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86
최준호.
이전 삶에서 그는 홍진우의 칼 중, 가장 더러운 칼이었다.
업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로, 대외적으로 단군클랜에 속해 있던 SSS급 플레이어는 홍진우가 시키는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했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던전에 들어가 행방불명이 되거나 사망을 해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전투에서 하필이면 재수 없게 목숨을 잃거나.
무엇보다─.
─그 새끼 때문에 유정이를 울릴 뻔했어.
은하가 고등아카데미에서 1학년에 재학하고 있었을 때.
홍진우는 이유정을 겁탈하려 했고, 은하는 돌연 사라진 그녀를 찾다가 홍진우의 패거리와 대치했다.
그들 중에 최준호가 있었다.
그때 그가 길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이유정을 더 일찍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로 그들의 악연이 이어졌다.
홍진우가 단군그룹의 회장이 되고, 하백련이 선녀로 취임한 이후에는 정점에 달했고.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을 정도로 천천히 괴롭히고 싶었지만, 시간을 진득이 뺄 수는 없어.
그리고 목표는 최준호가 아니라, 홍진우 그 자식이니까.
최준호를 죽였다.
원래 그를 죽일 계획은 없었으나, 은하는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지하 4층으로 몰이하면서 무리가 두 개로 나뉘어버렸을 때, 하필 최준호가 홍진우의 파티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란을 틈탄 은하는 재빨리 놈의 심장을 찔렀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어.
사실 은하는 최준호의 죽음을 내심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원한이 깊었기 때문에 놈이 고통에 절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의 인생을 산 그는 찾아온 기회를 미룬다는 게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저해서는 안 됐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피를 보고 말 것이다.
자신이 피를 보는 일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이 피를 볼 수 있었다.
그때 가서 후회하더라도 늦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 말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허용되는 말인 동시에 죽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허용되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노은하는 자신에게 불리한 미래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놈들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은하의 기준으로는 먼 미래에 십이좌가 되는 한창진도 죽여야 했다.
한창진.
지하시장과 어둠을 지배하게 되는 남자는 하백련이 만들어나갈 정부에 가장 위험이 될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하는 보류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 한창진에게 당한 것이 워낙 많았음에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하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삶의 한창진을 보면 사람은 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사람은 변하는 거라 한다면 한창진은 선하게 변한 거거나 혹은 아직 악하게 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사람이 정말 변한다면 자신조차 변할 수 있다는 말이리라.
…상상이 안 가네.
사람은 안 변해.
한창진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형을 회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은하는 몬스터들과 학생들이 끝내 동귀어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어베니어즈 클로크를 해제했다.
오랫동안 위장마법을 사용하느라 체내 마나를 꽤 소모하고 말았다.
그는 몬스터는 죽어서 사라진 채, 피바다 속에 남겨진 학생들을 향해 다가갔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이들에게는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하며 그들의 짐을 뒤졌다.
포션과 물, 필요한 것만 챙기고는 떨어진 마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래층에는 얼마나 있으려나.
지하 4층부터는 난이도가 높아지니 사망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고….
마음이 끌리지는 않아도 홍진우가 마지막 층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보호를 해줘야겠네.
은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고등아카데미 학생들의 사망사고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전투기술을 익히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간의 시선은 의외로 그들의 죽음에 무덤덤했다.
더군다나 고등아카데미 학생들은 법적으로 준성인으로 취급되었다.
미성년으로 구분되는 중등아카데미 학생들과 입장이 다르기도 했다.
‘단순히’ 몬스터에 의해 발생하는 사망사건이라면 세간은 언제나처럼 으레 있는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은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체를 정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편재를 일으켰을 뿐이다.
혹시라도 남을 ‘인위적인’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이제 아래층으로 출발해야겠네.”
죽일 수 있는 놈은 죽이고.
죽일 수 없는 놈은 보류한다.
대신 반드시 죽여야 하는 홍진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몰이를 하면서 최심부에 도달하게 될 때까지 돌봐야 한다니….”
은하는 쯧 혀를 찼다.
하백련을 돌보는 것이라면 모를까.
홍진우를 돌보는 것이라면 죽어도 사양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혐오감이라는 벌레가 신체 전체를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늘따라 백련이가 보고 싶네.
얘는 잘 크고 있으려나.
은하는 지옥을 뒤로 했다.
다시 지옥을 만들러
간다.
☆
홍진우를 위시한 학생들은 누구도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
그들은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누군가의 죽음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하나 눈앞에서 동료들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걸 멀쩡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유망주로 통하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은 죽을 수 있더라도, 자신과 동료들은 죽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확신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진우야. 물 마셔.”
“…됐어.”
“마셔야 해. 수분이 부족할 거야.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어.”
아카데미 던전 지하 4층.
몬스터 무리에 쫓겨 도망친 이들은 지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힘겹게 정신을 차린 서포터가 홍진우에게 물을 건넸다.
최준호를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는 한사코 거절을 했다.
“그래도 마셔야 해. 살아서 여기서 나가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서포터의 태도는 단호했다.
결국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물로 목을 축였다.
전부 마실 수는 없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물병을 돌린 그는 파티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불완전한 파티로 남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학생들을 규합해서 하나의 파티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지하 4층부터는 난이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니까.
그는 학생들을 불러모았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위층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까 차라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해. 식량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야. 5층에는 우리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식량이 구비되어 있을 거라 했으니 최심부로 향하는 수밖에 없어.” “지하 4층은 야영을 하기도 굉장히 애매한 장소야. 조금 위험하더라도 5층으로 내려가, 거기 있는 절에서 숨을 돌리는 게 좋을 거야.”
