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83
아프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전날 밤.
은하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하는 약과 해독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고서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프고, 몸에서 열이 심하게 났다.
덕분에 종평을 담당하는 교관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애들은 아카데미를 떠났으려나.
괜히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지네.
교관은 은하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펄쩍 뛰며 놀라했다.
눈은 진즉 힘이 풀려 있었는데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며,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기에.
단순 감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상이었다.
그때 담당교관은 그를 당장이라도 구급차에 태워서는 병원으로 보낼 기세였다.
다만 그가 가까스로 뜯어 말려서야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덜 힘들어.
약효가 떨어지고 있는 거야.
물론, 은하가 시간이 지나며 다소 차도를 보인 이유도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하는 약이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니….
대단하기는 하네.
사람을 일시적 가사 상태로 만드는 독약이 그에게 통하지 않았던 데는 도마뱀의 왕의 섭리가 한몫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으나 반나절은 서 있기도 힘들었을 몸을 그나마 걸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몸에 녹아든 섭리는 으르렁거리며 지금도 약효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약효와 섞이며 섭리가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
마치 근육이 파괴되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감각이 전신을 지배해나갈 때쯤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야.
감각도 선명해진 기분이고.
이게 원래대로 돌아온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은하는 이불 속에서 뒤척거렸다.
점점 정신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보니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기감이 더욱 발달해 있었다.
방 안에 떠도는 극소량의 마나조차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후우….”
은하는 벽에 세워두고 있던 검을 쥐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눈에 보이는 마나가 꼭 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깨달음을 얻었다.
바일런트 베놈
은하는 체내 마나를 칼날에 흘려, 대기 중에 녹아든 마나가 모이도록 컨트롤을 했다.
감각에 따라 체내 마나를 움직이자 자신의 것이 아닌 마나가 흐름 속에 편입되려는 조짐을 보였다.
이윽고 흐름은 그의 것이 되었다.
은하는 흐름을 원동력으로 마법을 전개했다.
“…한 번 더…, 먹어볼걸 그랬나.”
바일런트 베놈을 펼치는데 소모되는 마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검에 맺힌 거무스름한 마나에 홀린 은하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직 바일런트 베놈에 불과했지만.
조금만 연습을 해보면 다른 마법도 자신의 체내 마나와 대기 중에 있는 마나를 섞어서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으로 검은 칼날을 매만진 그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만족했다.
아직은 밖에 나가기가 좀 그러네. 날이 저무는 대로 행동해야겠어.
칼집에 검을 집어넣은 은하는 이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밤이 되려면 아직 조금 일렀다.
기지개를 편 은하는 옷장을 열어서 이날을 위해 준비해둔 옷을 찾았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온통 새까만 옷이었다.
피를 뒤집어써도 모를 정도로.
포션은 이걸로 충분해.
식량은…, 칼로리바만 가져가도 돼.
이어 되도록 가볍게 짐을 꾸렸다.
어차피 필요한 것은 던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할 수 있을 터.
중요한 것은 탄창과 포션이었다.
─이제 일어나야겠네.
이윽고 밤이 깊어졌을 때.
그는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두르고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종평 기간의 아카데미는 너무나도 고요해서 을씨년스러웠다.
그렇기에 이변은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었다.
☆
고등아카데미부터는 입학 정원이 중등아카데미에 비례해서 급격하게 늘어난다.
도중에 3학년으로 편입하는 이들의 수를 더하면 더더욱.
그러다 보니 종평을 시작하게 되면 대규모 행군에 이르게 된다.
아카데미 지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적색던전은 1800에 달하는 인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이나 규모가 거대했다.
문지기는 4명.
적색던전으로 입장하기 위한 입구.
검은 망토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은하는 입구 앞에 서 있는 교관들을 살폈다.
던전에 입장하는 이들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평소에는 한 명이서 관리했건만, 이번에는 종평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세 명이 투입된 모양이었다.
따라서 적색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저들의 감지망을 벗어나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은하는 너무 걱정하지 않았다.
스티지안 아이
저들의 감지망에 닿지 않는 선에서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과 시선을 마주해서는 그들의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뭐야. 방금 그건 뭐였지?”
