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79
이제는 모두 알고 있었다.
파티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없어도 가장 좋지 않은 자리는 있다는 걸.
그것이 무언가를 해먹는 자리라면 더더욱.
적어도 최근에 아카데미에 떠도는 ‘노은하 사단’의 모임에서는 무조건 들어맞는 ‘진리’였다.
큰일 났다. 늦게 갔다간 그 자리에 앉고 말 텐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기숙사에서 시간을 때우던 은하는 황급히 나갈 채비를 꾸렸다.
잘못했다가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먹민지 걔 옆자리만은 절대 안 돼. 고기 먹다가 죽을 일 있게?
그 자리, 김민지 테이블.
언젠가부터 친구들은 암묵적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김민지의 요리를 한 번만 먹으면 누구나 깨닫게 될 진리였다.
자칫 김민지의 테이블에 앉았다가 젓가락으로 집은 게 고기인지 아님 독극물인지 검사를 해가며 먹게 될 수도 있었다.
“…아냐. 여기서 뛰어내리는 편이 더 빠르겠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했다.
은하는 가벼운 외투를 입고 나서는 고민의 여지없이 단숨에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가뿐하게 착지한 그는 고기파티가 예정된 장소로 뛰었다.
“왔어? 뭘 하다가 이제 온 거야? 너 또 잤지!?”
“…아닌데.”
“머리라도 좀 정리하고 거짓말을 하지 그래? 아무튼, 늦게 왔었으면 네 몫은 그냥 없었어.”
호숫가 근처에 위치한 바비큐장.
은하는 핀잔을 늘어놓는 김민지를 얼떨떨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테이블을.
이게 웬일이래?
김민지의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맞은편은 물론이고, 가장 최악으로 손꼽히는 양 옆자리까지.
“어? 안녕, 은하야!”
“네가 은하구나? 안녕.”
갤럭시병원의 직계, 강예슬.
갤럭시기획의 직계, 김병국.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한 강예슬이 은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병국도 바로 아는 척을 해왔다.
안타깝게도 은하는 누군지 모르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을 무시한 은하는 민지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강시형 한 명이 끝이었다.
“자다 온 거야? 고기 좀 먹어봐봐. 고기 진짜 맛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시형은 환하게 은하를 반겼다.
고기를 굽는 손놀림이 영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저 테이블의 목숨이 온전히 강시형 한 명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은하는 마음속으로는 강시형에게 애도를 표했다.
“시형아.”
“응, 왜?” “가디언이라면 이 정도도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잘 버텨봐.”
“어? 응? 어?”
애도의 의미로 그의 어깨를 두드린 은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전혀 모르는 강시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하는 남아 있는 자리를 찾아 헤맸다.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정하양 옆자리.
“은하 네 자리는 저기로 빼놨어. 우리들 중에서 네가 고기를 제일 잘 굽잖아. 하양이가 쏘는 건데 고기는 맛있게 먹어야 하지 않겠니?”
“아하하….”
최은혁 옆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진서나가 능청을 떨며 말했다.
삼각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이 꼭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 정하양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짓으로 은하를 불렀다.
뚱한 얼굴로 서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는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하양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다 온 거야?”
“어. 점심 먹고 과제하다 깜빡….”
“치…, 깜빡 잠이 들었다는 사람이 머리가 이렇게 되니?” “모자라도 쓰고 올 걸 그랬나.” “으음, 아니야. 괜찮아. 배고프지? 이쪽 꺼는 다 익었어.”
하양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식기를 세팅했다.
고맙다고 말한 은하는 그녀가 건넨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숯으로 구운 고기라 그런지 맛이 기가 막혔다.
“집게 줘봐. 내가 구울게.”
“아니야. 너 먼저 먹어.”
“먹으면서 구우면 돼. 줘봐.”
은하는 하양의 집게를 빼앗아서는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이천서 빼고는 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그것보다 은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너 혼자 굽고 있었어?” “천서가 조금 도와줬어. 아무래도 고기를 구워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냥 내가….”
“그럼 하양이 넌 먹지도 않았겠네. 내꺼 챙겨주지 말고 너 많이 먹어.”
“응, 고마워.”
은하는 한 번 학생들을 흘겨보고는 하양의 접시 위에 고기를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고기를 굽는 일을 저들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맛없게 구운 고기를 줄 수 없었다.
“은하야, 너도 이제 먹어. 나머지는 내가 구울….”
“이따가. 얘 좀 먹인 다음에.”
그때 이천서가 눈치껏 은하에게서 집게를 가져가려고 했다.
불판 위로 올라온 손을 가볍게 친 은하는 마저 고기를 구웠다.
이천서는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손을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내가 무슨 애기니? 나도 알아서 먹을 수 있는걸.”
