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14
“”””─선서.””””
고등아카데미 031&31기 발대식.
대강당에 모인 1800명의 학생들은 수석 정하양이 토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읊었다.
“나는 조국을 수호하는 검이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일 없이….”
사흘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유도준이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를, 그야말로 서열정리나 다름없었다고.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만큼 학생들이 얕보이지 않으려 격심한 대립을 벌인 것이다.
애들은 발대식을 준비한 것만으로 힘들어하는 눈치였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31기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031기의 입지를 위협하려 하겠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끝도 없는 경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은하는 마나를 머금은 의례용 검을 탁 소리를 내며 칼집에 집어넣었다. 검신에 맺혀 있던 마나가 그의 곁을 맴돌았다.
이어서 그는 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검을 쥐지 않은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 쫙 펴서 주변에 잔재하는 마나가 손 안으로 모이도록 컨트롤했다.
각오를 다지듯 주먹을 쥔다.
푸르른 빛이 어스름하게 반짝이는 주먹을 얼굴 앞으로 끌어와 마나를 체내에 흡수한다.
동시에 이름을 쓰기 위한 마나는 검지 끝에 남겨두고.
온태양이랑 얼굴을 트지 못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앞으로 계속 보게 될 텐데, 민호랑 온태양이랑 척을 질 정도로 사이가 나빠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어찌된 영문이었는지.
이전 삶에서 온태양은 입학 초에는 마나관리기구의 기본적인 후원만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성장세를 눈여겨 본 최가인에 의해 갤럭시그룹의 후원을 받게 된 것이고.
그런데 이번 삶에는 입학 초부터 갤럭시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31기에 입학해야 했던 사람들이 031기로 입학했기 때문인 건가.
비록 후원의 규모는 작다고 해도.
갤럭시그룹의 후원을 받게 됐으니 조금이라도 목민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군다나 대련을 치르기도 했으니.
그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더는 목민호에게 따지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심장이 뛰는 날까지.””””
은하는 정하양이 날짜를 옲조리자 허공에 마나로 적은 자신의 이름을 손으로 지웠다.
자신의 플레이어 인생을 걸어가며 국가를 지키는 검이 되겠다는 맹세.
그래봤자 보여주기식 행사다.
은하는 연단 위에 앉아 흡족해하는 고등아카데미 교관들과 이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하나 보여주겠다고 사흘이나 스트레스 쌓이게 연습하다니….
친구들 심정이 후련한 한편으로는 허무할 것이다.
그동안 연습을 내빼고 돌아다녔던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애들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여하튼 고등아카데미의 발대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 주부터는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중등아카데미의 수업과 비교해서 훨씬 실전 중심적으로 진행되리라.
그만큼 고생할 것은 예정된 사항인 것이고.
그러니─.
─이럴 때는 당연히 술이지.
정식으로 준성인으로 인정받았으니 이제 술을 마시자.
그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꿈틀거리는 입가를 어쩌지 못했다.
☆
031기와 31기가 눈만 마주쳤다고 무조건 싸우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 중에서는 발대식을 계기로 교류를 나누게 된 이들도 있었다. 아니면 라인을 타기 위해서 친분을 맺게 되었다거나.
의도야 어찌되었건, 각 그룹에서는 서로 편하게 친교를 다지기 위해서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다.
“근데 은하 너는 왜 뒤풀이 자리에 가지 않는 거야? 너희 그룹에서는 뒤풀이 안 하겠대? 백기가 그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안 간다고 했어. 내가 가면 걔네들이 편하게 놀 수 있겠어?”
“그게 아니라 거기에 백기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안 간 거겠지. 근데 백기는 대표자라서 여기저기에 불려 다닐 테고 말이야.” “…….”
눈치도 좋다.
은하는 대답을 피했다.
괜히 집게로 불판을 뒤적거리면서 검게 탄 고기를 유도준의 방향으로 밀어주었다.
“친구야, 세상에 이런 친구 없다? 네가 저녁 혼자 먹는 게 불쌍해서 내가 이렇게 나와준 거야.”
“그게 아니라 발대식을 준비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 뒤풀이 자리에 끼기 눈치가 보였겠지. 이거 탔다. 너 먹어라.” “뭐래? 우리 그룹 우정이 얼마나 끈끈한지 너는 모르지? 아니, 근데 너랑 밥 먹어주겠다고 온 친구한테 짐을 들고 나르라고 했던 게 말이 되냐? 네가 사람이야?” “으음…, 이건 덜 익은 것 같은데 네가 먹어서 확인 좀 해주라.”