교관들은 자신이 마법에 걸린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상대는 보이지 않더라도 재빠르게 마나 저항력을 높인 그들이 기세를 정돈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은하가 의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들이 마나 저항력을 높이는 사이 공포는 순간적으로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에 대항하려 경계심을 보였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팬텀 아이
─환상이 자라나기에 충분했다.
“저기다!”
한 명이 소리 쳤다.
존재하지도 않는 적을 발견하고.
“쟤 뭐야! 야! 얼른 잡아!”
“야! 너는 저리로 가!”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그 환상에 먹혀 들어갔다.
교관들은 어딘가에 있는 적들에게 뛰어나갔다.
은하는 그들이 뛰어나간 방향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멩이를 멀리 던졌다.
돌멩이가 어둠 속에 떨어진 소리에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환상을 더더욱 굳게 믿었다.
한 명에게서 생겨난 환상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어 갔으며, 그렇게 구축된 환상은 그들 사이에 진실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환상에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
그들은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은 환상을 뽑아내지 못할 것이다.
천보
그러거나 말거나 은하는 문을 향해 뛰었다.
둘이 내려가기에는 비좁은 계단.
문을 닫은 은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는 어베니어즈 클로크의 마법을 해제했다.
이제 몇 계단을 내려가면 완전하게 적색던전에 입장하게 된다.
그리고 입구에는 사람을 무작위로 적색던전 1층 어딘가로 소환시키는 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터.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둬야 했다.
은하는 경계선에 걸터앉아 그동안 소모한 체내 마나를 회복했다.
어베니어즈 클로크
던전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체내 마나를 많이 소모하게 되어도 섣불리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풀 수 없었다.
휴식은 이제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은하는 경계선을 넘었다.
눈을 한 번 깜빡거렸을 뿐이건만.
그는 어느새 안개 속에 있었다.
방향성을 상실한 세계에서 무작정 발을 움직였다.
도중에 안개는 서서히 옅어지고, 안개 너머로 던전 전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게 됐다.
어느덧 그는 이미 적색던전 1층에 도착해 있었다.
곳곳에 마나가 혼재하고 있어.
이 근처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네.
은하는 던전 내부를 둘러보았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대기 중을 떠돌고 있는 마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적색던전 내부에 충만하게 마나가 깔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편재가 발생하고 있는 중이었고.
마치 보스 몬스터를 잃은 던전이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편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끼에에에엑!
편재 속에서 태어난 몬스터는 곧 본능에 따라 인간의 존재를 찾아 헤맸다.
그중에 코가 좋은 놈이 있었다.
마나 드레인
은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에게 몸을 돌려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놈에게서 흘러나온 마나가 다시금 대기 중으로 녹아들지 않게끔.
은하는 될 수 있는 대로 마나를 회복했다.
감각이 예민해진 덕분인지 더 많은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종평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넘게 지났어.
지금쯤이면 파티의 대다수는 이미 지하 2층으로 내려가 있을 거야.
지하 1층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는 고등아카데미 2학년 학생들에게는 어렵게 와 닿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 이상 파티를 맺고 있다면 쉬이 놈들을 죽일 수 있었다.
은하가 기억하기로, 고등아카데미 2학년 1학기 종평은 최소 다섯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파티로 적색던전 최심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파티라면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것은 학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나 포션, 간혹 몬스터의 사체가 전부였다.
아니면 살아있는 몬스터라거나.
은하는 그중에서 코가 좋은 놈들을 죽였다.
1층에는 볼일이 없어.
2층으로 내려가야 해.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1층에서 모든 길목이 이어지는 중앙광장에 위치해 있다.
은하는 걷다 보면 결국 중앙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번번이 몬스터를 마주쳤다.
스티지안 아이
팬텀 아이
그때마다 그는 몬스터들을 현혹해 그들의 본능을 자극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편재를 더 자극해야 해.
은하는 마석을 얻게 되면 마석에 마나를 주입해 바닥에 버렸다.
마나를 머금은 마석은 자극을 받아 편재를 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은하는 편재를 향해 손을 뻗어서는 편재를 가속시켰다.
더 많은 몬스터가 태어났다.
더 많은 몬스터가 집합했다.
그리하여 약한 몬스터들로 이뤄진 군단이 탄생했다.
끼에에에엑!
