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85
처음에는 홀로 움직이던 학생들은 수가 줄어들수록 팀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밤에는 전투가 금지돼도, 견제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밤이 되면 몬스터들이 흉포해지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 유도준은 가장 많은 세를 차지했다.
따지고 보면 가장 먼저 팀을 꾸린 사람 역시 유도준이었다.
“은혁아.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래. 네가 얘들을 다 상대할 수 있겠어? 은하도 아니고 말이야.”
“…….”
종합능력평가 이틀째.
첫 번째 날에 유도준의 계략으로 1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탈락하고 말았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종편 전부터 세를 불리는데 힘을 기울인 도준은 20명이 넘는 학생들의 지휘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오늘 그의 손짓에 목걸이를 빼앗긴 학생들만 해도 수십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의 보호를 받으며 홀로 남은 최은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비겁하다는 생각 안 해?”
“비겁하다고?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냥 종평 규칙을 이용했을 뿐이야. 그걸 비겁하다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최은혁은 규정에 따라 혼자 힘으로 종평을 치르고 있었다.
때때로 마주치는 학생들과 싸우고, 외곽지대에서 몬스터를 쓰러뜨리며 마석을 모으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식이 늦은 것이다.
그가 외곽지대에 떨어져 있던 사이 군웅할거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었던 흐름을.
“대장이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은하가 종평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친구들이 이런 수를 쓴 것이리라.
그리 생각한 은혁은 유도준의 곁에 모여 있는 친구들을 힐난했다.
그러자 그와 눈을 마주친 배수빈이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노은하 얘기가 왜 나와? 나는 걔가 있었어도 이랬을 거야. 아니, 더했겠지. 바보도 아니고서야, 왜 나 혼자 걔랑 싸우겠어? 당연히 쪽수로 상대해야지.”
“하하! 배수빈, 말 한 번 잘하네! 그래, 맞아. 은혁아, 너도 알잖아. 노은하의 시대는 이제 갔어! 그놈은 이제 퇴물이라고!”
진파랑이 깨방정을 놓았다.
조금 전, 파랑에게 기습을 당했던 은혁은 짧게 침음했다.
두 사람만 없다면야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텐데….
아니, 두 사람이 없었어도 저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은혁은 만약의 가정을 부정하면서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호시미야 카에데.
그녀가 저 멀리서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그녀가 유도준의 편에 붙어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천서도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었기에 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그냥, 끝내.”
저들의 삼엄한 경비를 벗어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은혁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유도준이 그를 불렀다.
“내가 너를 왜 끝내. 우리가 너만 살려둔 이유를 모르겠어?” “…무슨 소리야?”
“은혁아. 내 밑으로 들어와라. 지금 네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최은혁은 저만한 수를 지휘하면서 자신에게 손을 내민 도준의 저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은혁은 어느새 자신 앞에 다가와 손을 내민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나는 적당히 하다 살아남을 생각이었어. 내가 언제 성적 따위에 연연해하는 거 봤어?”
“…아니.”
“근데 도중에 일이 꼬이고 말아서 애들을 끌어 모으게 된 거야.”
유도준은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종평에서 오랫동안 버티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년 2학기 종평의 친분을 이용해 카에데와 진파랑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문제는 순간의 판단 착오로 인하여 정하양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
이에, 그녀가 현재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처벌할 세력을 늘려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 평소에 화를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지금 하양이가 그 상태라고. 제발 나 좀 살려주라.” “…네 책임이네. 자업자득이잖아. 내가 너를 도와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거기 목민호가 있어.” “…….”
목민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은혁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유도준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작년에 부문대회에서 걔한테 지고 다시 싸운 적 없지? 이참에 내가 판을 깔아줄게. 은혁이 네가 민호를 맡아줬으면 해.”
혹하는 제안.
은혁은 조금 전과 같이 딱 잘라서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 갈등이 피었다.
“…하양이 쪽에는 누가 있는데?”
긴 침묵 끝에 은혁이 꺼낸 물음.
유도준은 그의 망설임을 파악하고 현재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확인된 바로는 하양의 팀에는 현재 강시형, 목민호, 차은우, 김민지가 속해 있다고 한다.
