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06
아인 파동은 실패로 끝이 났다.
전아연을 주도하고 있던 플레이어 나세한이 공개석상에서 국민들에게 사죄를 표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었으니 결국 아인들의 결집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새로이 전아연의 대표가 된 아인이 운동을 재개하려고 하였지만 그때는 이미 여론의 반응이 차갑게 돌아서 있었다.
“언론에서 그렇게 몰매를 맞았는데 안색이 좋아 보이는군요.” “허허, 이게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욕을 먹어야 오래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제가 정말로 오래 살게 생겼습니다. 허허.”
종로구에 위치한 요정(料亭).
이용객을 알 수 없게 방이 분리돼, 철저한 비밀을 보장하며, 전문적인 고급 한식 요리를 표방하는 가게.
두 사람은 요정 안에서 테이블을 마주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장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번에 정말 고생하셨다는 뜻에서 제가 따라드려야지요.” “허허, 사장님께서 따라주신다면 감사히 받아야지요. 감사합니다.”
한 명은 전아연의 전 대표 나세한.
다른 한 명은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이었다.
표면상 사회적 약자인 나세한.
표면상 사회적 강자인 최정훈.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그들이 이렇게 방을 빌려가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기구한 법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사장님과 제가 옛날부터 관계를 이어온 것을 안다면 까무러치게 놀랄 겁니다.”
“소설이 현실을 따라올 수 있나요. 고작해야 몇 권으로 끝나는 세상을 데이터로 환산할 수 없는 세상하고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전아연을 만든 것은 아인이었으나.
전아연이라는 기틀이 만들어지도록 자금을 후원해준 것은 갤럭시그룹의 회장 최윤한이었다.
그리고 그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 최정훈이었고.
다시 말해, 전아연은 태생적으로 갤럭시그룹과 이어져 있는 셈이다.
당연히 전아연이 주도한 운동 역시 갤럭시그룹이 일정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이번에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껄껄. 그간 회장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가요.”
“사람들은 제가 다리를 저는 것이 소싯적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아서 생긴 것으로 압니다만…, 사실 이건 같은 아인들이 이리 만든 겁니다.”
“…….”
“다리 하나로 먹고 살았던 저한테 하늘이 무너지는 일과도 같았지요. 그때 저를 구원해주신 게 사장님의 조부이신 최윤한 회장님이었습니다. 그러니 회장님은 저한테 하늘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아인의 적은 아인이다.
무너진 세상이 그리 만들었다.
나세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술잔을 가득 채운 술을 들이켰다.
절반이 뜯겨나간 귀도.
눈가를 가로지르는 흉터도.
아인은 아인들의 약육강식 속에서 살아남은 증표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는 이번 일로 원하시던 결과를 얻었는지요.”
“…네, 대표님 덕분입니다.”
“하하, 제가 한 거라고 앞에 서서 말 몇 마디 한 것밖에 없지요. 전부 사장님이 하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세한은 그를 깍듯이 대했고.
그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남자가 따라준 술을 마신 최정훈이 입을 열었다.
“─단군철강을 인수했습니다. 제가 그쪽에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허허, 이제 대표라고 불리지 않고 이사님이라 불리게 되는 건지요….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단군그룹의 여섯 개의 기둥 중에 남아 있는 두 개 중 하나에 속하는 단군철강.
그것이 아인 파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6강이 되겠구나.
얼마 전, 홍진우와 홍준일이 죽고 단군그룹이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 시장을 지배한 단군그룹은 앨리스, 시리우스, 영원, 마나관리기구에게 주요 사업부문을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플레이어 시장이 5강 체제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시리우스그룹에게 재계 1위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1위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갤럭시그룹은 단군의 나머지 사업을 빼앗아오기로 결심했다.
단군클랜은 문제가 많아.
그럴 바엔 자사의 디바이스 부문을 강화시킬 수 있는 단군철강을 인수하는 편이 낫지.
그러나 정재계의 다툼에 이골이 난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선녀정부도 가만있지 않으리라.
여론의 눈을 돌릴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최정훈은 아버지와 함께 전아연을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세한이 여론을 끌어주어, 갤럭시그룹은 단군철강과 물밑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었다.
