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82
다음 주부터 종평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주말을 맞이했는데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훈련을 하러 아카데미에 남았다.
이번 종평에는 대인전도 있는 데다 개인 서바이벌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실전 감각을 몸에 새겨둘 필요가 있었다.
학생들 간에 경쟁심리가 붙은 것은 거의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고.
“─이제 그만 나와.”
“옙. 오랜만이네요, 주인님. 근데 꽤나 여유로우신가 보네요? 주인님, 다음 주에 종평 있는 거 아닌가요?”
“내가 언제 공부하는 거 봤어?”
“제가 주인님 생활을 알아야지요. 뭐, 주인님 성격상 공부 같은 거는 아예 안 할 것 같지만요.”
물론, 은하는 예외였다.
친구들이 아카데미에 남은 가운데 혼자 집으로 돌아온 은하는 은밀히 이십오와 접선했다.
그에게 기척을 들킨 는 실실거리며 기둥 뒤에서 나타났다.
외견만으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미모.
그가 푹 눌러쓴 빵모자를 벗으니 긴 머리칼이 꽃이 활짝 피는 것처럼 흘러내렸다.
“모자는 왜 쓴 거야?”
“제가 워낙 눈에 띄어서 말이에요. 이러지 않으면 골목길 사람들한테 제 정보가 노출될 수 있거든요. 하, 예쁜 게 죄인 걸 어떡하겠어요.”
“하…. 아무래도 너는 이걸 한 번 봐야겠다.”
“네? 뭐요?”
은하는 유세를 떠는 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서 그에게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주인님 누님 아니에요?” “어때?” “예쁘죠.”
“응, 너보다 엄청 예쁘지.”
“…….”
“예쁜 게 죄면 우리 누나는 벌써 감옥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을걸.”
“우리 주인님도 참…, 어째 갈수록 정신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을까. 어라? 근데 이 사람은 누구에요?”
떫은 표정을 지은 .
그러다 그는 화면을 넘긴 사진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그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달걀처럼 갸름한 얼굴.
척 보기에도 도도해 보이는 눈매는 흡사 사람의 손을 타기를 싫어하는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누가 멋대로 넘기래.”
“얘 혼자 그냥 화면을 잡아먹네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네. 머리도 엄청 작은 것 같고…. 누구에요?”
“네가 알아서 뭐하게.”
“주인님. 이러시면 저 섭섭합니다. 저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부르는데 이러시면 주인님 결혼식에서 축가 안 불러줄 겁니다?”
“누가 결혼한대?”
“그럼 안 할 겁니까?” “…….”
풋 하고 손으로 입가를 가린 그가 은하를 내려다보았다.
은하는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고서.
“그래…, 너하고 말을 하는 내가 잘못한 거지.”
이내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와 말을 했다가는 하루가 지나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혀를 찬 그는 감지망을 퍼뜨리며 에게 물었다.
“그래서. 따라오는 사람은 있었고?”
“아니요. 한 명도 없었는데요. 만약 그랬으면 제가 주인님께 아는 척을 했을까요. 제 감지능력을 벗어나는 실력자가 이강혁 쪽에는 없습니다.”
은하는 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는 오래 전에 자신이 조언한 말을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이강혁을 도우며 그를 경계하라고.
은하가 생각하기에 이강혁이라는 사람은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유리한 쪽으로 전향할 유형이었다.
의외인 것은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어.
돌다리를 두들기듯 조심스럽게.
은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조심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지하시장 쪽은? 어둠은?”
“음…, 이거는 확답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일단 제 생각은, 주인님의 행적을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시장 그리고 어둠.
이제 슬슬 그쪽에서도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작년에 위험물로 지정된 제7위계 코프스 네펜테스의 꿀을 사갔으니.
백서진이 관리하는 어둠의 눈에도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가정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에게 부탁한 물건은 그들의 눈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십오가 알아서 처리했을 테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야.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풀잎이 불법적인 영역에 속하고 있었다.
마나가 오염된 지대에서 자생하는, 강한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풀잎.
사용하기에 따라서 범죄의 소지가 다분한 물건이었다.