“서나는?”
“아, 서나? 나도 몰라.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더라고.”
진서나가 이미 누구 편에 섰는지 알고 있으면서.
유도준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교묘하게 정보를 속여서 은혁을 홀렸다.
“서나 성격에 어디에 낄 것 같아? 진서나처럼 얌체 같은 애는 아마도 자중지란 속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걸?”
“서나는 얌체가 아니야.” “미안, 내가 표현이 조금 거칠었네. 어쨌든, 서나 걔 성격이라면 아마도 어부지리를 취하려 하고 있을 거야. 아니면 이기는 쪽에 붙거나.” “…….”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 은혁아. 내가 네 리벤지 무대를 만들어줄게. 내가 이기게 해줄게. 그런 상황이면 서나도 네가 있는 쪽으로 오려하지 않겠어?”
“…맞아. 그럴 거야.”
“그리고 우리, 작년에 은하 밑에서 아등바등 고생했던 사이잖아. 어?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하긴…, 너하고 내가 같이 고생을 하기는 했지.”
계획대로, 최은혁이 넘어왔다.
유도준은 자신의 손을 잡은 은혁을 기꺼운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은혁아! 내 친구야! 내가 너한테 세상이 뭔지 보여줄게! 너라면 내가 세상의 절반을 주어도 좋다!”
“야! 아까는 나한테 세상의 절반을 준다면서!”
“그래, 파랑 형도 절반을 줘야지! 나는 그냥 안 가져도 돼! 너희들이 나대신 다 가져!”
유도준이 기쁜 마음으로 소리쳤다.
자신에게 세상이 있다면 저들에게 내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저들이 자신의 사람인 이상 세상은 자신의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미친놈들….”
한편, 도준의 페이스에 말려버렸던 호시미야 카에데는 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노은하 사단에게 물들어버리고 말았다.
☆
아카데미 던전 지하 3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가는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슬라임이나 고블린이 목욕을 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에이, 눈 버렸네.
허나 은하의 관심사는 놈들이 아닌 홍진우 패거리였다.
027기와 27기의 유망주로 불리는 학생들이 홍진우를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하가 지하 3층을 들쑤신 바람에 몬스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몰이를 당한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치는 길을 택했다.
“몬스터들이 뭐 이리 많이 나오는 거야? 사람이 아무리 많다지만 이건 너무 심힌 거 아니야?”
“온천 지대를 탈환하고, 탈환해도, 계속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니 이러면 어떻게 씻으란 말이야!”
“…내 식량이 사라졌어. 짐 가방은 물에 폭삭 젖었고.”
학생들이 짜증을 부렸다.
지하 3층은 던전에서 거주하는데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
그곳을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했으니 학생들이 울상을 지을 만도 했다.
반면, 이 상황을 만들어낸 은하는 조금 전 학생들이 퇴각하며 놓고 간 가방에서 식량을 빼냈다.
챙길 것은 챙기고, 챙기지 못하는 짐은 학생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온천 속으로 던져 넣었다.
“진우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던전에 이상사태가 발생한 건 분명해. 파티들끼리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층도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데, 아래층은 더 많을 수도 있어. 우리 위층에서 내려오는 애들을 기다리지 않을래?”
호시미야 카에데나 정하양이라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위장마법을 꿰뚫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홍진우 패거리는 숨어 있는 은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한 명은 알아차렸다.
은하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학생을 찾았다.
이전 삶에서 단군클랜에서 활약한 플레이어, 최준호.
그는 자신의 존재를 간파하지 못한 듯싶었지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싶었다.
“…저기, 애들아. 신경이 쓰이는 게 하나 있는데…,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뭐? 뭐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학생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하던 그가 말을 꺼냈다.
학생들의 시선이 은하가 있는 곳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기분 탓이겠지, 뭐.”
은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지하 3층에서 소동을 유도했을 때, 제일 먼저 홍진우의 패거리로부터 텔레파시스트를 떨어뜨려 놓은 게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감각이 발달한 텔레파시스트가 자신의 냄새를 맡고 말았으리라.
“…이상하다?”
“기분 탓이야. 네가 자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지하 4층으로 내려갈 거야?”