유도준이 발끈해서는 젓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술이 들어간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은하가 유도준을 덥석 납치해서는, 아카데미 내 단군 플레이어조합에서 사온 것들이었다.
유도준이 화를 낼 만도 했다.
그럼에도 은하는 태연하게 그에게 덜 익은 고기를 내밀었다.
“오늘 마시고 남은 건 전부 너한테 줄 거니까 화 풀어.” “와…. 노은하 씨, 오늘 산 물건들 전부 내 카드로 긁은 거 아세요?”
“카드를 두고 와서 그래.”
“와…. 내가 너 엉덩이 뒷주머니에 지갑 챙기고 다니는 것도 모를 줄 알고? 솔직히 말해. 내 카드를 써서 술을 산 저의가 뭐야?”
“…….”
유도준이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도 은하는 무시했다.
그러고 소주를 마신다.
알딸딸한 맛이 입 안에 퍼지는 게 참 맛있다.
내 카드를 쓰면 누나나 가족들한테 들킬 수 있으니까 그러지.
고등아카데미 학생들은 법적으로 준성인으로 취급받는다.
운전을 할 수도 있고, 술을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참정권까지 주어진다.
고등아카데미 학생들의 혜택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까….
살아 있을 때 즐겨보라는 거겠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라도 공포를 이겨내라고.
은하는 유도준과 건배를 했다.
유도준이 말리기도 전에 그는 곧장 소주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진짜 다네. 내가 이걸 지금까지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다니….”
“야! 천천히 좀 마셔라! 벌써부터 그렇게 마셨다가 훅 가버리는 수가 있다니까? 술도 처음 마시는 놈이 뭐가 이리 급해?”
“내가 안 취하는 건 너도 알잖아. 저번 모임 일 기억나지 않아?”
“아, 그랬지. 처음은 아니었네.”
이전 삶에서도 은하는 입학을 하고 걸핏하면 술을 찾았다.
검을 휘두르지 않는 시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방에서 처박혀 있을 바에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게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담배도 했다.
이전 삶에서 몸에 나쁘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다 해보았다.
유정이도 처음에는 나를 말리다가 언제부터 내 술친구가 되어줬었지.
잔을 기울이며 과거를 떠올린다.
은하는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이제는 도준도 가만 내버려뒀다.
‘…너어…. 취했지?’
‘취한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나? 나도 안 취했는데…. 근데 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지?’
‘이제 그만 마셔. 너 정말 취했어. 여자기숙사로 돌아가지도 못할 테니 그냥 여기서 자고 가.’
‘응? 여기서 자고 가라고? 너어…, 나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거지?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고?’
‘…자라, 제발. 저기 침대 가서.’
‘노은하 너어…! 그렇게 안 봤는데 너도 결국 다른 남자들이랑 같은 부류였던 거구나! 너 정말…!’
‘…난 바닥에서 잘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흐음…, 정말? 하긴, 그래! 네가 그런 남자들이랑 같은 부류일 리가 없지!’
‘하….’
‘좋아! 이 누나가 인심 썼다! 내가 너니까 손은 잡고 자게 해줄게!’
‘그냥 자라니까.’
술에 빠져 살던 어느 날 밤.
은하가 저지른 사건을 수습하고서 그를 꾸짖으러 온 유정은 그의 방에 굴러다니던 맥주캔을 보고는 거의 기겁을 했다.
그녀는 그가 사놓은 술을 수거하려 그와 실랑이를 벌였고, 어쩌다 보니 혼자 마실 거면 다음부터는 자신과 마시자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때부로 그녀는 은하의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와…. 저 혼자 소주 2병을 마시네. 그걸 마시고서도 이따 애들 주량을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안 취한다니까?”
“세상에 안 취하는 사람이 어딨냐! 사람이 취해야 힘들어도 사는 거지, 취하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면 그게 사람이게?”
유도준이 코웃음을 쳤다.
반면에 은하는 피식 웃었다.
어째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술에 취하지 않고 살았던 의 인생은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기프트 때문인 건지. 웬만해서는 정신을 잃지 않더라고.
은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프트가 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삼아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이걸 좋게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전투에서 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일 수도 있으나.
결국 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힘든 것을 계속 감내해야만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야, 애들 왔다. 그만 마셔.” “그러게.”
은하는 상념 속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뒤풀이를 마쳤을 친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들의 얼굴에는 술을 마신다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은하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오늘 쟤네들 주량을 확인한다고 했었지? 그럼 당연히 마나 안 쓰고 마시겠네?”
마나를 발현하는 과정은 술기운을 깨우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마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레이어는 술에 취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술에 취하는 방법은 결국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당연하지. 실제 주량을 알아야만 위기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이라고.”
