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10
크리스마스 이브.
은하와 친구들은 중등아카데미에서 다목적실을 빌려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
파티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그들이 3년 동안 중등아카데미에서 보내며 친해진 이들도 있었다.
적을 두고 있는 그룹이 다를지라도 친구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오…, 032기에서 이름이 나 있는 애들도 왔네? 쟤네들한테는 어떻게 연락을 한 거야? 너하고 지금까지 접점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서로 성별과 나이, 실력과 신분을 불문하고 격 없이 어울리고 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은하는 옆에서 깔깔거리던 유도준의 귀띔에 반응했다.
후기지수들을 이 자리에 부를 만큼 접점이 있었던 이유는 사실 별 거 아니었다.
“민지랑 은혁이가 힘 써준 거야. 내가 후기지수까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어?”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 가까워지는 방법을 몰랐던 거겠지. 민지랑 은혁이가 고생했네.”
은하는 사람을 사귀는데 둔했고, 그래서 중요도가 비교적 떨어지는 후기지수들은 친구들에게 맡겼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도준은 이윽고 ‘네가 그럼 그렇지.’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은하는 친히 도준의 컵에 사이다를 따라주었다.
“야! 나 사이다 안 먹는다니까?”
“마셔. 그렇다고 버릴 거야?” “하…, 즐거운 날에 이게 뭐야?”
“한 번 더 마셔. 두 번 마셔.” “…….”
“도준아,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하하…. 저기, 얘들아!? 누가 나랑 자리 바꿔줄 사람 없니?”
사이다를 연거푸 마시게 된 도준.
그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주변에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그의 애절한 목소리를 모른 척했다.
노은하 사단에는 가까이 다가가되, 결코 노은하에게는 가까이 다가가지 말지어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결국 유도준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휴…, 좋은 날이니 내가 참는다. 야, 한 잔 더 따라봐.” “그래, 사랑하는 만큼 따라줄게. 자, 네가 따라서 마셔.”
“…친구야, 지금 장난하니?”
은하는 페트병 하나를 유도준에게 내밀었다.
은하는 웃음을 참느라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반면 유도준의 입꼬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귀까지 올라갔다.
“너희 웃는 거 보기 좋다. 두 사람 그대로 가만히 있어봐!”
한편, 다목적실을 돌아다니고 있던 차은우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채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갔다.
두 사람은 곧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얘 얼굴이 어디가 보기 좋다고?
은하의 기준은 언제까지나 여전히 노은아가 자리매김하고 있었으며.
유도준은 늘 자신이 최고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2차 투덕거림을 벌이려고 하는 그때─.
[─얘들아! 지금부터 선물교환을 시작하도록 할게!]여지껏 행사 준비만을 하고 있던 김민지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먹고 마시며 떠들고 있던 학생들이 그녀에게 호응해주었다.
처음 파티에 참석할 때 입구에서 번호표를 받은 학생들은 머리 위로 번호표를 들어올렸다.
김민지가 프로그램을 돌린다.
스크린에 번호표가 뜨고, 서나가 해당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건넸다.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제부터 받지 않게 되었더라…. 이거 괜찮다.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거.”
“…그러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유도준이 짧게 읊조렸다.
고개를 끄덕인 은하는 호명을 당해 앞으로 뛰어나가는 학생들의 얼굴을 살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선물을 받아드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29번! 29번 가지고 있는 사람!?]“야, 너 부르는 거 아니야?”
“어, 그러네.”
그때 도준이 팔꿈치로 푹푹 은하의 옆구리를 찔렀다.
손에 쥔 번호를 확인한 그는 이내 앞으로 나가 선물을 받았다.
선물상자가 꽤나 작았다.
뭐지? 손목시계인가?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규칙상, 선물은 사람들이 보게끔 받는 즉시 개봉해야 했다.
“…….”
[어…. 머리핀이네. 정말 예쁘다. 이거 선물 가져온 사람 누구야?]은하는 할 말을 잃었다.