그밖에 몇몇 재료들도 불법적으로 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그거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인님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다가 다른 사람이 구입한 것처럼 속이고 무엇을 만들 것인지 감추기 위해서 이름을 몇 개나 사용했는지….”
“아무튼 고마워. 추적 같은 것은 정말 없었던 거지?”
“도중에 그럴 기미가 있긴 했지만 제가 싹 잘라놨어요. 추적을 당해도 주인님이 아니라 제가 당할 겁니다. 그리고 추적을 당하게 되면…, 뭐, 당분간 어디 숨어 있어야죠.”
가 어깨를 으쓱였다.
은하는 그의 이름을 불러 칭찬하며 병 안에 담긴 액체를 들여다보았다.
손가락 마디쯤 되는 높이의 액체는 마치 기름처럼 진하고 탁했다.
병을 기울이자 액체가 아주 천천히 기울었다.
“뭐 잘못 넣은 건 아니지?”
“주인님…. 저 실험실 출신입니다. 제가 그거 만드는 데에는 이미 도가 텄거든요?”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어랍쇼? 주인님이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이전 삶에서 는 심심하면 독약을 만들어 파티원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은하가 손에 쥐고 있는 독약 또한 이전 삶에서 가 써보라며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은하는 그에게 독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일명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하는 약입니다. 주인님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잘못 사용하면 꼴까닥 죽을 수도 있어요.”
“나도 알아.”
은하는 덤덤히 대꾸했다.
이 검은 액체가 아주 작은 양으로 사람을 일시적 가사 상태로 만드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편한 잠에 든 듯 보인다는 것도.
그리고 약의 성분은 마시는 즉시 마나가 되어 대기 중으로 흩어져서 웬만한 검사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까지.
“대체 이걸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건 알아서 뭐하게?”
“제가 궁금하니까 그러죠.”
조그마한 병을 주머니에 넣은 그는 에게 시선을 던졌다.
는 은하의 시선을 받고도 어깨를 으쓱하는 당당함을 보였다.
은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마실 거야. 됐지?”
“엥?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라면 말을 해줄 때까지 사람을 귀찮게 굴 것이다.
결국 은하는 그의 관심사를 돌리는 대답을 내뱉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깜짝 놀라서는 은하의 뒤를 졸래졸래 쫓아왔다.
“아니, 그걸 왜 주인님이 마셔요?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은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에 걸친 망토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을 뿐.
이윽고 망토는 은하의 몸을 감싸고 투명하게 녹아들어갔다.
“나 이제 가볼게. 고마워.”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네….”
어느새 사라진 노은하.
홀로 남겨진 는 쳇 하며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발로 찼다.
그러고는 긴 머리를 모자 속으로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도 찍으려 하는 건가. 에라, 나도 모르겠다.”
우리 주인님 속을 어찌 알리.
는 그냥 마음 편히 잊기로 다짐했다.
☆
다음 주부터 종평이 시작되는 것은 중등아카데미 3학년만이 아니다.
종평의 내용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기에 종평을 치르게 된다.
당연히 고등아카데미 2학년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고 은하는 고등아카데미에서 종평을 겪어보았기에 2학년 때에는 어떤 종평을 치르게 될 것인지 알고 있었다.
서영 누나한테 미리 귀띔을 받아서 시간 안에 준비할 수 있었어.
그래서 중등아카데미 3학년이 되고 은하는 제일 먼저 신서영을 찾았다.
어떤 종평을 하는지는 알기에.
언제 종평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덕분에 그는 이번 계획을 위해서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다.
해수 형에게는 이미 말해뒀고…, 나머지는 유도준에게 말하는 것만 남았네.
첫째로, 벽해수에게 기프트를 담는 아티펙트의 제작을 의뢰했다.
둘째로, 그에게 보호마법이 부여된 아티펙트를 건네주었다.
셋째로, 앨리스그룹의 민준식에게 미래에 일어날 정보를 제공했다.
넷째로, 를 통하여 독약을 입수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진짜 난 네 자유분방한 성격이 부럽다. 나도 너처럼 훈련하지 않고 놀고 싶은데….”
