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
「오늘 새벽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제7위계에 해당하는 몬스터 고블린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마로니에 기사단 클랜이 신속히 몬스터를 토벌하였지만, 습격을 받은 김모씨 외 3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마나관리국에서는 몬스터가 서울 외곽 지역에서부터 잠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몬스터의 출입경로를 탐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가. 이 시기에는 몬스터에 대한 대책이 아직 미흡한 거구나.
이른 아침부터 잠이 깬 은하는 모닝와이드를 보고 있었다.
사건현장에 출동한 마로니에 기사단이 고블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보도되고 있었고, 화면 아래에는 자막으로 다른 지역에서 출몰한 몬스터에 대해 언급하는 중이었다.
회귀 전에도 몬스터가 도심부로 숨어들거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번화가에서 몬스터가 출몰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연이어 보도되고 있는 것처럼 몬스터가 생활권 내에서 출현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마나를 활용하기 시작한 지는 기껏해야 10년.
마나는 생명의 근간을 다루는 힘. 극소량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은 세계의 섭리조차도 비틀어버린다.
마나를 활용하는 측면에만 정신이 팔린 인류는 그래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섭리가 비틀린 세계에서 태어나는 생물은 때로는 생물의 규격을 벗어나는 존재.
인류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손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라는 천적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어리석고 어리석었던 행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 .
21세기를 앞두고 있던 그날,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몬스터는 인류가 쌓아온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몬스터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절반에 달하는 국토를 몬스터에게 유린당하고, 전체 인구의 3할이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겨우 대응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플레이어를 양성하고,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방벽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방벽은 본질적으로 몬스터로부터 인류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방벽의 역할은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하는 것이었지, 방벽 내부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를 막아내기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몬스터는 대기 중에 편재된 마나에서 기인하는 것이었으니까.
마나를 편산시키는 힘을 지닌 선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 시기에는 몬스터에 대한 대책이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이라면 집 근처인데.”
“그러게 말이에요. 조심해야겠어요.”
“밤에는 너무 돌아다니지 마. 은아도 유치원이 끝나는 대로 집에 오게 하고.”
“네, 그럴게요.”
아버지가 넥타이를 여미며 말했다. 늦장을 부리느라 지각이네 뭐네 아침부터 소란을 피웠으면서도 모닝와이드에 귀를 기울일 시간은 있는 모양이었다.
“당신도 오늘은 일찍 와야 해요?”
“당연하지! 칼퇴근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당신도 참.”
구두를 신던 중에 험악한 눈매로 윙크하는 아버지.
자신의 아버지였지만 윙크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다.
어머니는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며 그런 아버지의 입에 빵을 물려주었다.
“오~ 은하야! 아빠 출근하는 거 배웅해주러 온 거니!?”
때마침 아버지가 그를 발견했다.
뉴스에서 고개를 돌린 은하는 그대로 붙잡히고 말았다.
“아우, 우우.”
어휴, 따가워. 아침에 면도는 제대로 한 거야?
“하하하! 아빠도 은하를 엄청 좋아한단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아버지는 아침부터 기운찼다. 얼굴을 비비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뺨에 뽀뽀까지 하고는 일하러 나가셨다.
“조심히 다녀와요.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는 가지 말고요.”
언제 어디서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걱정하며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 은하는 다시 코~ 자야지?”
“아우우~”
또 자라고. 전 자기 싫어요.
“떼쓰면 옆집 아저씨가 ‘이놈!’할 거예요.”
“아우!”
그가 옆집 아저씨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성격도 거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살아왔던 그였다.
언제가 돼야 이 분들은 내 말을 알아주는 걸까.
갓난아기의 몸은 불편했다. 하루에 절반은 자야했고, 이유식은 회귀 전에 주로 먹고는 했던 칼로리바보다도 간이 되지 않은 데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도 한정되어 있었다.
기는 것보다 말부터 배울걸.
“자장, 자장, 우리 은하~”
젠장, 회귀 전에는 며칠을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는데.
