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00
아카데미는 학생들의 실력을 길러, 그들을 유능한 플레이어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입학을 하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언제나 평가를 당하게 된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교관님들 말씀대로 우리는 이곳에 놀러온 게 아니니까. 그래도 가끔…, 우리들끼리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어. 더군다나 내년에는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는 거잖아?’
‘그렇지.’
‘지금도 이렇게나 힘든데…, 나는 그때는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해.’
고등아카데미가 실력의 장이라면, 중등아카데미는 계급의 장이다.
아카데미는 선녀정부와 재계그룹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재계와 가까이 있는 학생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을 하고, 그러지 않은 이들은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주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중등아카데미는 정재계가 고등아카데미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순탄하게 통제하기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양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마지막이니까 그냥 즐기고 싶어. 이기고 지는 걸 떠나 파벌 관계없이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어!’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게끔 한다.
정재계의 입김이 들어간 학생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입학하게 될 학생들을 지배하게끔 한다.
중등아카데미에서 형성된 풍조가 고등아카데미에서도 당연히 통하는 기치가 되게끔 한다.
그리함으로써 국가는 안정된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사회에 순응하고, 거역하지 못하게 교육시킴으로써.
‘그래, 하양이 네가 그러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은우만 납치해오면 되는 거지?’
‘납치만 해오면 안 돼. 그쪽 애들이 은우를 구하러 오게끔 우리 쪽으로 유인도 해야 해.’
‘은우 안고 달리느라 고생하겠네.’
‘…그건 파랑 오빠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그 형은 그러다 은우를 안은 것도 까먹고 제멋대로 날뛸걸? 내가 안고 뛰는 게 제일 나아.’
‘…무거울 텐데….’
계급을 평가당하고.
실력을 평가당한다.
그곳이 아카데미다.
그럼에도 정하양은 아카데미에서 추억을 만들고자 했다.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계급과.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실력.
두 가지를 손에 쥔 정하양이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오만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추억 만들기하고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왜 너를 이제 만났나 모르겠다.’
‘응? 그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그럼에도 은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 삶에서 정하양이 있었더라면, 그녀가 앨리스그룹의 직계의 위치로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했더라면.
자신이나 이유정이 험난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지금을 살아가기로 다짐한 은하에게는 더 이상 무의미했다.
표시는 해놓지 않았다고 하나.
지금 이 삶에서 정하양은 이제는 자신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과 앞으로의 미래도.
전부, 자신의 것이었다.
☆
“노은하가 차은우를 납치했다!” “목민호까지 붙잡혔어!”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어서 노은하를 추격해!”
“김건웅 부대가 회군을 하고 있대! 앞뒤로 몰아세우면 쟤네를 막는 건 일도 아니야!”
“노은하가 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아!”
곳곳에서 학생들의 외침이 들린다.
은하는 전장을 이리저리 활보하며 적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학생들은 이제 몸을 아끼는 일 없이 대항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꺄아아아악─!!”
“은하가 차은우를 하늘로 던졌어!” “대체 쟤는 무슨 생각인 거야!?”
“지금 민호가 도롱이 벌레가 돼서 유도준한테 붙잡혀 있대!”
대항전이 규칙과 목적의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본디 대항전은 왕관을 빼앗는다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하는 왕관을 빼앗지 않고 은우를 납치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학생들은 반사적으로 추격했지만, 사실 그들은 대항전이 이미 끝난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경기를 속행하는 이유는 031기의 주역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악! 배수빈이 또 미쳐 날뛴다!”
“”””호우! 호우호우!!””””
“김민지가 배신을 때렸대! 붉은 탑 수성대랑 김민지의 별동대가 함께 김건웅의 공략대를 추격하고 있대!”
게다가 031기의 주역들이 처참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했으니.
목민호는 은우를 되찾을 생각으로 이성이 날아가서는 은하와 싸우다 포로가 되고 말았다.
진파랑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으며, 배수빈은 카에데의 도발에 걸려들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마법을 난사해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이제는 그냥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이게 뭐야….”
