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95
정석훈의 앨리스그룹 회장 취임식.
회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앨리스그룹의 계열사에 속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앨리스그룹과 연관된 인사들이었다.
앨리스그룹의 방계가 아니고서야, 은하 또래의 사람들은 참석을 하지 않은 듯싶었다.
“어? 오빠! 유천 오빠도 왔나봐.”
“어디?”
그러다 보니 또래의 사람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민준식에게 앨리스그룹의 증표를 계승하는 정석훈을 바라보던 은하는 옷을 잡아끄는 은애의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저 앞에 있는 곳에 이유천이 앉아 있었다.
유도준도, 한서연도, 정금전 형도 오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저 형은 왜 온 거지?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하양과 친분을 가지고 있거나, 앨리스그룹과 교류를 하고 있는데도 재계 10위 이내에 드는 그룹에서는 직계가 참석하지 않았다.
취임식은 어디까지나 앨리스그룹의 행사였던 데다가, 직계들의 일정이 한가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앨리스그룹의 회장에게 축하를 건네려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거라 해석할 수 있었다.
유도준처럼 승계권이 확실치 않은 직계가 참석했다가는 앨리스그룹과 상대편에게 오해의 소지를 만드는 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천 저 형이 거의 확실하게 루미너스그룹 회장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기는 하지.
은하가 듣기로, 몇 년 전에 일어난 이병인의 테러로 인해 그와 연관된 사람들은 루미너스그룹에서 제대로 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병인의 호적에 오른 이들은 모두 경영에서 물러나 제주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까지 했으니.
그런 상황에서 루미너스그룹 회장 이정인에게 자녀는 둘밖에 없었고, 대외적인 행사에 모습을 보이는 건 이유천이 유일했다.
따라서 이정인 이후의 회장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유천이 오빠 주변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을 거는 것도 힘들겠다. 인사는 다음에 할까?”
“응! 이따 서나 언니 보러 가자!”
한편, 동해그룹의 직계인 정금전은 귀찮아서 참석을 하지 않겠다면서 은하에게 톡을 남겼다.
기다리면 무료나 보겠다면서.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은하는 관심을 끄기로 했다.
“오빠, 오빠.”
“왜?” “서나 언니도 오늘 엄청 예쁘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 “…그러게.”
은하는 이번에는 고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재계 순위 10위 이내의 그룹에서 참석한 은하 또래의 직계는 이유천 한 명밖에 없었으나.
다른 그룹의 방계가 한 명 있기는 했다.
이제는 다른 그룹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KK그룹의 계열사 KK제약.
허나 앨리스그룹으로 편입된 것이 다름이 없는 KK제약은 사장이 몸소 이 자리에 발걸음 한 것이다.
이번에 ‘되찾은’ 진서나를 데리고.
대외적인 상황으로부터 안에 담긴 속뜻을 파악하는데 능한 사람들은 KK제약의 행동에서 두 가지 상황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하나는 KK제약이 앨리스그룹에게 얼마나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인지를.
다른 하나는 KK제약에서는 이제 진세나가 아닌 진서나를 더 우대를 하겠다는 것을.
그러니까 잘 봐달라는 거겠지.
그리고 은하는 남들이 읽지 못했을 세 번째 의미를 읽어냈다.
이 자리에 진서나를 데려온 의미는 앨리스그룹의 조건대로 움직였으니 모쪼록 자신의 경영권을 보존해달란 것이었다.
어찌 보면 협박과도 같았다.
진서나를 인질로서 데려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만약 그러면…, 어찌 되나 보자고.
앨리스그룹이라면 몰라도.
은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KK제약의 사장이 혹시라도 서나를 인질로서 다루려 하겠다면, 그때는 그를 제거하면 될 뿐인 일이었기에.
문제는 정재계의 사람들이 이곳에 참석한 진서나에게 보이는 반응이었다.
“어찌 아인 따위가….”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옛날에 버린 자식을 주워온 거람? 그대로 모른 척하고 살아도 됐을 텐데….”
“저 집 아내가 계속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더라. 결국엔 피붙이를 잊지 못했던 거지.”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이 자리에 데려올 필요가 있나?” “애가 한 명 더 있지 않았나?” “이번에 거기 난리가 났잖아요. 그, 홍진우 걔가 죽어버린 바람에 그만 망해버렸잖아요.”