조만간에 담당교관이 학생들에게 음주교육을 시킬 것이다.
그때 무턱대고 술을 마시고 죽어서 흑역사를 만들 수도 있으니 은하는 친구 된 마음으로 미리 주도(酒道)를 알려주기로 했다.
☆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쭉쭉, 동구밖~ 과수원 샷! 아카시아 꽃이 활짝 투 샷! 아~! 종로구의 명가수! 배수빈이 노래합니다! 한 박자….”
“야, 이것들아 대체 언제까지 날 멕일 생각이야! 노래 그만해!”
마나를 쓰지 않고 술을 마신다.
은하에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겁을 먹은 얼굴을 했다.
그러다 고기를 구우며 술이 한 잔, 두 잔씩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서히 술에 취하는 친구들이 나타났다.
“내가…,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대체 나한테 왜 그래!”
가만히 술만 마시기에는 적적해서 술 게임을 벌였다.
은하는 아는 술 게임이 적었지만, 유도준이 알고 있는 게 많았다.
그리하여 친구들은 술게임을 했고, 눈치 빠른 몇몇이 취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취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말았다.
결국 배수빈이 저격당했다.
연거푸 술을 마신 배수빈이 끝내 술에 취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야…, 쟤 우는데?” “냅둬. 쟤는 원래 저래.”
분위기가 소강했다.
배수빈이 펑펑 눈물을 쏟았다.
술에 취한 친구들이 주춤해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나빠! 진짜 나빠! 나빠! 너희 정말 이러기야? 내가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건데…, 너희들이 몰래 나 빼고 놀았던 걸 모를 것 같아!? 진짜…, 나 따돌리지 말란 말이야. 내가…, 내가 친구도 하….”
“너는 왜 술버릇이 변하지 않냐. 술만 마시면 울면서 신세한탄이야. 야, 배수빈. 일어나.”
은하는 혀를 쯧쯧 찼다.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인지 배수빈의 주량이 회귀 전보다 떨어졌다.
술에 취하면 우는 건 여전했지만.
친구들이야 배수빈이 우는 모습이 낯선 모양이었지만, 은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억지로 잡아서 일으켜 세워 미리 깔아놓은 이불에 그녀를 냅다 넘어뜨렸다.
“노은하가 날 때렸어…! 너무해! 다들 미워, 다 죽여 버릴 거야!” “네가 먼저 죽었거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니까 그냥 자라?”
“…누가 나한테 죽창을 줘. 그러면 노은하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배수빈이 반항을 하지 않고 잠이 든 것이 다행이었다.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온 그는 조금 전보다 더 흔쾌해진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유도준을 제외하고─.
“─너 괜찮아? 얼굴이 그대로인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응? 나는 멀쩡한데. 술이 다네.”
김민지가 멀쩡했다.
조금 전에 술을 이것저것 집어넣은 벌칙주를 마셨는데도 취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 주당이었구나.” “주당은 내가 아니라 너나 유도준이겠지. 야, 우리끼리 한 잔?”
“다른 애들은?” “쟤들끼리 마시라고 하자. 보니까 다들 술이 들어가나 물이 들어가나 모르고 마시는 것 같은데…. 자고로 술이란 같이 맛을 즐길 줄을 아는 사람들하고 마셔야하지 않겠어?”
“이야~! 우리 김민지가 옳은 말을 다하네! 먹고 죽자! 마셔! 마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든 유도준.
은하는 어쩌지 못하고 두 사람과 폭탄주를 마셨다.
그녀가 소주병을 붕붕 흔드는데, 벌써 술꾼이 다 된 듯했다.
그러다 은하는 문득 누구 한 명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목민호 어디 갔어?” “민호? 민호 아까 화장실 간다고 밖으로 나가던데?”
“화장실이 안에 있는데 대체 밖에 왜 나간 거야?”
은하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유도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목민호를 찾으러 갔다.
이윽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은하는 별 수 없이 목민호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여보세요.]“야, 너 지금 어디야?”
[…집 가는 중인데, 왜.]“우리 오늘은 여기서 다 같이 자고 가기로 했거든. 기억 안 나?”
[아…, 그랬나. 갈게.]“하…, 어디로 오는지는 알지?”
[나도 알아. 집.]“…이거 완전 취했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민지가 빵 터졌다.
유도준도 낄낄거렸다.
은하는 유도준을 시켜서 목민호를 수거해오라고 시켰다.
그러다 그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벽에 기대 전화를 하는 이천서가 눈에 들어왔다.
쟤도 취했네.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나 보다.