사회자로서 그가 받은 선물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던 민지는 자지러지듯 빵 터졌다.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정말 누구야?”
겨우겨우 정신을 찾은 은하.
선물교환을 할 것이기에 무난하게 목도리를 선물로 가져온 은하로서는 머리핀을 가져온 누군가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범인을 색출하기로 했다.
이윽고 깔깔거리는 친구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 사람은─.
“─미안, 대장…. 내가 가져왔어.”
[아하하! 아, 내 배꼽 어디 갔어?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이런 재미로 선물교환하는 거였는데…. 은혁아, 이리로 나와봐!]최은혁이 얼굴을 붉히며 나온다.
은하는 황당해하며 마주 서게 된 최은혁을 바라보았다.
은혁이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자! 은혁이 네가 사온 선물이니까 은하한테 직접 달아줘야지!]은하는 허허 웃었다.
저 뒤에서 은우가 꺄꺄 소리 내며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 여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부끄러워서 몸을 들썩이는 것인지, 웃음을 참느라 그런 것이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야, 먹민지. 이거 꼭 해야 해?”
[응, 꼭 해야 해. 지금까지 선물을 받은 사람은 다 했단 말이야.]“…진짜 해야 해?”
[요즘 시대에는 남자도 머리핀…, 하는 시대일 거…크크아하하하!]“대장…, 정말 미안해.”
은하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으며, 최은혁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최은혁, 16세.
낭만만을 꿈꾸고 있었을 그는 이제 현실이 얼마나 잔인한 건지 깨달은 눈치였다.
그래…, 내가 좋은 날이니 오늘은 참는다.
결국 은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자가 수치사를 겪으며 진정으로 어른이 된 것이다.
스승이 된 사람으로서 그것을 어찌 방관할 수 있겠는가.
은하는 내년이 되는 대로 지금보다 심하게 굴려주기로 다짐했다.
[…의외로 잘 어울리는데?]“은하야! 이쪽 봐봐!”
은혁이 서투른 손길로 그의 머리에 머리핀을 꽂아주었다.
민지가 장난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마이크를 쥐고 탄성을 터뜨렸다.
학생들도 분위기에 심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어울려서 그러는지 좋아라 했다.
차은우가 펄쩍펄쩍 뛰고 있다.
은혁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뭐라 말을 하려 했고─.
“─대장. 예…, 예쁘…네….”
“닥쳐.”
“넵.”
최은혁, 16세.
그는 진정으로 눈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시끌벅적한 밤이다.
카에데는 그것이 적응이 되지 않아 발코니로 나왔다.
그녀의 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이후 언제나 조용했으니까.
“…쟤네는 기운도 좋네. 계속 웃고 떠들 수 있다니….”
하지만 시끌벅적한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홀로 밤을 보내야 했던 예전이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함에는 자신이 들어갈 공간도 있었으니까.
그동안 ‘소음’이라고 치부했던 게, 이제는 그녀가 관여하면서 ‘음악’이 되었다.
이제는 이 소리를 듣지 않고 자는 날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혼자 나와 있어? 다른 애들은 안쪽에서 게임하고 있는데.”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이 이들의 일원이 된 것을.
하지만 카에데는 부루퉁한 얼굴로 발코니로 나온 은하를 쳐다보았다.
부끄러우니까 말하고 싶지 않다.
특히 노은하한테는.
“그러는 넌.”
“나? 계속 안에 있는 게 힘들어서. 쟤네는 기운도 좋아. 저렇게 떠들면 안 힘든가.”
“…그러게.”
그러다 그녀는 그와 의견이 같자, 무심결에 동의했다.
흠칫한 그녀는 표정을 관리하고자 얼굴에 힘을 주었다.
…활을 안 가지고 왔었지.
파티라 활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불안할 때는 활을 꾹 쥐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던 카에데는 마음속으로 끙 소리를 냈다.
