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78
“부른 이유가 뭐야?”
“거기 앉아. 바로 가려 하지 말고.”
이런 자리는 불편했다.
호시미야 카에데는 수업을 마치고 강의동 최상층에 위치한 라운지에 들어섰다.
자신의 키보다 큰 국궁을 짊어진 소녀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김건웅을 찾았다.
“뭐 마실래?”
“안 마셔. 용건이나 말해.”
한창 신경전이 이어졌다.
끝내 KK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는 카에데는 김건웅의 맞은편 자리에 앉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커피까지 마시진 않겠다는 듯이 자존심을 부렸다.
용건이 끝나는 그 즉시 당장이라도 일어나겠다는 것처럼.
이제는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김건웅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노은하 사단이라고, 들어봤어?”
“노은하 사단?”
테이블 위에 놓은 카드를 집어넣은 김건웅이 운을 뗐다.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에데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모양이야. 은하가 선택한 사람들이란 뜻에서 노은하 사단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거기에 너도 있다더라.”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야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을 뜬금없이 불러놓고 하는 게 고작 그런 말이라니.
“난 그런 거 아니야.”
카에데는 불쾌함을 담아 내뱉었다.
그가 자신을 노은하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은하 사단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자신을 끔찍한 부류 속에 집어넣은 사람을 당장이라도 찾아서 패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듣자하니 네가 요즘 들어 걔네랑 친하게 지낸다고 하던데….”
“내가?”
“많이 어울려 다니는 것 같더라.” “…….”
카에데는 눈에 힘을 주었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
하나는 어쩌다 몇 번 어울린 걸로 자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교내에 퍼졌다는 것 때문이었고.
“너, 내 뒷조사하니?”
다른 하나는 김건웅이 자신 몰래 자신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용서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카에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커피를 얻어 마시지 않기를 잘했다.
상대하기도 싫은 사람에게서 빚을 만드는 것은 사양이었다.
“아직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그렇게 일어나면 어떻게 해?”
“…….”
카에데는 그냥 홱 돌아섰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건웅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툭 던졌다.
“노은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
“네가 내 밑에도, 노은하 밑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건 잘 알아. 그러니 우리 거래하자.”
카에데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노은하도 싫었고, 김건웅도 싫었다.
김건웅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저들 특유의 여유로움과 거만함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그러나 김건웅이 불쑥 꺼낸 말에 흥미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없이 서 있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건웅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은하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 그래서 은하에 대해 알고 싶은데, 걔는 나를 멀리하는 것 같거든.”
“……”
“그러니까 네가 대신에 접근해줘.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다른 일로 널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야.” “…….”
“아버지를 설득해 너에게 더 좋은 후원을 약속할 수도 있고, 앞으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아도 좋아.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게.”
다시 말해, 자신의 스파이가 돼라.
노은하 사단이라는 걸 이용해서.
카에데는 그 말을 잠자코 들었다.
입술을 꾹 다문 그녀는 머릿속에서 그의 제안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녀는 KK그룹에서 후원을 받는 대신 제시하는 조건을 탐탁지 않아하고 있었다.
후원만 해준다면 그녀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기는 했다.
“어때? 너한테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김건웅이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그녀는 저 얼굴이 너무 얄미웠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
그녀는 어깨에 짊어진 국궁을 꽉 쥐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할게. 너희 장기말 따위가 되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
“까탈스럽네.”
“이걸로 용건은 끝난 거지?”
답은 정해져 있었건만, 카에데는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는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말 따위를 들을 바에야 차라리 확 혀를 깨물고 죽겠노라.
카에데는 씩씩하게 몸을 돌렸다.
흥, 어디서 나보고 노은하 정보를 빼오라 명령하는 거야?
지가 뭔데 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카에데는 곧 1층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자신이 화가 난 이유에 세 번째가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그녀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어느새, 언제, 어떻게.
그 애들하고는 아무 사이도 아냐.
카에데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이내 노은하 사단이라 불리우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을 나왔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그들에게 붙잡혀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유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임 파인!]파인톡이 울렸다.
카에데는 기시감이 들었다.
비슷한 일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던 것 같았다.
