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88
홍진우로 말할 것 같으면.
정재계에서나 플레이어 업계에서나 그에 대한 악명은 익히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떠받들어진 이유는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기인했다.
단군그룹은 10위 이내에 해당하는 재계그룹 중에서 말단을 차지하나, 플레이어와 관련된 사업을 주력으로 삼았기 때문에 업계를 꽉 쥐고 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단군그룹의 회장 홍준일은 손자인 홍진우를 끔찍이도 아꼈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게 될 거라고 떠들어댔다.
따라서 홍진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굳건한 왕좌를 손에 쥐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론이 놈의 편이었으니까.
은하는 몬스터들의 군세가 서울을 침공하는 그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흘을 자지 못하고 싸웠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많은 영웅들이 나타났다.
어찌 보면 몬스터 군단의 침공은 그동안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랑 유정이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주목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들 중,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은 대략 다섯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아카데미를 갓 졸업했으면서도 제3위계 몬스터를 상대로 혈전을 펼쳤던 온태양.
플레이어는 아니었으나,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 을 발동시킨 이리야.
강북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제3위계 오버랭크
도마뱀의 왕을 멸하는데 공을 세운 한창진.
몰려드는 군세를 마주하고도 결코 물러서는 일 없이 단신으로 그들을 몰아세웠던 류연화.
마지막으로.
세 마리의 군단장들을 지휘하면서 서울을 침공했던 제3위계 오버랭크 몬스터 예경을 토벌하는데 공헌한 단군그룹의 직계 홍진우.
실력은 별 거 아니었지만 기프트 하나는 알아줘야 했지.
당시 세간에 떠도는 말이 있었다.
홍진우가 있었기 때문에.
예경을 토벌할 수가 있었다고.
강북의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교묘하게도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세간에 각인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플레이어 업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선녀정부가 연이은 재앙으로 인해 여론의 몰매를 맞아가는 것하고는 완전 정반대로.
하여─.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망나니였지, 아주.
홍진우는 하백련의 적이 되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죽이겠노라고.
영웅이, 영웅으로 불리기 전에.
☆
아카데미 던전 최심부 어딘가에는 히든 피스가 존재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정보였다.
사람들은 그곳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경계세계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하는 홍진우가 던전을 찾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히든 피스에 들어왔다.
도중에 던전과 히든 피스를 나누는 섭리를 직면한 은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이곳에 도달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어찌어찌 섭리에 저항할 수 있었다.
“……!”
그때 정신이 아찔해졌다.
몇 걸음을 가지 못한 은하는 냉큼 벽에 손을 짚었다.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물론이고.
강렬한 헛구역질이 일었다.
몇 번이나 구역질을 한 그는 이내 홀스터에서 꺼낸 포션으로 입 안을 헹궜다.
홍진우를 찾아야 해.
차츰 균형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히든 피스에 어딘가에 있을 홍진우를 찾기 위해 발을 옮겼다.
오랜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었다.
홍진우는 그가 떨어진 곳에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려 하는 그때.
“─…여…기는….”
홍진우가 눈을 떴다.
피를 쿨럭쿨럭 토한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려하다 쓰러졌다.
기프트 의 영향으로 의식을 되찾는 속도가 빠른 듯했다.
정작 몸은 세계선을 넘어온 것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분명 벼랑 아래로….”
“마침 깨울 수고를 덜었네.”
“…노은하?”
바닥에 떨어진 검을 얼른 찾아서는 갈지자걸음으로 일어난 홍진우.
그는 곧 은하를 발견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은하가 여기에 있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네가 그랬냐?”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홍진우의 눈에 노기가 깃들었다.
은하가 그에게 한 걸음을 내딛자, 그는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검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네가 날…, 밀었냐?”
“밀기만 하지는 않았는데.”
홍진우가 두려워하고 있다.
은하는 떨림을 감추려하지 못하는 검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들인 노력의 결과였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해왔던 일련의 행동이 자신에게 두려움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뭐?”