별 수 없이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조금 전에 은우에게서 받은 사진을 보기로 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척 내밀었다.
은하의 얼굴이 단번에 굳는다.
“…이걸 왜 가지고 있는 거야?”
“보험 삼아서.”
“내 사진을?”
“이걸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뭔 소리야.”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두르는 은하.
그러거나 말거나 카에데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노은하가 머리에 머리핀을 끼고는 최대한 무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그녀에게는 깨소금이었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봐둬야겠다.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은하가 체념하듯 한숨을 쉰다.
카에데는 그가 뭐라고 하든지간에 처음부터 알아서 할 생각이었지만.
그때 은하가 난간에 팔을 기댔다.
“호우야.”
“카에데.”
“그래, 카에데.”
“내가 전에 얘기한 적 있지 않아? 파티를 만들 거라는 얘기.”
“…그런데.”
카에데는 최대한 그를 덜 의식하러 그의 시선이 가는 곳을 향했다.
새까만 밤이었다.
드문드문 도심의 불빛이 보인다.
반면에 등 뒤에서 비춰지는 빛은 너무나도 환하다.
지금 밟고 있는 세상은 이렇게도 밝건만, 저 너머에 펼쳐진 세상은 어둠에 잠식된 느낌이다.
아니다.
이윽고 그녀는 단정했다.
여기가 이상한 거야.
세상은 원래 어둡다.
이들이 이상한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격 없이 웃고 떠들고 있는 이들이.
“레인저가 필요해. 정세를 살피고, 트랩을 해제하는 레인저가 아니라 전투에도 능하고 파티의 기동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
“난 그 자리에 널 생각하고 있어.”
호시미야 카에데는 생각했다.
등 뒤에서 저들이 즐거이 떠드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노은하 때문일 것이라고.
그녀는 그동안 그가 아카데미에서 저질러왔던 만행을 돌이켜보았다.
그가 벌인 행적은 전부 그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단언컨대, 카에데는 노은하가 싫었다.
“─그동안 네가 파티 권유를 하면 늘 거절해왔는데 생각해보니 이걸 묻지 않았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최근에 그를 지켜본 결과,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패악을 부리고 다니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사람을 지키거나.
무언가 목적을 지니고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처음에 카에데는 은하가 움직이는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얼마 전에 아인 파동에서 그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은 것이 방아쇠가 되었다.
‘목적’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노은하는, 사회의 해악을 없애고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노은하 네가 생각하는 파티는…, 대체 어떤 파티를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은하가 만들려는 파티는 그의 목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카에데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것을 물을 줄은 몰랐는지,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근 귀엽다.
…이게 아니지.
카에데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윽고 은하가 긴 뜸을 들인 끝에 입을 열었다.
“─강한 파티. 어느 누구도 우리를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파티를 만들 생각이야.” “애매모호해.”
“원래 비전이란 게 그런 거야.”
“그 파티로 뭘 하고 싶은 건데?”
“음….”
노은하가 다시 고민을 한다.
이번에는 뜸이 길지 않았다.
그가 말을 꺼냈다.
“─내가, 우리가 이 나라의 기준이 되게 할 거야.” “…….”
“내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정의가 될 거야. 우리한테 반대하는 모든 것은 악이 될 거고.”
“그건 독재야. 애초 너는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삶을 사는 이유가 없잖아?”
“극단적이야.”
“세상이 이런데 그게 뭐가 어때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원래 극단적이게 되는 법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바로 옆에 죽음을 두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겪어봐.”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미쳤거나, 미쳐버리거나. 플레이어는 그런 사람들밖에 없어. 아직도 모르겠어?”
“…….”
“내가 보기에는 너도 미쳐 있어. 활에 미쳐 있잖아. 그러지 않고서는 <신…, 아니다. 안 그래?"
알 수 없는 문답이다.
호시미야 카에데는 은하의 위험한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의 발언은 어딘가 확신이 있어, 언젠가 꼭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역시 노은하는 위험하다.