은하는 늦은 시간에 상대에게 민폐가 되기 전에 이천서를 침대에 눕히기로 했다.
“…뭐야? 이런 번호는 없는데…. 대체 누구랑 전화하고 있던 거야?”
“여친.”
“응?”
금시초문이다.
아카데미에 커플이 많기는 했지만, 이천서에게 여자친구가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긴, 얘는 틈만 나면 파인톡이나 하고 있었지.
훈련은 하지 않고서 매일 그렇게 스마트폰을 껴안고 살았던 이천서.
그동안 그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던 은하는 그의 여자친구가 누구인지 관심이 갔다.
그런데 이천서는 두서없는 말만을 늘어놓기만 했다.
“은하야…. 내 여친이 계속 전화를 안 받는다…. 큰일 났다.” “네가 술 취해서 전화를 걸어대서 짜증나서 안 받나 보지. 근데 이거 없는 번호잖아.” “아니야, 있어.” “있기는 뭐가 있어. 99999는 대체 뭐야?”
“내 여친…. 왜 안 받는 거지….”
“…여친이 없으니까 안 받지.”
은하는 그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 주었다.
취했다.
이부자리로 데려가기는 힘들기에 그냥 바닥에 눕히기로 했다.
이따 생각이 나면 이불이라도 하나 덮어줘야지, 뭐.
친구들이 술에 취한 모습을 구경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뒤치다꺼리는 생각을 못했다.
나직이 한숨을 쉰 은하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자리에서 차은우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이! 차은우란 이름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데 왜 자꾸 오해하는 거냐고! 이제부터 날 여신님이라고 부르도록 해!”
“うるさいよ、もう…。君たち、ちょっとひどくない?”
“시형이가 랩을 한다. 호옹, 호옹
, 호오오오오옹이?”
“왈! 왈왈!”
“나 안 취했어. 안 취했다니까 왜 계속 취했냐고 묻고 그러냐고.”
총체적 난국이다.
차은우는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연극조로 깔깔거리고 있었다.
호시미야 카에데는 알 수도 없는 일본어를 지껄이며 빈 캔으로 탑을 쌓고 있었다.
강시형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랩을 하고 있었고, 진파랑은 개가 됐다.
최은혁은 개가 된 진파랑을 향해 취하지도 않았다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고.
이제는 웃을 수도 없었다.
은하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민호를 데려오는 일은 도준이 아닌 자신이 해야 했던 것이다.
“…나 보고 얘네들 정리를 하라고? 먹민지 얘 어디…, 도망쳤네.”
저들을 잠자리로 데려가야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린 은하는 다행히 아직은 정신이 있는 서나와 하양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허나 그것은 판단 착오였으니.
“노은하. 여기 앉아봐.”
“뭐?” “술 좀 따라봐.”
얼굴이 다소 붉어진 여우가 불쑥 종이컵과 술병을 내민 것이다.
은하는 당황해하면서도 서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자! 너도 마셔!”
“…얘도 취했네.”
“안 마시고 뭐해? 잔이…. 아, 여기 있다.”
서나가 종이컵을 은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말도 없이 컵이 넘치게 술을 따른다.
술에 취한 여우는 은하에게 술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
“아이, 착하다. 누나가 은하 머리 쓰다듬어줄게~”
“…얘까지 치워야 하네. 하양이 넌 괜찮…, 안 괜찮구나.”
은하를 뒤에서 껴안아서는 머리를 쓰다듬는 진서나.
그는 그녀를 떼어놓기를 포기하고 하양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은 멀쩡하게 보이지만 그녀는 눈이 다소 풀려 있었다.
“…너어…!”
정하양이 볼을 부풀린다.
은하는 그녀가 무엇을 할 것인지 지켜보기로 했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은 정하양이 느닷없이 그의 입에 찔러 넣었다.
“매앤날 나만 먹이고 말이야. 은하 너 때문에 내가 살이 찐 거 알아, 몰라?”
“…….”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먹이려고. 자, 아~ 해. 은하야, 맘마 먹자.” “맘마?” “맘마 먹기 싫어요?” “…얘가 왜 이래.”
정하양이 계속 은하의 입에 고기를 넣는다.
볼이 미어터지라 먹던 은하는 곧 정하양의 주물럭거림에 당해버렸다.
평소 그가 그녀의 볼을 주무르듯, 그녀가 그의 볼을 주무른 것이다.
“앞으로는 누나 말 잘 들을 거지? 안 그러면 확 텔레파시 쏠 거야.”
“이것도 먹어봐. 이것도, 이것도!”
유도준이 민호를 데려올 때까지, 은하는 여우와 하양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고등아카데미 학원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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