 아이
하지만 성장한 것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은하는 머리 위에서 창을 휘젓는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정신은 빈틈이 없었지만.
아주 찰나에 파고 들었을 공포가 순간적으로 그녀의 마나 제어를 흐트러뜨렸다.
아직 제대로 익히지 않은 마법은 그것으로 컨트롤이 약해졌다.
이에 그녀의 눈이 술식으로 향하자 은하는 자신의 환상을 심어 넣었다.
그녀가 찰나에 보았을 공포가 곧 그녀에게 환상이 싹틀 자리를 마련했다.
류연화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혼란스러워져라.
그리고 바로 그때.
발목을 붙들고 있던 마법을 부순 은하는 그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녀가 급히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그가 바로 제어권을 벗어난 술식에 마나를 주입하는 것이 더 빨랐다.
아직 완전한 술식을 갖추지 못한 그의 마법이 그녀의 술식을 꼬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는 술식을 온전히 되돌려놓는데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반동으로 인해 마나회로에 큰 타격을 입을 테니까.
마나 크래셔
빠르다.
불과 몇 초 되지 않았을 테건만.
머리 위에서 풍차를 돌리던 창을 가슴 앞으로 두 팔을 뻗어 정면으로 내민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다.
금세 술식을 고친 그녀는 근접해온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기회를 얻은 은하는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대로 몰아붙이고, 그녀가 후퇴를 반복하는 형세가 되었다.
한매류
은빛바람
빙판길
하지만 그녀가 후퇴를 반복했던 건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였으며.
또한 그를 유인하기 위해서였으니.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연화는 이내 시야를 차단하는 눈보라를 만들고는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
감지망을 전개한 은하가 얼른 뒤를 쫓으려고 하였으나 류연화는 어느새 얼음으로 만들어진 오르막길을 통해 천장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선 그녀는 조금 전에 실패한 마법을 준비하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매류
…새장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건만.
그녀는 미정의 마법을 완성시켰다.
은하를 중심으로 왕관처럼 뻗어난 얼음줄기는 곡선으로 몸을 접어서는 그를 사로잡듯 좁혀들고 있었다.
견고한 얼음의 벽을 뚫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전 삶에서도 저 마법에 사로잡힌 대상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지금이야 몇 갈래에 불과하다지만 류연화의 새장이란 마법은 수십 갈래로 나뉘어 사방팔방에서 공격해들어왔으니까.
대단해, 정말.
일부러 질 필요도 없겠어.
은하는 다시금 인정해야 했다.
이라 불릴 류연화의 실력을.
굳이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위하여 그녀에게 져줄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면 그녀도 전력을 다한 걸 만족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대로 지면 그림은 굉장히 예쁘게 나오리라.
이렇게 질 수는 없지.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패배를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은하 역시 류연화처럼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오만의 반격
은하는 꽈배기처럼 갈래를 꼬아서 자신에게 날아드는 얼음줄기를 보며 아티펙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목걸이가 반응했다.
그 순간, 버스트 카운터보다 거센 카운터 마법이 발동되었으니.
그를 향해 날아들던 얼음 갈래가 모두 그녀에게 되돌아갔다.
여하튼─.
─조금만 더 싸워보자고요, 누나.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은하는 눈폭풍 속에서 그녀를 향해 입가를 끌어올렸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