“내일이면 뉴스에 나올 겁니다.”
“허허, 그렇군요. 그런데 사장님,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뭐죠?” “명채현이가 사망한 건 말입니다. 아무래도 시기가 너무 적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요. 게다가 명채현의 소속클랜이 단군이었으니 이건….”
최정훈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
나세한은 눈치를 보다 침묵했다.
자신이 알아서는 안 되는 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텔레파시스트로서 재기할 수 없는 아인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러한 정치적인 감각을 몸에 익혔다.
세상에는 몰라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냥 우연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어디 집단폭행을 당해서 사망하는 아인이 한 명뿐일까요. 폭행당하는 영상이 선명하게 찍힌 것도 놀라운 우연이었던 거죠.” “하하, 그렇지요.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그렇죠.”
“세상이 한 번 멸망했다고 한들, 결국 세상의 섭리는 바뀌지 않는가 봅니다. 하하.”
아인은 분위기를 전환하는 한편, 술을 홀짝이는 최정훈의 수완에는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과연 회장님의 손자라 이 말인가.
갤럭시드론의 사장을 맡은 최정훈.
그가 아인 파동으로 인해 얻은 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갤럭시그룹이 단군철강을 인수하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파인그룹과 합작해낸 드론을 아주 자연스럽게 홍보했다는 것이다.
“아직 개발 단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읽은 듯이.
최정훈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원래는 제대로 된 드론이 나오면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세상이 어디 뜻대로 움직이나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세상이죠. 허허.”
몇 년 전이었다.
시리우스그룹이 파인그룹과 합작해 세상에 내놓은 라이브러리는 지금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중이었다.
갤럭시그룹은 이것을 만회하고자 파인그룹에 드론 개발을 제의했다.
개발하는 드론이 널리 보급되려면 텔레파시스트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갤럭시그룹은 예전부터 아인 파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게 천운이 없나 보죠.”
“천운이 없다니요. 이리도 천운이 따라와 주지 않았습니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신의 경지이지요. 뭐, 신은 죽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단군그룹의 몰락.
그로 인해 갤럭시그룹은 이 계획을 앞당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최정훈은 그것이 참 아쉬웠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니스클랜으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던 류연화가 레귤러스로 들어가기도 했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장님. 기회는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고른 대표가 그때가 되면 힘을 실어줄 겁니다.”
“…그러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이분법적 사고에서 아인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재력, 권력, 무력.
셋 중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사회적 약자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인이 아닌 이들은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나저나…, 아인 파동에 가담한 일반인이 그리 많을 줄 몰랐습니다. 다들 저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명분이야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 동정심인 거지요. 그래도 나는 저들만큼 힘들게 살지 않고 있다고, 위안을 삼고 있는 거지요.”
“하긴 세상에 평등이 어디 있나요. 사람이란 결국 남들보다 자신이 더 잘나기를 바라는 존재인 거지요.” “자기들도 지배를 받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이 퍽이나 우습지요.”
“어쩌면 지배를 받는 건지 모르고 사는 삶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지금이야 이 자리에 오르게 돼서 아니게 됐지만─.”
“─그렇다는 건, 나세한 대표님은 이제 지배하는 입장이란 뜻인지요.”
최정훈이 술잔을 기울인다.
나세한이 웃음을 뚝 멈춘다.
굵직한 눈썰미를 들어 올린 아인은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짓고 비어 있는 잔에 술을 따라준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시키는 대로 사는 개는 짖으라면 짖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언제부터 미쳤는지 모르나, 난세(亂世) 속에서 태어난 기린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세상은 그런 이를 역적(逆賊)이라 부를지어다.
☆
결국 아인 파동은 실패했다.
전아연의 대표가 사임을 함으로써, 아인들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아카데미에서는 더 이상 아인들의 행복을 부르짖
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팔았다고?” “네가 네 이름 마구 팔고 다녀도 괜찮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야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다.
은하는 정하양, 유도준, 진서나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은하가 혀를 내두르고 있는 대화는 서나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그의 이름을 판 경위에 대해서였다.
“허, 참….”