“어차피 너는 네 애들하고 합류할 생각만 하고 있을 거 아니야. 근데 훈련이 왜 필요해?”
“친구야, 걔네들을 만나는 과정을 생략하면 아니 되지. 어휴…, 됐다. 치킨 뭐 먹을래? 네가 뭘 먹을지 잘 몰라서 종류별로 주문했는데.”
“…야, 둘이서 이걸 어떻게 먹어?”
“너 교내에 소문이 쫙 퍼졌더라. 시형이가 면전에서 너한테 꼰대냐고 했다며? 못 먹으면 먹을 수 있게 해야지. 안 그래?”
일요일 저녁.
은하는 유도준의 방을 찾았다.
치킨을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유도준은 그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유도준 왈, 원래 진지한 얘기 전에 치킨으로 위장을 달래놓을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긴 테이블에는 치킨이 종류
별로 올라와 있었다.
혼자 먹을 수도 없는 양이었다.
결국 은하는 나중에 친구들을 불러 다 같이 나눠먹기로 했다.
“한 잔 해.”
“어.”
“아, 내일부터 종평 시작할 생각에 술이 너무 당긴다. 분명 더울 텐데, 거기서 제대로 씻지도 못할 텐데…. 우리 딱 맥주 한 잔만 할까?”
“…안 돼. 나 작년 여름 모임에서 술 마셨다고 누나한테 혼났거든.”
“그럼 나 혼자 마실게. 은하야…, 이 손은 뭐니?”
“너도 그냥 사이다나 마셔라.”
“야, 난 사이다 안 마신단 말이야. 스프라이트가 더 맛있는데!”
은하는 유도준 혼자서 술을 마시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은아에게 철저한 금주령을 명받은 은하는 침대 밑으로 손을 뻗으려는 그를 자리에 앉혔다.
유도준이 오리처럼 꽥꽥 소리를 질렀다.
은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랐다.
“하…, 저녁 안 먹기를 참 잘했다.”
“저녁도 안 먹었어?” “친구야, 네가 이 시간에 보자면서. 나 그래서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내가 언제 저녁 먹자고 했어?”
“와…, 진짜…. 내가 너랑 먹겠다고 라운지에서부터 이 치킨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왔거든? 좀 너무하는 거 아니냐?” “네 애들 시키지 그랬어. 얌. 음, 네가 고생했다고 들으니까 치킨이 더 맛있는 것 같아.”
“아…, 내 피 땀 눈물. 이런 애한테 내 인생을 맡기다니….”
이미 저녁을 먹기야 했지만.
은하는 유도준과 건배를 하고서는 치킨상자 속으로 젓가락을 넣었다.
양념도 맛보고, 간장도 맛봤다.
파닭을 먹다 코가 찡해진 은하는 한껏 눈살을 찌푸리다가 영원그룹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학기도 이미 절반이나 가서인지 세력 정리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어. 이제 여기서 대놓고 나한테 개기는 애들은 없어. 몇몇 애들은 내 편에 서기도 했고.” “학기 초에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나름 성과는 있었나 보네.”
“친구야, 나 진짜 힘들었다. 사실 이것도 내가 노력했다고 하기보다 명왕클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
유도준이 사이다를 벌컥 마시고는 새로 스프라이트를 따랐다.
치즐링을 입 안에 집어넣은 그는 명왕클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명왕클랜이 올해 상반기에 예정된 클랜전에서 안정적으로 승리했다고.
덕분에 명왕클랜을 몰아세우려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모양이다.
유도준은 그걸 이용해 아카데미를 들쑤시고 다니던 반대파 세력들을 포섭하거나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
“하여간…, 도완준 플레이어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영통구에서는 최소 전력만으로 수원 연합군에게 승리했다고 하더라.”
“왜, 내부에 간자라도 심어놨었대?” “헐, 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 업계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정보일 텐데….”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았어.”
“너 혹시 그 사람이랑 뭐 있는 건 아니지?”
“절대 아니거든.”
“고뤠? 그럼 네 머리가 좋나 보네.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뒀다니까. 자, 머리 좋은 친구는 떡 하나 줘야지!”