“왜 위층에서 애들이 내려오지는 않았는지, 왜 가는 곳마다 너희가 몬스터들에게 쫓겼는지. 한 번쯤은 의심해봤을 법한데…. 혹시 누군가 의도한 것은 아닌가 하고.”
“설마….”
흔들린 것은 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노기는 흩어져 의심이 되었으며.
의심은 이윽고 확신이 되었다.
“맞아, 내가 그랬어.” “…이 개새끼야─!!”
은하는 덤덤히 그가 떠올린 확신을 긍정했다.
노성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홍진우는 그에 대한 두려움도 잊고 목이 나가도록 크게 소리를 질렀다.
검은 전보다 격하게 떨렸으나.
그것은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닌 분노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근데 그것도 알아?”
은하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홍진우를 비웃었다.
홍진우의 눈에 담긴 감정이 짙은 살의와 분노였다면─.
“─내가 최준호를 죽였다는 거.”
노은하의 눈에 서린 감정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악의와 조소였다.
은하는 어깨를 들썩였다.
안 되겠다.
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겠다.
“네 친구 내가 죽였어. 아냐고. 어? 내가 정말 미안하게 됐다.”
“…너어어어어─!!”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간다.
은하는 이제 대놓고 깔깔거렸다.
이전 삶에서 안개꽃 파티를 기어코 으로 몰아넣고 나서 홍진우가 했던 것처럼.
꺼이꺼이 웃으면서 미안하다면서, 자신이 하백련을 지키고 있겠다면서 자신을 비웃었을 때처럼.
은하는 그를 비웃었다.
“노은하─!!”
은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겉으로는 아니라 하고 있었으면서.
사실은 홍진우가 여론을 들먹이며 자신과 안개꽃 파티의 파티원들을, 하백련의 편에 섰던 플레이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데에 아주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걸.
‘─내가 정말, 미안하게 됐다. 근데 국민들이 바란다잖아. 우리도 어? 이탈리아처럼 흑색던전을 공략해서 이 세상의 진실을 확인해보자고.’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은하는 눈앞으로 들어오는 칼날을 별다른 동작 없이 피해냈다.
홍진우의 눈에 당황함이 서렸다.
은하는 무표정으로 홍진우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홍진우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래도 뭐…. 내 힘으로 애들 몇몇 빼주는 건 가능할 것 같다만.’
‘…….’
‘계속 가만히 서 있고 뭐해?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냐? 어서 살고 싶으면 꿇어, 이 새끼야.’
이전 삶에서.
단군클랜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은하는 웃음을 지운 얼굴로 말하는 그에게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다.
“…이제야 내려다볼 수 있게 됐네.”
“…커헉…!”
“내가 그냥 잊고 살려고 했는데….”
“…노…은…허억…!”
“아무래도 도저히 못 잊겠다.”
은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며 눈을 부라리는 홍진우의 얼굴을 무참히 밟았다.
그의 눈에 맺힌 분노를 지우면서.
그 눈동자에 공포가 깃들게끔.
‘내가 유정이 하나는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살려준다.’
‘…….’
‘근데 이거 하나만 묻자. 너 걔랑 어디까지 갔냐? 잤냐?’
‘…….’
‘허, 참. 그래, 그렇다 이 말이지? 야, 근데 넌 이유정이 어떤 애인지 잘 모르지? 손 안에 카드가 있어도 써먹지 못하는 이 X신아.’
홍진우가 몸을 벌벌 떨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그가 이제는 벌레처럼 기며 은하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은하는 바닥을 질질 끄는 발목을 있는 힘껏 짓밟았다.
홍진우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통에 찬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은하는 다시금 발목을 짓밟았다.
다리 하나를 분질렀다.
“…살…려줘…!”
홍진우가 눈물을 질질 흘리며 하는 말이 은하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살려달라고 빌어. 잘못했다 빌어. 그러면 내가 다른 애들까지 살려줄 수도 있어. 뭐, 살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만.’
‘…….’
‘왜. 못하겠냐? 하긴, 네 자존심이 참 더럽기는 하지. 가진 거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유도준 그놈이랑 하백련에게 빌붙어서 살기만 하는 주제에 말이야.’
