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24
동아리 활동은 즉시 종료되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실수에 의해서 몬스터가 출몰한 일이었으니 활동을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병원에서 복귀한 온태양은 동아리 회장에게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윤이별, 이천서와 같이.
“…죄송합니다.”
입을 꾹 다물고만 있던 온태양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가 고개를 들려 하지 않았기에, 동아리 회장은 더 이상 그를 혼내지 못했다.
“은하 너는 어디 다친 데 없지?”
“내가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다칠 사람으로 보여?”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그때 정하양이 온태양을 보고 있던 은하의 팔을 매만졌다.
그녀가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면서 앞뒤로 은하의 몸을 살핀다.
이윽고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굳은 얼굴을 풀었다.
그럼에도 그의 팔뚝을 잡고 있는 손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린다.
“내 팔은 왜 주물럭거리는 거야?”
“응? 내가 언제?”
“지금 그러고 있잖아.” “아닌데?”
포커 페이스로 일관하는 정하양.
은하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고는 그녀의 장난을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사이, 임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회장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예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오늘 활동하느라 수고했어! 동아리 활동은 이것으로 해산하고, 다들 주말 동안 푹 쉬고 다음 주에 만나도록 하자!”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기는 했으나.
동아리 회장이 해산을 발표하고,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물론 은하에게 사전에 전달을 받은 친구들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뒤풀이를 안 할 수는 없지.
모처럼 금요일 수업을 결석하고서 아카데미를 나온 것이다.
친구들이 사는 지역도 각기 다른데 외부에서 만나는 게 흔치도 않았고.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만 모이는 게 아니라서 이건 다른 애들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걸.
친구들도 진즉 동의했다.
그러지 않아도 민지가 이미 가게를 예약해놓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온태양이 뒤풀이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
“하양아, 조아라한테 뒤풀이 얘기 해봤어?”
“아라도 뒤풀이 가고 싶다고 했어. 불러주면 좋아할 것 같아. 문제는 태양이인데….”
하양이 말꼬리를 흐렸다.
지금까지 행동으로 추론했을 때, 조아라는 온태양의 행동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가 이번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졌더라도, 그녀는 먼저 온태양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태양의 뒤풀이 참석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내가 물어보면…, 효과 없겠지?”
“음…,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온태양이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물어보면 좋겠는데….”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에 병원에서 싸운 이후로 온태양은 그를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었다.
이외에도 온태양은 그의 친구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사람은 아직 깊이 친해지지는 않은 아리엘이나 윤이별 정도인데….
이내 은하는 다른 친구들의 상태를 살폈다.
윤이별은 시무룩한 얼굴로 민지의 위로를 받고 있던 반면에 아리엘은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리엘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 성격도 좋아서 온태양도….”
“아, 지금 아라가 물어볼 건가봐.”
은하가 의견을 내놓으려던 그때.
서나가 불쑥 말을 걸었다.
은하는 여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아라가 여전히 못박혀 서 있는 온태양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은하는 귀를 기울였다.
“태양아, 우리 기분도 꿀꿀하니까 어디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가지 않을래?”
“괜찮아, 내가 스트레스는 무슨…. 하루 일찍 밖으로 나왔으니까 그냥 태희나 보러 갈래.”
“그, 그래? 근데 태희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돌아오잖아. 지금 돌아가더라도 집에는 아무도 없지 않을까?”
“뭐…, 그러기는 하겠지. 저녁이나 만들고 있을까….”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을 거잖아. 그럴 바에는 우리, 동아리 사람들이 뒤풀이를 한다는데 같이 가보는 건 어떨까?”
“뒤풀이?” “신입부원들끼리 환영회를 한다고, 조금 전에 내가 들었는데…. 어때? 이런 데 참석해서 친해지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흠…. 아라 네 말대로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그치?”
온태양의 반응이 긍정적이다.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은하는 속으로 조아라를 칭찬했다.
옆에 있던 서나와 하양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으로 보아하니 두 사람도 같은 기분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흐름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아가지 못했으니─.
“─그런데 그 뒤풀이…. 누구누구 참석한대?”
“어? 어…, 누, 누구였더라? 아하하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도 안 돼. 누가 오는데 이러는 거야?”
“어…, 이별이도 온다고 했었고…, 구래랑 아리엘도 온다고 했고….”
“혹시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뒤풀이에 가는 건 아니지?”
“…그, 그러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한 온태양이 곧 눈살을 찌푸렸다.