홍진우 패거리는 4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하고서도 3층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다수 파티가 파티원을 잃었다. 한밤중에 일어난 소란으로 인하여 퇴각을 하던 도중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지금 뭉쳐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들은 3층에서 내려오는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원군은 오지 않을 거야.
흩어진 사람들하고 합류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거고.
안타깝게도 그들은 2층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각 층으로 이어지는 길목과 입구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해 있었기에, 지원군이 내려오는 데에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리라.
저들이 그들을 기다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층에서 헤어진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몇은 혼란 속에서 도망을 치다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일부는 은하가 처리하기도 했고.
던전이 숙청이나 암습의 장소로서 사용되는 이유가 뭔데.
플레이어가 던전에서 죽는 상황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사체도 찾기 어려워서 사인을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인 거잖아.
필시 낯빛이 어두운 이들은 헤어진 파티원들의 결말을 눈치 채고 있는 것이리라.
다만 파티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 터.
은하는 저들이 다시 지하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공략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너희들 힘 빼는 건 충분히 했어.
이제 좀 아래로 내려가라.
은하는 지나가는 몬스터의 머리를 칼집으로 한 대 때렸다.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몬스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홍진우의 패거리를 발견했다.
“…아씨! 저건 왜 갑자기 달려드는 거야!?”
“그냥 지나가던 거 아니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야! 또 웨이브 터졌다! 준비해!”
몬스터들을 한 대 때리고 도망치는 일은 매우 쉬웠다.
그런 식으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끈 은하는 홍진우의 패거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이했다.
그래도 수가 너무 많아.
쟤네들을 떨어뜨려 놓아야 해.
슬슬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은하는 천보를 사용해 도망을 치는 홍진우 패거리를 가뿐히 지나쳤다.
패거리를 둘로 나누기로 했다.
은하는 몬스터의 공격을 가장해서 검격을 날렸다.
“꺄악!” “뭐, 뭐야!?”
바닥에 선이 그어졌다.
그곳을 지나려던 학생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한순간 주저한 사이, 뒤를 쫓아오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그들을 덮쳐들었다.
원령
그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은하는 고등제어기술을 사용했다.
원령에게 사로잡힌 이들은 마나를 컨트롤하다 역공격을 당했다.
덕분에 무리에서 떨어진 학생들은 오직 육체적인 힘만으로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란을 눈치 챈 몬스터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최준호!”
“진우야! 먼저 가! 걱정하지 말고! 내가 곧 따라갈게!”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선 홍진우는 떨어져나가 학생들 속에서 최준호를 찾아 헤맸다.
그들과 한창 몬스터와 전투를 하던 최준호는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홍진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홍진우가 자신을 걱정하지 않게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최준호! 어서 이리 와!”
어느새 몬스터들은 4층 길목에 선 홍진우와 그의 패거리를 무시하고 떨어져나간 학생들에게 향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모든 방향에서 몬스터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최준호를 구하러 가란 말이야…! 아니, 내가, 내가 가겠어!” “진우야! 이러지 마! 위험해!” “여기는 위험해! 너희는 어서 진우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저쪽은 준호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너는 네 몸부터 신경 써!”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
홍진우는 검을 들고 친구를 구하러 몬스터들 속으로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그를 붙잡고 말렸다.
상식적으로 저 소굴로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놔! 놔! 이거 놓으라고!”
홍진우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최준호는 다른 학생들에게 붙잡혀 아래로 내려가는 그를 향해 말했다.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극침격자
사람의 피인지, 몬스터의 피인지 혈흔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은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
은하는 몬스터와 전투를 치르느라 빈틈을 드러낸 최준호의 배때기에 검은 가시나무를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냉큼 칼을 빼냈다.
최준호에게는 순간적으로 드러난 형체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배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힘이 풀린 그가 무릎을 꿇었다.
결국 앞으로 고꾸라졌다.
“진…우…야….”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한편, 무언가 음모를 감지했다.
어서 홍진우에게 알려야 한다.
홍진우가 위험하다.
최준호는 누군가에게 그걸 알리러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짰다.
하지만 결국─.
“─먼저 가 있어라.”
최준호는 숨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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