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08
천애고아였다.
어릴 때 몬스터에게 일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나는 그래도 살기 위해 험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났다.
험한 세상에서 구를 대로 구르며, 사람을 의심하는 걸 밥 먹듯이 하던 나와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사람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악의와 적의에는 둔하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끔찍이도 챙기던 사람.
처음에는 그녀의 선량한 마음씨가 마음에 들지 않던 나는 언젠가부터 행여나 그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우리 연애해요.’
‘…뭐, 머어?’
‘저 좋아하잖아요. 아니에요?’
‘어…, 저기….’
‘네, 아니오로만 대답해요.’
‘…네. 좋아해. 저기, 근데 있잖아. 내가 상황이 좀….’
‘좋아하면 됐지, 오빠 상황이 뭐가 어때서요? 자꾸 그렇게 도망만 칠 거예요?’
‘…….’
‘고백은 제가 먼저 했지만, 앞으로 다른 것들은 오빠 먼저 해야 해요. 안 그럼 나 화낼 거니까.’
‘…뭐, 뭘 먼저 하면 되는데?’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어요?’
뭐, 고백은 아내가 먼저 했지만.
그때 알았다.
이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약하고 여린 사람은 아니란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푹 빠져, 그녀와 가정을 차리게 되었다.
프러포즈는 내가 먼저 했다.
‘왜 거기 가만히 서 있어요? 얼른 여기로 와 봐요.’
‘그래, 노 서방. 이리 가까이 와서 애 얼굴 좀 봐야지.’
‘아, 지, 지금 제가 손이 더러워서 만져도 될지….’
‘자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손은 아까 씻고 왔잖아.’
‘그, 그래도….’
‘거봐, 엄마. 내가 말했지? 이이는 꼭 이상한 데에서 소심한 면이 있다니까?’
‘하긴…, 네가 처음 데려온 날에도 그랬었지. 근데 애들 앞에서도 계속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일 건가?’
아내를 맞아들였을 때는 기뻤다.
천애고아였던 나에게 가족이 생긴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기쁨도 기쁨이었지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당신, 왜 울고 그래요?’
‘기쁜가 보지. 기쁘면 원래 그래.’
‘정말…. 그렇게 울지만 말고 얼른 은아 좀 봐주세요. 예쁘죠?’
아버지가 되었다는 책임감이 드는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그토록 바란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은아를 안고 있는 아내를 본 순간, 그제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던,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당신 닮아서 정말 예뻐.’
‘당신도 참. 엄마도 있는데….’
‘그래, 난 빠져줄게. 둘이 마저 해. 허허, 벌써부터 둘째가 보고 싶네.’
은아가, 은하가 그리고 은애가.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났다.
가장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지만,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회장님이 집으로 보내주지 않을 때에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라인을 잘 탄 건지, 아니면 잘못 탄 건지.
[…아빠! 나 투게더가 먹고 싶어! 올 때 투게더 하나 사다줘!]“다른 건 먹고 싶은 건 없고?”
[응, 없어. 아, 그리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사랑해!]“우리 딸. 아빠도 사…끊었네.”
은아는 어릴 때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천방지축으로 유명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잘 울지도 않고, 얌전하기만 한 은하하고는 다르게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점점 제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얼굴도, 성격도, 분위기도 똑같다.
가끔 늦은 밤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내가 젊은 시절로 회귀한 거냐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절대 다른 남자한테 주고 싶지 않다.
“감히 누구를 넘봐? 이 자식들이 우리 애가 이쁜 거는 알아가지고…. 맨날 이런 거나 보내고 난리야.”
평소 업무를 마치고.
나는 비서실에서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연말이라 그런지 내년도 잘 부탁한다는 편지가 와 있다.
그냥 메일로 보내도 되건만.
그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름이 아니오라,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노은아 님께 한 번 저희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약혼 제의장이다.
마음 같아선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들의 편지가 아니었다.
나는 정중한 어조로 거절의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이제는 도가 텄다.
“…이것들이 은애한테도 보내네? 은애 아직 10살이야, 이 사람들아. 제발 우리 아이들을 정략의 도구로 삼으려 하지 말란 말이야.”
아주 간간이 은애에게 약혼을 제의하는 편지도 있었다.