은하와 눈을 마주할 때는 더더욱.
그에 반해 아라의 얼굴은 낭패감에 휩싸였다.
다시금 온태양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됐어. 나는 그냥 집에 가서 잘래. 아라 너는 가고 싶으면 가든가.”
“에이…, 우리 저기 그러지 말고 한 번 참석해보자. 애들이 태양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쁘지는….”
“그러니까 너 혼자 가라고.”
“…….”
한 자, 한 자 힘을 주면서 말하는 온태양.
그러고는 몸을 홱 돌리는 것이다.
그를 붙잡으려던 조아라의 손길은 깜짝 놀라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당황해하면서 앞머리를 연신 쓸어넘겼다.
“아, 씨….”
노은하 사단을 본다.
그리고 멀어지는 온태양을 본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저울질을 한 그녀는 끝내 은하와 친구들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애들아, 정말 미안해! 야! 온태양! 너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 좀!”
조아라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 온태양에게 뛰어갔다.
그녀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확인한 온태양의 입가가 위로 올라간다.
네가 그럼 그렇지 하고 말하듯이.
한편, 바람과 달리 온태양은 물론 조아라까지 놓친 은하는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쟤네들이 따라왔으면 아마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을 거야.”
“흠, 안 와서 다행이네.”
“그냥 아라만 오지….”
민지는 아무 미련도 보이지 않고, 민호는 단호하게 제 의견을 말했다.
은우는 다소 아쉬워하는 눈치였고.
다른 친구들의 반응도 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뒤풀이를 벌이기로 했다.
“─얘들아! 그럼 우리 당연히 술도 마시는 거지? 여기 파전골목이 꽤나 유명하다는데 가보자! 나 막걸리도 한 번 마셔보고 싶었어!”
한편으로 인어는 시끄러울 정도로 신이 났다.
성량도 커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두 사람의 부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이나.
☆
뒤풀이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는 동아리 부원들도 있었다.
임원들은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서 신속히 아카데미에 복귀해야 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었다.
마침 할 일이 없었거나, 처음부터 술을 마실 생각으로 동아리를 나온 학생들이 은근슬쩍 자리를 더했다.
“어…? 뭐야!? 선배는 아카데미에 보고하러 가야 한다면서요!”
“야! 언제는 너희끼리 마신다면서, 동아리 애들을 다 끌고 가냐? 이럼 누가 감독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가 감독하러 온 거야. 너희, 술을 마시는 건 상관없는데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셔야 하는 거 알지? 여기서 또 사고를 쳤다가는 동아리 망하는 수가 있다?”
회기역 인근 파전골목.
머리 위로 그릇 안에 남아 있는 막걸리 몇 방울을 떨어뜨린 파랑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선배 몇 명을 발견했다.
학생들은 동아리 임원진의 등장을 격하게 반겼다.
“에~이, 선배들! 은근슬쩍 앉으면 하나도 재미없죠! 당연히 벌주부터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편, 아리엘은 중등아카데미 출신 학생들을 무서워하는 일 없이 편히 그들을 대했다.
다짜고짜 손에 그릇을 쥐어주고는 막걸리를 콸콸 따라주었을 때에는 그들의 입이 크게 벌어질 정도였다.
“…쟤 진짜 잘 노네.”
은하는 막걸리 두 병을 들고서는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춤을 보이는 그녀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리엘을 닮았으면서 어딘가 영 딴판이었다.
아리엘의 성격이 밝기는 했지만….
점잖다는 인상이 더 강했었는데.
더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것인지 진파랑이 입에는 막걸리 병을 물고, 양 손으로 막걸리 두 병을 든 채로 등장했다.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박수를 하고, 두 사람은 박자에 맞춰서는 해괴한 춤을 선보였다.
“아! 아! 시형이가 노래 시작한다! 동네 한 바퀴~!!”
“오오오! 앞으로 나와, 나와!”
“노래? 나 노래도 짱 잘 부르지!”
이제는 강시형까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괜히 분위기라도 망칠 것 같아서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을 잡고 있던 은하는 허허 웃었다.
그가 앉은 테이블에는 조용히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친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진파랑 저거…. 저러다 저번처럼 뒤로 자빠지게 생겼네.”
“저 형은 바보라서 다쳐도 괜찮아. 근데 이거 맛있네. 밤 맛으로 하나 더 가져올까?”
“그래, 네가 가져와.”