“왜, 재미있지 않아?”
“너는 이게 재미있니!?”
더는 승패에 관계없이.
학생들은 은우가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즐기기 위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공략대와 수성대란 이름은 무색해질 정도로 서로의 역할에서 구분이 사라졌다.
거의 모든 이들이 탑에 있지 않고 전장을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노은하! 노은하만 잡으면 끝난다!” “야! 좀 더 이리로 붙어! 이쪽이 약하단 말이야!”
김민지의 배신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배신을 치려하거나, 새로운 팀을 만들어낸 학생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학생들은 대항전은 잊고서 은하만 잡으면 된다는 승리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물론, 은하는 콧방귀를 끼었다.
잡으려면 잡아보라지.
얼마나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은하는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잡혀줄 마음이 없었다.
천보를 사용해 멀리 떨어진 거리를 몇 걸음 만에 주파한다.
그로 인해 공략대와도 떨어졌으나 그러려니 넘겼다.
어차피 붉은 탑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그때─.
─마나 크래셔
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파고들어온 목검을 막아냈다.
최은혁은 뒤로 밀리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힘겨루기 상태에 들어갔다.
“큭…! 대장…! 안 됐지만 은우는 우리한테 넘겨줘야겠어!”
“노은하. 너는 포위됐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물러나지 그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끝났어.”
뒤이어 김건웅까지 나타났다.
은하는 김건웅이 데려온 공략대를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김민지가 배신을 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김건웅의 공략대는 아직도 수가 많았다.
더군다나 그의 공략대원들은 아직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않아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감에 차 있을 만도 했다.
천보
랑보
하여, 은하는 우선 그들과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그러자 최은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랑보를 사용해서는 그를 쫓아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검을 내리쳐 은하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목민호는 쉽게 당했을지 몰라도, 나는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대장.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는데!”
“그래? 오랜만에 네 실력을 제대로 보고 싶기는 한데 말이야…. 그건 좀 힘들겠다.”
다시금 김건웅의 공략대가 거리를 좁혀온다.
은하는 곁눈질로 그것을 확인하며 최은혁의 검술을 흘려보냈다.
은하는 그가 균형을 잃은 사이에 천보를 사용해 자신을 지키러 오는 붉은 탑 공략대 측으로 빠졌다.
거의 동시에 믿음직한 이름을 크게 불렀다.
“파랑이 형!”
“야호! 그래! 형 왔다!”
부름을 받은 진파랑이 최은혁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은혁은 급히 진파랑의 공격을 방어해내야 했다.
그러나 진파랑은 물러나는 일 없이 연속공격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노은하.”
후방에서는 푸른 탑의 수성대까지 몰려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은하와 붉은 탑의 공략대는 앞뒤로 적들에게 막힌 상태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건웅이 발이 묶인 은하에게 다가갔다.
그가 검이 아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만 내 손을 잡지 그래.” “…이 상황에서도 권유냐.”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한테 손해를 입힐 생각은 없어. 약속할게. 너한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절대 실이 되지는 않을 거야.”
1학년 1학기 종강파티 이후.
김건웅은 은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한서현이 유학을 가자, 은하에게 은연중 접근해왔다.
자신의 전속 플레이어가 돼달라고.
전속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힘이 되어줘도 된다고.
그때마다 은하는 거절했다.
“미안한데 다른 사람 알아봐.”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같았다.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은하가 내린 결론은 김건웅의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힘을 깎아야 했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내가 무슨 최가인처럼 망나니도 아니건만…. 대체 유도준이랑 정하양하고 나하고 차이가 뭐야?”
김건웅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답을 알고 싶어 하는 말투였으나, 은하는 굳이 답하려 하지 않았다.
김건웅과 유도준, 정하양의 차이.
그것은 김건웅이 선녀에게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란 데에 있었다.
무엇보다─.
─김건웅은 날 원하는 게 아니야. 내 힘을 원하고 있는 거지.
은하는 자신의 편을 만들려 하고, 누군가의 소유가 되려 하지 않는다.