어머니가 부르는 자장가는 이겨낼 수가 없었다.
☆
“우….”
지금이 몇 시지.
어머니도 자장가를 불러주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은하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품에서 조용히 기어 나왔다.
이제 점심이 막 지난 건가.
은아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는 자유였다.
당장에 거실을 나온 은하는 온 집안을 기어 다니기로 했다. 평소에는 위험하다며 들여보내지 않던 부엌에도 가기로 했다.
“아우.”
역시나.
냉장고 옆에서 일렁이는 푸르스름한 기운.
불과 며칠 전에 중화했는데에도 이 모양이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뉴스를 듣고 집에도 영향이 미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정답이었다.
손을 뻗어 푸르스름한 기운을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리던 마나는 금세 엉킨 실이 풀어지는 것처럼 흩어져 대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휴우.
기껏해야 제9위계에나 해당할 마나.
그럼에도 은하는 편재된 마나를 풀어헤치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감각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에 마나가 부족해.
마나는 이 세상 어디에나 녹아 있다. 소량이기는 하더라도 대기 중에 녹아 있는 마나를 그러모아 체내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몬스터가 태어나기도 하는 거고.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편재된 마나를 편산하지 않았더라면 집안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
물론, 풀어헤친 마나의 규모로 생각해보건대 어른 한 명이서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였겠지만.
하지만 편재된 마나는 마나를 불러들이고, 몬스터는 몬스터를 불러들이는 법.
작다고 무시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일 때마다 해결하는 게 나았다.
“아우.”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그는 체내 마나가 부족해서 번번이 고생했었다. 다행히 마나를 다루는 센스나 마나를 회복하는 속도는 압도적이었지만 화력이 뛰어난 공격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귀를 하고 나서는 틈틈이 마나를 모아두고 있었다. 오늘처럼 편재된 마나를 편산하느라 모아두었던 마나를 모두 소진하고는 했지만, 성장기일 때 조금이라도 체내 마나를 늘려야 했다.
물론, 체내 마나를 늘리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몬스터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모두 이전 삶에서 해소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부모님도 살아계셨다.
새로 부여받은 삶에서도 죽기만을 바라며 사는 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나가 권력의 일부가 되는 세상.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체내 마나를 늘려야만 했다.
“아우….”
으, 현기증이.
이 몸으로는 더 이상 마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그러모을 생각이었건만 조금 나간 모양이었다.
결국 은하는 그대로 픽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으아으야….”
나이가 문제야. 나이가.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술에 취한 것처럼 세상이 어지러웠다.
그냥 이대로 잠이나 자자.
뒤는 어머니가 침대로 옮겨줄 테니….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아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관 복도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은하야 거기서 뭐해?”
“우아….”
“응, 누나야!”
아니, 그게 아니라.
어서 나를 침대로 옮겨다줘.
아니면 어머니를 불러주든가.
“어머. 얘가 언제 여기까지 온 거래.”
은하가 내는 소리에 일어난 어머니는 부엌에 드러누운 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부엌에는 들어오지 말라 그랬지. 떽!”
입으로 떽 하는 소리를 내는 어머니.
아기를 상대로 혼내는 모습이 예뻐서 그만 입술이 올라갔다.
“어머.”
“아우, 귀여워~!”
작게 탄성을 내는 두 사람.
누가 모녀 아니랄까봐.
그러고 보니 누나는 체내 마나가 어떠려나.
별안간 호기심이 발동한 은하는 은아의 체내 마나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마나가 체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흘리고 다닐 정도라면, 성장이 끝난 다음에는 얼마나 늘어나 있을지.
우리 집에 마나가 자주 편재하는 이유는 누나가 흘리고 다니는 마나 때문인지도….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마나량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일은 신체가 마나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은아가 마나를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이런, 여기까지인가.
아이고, 머리야.
“어머. 피곤한가 보네.”
“은하 자는 거야?”
“응. 은아야 은하 코~ 하게 조용히 하자?”
“응!”
리라이프 플레이어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