여하튼 그녀는 파인톡을 확인했다.
…그럴 줄 알았어.
역시나.
그녀는 톡을 보고 피식 웃었다.
[‘유도준’ 님이 ‘호시미야 카에데’ 님을 초대하였습니다.]「유도준」: 어서와, 이런 톡방은 처음이지?(오후 07:00)
「김민지」: 카에데 넌 뭐 먹을래? 소? 돼지? 아니면 혹시 말은 어때?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데(오후 07:01)
그러다 그녀는 퍼뜩 깨달았다.
왜 자신이 방금 좋아했던 것인지.
이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모르는 사이 길들여진 호시미야 카에데는 끙 소리를 냈다.
☆
의외로 수업이 일찍 끝났다.
그래서 은하는 외출계를 받아서는 아카데미를 나섰다.
주말에는 고기 파티가 있었기에, 시간을 내려면 오늘밖에 없었다.
오늘만 시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건 시간이 있을 때 해두는 게 낫지.
이제 곧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혼자서는 전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력자가 필요했다.
유도준만으로는 부족했다.
따라서 은하는 정하양의 할아버지, 민준식과 약속을 잡았다.
“은하 네가 이렇게 보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 무슨 일이니?”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앨리스그룹의 회장 민준식.
노인은 만난 지 몇 년이 지나고도 서고에서 책을 즐겨 읽고 있었다.
은하를 발견한 그는 책을 덮어서는 그를 환대했다.
“뭐 마실래?”
“…커피 주세요.”
“마침 하양이 애비가 가져다준 게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부탁하네.”
“네, 회장님.”
민준식은 초등학교 교사를 관두고 다시 플레이어로 전향한 임도훈에게 말을 건넸다.
은하와 눈인사를 주고받은 도훈은 조용히 부엌으로 사라졌다.
“은하 너 혼자 온 걸 보니 무언가 볼일이 있나 보구나.”
“…네, 맞아요.”
“얼마 전에는 하양이 애비한테도 찾아갔다지? 뭘 좀 만들어달라고.”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석훈이 민준식의 일을 이어받아 그룹 경영을 하게 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나.
민준식은 서고에서 나오지 않고도 바깥세상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모를 리가 없나.
은하는 납득했다.
얼마 전에 정석훈에게 독자적으로 부탁한 일이 있었다.
엘릭서의 재료도 달빛의 축복 외에 구해야 할 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달빛의 축복을 찾는 대로 바로 엘릭서를 만들 수 있도록 미리 정석훈에게 일러두는 게 나았다.
엘릭서는 아직 이 세상에는 없는 포션이었으니까.
제아무리 정석훈이라고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포션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래서 얼마 전에 정석훈을 찾아가 정화의 별을 내밀었다.
“은하 네가 만들려고 하는 포션, 나도 기대하고 있단다. 들어보니까 네가 구해온 재료는 하양이 애비가 듣도 보도 못한 거라고 하더구나.”
엘릭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만한 일을 정석훈 혼자 조용히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앨리스그룹의 연구소를 이용했다면 민준식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짐작한 은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민준식이 의도를 가지고 꺼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래…,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뭐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손닿는 데까지 도와주마.”
아니나 다를까.
임도훈이 가져온 커피를 입에 댄 민준식은 털털하게 말했다.
은하는 잠깐 말을 골랐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도준이한테 들은 정보가 있어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입 안에서 혀를 굴리던 은하는 곧 능청스레 유도준의 이름을 팔았다.
민준식이라면 유도준에 대해서도 알 것 같았다.
“그래. 뭐라고 했는데?”
민준식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손주의 재롱을 보듯.
은하도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몸에 힘을 빼고는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조만간, 제약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거예요.”
어디 더 말을 해보라는 듯이 그저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민준식.
은하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듯.
“단군그룹이 흔들릴 만한 사태가 발생할 거예요.”
“그래서?”
“단군그룹이 흔들리고, 단군그룹과 연관되어 있는 KK제약도 덩달아서 흔들리게 될 거예요. 그리고 거기가 흔들리면─.”