김건웅은 은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두 사람은 결코 양립할 수 없었다.
김건웅이 자신이라는 존재를 소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한.
─너는 네 꺼는 그냥 네 꺼인데, 걔네는 내 꺼고, 나도 걔네 꺼거든. 아니면 그냥 내 꺼거나.
얼굴에 이름을 표시할 수는 없으나 정하양과 유도준의 얼굴에는 필시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으리라.
품 안에 있는 차은우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얼굴에도 필시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이름만 있거나.
그러한 의미에서 김건웅의 성격은 자신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소유욕이 강하다.
“내가 네 사람이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해.”
“…정말이지, 고집이 세네. 이거는 삼고초려를 해도 뜻을 굽히려 하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라니까?”
“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겠어.”
참으로 끈질기다.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건웅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노은하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순순히 항…, 어?”
김건웅은 이것으로 대항전을 끝낼 기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크나큰 오산이었으니.
은하가 굳이 그와 대화를 한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星取り(별 따기)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빛줄기.
은하는 차은우를 꽉 끌어안은 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호시미야 카에데가 쏘아낸 빛을 쥔 은하는 그대로 김건웅의 공략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화살은 어긋나는 일 없이 정확히 붉은 탑으로 향했으니─.
“─은하야! 은우야!”
그것이야말로 대항전의 끝이었다.
붉은 탑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하양이 두 사람을 반겼다.
그리고 하양은 은우의 손을 붙잡고 밑에 모인 학생들이 보이는 데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이러면 누가 이긴 거야?”
“하양이가 이긴 건가?”
“은우도 왕관을 쓰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학생들은 이윽고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어처구니없는 대항전에 참여하고 있던 자신들을 돌아보고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승자는 없었고, 패자도 없었다.
☆
세상이 몬스터로 들끓었을 때.
세상은 그들을 멸하는 플레이어를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리고 소수의 영웅들은 제 힘에 심취해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때 사람들은 깨달았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이란 결국에는 자신들을 해치는 칼이 된다는 것을.
극단적인 관점에서 볼 때─.
─플레이어는 몬스터와 다름없지.
몬스터는 사람을 해친다.
플레이어도 사람을 해친다.
그러면 몬스터와 플레이어를 어찌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플레이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몬스터하고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마나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들 전부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플레이어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민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거는 정말 예상을 못했는데요? 설마 아무도 이기지 않는 상황으로 대항전이 끝날 줄은….”
“그래도 구경 온 사람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은 것 같던데요? 애들이 애들다워서 좋았다는 반응이 꽤나 많았어요.”
“내년에도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솔직히 부문대회보다 이런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애들다워서요.”
중등아카데미 3학년 총괄 교관은 다른 교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의 시대를 산 그는 그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교관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 말대로, 3학년 연합 대항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그도 정하양과 차은우가 손을 잡고 대항전을 끝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허나─.
“─내년에는 아마 다시 부문대회로 돌아가게 되겠구만.”
“…네?”
“여흥거리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도입하지는 않을 게야.”
아카데미의 방식이 아니다.
세상이 한 번 멸망하고.
어느 정도의 토대가 마련된 뒤에야 설립된 플레이어 아카데미.
거의 초창기부터 아카데미에 있던 그는 언젠가부터 깨닫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학생들을 경쟁시키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려 하는 것을.
아카데미가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플레이어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를 통제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는 일이야.
통제할 수 없는 힘.
그렇다면 통제해버리면 그만이다.
플레이어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그들이 서로 단합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통제에 따르게끔 만든다.
세상이 멸망했을 때에야 영웅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겠지만…. 그 후로 많은 세월이 지났어.
영웅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영웅들도 자신의 권좌에 도전하는 다른 영웅의 등장을 마냥 바라지는 않을 테니….
세상에 힘 있는 자들은 그리하여 아카데미를 설립하였을지니.
직접 표시는 해놓지 않았겠으나.