그녀는 더는 그와 어울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때─.
"─아, 하나 또 생각났다. 뭘 하고 싶은 건지."
그가 지금까지 했던 얼굴과 다르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한 것이다.
웃고 있다.
그제야 나이에 어울리는 웃음.
그녀는 그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뭔데."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노은하가 눈을 반짝였다. 목소리가 어딘가 들떠 있다.
"─파티원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해줘야지."
"…허…."
카에데는 헛웃음을 삼켰다.
파티원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게 지켜주겠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위험한 사고방식으로 만든 파티가 구성원의 소확행을 이루어주는 것에 집중하겠다니.
얘는 대체 뭐지?
야망이 크다.
그런데 그 야망으로 하려는 일이 작아도 너무 작다.
그러다 카에데는 또 다른 의문을 떠올렸다.
"네가 말하는 기준이 대체 뭔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건데?"
노은하가 다시 뜸을 들인다.
대체 무엇을 고민하는가 싶다.
그러다 그가 내놓은 답은─.
"─내가 섬길 사람."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노은하가 누군가를 섬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누군가의 칼이 되겠다는 뜻이었으니.
그 칼을 누가 휘두르는지에 따라 세상이 들썩일 것이다.
정의와 악이 규정되고.
"…시리우스냐."
"아닌데." "설마 정하양?"
"아니야."
"…유도준은 아니겠지."
"아니거든."
"…그럼 누군데."
만약 그가 섬기려고 하는 사람이 재계그룹의 사람이라면 세상은 결국 그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계그룹의 사람의 사고방식이야 뻔하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과 반대선상에 서 있었다.
"남의 고통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려 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한 건 잘못됐다고 확실하게 말하려 하고,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꿋꿋하게 견디려 하는 사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있더라."
마치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노은하가 눈을 감고 꺼내는 말은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카에데는 호기심이 갔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말하는 게 이 나라의 기준이 된다고 하면─.
"그래. 들어가줄게."
"…들어와주면 고맙지."
"단, 네가 섬기려고 하는 사람이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건 없던 일로 해."
"…아마…, 너도 좋아할 거야."
─어쩌면 공헌에 따른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카에데는 머릿속으로 그가 언급한 사람을 어렴풋이 그리며 생각했다.
"─기대할게."
필시 그 사람이 만들려는 세상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함처럼 평안한 분위기가 들게 하리라.
☆
세상은 한 번 멸망했음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너진 세상을 살아간다.
"…눈까지 내리니 더 추워지네."
크리스마스 이브.
홍대의 눈 내리는 밤하늘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만큼 당연히 마나도 편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플레이어들은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점보고 가세요."
버스킹을 하는 이들의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여성은 띄엄띄엄 들려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했다.
하지만 홍대 거리에서 가게도 없이 무작정 테이블 하나만 가져다놓고 앉아 있는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에는 '별점 50000원'이라는 가격이 붙어있기까지 했다.
사기를 쳐도 정도껏 치라는 말이 나올 법한 점집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접고, 내일은 또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네."
여성은 기지개를 쭉 폈다.
사실 점집은 여흥일 뿐이었다.
단지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별'을 읽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별을 읽고, 별들을 이어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하면 세상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리하여 여성은 지금까지 하나의 거대한 운명을 보고 있었다.
"정리나 하자."
손님도 없고, 날씨도 추워지겠다.
분홍색 틴트 서클라스를 쓴 여성은 이제 그만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테이블 위로 난데없이 조그마한 손 두 개가 턱하고 올라온 것이다.
"웅?" "…응?"
까치발이라도 섰는지.
테이블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민 여자아이.
여성과 눈을 마주친 아이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성도 갑자기 나타난 아이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러다 여성은 아이의 눈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띄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여성은 곧 여자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여성의 손이 멀뚱멀뚱 바라만 보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꼬마 손님은 이름이 뭐예요?"