“─다른 제약회사들도 흔들릴 거란 말이구나.”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식은 그가 꺼내는 이야기에서 굳이 근거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단지 은하가 늘어놓는 미래흐름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부탁이 대체 뭐니?”
“그때가 되면…, 앨리스그룹에서 흔들리는 제약회사들을 흡수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개념의 포션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만들어낸 정석훈은 급기야 포션 시장을 주도하는 사람으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앨리스그룹 회장의 일을 대행하며, 건실한 제약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며 포션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미래에는 앨리스그룹의 위치를 넘보려고 하는 회사도, 그룹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미래는 이전 삶보다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은하는 그보다 빠른 미래를 더더욱 앞당길 생각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앨리스그룹이 나서지 않을 이유는 없겠구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애매모호한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민준식은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민준식 역시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그에게 적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그래, 네 말대로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지. 단, 대신 조건이 있단다. 하양이 애비가 만드는 그거, 우리가 독점적으로 만들게 해다오.”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닌데요?”
“그렇더라도 하양이 애비가 섣불리 이상한 것을 만들겠니? 무엇보다도 네가 가져온 건데 말이구나.”
민준식은 사업가였다.
순수한 호의로 움직여주는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
은하는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네, 좋아요.”
엘릭서에 대한 제조법은 얼마든지 건네줄 수 있었다.
그래봤자 정석훈은 회귀 전과 같이 무상으로 엘릭서에 대한 제조법을 공개하려 할 테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정석훈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프리미엄 포션과 엘릭서를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은하 네가 아는 정보라면, 출처를 확인할 수 없더라도 우리와 공유를 해주지 그러니.”
“네?” “명왕클랜.”
“…….”
“거기 지분을 사들인 사람이 바로 은하 네 친구던데, 걔 이름이 분명 유도준이었지?”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는 민준식.
은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설마 앨리스그룹의 일뿐만 아니라, 영원그룹의 일에도 정보망을 뻗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혀를 내두른 은하는 대화를 마치고 서로에 대한 근황을 나눴다.
말하는 사람은 주로 은하였지만.
“그래, 하양이가 고기 파티를 연단 말이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하양이는 여기 자주 오나요?”
“요새 많이 바쁜가 보더라.”
민준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미소에 씁쓸함이 번졌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하양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부터 주말 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더군다나 그녀는 남동생을 좋아해서 걸핏하면 남동생을 보러 갔으니.
최근에는 의 가 되기도 했으니까.
정하양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민준식은 쓸쓸한 것 같은 모양이었으나.
그러다 보니 은하는 졸지에 그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었다.
앨리스그룹 회장님하고 친해져도 나쁠 건 없지.
하양이 아버지가 회장이 되는 것도 아직 조금 남아 있을 텐데 말이야.
반은 쌓아온 정에 의해서.
반은 계산적인 생각에서.
은하는 거래가 만족스럽게 끝나자 그에게 아카데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제를 꺼냈다.
주로 정하양에 대한 화제였다.
민준식이 때때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이제 슬슬 아카데미로 돌아가 봐야 하거든요.”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커피를 모두 마신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은하야.”
바로 그때.
민준식이 자리에서 일어난 은하를 불렀다.
민준식은 손주를 바라보는 듯한, 정이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뭔데요. 할아버지?”
그래서 은하는 방심하고 말았다.
민준식이 기업가라는 것을.
그가 반은 계산적인 생각에서 잠시 말동무를 해줬던 듯이.
민준식 또한 반은 계산적인 생각으로 그와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었으니.
“─하양이랑 약혼할 생각 없니?”
본론은 언제나 마지막에.
민준식은 이때다 싶어 미소를 짓고 말을 꺼냈다.
은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윽고 그가 선택한 것은─.
“할아버지! 다음에 또 올게요!”
─후다닥, 삼십
육계 줄행랑이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속도였다.
“허허….”
서고에 홀로 남겨진 민준식은 그만 허탈하게 웃었다.
에이,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민준식, 선력 11년 74세.
바라건대 손녀가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싶은 나이가 된 것이다.
민준식은 쯧쯧 혀를 찼다.
다음부터는 덫을 더 정교하게 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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