그리하여 그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괴물들을 그들의 통제 아래에 두고 플레이어(Player)라 불렀으리라.
세상을 구한다는 의미에서 영웅, 히어로(Hero)가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이 그가 수십의 세월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이 세상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그거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수십의 세월을 보내고서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진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세상을 안정시키는 선녀정부인가.
세상을 소유하려는 재계그룹인가.
손에 쥔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는 양보하려 하지 않는 플레이어인가.
혹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민심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 어느 쪽도 아닐지도 모르지.
지배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한 번 멸망한 세상에 온갖 것들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다.
삿된 것들을 모조리 뿌리 뽑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옳고 옳지 않은 것들이 섞여, 그 위에 쌓아올린 세상이 바로 지금 이 세상이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생긴 것인가.
그림자가 있어 빛이 있는 것인가.
음양(陰陽).
세상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명암(明暗)이다.
그런데 어두운 부분만 그득할 때,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밝은 부분을 집어넣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역시 명암이고, 음양일 터.
지금의 세상이 딱 그 짝이다.
“나는 그만 일어나겠네.”
총괄 교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노은하에게서 눈을 뗀다.
업계는 그를 아카데미의 잠룡이라 떠들고 있을지 모르나, 교육자로서 그가 보기에 노은하라는 존재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야, 저건.
노은하는 괴물이다.
그가 아카데미에서 벌인 행위에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노은하가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자신들이 괴물을 키우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아카데미는, 자신은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누누이 말하는 거네만 저 아이들이 특별한 거라네. 아마 중등아카데미에서 저것을 도입해도 오늘 같은 재미는 느끼지 못할걸.”
“하긴, 그렇겠죠? 누가 하양이처럼 다 같이 이길 생각을 하겠어요?”
“애들이 지휘능력이 좋았던 거지, 다른 기수들이 했으면 개판이었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기수에서는 그다지 볼 것도 없었잖아요. 그야말로 완전 애들 소꿉놀이였지.”
근래 들어 세상이 격변하고 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인지 나쁜 쪽으로 가는 것인지.
총괄 교관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일련의 흐름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자들에게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궁금해졌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갈지.
저 아이들이…, 핵심이 되겠지.
직감이 말하고 있다.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이 흐름은 저들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저들이 흐름의 중심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보다 내년이 걱정되는군.” “내년이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저 아이들이 고등아카데미에 가게 될 거 아닌가.” “네, 그렇죠.”
“고등아카데미는 중등아카데미처럼 부문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대회를 열고 있고.”
“”””…어?””””
그때까지 오래 살기를 바랄 뿐.
총괄 교관은 허허 웃으면서 뒷짐을 지었다.
따라오던 교관들은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노은하가 종합대회에 나가게 되면 3년 내내 우승자는 변하지 않겠지. 노은하가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 애들 실력으로는 윗기수 애들도 넘볼 수 있을 듯한데….”
“”””…….””””
“그거 감당하느라 힘들겠어, 아주. 나중에는 비교대상이 없어져서 결국 교관들하고 비교되는 건 아닐지….”
괴물은 노은하뿐만
이 아니다.
그의 곁을 따르는 이들도 하나같이 괴물들뿐이었으니.
총괄 교관은 미래가 기대되었다.
“여기서 고등아카데미로 이동하는 교관은 있나?”
“…아, 저요.”
총괄 교관은 교관들 사이에서 번쩍 손을 든 남자를 보고는 혀를 찼다.
이국종 교관이었다.
“자네는 고생 좀 하겠구만. 밖에서 청탁도 많이 받게 될 텐데 조심하는 편이 좋을 걸세.”
총괄 교관은 제 일이 아닌 것처럼 허허 웃었다.
어쩌면 선녀님도…, 플레이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존재인 건지도 모르지.
노은하와 그의 주변에 모인 이들이 과연 힘 있는 자들의 통제에 굴복해 단순한 플레이어로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존재로 거듭날 것인지.
일찍이 보이지 않는 세태에 굴복한 노인은 즐거이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연합 대항전이 끝난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