“치킨이 이렇게 많은데 떡강정을 주는 이유는 뭐야.”
두 사람은 치킨을 쩝쩝거렸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대화를 하지만 두 사람이 교환하는 대화는 별 게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좁게는 플레이어 업계에 관련해서.
넓게는 재계그룹에 대해서까지.
결단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오고갔다.
하지만 아직 본론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어느덧 시간이 무르익었을 때쯤.
도준이 은하에게 사이다를 따르며 지나가듯 툭 내뱉었다.
은하는 시선은 자신에게 주면서도 젓가락은 치킨을 향하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내가 말한 거 있지?”
“어떤 거? 조만간 단군이 흔들릴 거라는 것?”
“어.”
“기억하고 있지. 과연 네 생각대로 단군이 흔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뭐, 네가 단군건설을 무너뜨린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시나리오는 짜봤어?”
젓가락을 놀리던 손을 멈춘 은하.
반면에 유도준은 여전히 태연하게 치킨을 먹고 있었다.
치킨을 몇 번이고 우물거리다 삼킨 그가 새 치킨을 집으며 말했다.
“짜보기는 했지. A에서부터 Z까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변수가 너무 많다는 뜻이야. 애초에 네가 두루뭉술한 상황만 제공해가지고,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을 공산도 있어. 그럴 가능성이 엄청 높지.”
“그건…, 어쩔 수 없지.”
“뭐, 나도 한몫 얻을 수 있으니까 상관없는데…. 이 이야기, 누구한테 또 한 적 있어? 시나리오 참가자는 몇 명이야?”
“너하고 앨리스.” “앨리스가 확실히 움직여준대?”
“…아마도.”
“그쪽에서도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네. 그러면서도 네 말을 믿어보겠다는 거고.”
유도준이 젓가락을 입에 앙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은하는 조용히 사이다를 마셨다.
아마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할 것이다.
유도준이 했던 말처럼 지금이라도 많이 먹고 마셔둬야 했다.
“나랑 앨리스…. 둘로는 좀 무리야. 다른 데서도 끼면 좋겠는데….” “어차피 일이 터지면 다들 알아서 모여들 거야.”
“시리우스한테는 말해봤어?”
“…아니.”
불쑥 시리우스를 거론하는 유도준.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유도준의 말대로, 불확실한 상황을 더더욱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군그룹을 흔드는데 동참을 해줄 사람들을 늘리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은하는 시리우스그룹에게 말을 해볼 것을 포기했다.
한서연은 위험해.
한서현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한서연이라는 창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
잘못했다간 시리우스그룹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앨리스그룹과 유도준에게밖에 말을 하지 못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은하 네 말대로 우리가 흔들기 시작하면 다른 데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문제는 혹시 걔네들이 단군을 지키려고 할 수도 있다는 건데….”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다들 저희들끼리 싸우는데 바쁠걸?”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내 감이 그래.” “에휴…, 그놈의 감…. 알았다.”
유도준이 긴 한숨을 흘렸다.
은하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 듯한 눈치였지만, 그는 일부러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하는 평소처럼 도준과 대화를 나눴다.
그때 다짐하고…, 드디어 이제야 이루게 됐네.
이후로는 정말 별 거 아닌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은하는 때때로 그의 말에 웃으며, 한편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되도록 상세하게 그려나갔다.
그럼에도 미래는 어렴풋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확실했다.
이제─.
─홍진우를 죽인다.
녀석이 서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을 때부터 다짐했던 목표.
어쩌면 그 이전부터 품고 있었을, 바람.
오랜 시간 동안 다짐을 한 목표를 이제야 이루게 되었다.
“이제 그만 갈게.”
“그래. 내일 봐.” “…어.”
시간이 한참 지났다.
은하는 유도준의 방을 나섰다.
문 밖에서 유도준이 손을 흔들며 내일을 기약했다.
은하는 그를 한 번 돌아보고─.
“─내일 봐.”
이내 똑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종평이 시작되는 다음날.
은하는 갑작스런 열병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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