한편, 동그란 눈을 연신 깜빡이던 사람 중에는 정하양도 있었다.
정신을 차린 하양은 볼을 부풀려 가볍게 항의했다.
“그냥 내가 주는 대로 먹어.”
“…은하야. 근데 나 이렇게 많이는 못 먹는데….”
“그럼 볼에 저장해두고 먹어.”
“너어….”
그만 유치원 때가 생각이 나서.
은하는 피식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아직 먹지도 않은 접시에 고기를 산더미만큼 투하했다.
하양이 볼이 요새 얼마나 홀쭉해졌는데….
많이 먹여야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하양은 은하의 팔뚝을 꼬집었다.
그래봤자 은하에게는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는 모습이 마치 다람쥐 한 마리가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
“꺄아아아아악─!!”
“강예슬! 예슬아!”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바로 그때.
김민지의 테이블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듯했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은하는 저쪽에서 벌어진 소란에는 두 귀를 닫았다.
“괜찮아. 좀 이따 정신이 들겠지.”
“사레들린 모양이네.”
유도준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최은혁은 무신경하게 답했고.
그리고 차은우는─.
“─나이스.”
그녀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주먹 쥔 손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렸다.
☆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게 있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이성에 대한 계산적인 호의는 본디 타자의 입장에서 여과 없이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그 호의를 받는 사람 또한 모를 리가 없다.
“어? 혹시 김치 더 필요해? 잠깐, 내가 지금 바로 가져올게.”
“아니야. 괜찮아. 여기 있는 걸로도 충분…. 아, 고마워.”
“아니야, 뭘!”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얼른 다른 테이블에서 김치를 가져오는 이천서.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하려다 그만 그를 말리지 못한 하양은 어색하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봤지?
봤어.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서나와 은우는 시선만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두 사람의 매와 같은 시선은 계속 이천서에게 꽂혔다.
“아, 이거 맛있게 구워진 것 같네. 하양아, 이거 한 번 먹어봐.”
“아, 아니야. 너 먹어.”
“와, 하양이 네가 전교 수석이야? 진짜 대박이다. 다음에 시간 있으면 나 공부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편입을 해서 그런지 수업 따라가기 힘들거든.”
“그, 그러면 나중에 다 같이 공부모임을 해보지 않을래? 우리도 가끔 같이 공부할 때가 있거든.”
“정말? 나 좀 끼워주라! 할래!”
계산적인 호의.
하지만 호의는 호의였다.
호의에 침을 뱉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잘못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었고, 괜히 오해를 한다는 망발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양은 난처해하면서 이천서의 호의를 에둘러 거절하고 있었다.
에두른 거절도 거절이었다.
이천서는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걸 수도 있었고.
어떤 것 같아?
쟤 일부러 저러는 거야.
그치? 나도 그럴 것 같았어.
테이블은 달랐을지라도 진서나와 차은우는 서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은 고기를 집는 척하면서 저희들끼리 속닥거렸다.
“천서야. 하양이도 고기 좀 먹자. 네가 계속 말을 붙이니까 하양이가 제대로 고기도 못 먹잖니?”
“그래, 얘. 하양이 접시 좀 봐봐. 고기가 하나도 안 줄었잖아.”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멋쟁이 여자들 기숙사모임은 모두 끈끈한 우정으로 뭉쳐 있었다.
서나는 이천서에게 말을 걸어서는 그에게서 하양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은우는 맞장구를 쳐주면서 그가 하양에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화제를 돌렸다.
“사이다 비었네? 말을 하지.”
“아, 고마워. 은우야.”
은우는 사글사글한 미소를 지으며 직접 천서의 빈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라주었다.
그녀는 한동안 이천서를 상대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화장실을 간다며 하양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은우가 붙잡혔다.
“너도 비었네? 내가 따라줄게.”
“응, 고마워.”
“나랑 같이 들어온 동기들 사이에서 네가 엄청 유명한 거 알아?”
“응? 내가? 왜?”
“왜기는…. 남자애들이 착하다고 많이 그러더라고.”
“아…, 그렇구나. 나는 내가 그렇게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아니야. 내가 봤을 때도 너 엄청 착한 것 같아. 아, 고구마 먹을래?”
“나는 괜찮….”
“아냐. 자, 이거 먹어봐.”
“…응, 고마워.”
은우는 떨떠름해했다.
극구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천서가 내민 고구마를 먹었다.
기름진 불판에 오랫동안 놓여 있던 고구마는 맛도 없고 기름기만 잔뜩 있었다.
얘 뭐야.
얘 뭐니.
은우가 진서나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냈다.
이윽고 서나는 미간을 오므리고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 했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양이랑 은우만 아니라….
나까지?
서나는 속으로 뜨악했다.