크르르르아아아!
몬스터들이 울부짖었다.
소리를 들은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은하의 마법에 당했다.
중앙광장으로 나아갈수록 군단은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그러나 군단에 주인은 없었다.
놈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놈들은 그저 은하의 마법에 홀려, 은하가 의도적으로 홀리는 마나를 쫓아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놈들의 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들 일어나! 무기 들어!”
“전투 준비!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저것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중앙광장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하고 있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갑자기 중앙광장에 들어선 몬스터들을 보고 크게 소리를 쳤다.
파티 하나로는 상대할 수가 없는 규모였다.
“─가.”
은하는 병장기를 챙긴 그들을 향해 검은 가시나무를 내밀었다.
그것을 계기로 군단이 포효를 하며 학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갓 태어난 놈들은 굶주려 있었다.
은하의 마나에 홀려온 몬스터들은 그제야 눈에 보이는 먹이를 발견해 흥분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이럴 거면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을걸!”
“야! 똑바로 막아! 거기 무너지면 다 망한다고!”
“누가 버프 좀 걸어…커헉…!”
곳곳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몬스터들이 거구를 떨어뜨렸다.
고등아카데미 2학년 학생들은 제법 군단을 상대로 선전했다.
그럼에도 군단의 수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여기에는 없어.
역시 아래에 있는 거야.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두른 은하가 전장을 활보하며 편재를 자극했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기도 했다.
죽여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금세 흥미를 잃은 그는 계획대로 몬스터들의 수를 불리는데 애썼다.
학생들이 쓰러뜨리는 몬스터보다 그가 편재를 일으키면서 만들어내는 몬스터의 수가 더 많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던전에서 마나가 편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학생들과 몬스터가 흘리는 마나가 편재의 원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적색던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풍만한 마나를 편재시켰다.
“대, 대피! 다들 얼른 짐 챙겨!”
“야! 너희 지금 뭐하는 짓이야!”
“저게 눈에 안 보여!?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잖아! 여기를 지키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끝내 파티를 지휘하는 리더들 중에 중앙광장을 이탈한다는 선택을 내린 리더가 나왔다.
그때부터 혼란이 가중되었다.
몇몇 파티가 중앙광장을 포기하고 퇴각을 시도했다.
전선이 무너지면서 군단의 기세가 더더욱 거세졌다.
파티 하나가 미련 없이 퇴각하니 다른 파티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퇴각하는 파티의 수가 늘어났다.
“우리도 뒤로 물러난다!”
“너희 파티도 이리로 붙어! 얼른! 딜러와 헌터가 길을 열고, 후방에서 가디언이 파티를 보호해야 한다고!”
“…큭…!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부상자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
“길을 뚫어! 뚫어야 해!”
결국 모든 파티가 퇴각했다.
은하는 도망치는 파티들을 보면서 체내 마나를 흘렸다.
퇴각하던 학생들을 쫓아가려하던 군단이 순간 주춤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린 눈이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어디를 가려고. 너희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지.”
코가 좋은 놈들이 있었다.
감이 예민한 놈들도 있었고.
은하는 동시에 달려드는 놈들에게 검은 가시나무를 휘둘렀다.
녀석들의 죽음으로 군단의 기세가 다시금 들끓었다.
퇴각하는 파티원들을 놓친 놈들이 성을 내며 은하를 찾으려 들었다.
이미 그때 그는 자리에 없었지만.
저놈들로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시간은 충분할 거야.
몬스터들을 유인한 이유는 입구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의도는 성공했다.
지하 1층에 머무르고 있던 이들이 지하 2층으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중앙광장에서 쫓아냈다.
그리하여 지하 1층과 지하 2층이 완벽히 분리되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야.
교관들이 이변을 눈치 채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해.
최우선 목표는 홍진우.
그를 최심부로 유인해야 하는 이상 학생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했다.
지하 2층으로 내려온 은하는 다시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타격해서 놈들을 흥분시켰다.
지하 2층 입구에서 야영을 하던 학생들은 갑작스런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도망쳐! 저기로 빠져!”
“짐은 포기해! 무기만 챙겨!”
“안 되겠어! 수가 너무 많아!”
학생들이 모두 달아난다.
그야말로, 몰이사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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