파티를 기워 맞춘 터라 어찌 보면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유망주들이었다.
각 파티의 리더와 네비게이터들은 가장 이상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래, 좋아. 그렇게 하자.”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답을 택하는 사람은 홍진우였다.
새로이 연합으로 탄생한 학생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두려움을 떨쳤다.
방탕아라 불리던 그가 위기 속에서 진정한 지배자로서 거듭난 것이다.
“…길을 뚫어! 뒤돌아보지 말고! 다들 앞만 보고 달려!”
그럼에도 그는 길을 뚫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이들을 모두 구하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심적으로 초췌해져갔다.
자신감은 꺾이고 꺾였으며.
자존감은 계속 추락해갔다.
“…포기…, 하지 마…!”
아무리 악에 바쳐 소리치더라도.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이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끔 붙잡고 있는 듯했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앞이 캄캄한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더는 패배감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
북한산 어딘가.
두 세력이 있었다.
두 세력의 수는 비등비등했다.
학생들은 주변에 나무가 들쭉날쭉 들어서 있는 들판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응시한 채로 마나를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두 세력을 이끄는 수장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아줄 생각은 없는 거지?”
“네 목을 준다면 없던 걸로 할게.”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거네.”
유도준과 정하양.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들은 이 악연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다.
“하양아, 그래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어째서?”
“우리나 너희나 수는 비슷하다지만 전력은 우리가 더 세니까. 하양이 너도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때 유도준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하양의 시선이 움직였다.
유도준의 세력에서 익숙한 얼굴이 몇몇 보였다.
호시미야 카에데와 진파랑은 물론, 이천서와 배수빈도 저 안에 있었다.
심지어 최은혁까지.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담당하는 친구들이 유도준의 편에 선 것이다.
그럼에도 정하양은 기죽지 않았다.
[결국 은혁이 너도 파랑이 오빠랑 같은 부류였구나?]“서, 서나야, 그게 아니라 도준이가 꼬드긴….”
[결국 넘어갔네, 넘어갔어.]“그게 아니라니까! 네가 이쪽으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면? 지금이라도 우리 편으로 넘어올 거야?]“…미안. 남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자신에게도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진파랑보다 텔레파시를 더 잘하는 서나가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설마 진파랑과 최은혁이 있다고 전력이 더 세다는 말을 하는 거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군. 어의가 가출을 한 것 같다.”
“그냥 오합지졸이네. 유도준 네가 노은하도 통제 못하는 빙구 오빠를 통제할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이제 곧 여름이 된다고 해도 아이스크림 녹는 소리는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목민호와 김민지가 있었다.
두 사람 역시 자신만만했다.
둘 사이에 끼어 있던 차은우 또한 전투의지를 불태우면서 보호마법을 구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정하양은 저들을 보고서도 자신하고 있었다.
해볼 만했다.
무엇보다도─.
“─근데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녀에게는 비밀병기가 있었다.
하양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묻는 유도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숲속인 걸 잊었니?”
“…카에데!”
유도준이 웃는 얼굴로 굳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황급히 카에데를 불렀다.
이미 카에데도 그녀의 말을 듣고 감지망을 전개하고 있던 듯했다.
그녀가 재빨리 대답했다.
“처음에 확인했던 것처럼 주변에 매복은 없어.”
“…그렇다는데? 우리한테 카에데가 있다는 걸 잊고 있는 거 아니야?”
유도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시 장난스러운 어조를 찾은 그가 하양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에도 하양은 미소를 띤 얼굴을 잃지 않았다.
“정말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카에데의 감지를 피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니?”
“블러핑은 그만해. 다 들켰으니까.”
“아니. 안 들켰어.”
“그러니까 다 들켰대도…. 어?”
도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을 때.
그러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듯싶었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전해진 소리는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오우! 오우!
오우! 오우! 오우!
“…이게 무슨 소리야?”
마치 전투에 나가기 직전에 힘껏 외칠 것 같은 기합 소리.
유도준은 어느새 숲 전체를 뒤덮은 소리를 듣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났다.
“…말도 안 돼. 매복이 있을 리가 없는데….”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던 호시미야 카에데도 크게 당황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로 바닥을 내리찍는 소리와 기합 소리는 분명히 숲속 어딘가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기에.
우! 간다! 우! 간다!
우! 우! 우! 우! 우!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딱
정하양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을 신호로 숲속 저편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마법이 유도준을 향해 쇄도했다.
배수빈이 재빨리 방벽을 전개하고, 카에데가 그녀가 방어하지 못하는 지역을 커버하려고 했다.
그때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정하양의 세력이 약속이라도 한 듯 유도준의 세력을 향해 달려 나갔다.
방벽 따위는 상관없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포식
그녀가 펼친 고등제어 기술이 이내 배수빈과 카에데의 방벽을 순식간에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워어언~!!! 나를 따르라아~!”
“”””우! 간다! 우! 간다!””””
그녀가 은신마법으로 감추고 있던 강시형과 몇몇 학생들이 난데없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났다.
작은 방패를 짊어진 강시형은 연신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서는 학생들의 사기를 고조시켰다.
“우! 간다! 포에버─!! 포에버 영!”
“”””포에버! 포에버! 포에버 영!””””
이 순간.
남학생들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가디언은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