그녀는 이천서가 밥 위에 얹어준 고기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어떤 의미로는 규격 외였다.
은하는 왜 이런 애를….
난 이런 애 안 좋아하는데.
진서나와 차은우.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천서는 은하가 올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학생이었기에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이천서와 친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느새 서나는 눈을 가늘게 떠서는 이천서의 말에 적당히 대답했다.
“아, 떡도 있었지. 떡 먹을래?”
“아니.” “서나 너는 뭘 좋아해? 돼지? 소?”
“난 아무거나 잘 먹어.”
“진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공부 잘하는 애들 아니야?”
“음, 그런가.”
무관심과 단답으로 일관하는 서나. 어느새 은우도 의무적으로 응대하고 있었다.
“저기….”
“응, 아니.”
“…나 아직 말 안 했는데.”
“어? 그랬니? 미안.”
“…….”
이천서도 슬슬 눈치를 챘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몸을 돌려선 다시 하양에게 말을 붙이려 했다.
그냥 하나라도 얻어 걸리라는 태도 아니니?
내가 좀…, 가볍게 보이는 걸까?
은우 네가 어디가 어때서. 오히려 가벼운 사람은 바로 쟤지.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여하튼 이천서가 정하양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게 막아야했다.
은우야, 화장실 가자.
가자, 가.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입만 뻥긋거렸다.
이대로 정하양을 화장실로 데려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리 배치는 바뀌어 있으리라.
“하양아, 자.” “어? 아니야, 괜찮아. 너 먹어.”
“내가 쌈 같은 거 잘 싸. 먹어봐.”
“내가 해서 먹을 수 있는데….”
구태여 하양의 입에 쌈을 물리려는 이천서.
서나와 은우는 이제는 그냥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얼른 하양을 일으키기로 했다.
바로 그때─.
“─그래? 그럼 내가 먹지, 뭐.”
하양의 입 앞에 있던 쌈을.
은하가 별안간 쏙 빼앗아서는 입에 집어넣은 것이다.
“”…….””
“”…….””
침묵이 흘렀다.
이천서는 그대로 벙쪘으며.
정하양은 눈을 깜빡거렸고.
서나와 은우는 숨을 죽였다.
이내 침묵을 씹듯 쌈을 질겅거리던 은하가 목젖을 움직였다.
“너는 무슨 안 익은 고기를 쌈에 올리냐.” “…어? 어어? 내, 내가 그랬나?”
“앞으로 넌 쌈 싸지 마.” “…어? 어어어어, 그럴게.”
은하가 틱 쏘아붙였다.
이천서는 너무 당황해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가 맛있다고 그런 건지…. 내가 싸주는 거나 한 번 잡숴봐.”
“…은하 네가 싸주는 거라면 당근 맛있게 먹어야지.”
이천서가 아부를 떨었다.
피식 웃은 은하는 상추를 펼쳐서는 그 위에 배춧잎을 올렸다.
오돌 뼈가 많은 삼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새우젓을 듬뿍 뿌렸으며, 밥을 수북이 쌓고 콩나물과 김치로 새하얀 쌀을 붉게 물들였다.
“…너, 너무 큰 거 아니야?”
“입 벌리면 다 들어가.” “…….”
“아, 해.”
“…아, 아아…. 컥…커헉…!”
주먹만 한 쌈이 완성되었다.
이천서는 은하의 쌈을 거부하지 못하고 입이 찢어져라 쌈을 먹었다.
너무 커서 씹지도 못하는 듯했다. 입에 다물고 있는 것밖에 못했다.
“…아아실
.”
“뭐? 화장실?”
화장실이라고 힘겹게 입을 움직인 이천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은하는 멀어지는 그를 보고는 이제 대놓고 키득거렸다.
“하여간…. 못됐어.”
“왜. 방금 재밌지 않았어?”
“…음…, 조금?”
“너도 쌈 먹어볼래?”
“싫어. 나는 큰 거 못 먹어.”
“작게 싸줄게.”
“정말?”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응…, 많이.”
하양이 은하의 옆구리를 찔렀다.
은하가 키득거리며 묻자,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장난을 쳤다.
봤지?
봤어?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서나와 은우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테이블에서 고기를 먹고 있던 은혁과 민호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두 사람은 도끼눈을 떴다.
“은혁아.”
“민호야.”
“응?”
“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느라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최은혁과 목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나와 은우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쌈 좀.””
“”…….””
은혁과 민호는 직감했다.
맛있게 못 싸면 큰일 날 것 같다.
한편,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하란 말이야, 이것들아. 공부를….”
한국의 솔로마을 촌장은 저 혼자서 사이다 한 병을 원샷했다.
팡팡 터지는 탄산이 중독적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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