집에서 자고 있을 딸내미는 아마 자신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 건지 모를 것이다.
솔직히 이대로 몰랐으면 싶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우리 은애! 아빠한테 뽀….’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 이제는 잘 해주지도 않네.’
테이블 위에 둔 가족사진을 본다.
은애가 뒤에서 은하의 목에 매달려 활짝 웃고 있다.
갓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툭하면 은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곤 하던 막내딸은 이제는 나보다 은하를 더 따른다.
은하한테는 잘만 뽀뽀를 해주면서 이제 나한테는 해주지도 않는다.
은아도 안 해주고.
진짜 마누라밖에 없다.
‘─아빠 오늘 힘든 일 있었구나? 오늘 하루도 수고했고, 푹 쉬어요. 내일도 나랑 같이 출근해야지!’
‘…그래, 고맙다. 근데 은애 너는 출근이 아니라 등교 아니니?’
‘나도 일하러! 애들 돌보러 가지!’
‘…공부는 하는 거지? 응?’
그렇다고 은애가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은애가 독심술이라도 있는가 싶다.
“가만 보면 어머님을 똑 닮았어.”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은아가 제 엄마를 똑 닮았다면.
은애는 제 할머니를 똑 닮았다고. 나이도 어린 아이가 아주 자연스레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어찌 보면 은애가 우리 집안에서 제일 어른스럽다.
은아는 몸만 컸지, 아직 애고.
물가에 내놓기 걱정인 아이다.
그에 비해서 은하는─.
“─은하도 아직 애지, 애.”
은아, 은애와 다르게.
은하는 태어났을 때부터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나이에 비해 유난히 조용했던 데다 툭하면 홀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고는 하던 아이.
사람들은 그런 애를 어른스럽다고 불렀다.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근데 생각해보니 아니더라.
“이놈아,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다. 대체 언제까지 사고치고 다닐래?”
잘 울지 않는 건 울 줄 모르거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그 옛날에 내가 그랬다.
울면 내가 지는 것 같아서.
내 나약함을 들킬 것 같아서.
혼자 처량하게 울고 싶지는 않아서 어느 때든 꾹 참았다.
사람들은 나를 독하다고 불렀고, 그래서 아내를 만나기 전만 하여도 나는 내가 독한 줄 알았다.
사실 독한 게 아니라 겁만 잔뜩 먹고 있던 거였으면서.
“애가 뭘 그렇게 겁이 많은지…. 대체 언제까지 혼자 끌어안고 살려 그러는 거냐.”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나 혼자였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전부 나 혼자서 끌어안으려 했다.
어렸던 거다.
세상에 어디 나뿐인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겠는가.
세상에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만 있을 것 같은가.
좁은 세상에 갇혀 있던 것이다.
은하도 마찬가지다.
“에이, 우리 아들이 겉멋만 들었어. 은아나 은애처럼 어떤 사람이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데….”
전보다는 덜하다고 하지만.
아니,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다시.
애가 날이 날카롭게 서 있다.
고집이 센 것은 집안내력이라지만,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그냥 배척하려고 든다.
은하가 적이 많은 이유다.
지금이야 내가 막아주고 있다지만, 이러다 언젠가 큰코다칠 것이다.
쌓인 만큼 돌아오는 법이다.
내가 예전에 당해봤듯이.
“그래도 주변에 좋은 애들이 많아 다행인 것 같지만….”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부모라고 해도 자식의 생각을 전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진다.
은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은하가 말해주지 않을 걸 알고 있다.
우리 아들이 누구를 닮아서 고집이 참 세거든, 우리 집안에서 가장.
결국 우리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 너하고 싶은 대로 다해라. 아빠가 누가 널 건드리지 못하도록 다 막아줄 테니까.”
우리 아들을 밀어주는 수밖에.
세상이 아무도 은하를 믿지 않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만은 은하를 믿어줄 것이다.
그게 가족인 거겠지.
내가 어렸을 적에는 갖지 못했던.
“답장. 죄송합니다만 저희 아들이 현재로서는 약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생이니,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는 일단 훈련에만 전념….”
사실 내가 이 시간까지 남아 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은하에게 보내진 약혼 제의장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거절하기 어려운 곳에서 보내졌다.
하나는 갤럭시그룹에서.
다른 하나는 YH그룹에서.