"웅?"
"이름. 이름이 뭐니?"
여성이 상냥하게 묻는다.
그러는 한편 여성은, 아니, 마녀는 아이에게서 이어진 별을 주시했다.
아직은 조그마한 별이다.
별들의 폭풍에, 거대한 운명에게 집어삼켜질 만큼이나 여리다.
하지만 마녀는 주변의 별을 이으며 최종적으로 어느 한 별과 이어지는 우주를 조망했다.
운명을 거스른 별들에 둘러싸인, 운명을 거스르는 별이 매우 강렬한 빛을 내고 있다.
그때쯤,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던 아이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하배기. 하배기, 하배기."
"…하배기?"
"아니이, 하배기!"
"아하, 하백이란 뜻이구나. 하백이 네 이름이니?"
"웅!"
마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간식용으로 챙겨두고 있던 사탕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의 얼굴이 웃음에 차오른다.
"먹을래?"
"웅!"
"하배기는 몇 살이니?"
"…으음…, 세엣!"
"손가락은 네 개인데? 네 살?"
"웅!"
마녀는 포장지를 벗겨선, 아이에게 손수 사탕을 건네주었다.
아이는 낼름 사탕을 받아먹었다.
그러는 한편, 마녀는 아이 모르게 마나를 흘렸다.
그러고는 체념한 듯 받아들였다.
"…. 그래서…, 그랬던 거였구나.”
“웅?”
“아니야. 맛있니?”
“웅! 마시써!”
“언니가 한 번 안아도 될까?”
“……?”
마녀는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내 마녀는 아이를 잡아당겨서는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았다.
아이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아이가 무척이나 가여웠다.
“앞으로 계속…, 힘들고 고된 일만 있을 거야.”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 기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별을 통해서 운명을 읽는 마녀는 아이에게 예언과 같은 말을 건네며,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줬으면 해. 잘 할 수 있지? 우리 하백이.”
마녀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이를 조금 떨어뜨려선 허공에 수인을 맺는다.
푸르른 마나는 그녀의 수인을 따라 복잡한 술식을 완성시켰다.
그것이 아이의 몸에 달라붙는다.
“…좋아. 결계는 이 정도면 됐어. 이제 웬만해서는 기프트의 정체가 탄로 나는 일은 없을 거야.”
“…웅?”
도중에 아이의 신체에서 흘러나온 백은색의 마나가 반발을 일으키기는 하였으나.
마녀는 아이의 몸에 마나를 감추는 술식을 씌울 수 있었다.
아이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백련아!”
“엄마!”
그러던 중.
아이는 제 어머니를 발견하고서는 후다닥 달려 나갔다.
남겨진 마녀는 혼이 나는 아이와 어머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백이가 아니라 하백련이었던 거구나. 어쩐지….”
마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아이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어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아이도 곧 어머니를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마녀는 등을 돌리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언니이─!”
돌연 후다닥 달려오는 여자아이.
마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숨이 차게 뛰어온 아이가 그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자!”
“…사탕이네. 이거 나 주는 거야?” “웅!”
“고마워, 잘 먹을게.”
어머니가 준 모양이다.
아이가 오므리고 있던 손을 피며 자랑스러워하듯 사탕을 보여주었다.
마녀는 아이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그 자리에서 사탕을 까먹었다.
아이가 활짝 웃는다.
“언니이,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하백이도,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거대한 운명에 얽매여 있는 아이.
마녀는 아이의 운명에 슬퍼하면서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
그녀는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마녀는 나직이 읊조렸다.
아무리 모진 시련이 아이의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마지막에는 행복할 거야.”
결국 아이는 웃게 될 것이다.
마녀는 조금 전 아이의 별을 보고 다시금 확신했다.
별이 보여주는 미래 속에서 아이는 유채꽃다발을 껴안고 웃고 있었다.
☆
해가 지나고, 선력 12년.
노은하, 17세.
031기는 중등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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