“하긴…, 그쪽 집안 딸내미는 이제 자랑할 것도 없는 이상 혼사가 아예 막힌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래서 오래 전에 버렸던 아인을 데려온 걸까요? 아무리 그렇다지만 저 아인이 낳는 아이는 피가 이어져 있지도 않을 텐데….”
아무 사정도 모르는 이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오감이 발달해 있는 아인인 서나는 그것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음에도 평온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나는 괜찮아.]은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때마침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서나가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이게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인걸. 언젠가, 저 사람들이 나한테 고개도 들지 못하게 만들어줄 거야.]서나의 포부.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만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은하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서나랑 하양이가 얼마나 친한데.
대놓고 무시하면 큰일 날 거다.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앨리스그룹에서 KK제약의 위치가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이제 진서나는 정식으로 정하양의 최측근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은 언젠가에 불과했지만.
하양이 그룹 경영에 참가하는 때가 오게 된다면 서나의 위치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힘내.
[나 심심하니까 끝나고 일로 와.]취임식이 진행되는 내내.
은하는 연신 지루하다고 투덜대는 서나의 텔레파시를 받아줘야 했다.
“오빠 괜찮아? 어디 아파?”
“…아무것도 아니야.”
텔레파시는, 일방향적인 통신수단이었다.
쌍방향이 불가능했다.
☆
은하가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진서나를 대하는 모습은 취임식이 끝나고 크게 달라졌다.
앨리스그룹의 회장이 된 정석훈이 그녀를 마치 제 딸을 대하는 것처럼 대한 것이다.
더군다나 민준식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으니.
“서나야! 와줘서 정말 고마워!”
“하, 하양아…? 나 숨….”
정하양은 더했다.
그녀도 조금 전의 상황을 보았는지 말을 붙이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짜고짜 서나에게 돌격한 것이다.
하양은 그녀가 숨이 막힌다는 말을 꺼낼 때까지 팔을 풀지 않았다.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빠, 우리는 안 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여차하면 은하가 아버지를 앞세워 서나를 두둔하려고 했더니 앨리스가 저리도 신속하게 대처했다.
서나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 은하는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나 가람이도 보고 싶고, 하양 언니도 보고 싶고, 서나 언니도 보고 싶은데…. 서나 언니는 정말,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건데…!”
“알았어, 가자, 가자.”
차라리 가만히 있을까.
저 많은 이목을 받게 되는 것을 꺼려하던 그는 끝내 은애를 이기지 못했다.
이왕 서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시리우스그룹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아버지의 자식인 자신의 힘도 같이 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려던 은하는─.
“─아, 역시 은하 너도 여기에 와 있었구나. 이럴 줄 알았어.” “유천 오빠!”
─이유천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서나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아니,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세 사람.
이유천이 루미너스그룹의 회장인 이정인까지 데려온 것이다.
“아, 네가 은하구나? 유천이한테서 이야기는 잘 들었단다.”
“…안녕하세요.”
은하는 설마 루미너스그룹 회장이 참석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갑작스레 이정인을 만나게 된 그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은애야. 하양이한테 가 있어.” “오빠?”
“먼저 가 있어.”
이유천만 있었다면 모를까.
이정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인사만 하고 헤어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은하는 등 뒤에 있던 은애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은하의 손을 잡고 갈팡질팡하던 은애는 이윽고 그의 말을 따랐다.
“미안, 많이 놀랐지? 우리 아빠가 전부터 은하 널 궁금해 하고 있었거든.” “아…, 그래?”
“그래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은하 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헛걸음은 면했네.”
은하는 이유천의 말을 듣고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가 어째서 이 자리에 참석했는지 이유가 궁금했건만.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 말했으니.
“…형, 엄청 할 일 없나 보다?” “나? 할 일 엄청 많은데? 이것도 시간을 쪼개서 나온 거야.”
물론, 루미너스그룹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자신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회장이 움직인 일이었다.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터.
이를 테면, 루미너스그룹이 얼마나 앨리스그룹과 친분이 있는 것인지 세간에 과시하고자.
“우리 아빠가 앨리스 회장님하고 술친구잖아.”
“이놈아. 그걸 말하면 어떡하니.”
그것을 증명하듯.