이젠 은하가 자랑스러운 걸 넘어, 무서울 지경이다.
그러는 한편, 머릿속에는 불현듯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모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두 그룹의 회장은 남매지간이다. 갤럭시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그룹이 YH그룹인 만큼 직계들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은하를 가지고 두 그룹을 견제해, 시리우스가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지만…. 은하를 이런 데 이용할 수는 없지.”
약혼을 빌미로 이간질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다시금 그리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떨치고 답장을 마저 적었다.
여하튼, 은하는 적이 많으면서도 그동안 보인 활약 때문에 인기 또한 많았다.
은하에게는 미안한 말이기는 하나, 은아나 은애는 모르더라도 은하는 더 이상 정재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법적으로 준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20세가 되면 정식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은하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약혼제의를 거절하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밥이라도 한 번쯤 먹어야 할 터.
사실상 고등아카데미가 리미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은하가 그들의 손으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워지려면 한 번 약혼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남들이 우습게 여기지 못하는 하양이가 제일 좋은 상대이긴 한데…. 그쪽에서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도 아닌 것 같고….”
앨리스그룹의 직계.
은하의 소꿉친구.
정재계의 태생이 아닌 아이.
정재계의 여론을 묵살해버릴 만한 존재인 동시에 은하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하양이밖에 없다.
우리 아들이 정재계에 몸을 담그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에서 말하자면, 앨리스그룹을 이어받을 공산이 적은 정하양은 최고의 약혼상대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다만 은하는 넌지시 말을 걸어보면 그런 식으로 답할 뿐이다.
필시 은하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최대한 미루려하는 것 같다.
그 마음, 어쩐지 이해가 되긴 하나 부질없다.
결국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법. 그렇게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가는 좋은 사람들 다 떠나는 수가 있다.
그놈은 말해도 못 들은 척하겠지. 날 닮아서 워낙 똥고집이라니까.
“뭐, 그래. 네가 안 하려고 해도, 너도 언젠가 결국 하게 되어 있어. 내가 예전에 그랬는데 모르겠냐.”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게 있다.
인연이란 게 있는 것인지.
결국 사람은 저하고 맞는 사람과 저하고 맞는 시기를 만나더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이를 먹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은하의 마음이 움직이는 때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래, 너 알아서 해라.”
네가 실패하고 좌절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니까.
언제나 은하 널 응원하고 있단다.
☆
2학기가 끝이 났다.
종강파티에서 잠시간 얼굴만 비춘 은하는 친구들과 연회장을 나왔다.
“이제 내년부터 고등아카데미라니, 뭔가 시간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다들 안 그래?”
민호와 은우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연회장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이내 뒤따라오는 두 사람을 확인한 은혁이 아카데미 전경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은하도 동의하는 바였다.
“맞아. 정말 시간 빨….”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해마다 사건이 터지는데 시간이 흐르는 게 빠르게 느껴지지.”
김민지가 툭 치고 나왔기에.
은하는 도중에 말을 중단했다.
당당하게 말을 이을 수가 없는 건 그녀가 말하는 사건이 거의 자신의 손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괜히 겸연쩍어졌다.
“뭐야. 왜 계속 헛기침 하고 그래? 파티에서 뭐라도 잘못 먹었어?”
“그냥 사례 들린 거야.”
“쳇, 아까비.”
그러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학기도 결국 하양에게 1등을 넘겨주고 기분이 저조해진 배수빈이 그에게 태클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이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친구가 그리 많지 않은 은하는 속으로 그녀의 흉을 보았다.
“야, 근데 너희들 아까 그거 봤어? 우리가 우르르 빠져나가니까 애들 얼굴이 벙찌는 거 말이야.”
“과연 노은하 사단이야! 아마 걔들, 너희하고 친해지려 했던 것 같은데 말도 제대로 붙이지도 못했잖아.”
“음, 그런가? 은하 따라 먹을 것만 먹고 있어서 그런 줄은 몰랐는데…. 근데 노은하 사단이란 게 뭐야?”
“시형아, 너 그것도 모르면서 계속 우리들하고 다녔던 거야?”
“어? 나야 은하 멘티고, 은하한테 배울 게 많았으니까…. 사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때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맨 뒤에 있던 도준이 돌연 크게 외치고는, 이천서와 강시형이 저희들끼리 떠들었다.