‘…살…려줘.’
‘염치도 없는 놈. 여기 있는 애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말해야지, 이 새끼야!’
홍진우의 비웃음이 지나간다.
그 소리를 떠올리기 싫어서.
은하는 손톱이 떨어져나가면서까지 도망치려 애를 쓰는 그를 밟았다.
다리를 하나 더 분질렀다.
“그때 너한테 굽혔다고 하더라도, 네가 날 도와줬을 리가 없지.”
“…으어어…어흐…크으…!”
“넌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꺾이려던 때가 있었다.
더 이상 하백련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도박을 하듯이 을 공략하는 것밖에는 하백련을 구할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은하는 제 한 목숨을 내주는 걸로 홍진우에게 굴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야들아!! 우리 리더 어디에다가 숨겨놨냐!? 나보다 훨씬 호구 같은 리더 찾으러 왔다!’
‘야, 씨, 내가 공략하러 가겠다는데 그걸 네가 왜 막냐.’
‘여기서 우리 리더가 무릎을 꿇고 있다면서? 그런 꿀잼각을 왜 너희가 본데? 우리도 아직 못 봤구만….’
「우리 리더 찾으러 왔어요.」
그때 파티원들이 오지 않았다면.
그들이 무릎을 꿇은 자신의 주변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언제 너한테 살려 달래? 한 파티를 이끄는 사람이 쪽팔리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금.’
이유정이 오지 않았다면.
그때 그녀가 다짜고짜 놈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은하는 정말로 굴복했을 것이다.
그녀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참에 너희한테도 말하겠는데, 꼭 명심하도록 해. 우리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살려고 가는 거지.’
은하는 마지막까지 손에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곁에 있어주었기에 은하는 최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 삶에는.
그렇게 죽지 않겠다.
반드시, 살아남겠다.
“울지 마. 왜 울고 그래.”
“…미…미안해! 자, 잘못….”
“네가 뭘 잘못했는데.”
은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 그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연신 은하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말해봐. 네가 뭘 잘못했는데.”
“…….”
은하는 나직이 읊조렸다.
벽까지 홍진우를 몰아세운 은하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살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그 애…. 진…서나….”
히끅 딸꾹질을 하는 홍진우.
웅얼거림은 잘 들리지 않았으나, 은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재촉했다.
“또.”
“…종강…파티에서….”
“또.”
“…….”
“더 말해봐. 뭘 잘못했는데.”
홍진우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서 말을 할 때마다.
은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를 재촉하기만 했다.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이 문답이 언제 끝나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해서.
동시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기인해서.
“더 없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은하는 검은 가시나무를 뽑았다.
홍진우가 부러진 다리를 움직이며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바짓가랑이를 잡은 그가 은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은하는 그를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잘못했으면─.”
은하는 검은 가시나무로 홍진우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홍진우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칼끝이 그의 어깻죽지를 푹푹 찔러댔다.
죽일 듯, 말 듯.
마치 장난을 하는 것 같은 행동은 그에게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은하는 칼을 거두지 않고 말을 이었다.
“─죽어야지. 안 그래?”
“……!”
순식간이었다.
홍진우를 골리던 은하는 느닷없이 그의 팔을 반쯤 잘랐다.
피분수가 튀어 오르고.
팔이 덜렁거렸다.
제 피로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인 홍진우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눈동자가 천천히 현실을 부정하러 칼이 지나간 곳을 보려 했다.
“…아아아아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눈에 담은 그가 비명을 질렀다.
덜렁거리는 팔을 어떻게든 붙이려, 남아 있는 팔로 부여잡았다.
“어딜 봐. 날 봐야지.”
그런 상태에서 은하는 무릎을 굽혀 홍진우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고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덥석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든 말든.
은하는 억지로 자신을 피하려 하는 홍진우의 눈을 보고자 했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벌써부터 겁을 먹으면 어떡해?”
은하는 키득거렸다.
공포를 연상케 하는 마나가 눈가에 맺혀 있었다.
이윽고─.
“─그동안 편했지? 아주.”
공포와 환상이 도래한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