유천이 이정인에게 꿀밤을 맞으며 은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이정인과 정석훈이 성격도 똑같고 취향도 비슷하다고.
그러다 보니 문란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두 사람은 모임에서 둘이 마시는 일이 잦았다고.
은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해도 어찌되었든 루미너스그룹이 친분을 과시하려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정말 잘됐구나. 앞으로도 유천이랑 친하게 지내주렴.” “네.”
“그리고─.”
이정인이 손을 내밀었다.
은하는 그와 악수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은하가 손을 내미는 순간, 이정인이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껴안은 것이다.
“─도와줘서 고맙다.”
“…네?”
이정인의 어깨 너머로 깜짝 놀란 이유천이 보인다.
은하 역시 깜짝 놀라서 안긴 채로 굳어 있었다.
두 사람의 포옹을 보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커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이정인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충격을 받았기에.
“네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은하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수학여행지에서 일어난 사건.
이정인은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나 그때를 말하고 있었다.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동안 너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없었거든. 그래서 감사인사가 조금 늦은 감이 있다만 정말 고맙다.” “…어떻게….”
은하는 당황했다.
어떻게 이정인이 그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은하는 머리를 굴리며 그때 당시에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었는지 연신 생각했다.
동시에 이정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CCTV요?” “그래.”
이정인이 간략이 알려주었다.
새벽호텔의 영상기록을 조사하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그것을 민준식에게 보여주었다가, 민준식으로부터 영상을 폐기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에 대해 궁금해 하려 하지 말란 말과 함께.
“전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구나.”
“…….”
“아직 세상에도 나오지 않은 애를 너무 괴롭히려 하지 말라고.”
“하하….”
이정인은 루미너스그룹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 정신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을 구해준 소년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유천이 은하를 만나게 된 것이고.
“너는 내…, 아니, 우리 가족들의 은인이란다.”
“…….”
“그러니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의지하렴.”
은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우연히 이정인이 살해당하는 곳에 수학여행을 가서.
우연히 그의 죽음을 막아냈다.
그리하여 이정인은 이전 삶과 달리 루미너스그룹의 회장이 되었으며, 자신에게 채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 편의적인 거 아니야?
세상에 어찌 이런 기연이 있을까.
이전 삶에서는 불행하기만 했건만.
이번 삶에서는 행운이 가득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약 이전 삶에서 가족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이전 삶도 이와 같이 흘러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맙지. 다시 말하지만, 정말 고맙다.”
그러나 은하는 이전 삶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정인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이전 삶에서 기억하고 있는 이병인과 다르게 인자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나한테도 은하 너랑 나이가 같은 딸아이가 있단다. 그래서 그런 건지 너한테 더 친근감이 가네.”
“…그런가요.”
“그래. 힘든 거 있으면 말해주렴. 내가 널 내 딸처럼 여기고,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테니까.”
이 말에 거짓은 없는 것인가.
은하는 이정인의 얼굴을 살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전 삶에서 알게 된 이정인이란 기업가는 다른 이들처럼 전형적이지 않았다.
이유천도 그렇듯이.
이정인이나 이유천은 자원봉사자와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손해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네.
꼭 누구 같다.
은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방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떠올렸으나.
그럼에도 이정인은 수완이 좋아서 루미너스그룹을 과거에 새벽그룹이 지닌 위상만큼 위상을 회복시켜낸 것이다.
마냥 손해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아니란 의미였다.
“그래, 은하야. 아빠가 저러는데, 이참에 나도 친형처럼 여겨. 나도 네가 동생뻘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정이 가거든.”
“…알았어.”
자신에게 호의적인 두 사람.
은하는 그들의 호의를 이용하기로, 사양하지 않고 받기로 했다.
“형이 그런다면 나도 형 여동생을 내 친구처럼 대할….”
겉치레였다.
겉치레에 불과한 말이었는데.
“”─은하야.””
“…하….”
은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정인과 이유천이 분위기를 바꾼 모습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면 눈치 백단이다.
“넘볼 생각 없거든요?”
“”그치?””
한쪽은 시스콤이고.
한쪽은 딸바보였으니.
눈치가 백단인 은하는 두 사람의 말꼬투리 잡기를 사전에 차단했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들이야.
루미너스그룹이 호의적인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으나.
은하는 말도 통하지 않는 저들을 되도록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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