은하는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닐 줄은 몰랐기에.
한편으로는 파랑이 그만한 수모를 당했을 줄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방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걔네들은 결국 걔네들끼리 파티라도 짠대?”
“우리 셋이서 파티를 재편성하기로 했어. 계열사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다행이야.”
하양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세 사람이 편성하고 있던 파티에서 한 명씩 차출하여 빈 자리에 아인을 넣는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차출한 파티원이 저희끼리 파티를 창설하기로 하고.
파랑은 하양의 파티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파랑 오빠 기가 많이 죽었더라.”
“맞아. 오빠 귀가 그리 축 처진 건 나도 처음 봤어.”
파랑이 기가 죽지 않았을 리 없다.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던 파랑이 현실에 굴복해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머리를 숙였을 정도이니.
은하는 머릿속으로 기가 죽어 있을 파랑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
파랑이 이리 되도록 방조한 사람은 은하 자신이건만.
그럼에도 은하는 진파랑이 그렇게 모욕을 당한 것을 가만히 넘기려는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파랑을 기죽여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그래서는 아니 된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었다.
“은하야.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야.”
그러다 그는 하양과 눈이 마주치고 떨떠름한 목소리로 시선을 피했다.
무언가를 직감한 서나의 잔소리가 들어온 것도 그 직후였다.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한 일이니까 괜히 일을 부풀리지 말라고.
은하는 잔뜩 혼이 났다.
“맞아. 너는 그냥 모른 척 해.”
“내 이름을 팔고 다닌다면서 내가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어?” “야, 휘두르지 않아야 권력인 거야. 정말 휘두르는 순간 그건 폭력이지 더는 권력이 아니게 되는 거라고. 네가 모르지는 않을 거 아니야.”
무언가 반박을 하려 했으나.
은하는 끝내 유도준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정면으로 나서게 된다면, 잘못했다가 다른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다.
일단은 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팔면서 학생들에게 겁을 주는 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갤럭시디바이스에서 결국 단군철강을 손에 넣었다더라. 이제 플레이어 관련 시장은 5강이 아니라 6강으로 이루어질 거야.” “…아인 파동이 일어나는 사이에 아주 조용히 잘 처리했네.”
은하는 이내 끙 소리를 앓았다.
사람들이 아인 파동에 집중한 사이 갤럭시가 아주 조용히 단군철강을 인수해버렸다.
또한─.
─갤럭시드론이 광고하는 드론은 아직 이 시기에 나올 때가 아닌데.
미래가 바뀌었다.
갤럭시드론이 출시한다는 드론은 아직 개발 중이라고 하나, 정보가 세상에 퍼지는 속도가 회귀 전보다 빨랐다.
은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무엇이 미래를 바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번 일로 갤럭시그룹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몰래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을 줄은….
아직 기회는 많이 있다고 하나.
은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튼, 파랑 오빠가 울적해하고 있으니까 너무 괴롭히지 마.”
“글쎄…, 그 형이 과연 울적해하고 있을까.”
은하는 하양의 타박에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진파랑이다.
이전 삶에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서 물어뜯었던 진파랑.
은하가 생각하기에, 그가 이대로 현실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저, 봐….
은하는 고개를 돌렸다.
이 높이에서도 늑대 꼬리로 파랑을 찾을 수가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이날에.
파랑이 굵직한 빗줄기를 맞으면서 가만히 서 있다.
어떻게 본다면 세상에 굴복해버린 늑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꺾이면 진파랑이 아니지.”
“응? 무슨 소리야?”
“나는 그만 가볼게.”
개는 사람에게 굴복할지 모르나, 늑대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더라도 늑대는 계속 지배자의 위치를 넘보려하는 야성을 품고 있는 법이다.
그러니 진파랑은 꺾이지 않는다.
“야, 유도준. 나 우산 좀.” “…그러면 나는 이 날씨에 어떻게 가라는 거야?”
“잘.”
미친 세상이다.
차별이 버젓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평등을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난세 속에서 역적이 태어난다면─.
“왜 비를 맞고 이런 곳에 서 있어? 쫄딱 다 젖었네.”
─시련 속에서는 영웅이 태어난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