확실히 유도준의 말대로.
031기를 비롯해 032, 033기들이 은하와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하는 기척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래서 일찍 나간 거지만.
이미 후기지수들 중에서 점찍어둔 학생들과 은하는 어느 정도 안면을 터놓은 상태였다.
다른 학생들을 신경 쓸 여유까지는 없었다.
무엇보다 귀찮기도 했고.
강시형이 예외이기는 했지만….
이제 중등아카데미 학생들 중에서 내가 봐둬야 할 사람은 없어.
후기지수들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플레이어가 된 뒤에 보더라도 늦지 않으니까.
중등아카데미에서 할 것은 다했다.
남은 건 고등아카데미에서 할 것들 뿐이다.
“은하야, 무슨 생각해?” “내년에 누가 들어올까 하고….”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기대하는 사람들이 올지 궁금해서….”
은하는 나지막하게 숨결을 토했다.
옆에서 건네는 하양의 말을 들으며 그는 내년에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할 31기 학생들을 떠올렸다.
반드시 영입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이제 5명뿐이야.
온태양.
조아라.
윤이별.
아리엘.
봉구래.
온태양의 파티에서 헌터를 담당한 베베는 고등아카데미 3학년에야 편입한다.
어느 정도 나이도 있었던 데다가 기동력으로는 진파랑과 최은혁이, 정보수집으로는 이십오와 이강혁이 우위에 있었기에 보류하기로 했다.
얼른…. 내년이 왔으면 좋겠네.
선력 1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은하는 벌써부터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날을 기다렸다.
바로 그때─.
“─얘들아! 우리 올해는 다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하지 않을래?”
하양이 명랑하게 소리친 것이다.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던 학생들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흡족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 너도 올 거지?”
“…알았어.”
하양이 일전에 말한 바가 있었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틈틈이 추억을 만들어두고 싶다고.
은하도 찬성하는 바였다.
이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
자신이 이번 삶을 사는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거기를 왜….”
“당연히 카에데 너도 올 거지?”
“나, 나는….”
“올 거지? 얘들아! 카에데도 온대!”
우연인지 아닌지.
계단을 내려오는 친구들 중에서는 호시미야 카에데도 있었다.
맨 뒤에서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카에데는 서나가 주도하는 분위기에 휘말려서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은하는 보았다.
쟤 입꼬리 올라갔네.
귀 끝도 빨개졌고.
좋아하는 게 조금씩 티가 난다.
은하는 그녀의 자존심을 위해서,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나중에 놀려먹기로 하면서.
“그러면 다들 참석하는 거지?”
“가인이가 뭐라 그래도 꼭 갈게.”
“크리스마스도 아니니까 시간 빼기 어렵지 않을 거야. 갈게.”
“내가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이번에 맛있는 거 싸달라고 할게!”
“우리 할머니야. 고생시키지 말고. 그리고 형은 은애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해놨지? 어베니어 것도.”
시끌벅적하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가 돼서 사색에 빠지기 힘들었다.
과거 속으로, 침전하기가 어렵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내버려두지 않았으니까.
유정이 너도…, 어딘가에 있겠지.
그래서 가끔 무섭기도 하다.
이대로 과거를 잊고 말까봐.
“─너희들하고 있다 보면 조금도 조용할 날이 없다니까.” “왜? 그래서 싫어? 좋으면서 괜히 얘가 심술이네?” “…그냥 그렇다고.”
은하는 민지의 비웃음에 부루퉁한 얼굴로 대꾸했다.
지난 삶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이번 삶을 이들과 살아간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
대한민국 10대 중앙 종합일간지는 연말을 두고 국가지표를 발표했다.
선력 12년
번호
기업명
동일인
01
갤럭시
최윤한
02
시리우스
한도영
03
영원
유선경
04
앨리스
정석훈
05
YH
최윤혜
06
루미너스
이정인
07
파인
장석영
08
KK
김건
09
동해
정지만
10
삼라
오만정
선력 12년
─클랜 종합등급 S─
번호
클랜명
종합등급
01
제니스
S+
02
레귤러스
S+
03
신라
S+
04
명왕
S
05
블레이즈
S
06
템페스트
S-
07
KK
S-
리라이프 플레이어 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