“이거 너한테 막걸리 따라주다가 바닥이 난 거야. 그러니까 네가 좀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사람이 가져오는 거지, 뭘. 나야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
떠들썩한 분위기와 동떨어진 채.
은하와 민호는 별 말을 하지 않고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두 사람은 유치하게도 누가 술을 가져오느냐로 눈치싸움을 벌였다.
“너, 스승님한테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야?”
“스승은 개뿔…. 대체 술자리에서 스승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목민호 많이 컸어.”
“도발해봤자 소용없다.”
결국 패자는 그릇이 바닥을 드러낸 은하였다.
목민호는 승자의 미소를 보이고는 턱짓으로 술이 들어 있는 냉장고를 가리켰다.
하지만 은하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은우야!!”
“응?”
때마침 은우가 테이블을 바꾸려고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다.
은하는 민호를 도발하는 시선으로 차은우를 불렀다.
“거기서 밤 맛 좀 꺼내주라.”
“응? 알….”
“아니야, 은우야. 내가 할게.”
은우는 아무 불만도 표하지 않고 냉장고로 걸어가려 했다.
결국 큭 하며 침전음을 삼키고 만 목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
이어서 그가 같은 맛의 막걸리를 한아름이나 가져왔다.
은하를 내려다보고는 코웃음을 친 민호가 자리에 앉았다.
“…이걸 뭐 이리 많이 가지고 와?” “네가 다 먹으라고 꺼내온 거니까 이건 무르는 거 없기다.”
“야, 이건 나만 마시는 게 아니라 너도 마셔야 하는 거야.”
“노은하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걸친 민호.
테이블에 몸을 기울여서는 은하의 그릇에 막걸리를 콸콸 따라준 그가 말을 이었다.
“─날 불러주는 사람은 많거든.” “뭐?”
“내가 이 동아리 1학년 대표란 걸 기억 못하는 건 아니지?”
목민호가 제대로 건배도 하지 않고 자신의 그릇에 남아 있던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민호야! 이리 와서 너도 한 잔 해야지! 미래의 동아리 회장이 어? 이리 와서 건배사 좀 해보자고!”
“네, 지금 가겠습니다. 봤지?”
목민호가 콧대를 세웠다.
그러고 너무나 위풍당당한 자세로 은하의 테이블을 떠난다.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민호를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환대를 받은 민호가 입을 뻥긋거리며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봤냐?
그 말을 끝으로 은하를 버려두고 다른 테이블을 전전하는 목민호.
어처구니가 없어진 은하는 혼자서 막걸리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 자기. 왜 외롭게 혼자 술을 마시고 그래? 근데 처량한 모습이, 정말 느낌 있다. 나 앉아도 되지?”
“그래, 거기 앉아.”
다행히 화장실을 다녀온 봉구래가 혼자 있는 은하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았다.
구래는 아무 거리낌도 보이지 않고 민호가 마시던 그릇에 술을 받았다.
“자, 짠.”
“짠.”
비음을 섞어 먼저 건배를 권하는 봉구래.
은하는 잔을 맞댔다.
“어?”
그사이 윤이별도 화장실을 나오다 은하를 발견했다.
구래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한편 은하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지금 돌아가더라도 자리가 다시 섞였을 텐데, 여기에서 마시다 가.”
“음…. 그, 그럴까?”
“그래, 여기 앉아. 이 자리도 사실 널 위해 비워둔 거야. 앉아, 앉아.”
“아유, 맞아. 은하가 아까부터 계속 옆자리만 지키고 있었다니까?”
“…정말? 응, 거기로 갈게!”
은하가 재치 있게 말을 꺼냈다.
봉구래는 우아하게 손사래를 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가만히 선 채로 고민을 하고 있던 윤이별은 이내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다시 막걸리가 오고 갔다.
뜻하지 않게도 두 사람과 친해질 기회를 얻은 은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그때.
“─너희끼리만 마시면 맛이 없지 않니? 나도 마셔도 되지?”
“노은하. 치사해. 나 너무 서운해? 세상에 밤 막걸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게 어디 있어!”
불쑥 튀어나온 아리엘은 물론이고, 기척도 없이 나타난 정하양이 냉큼 남아 있던 빈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자기, 진짜 인기 많구나?”
구래는 어쩌다 양옆에 여자를 낀, 추가로 아리엘에게도 시달리는 그를 보며 말했다.
☆
사건은 어찌어찌 무마했다지만.
그럼에도 아카데미는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세 사람은 반성문을 제출하고 교내봉사를 수행하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온태양은 마나 컨트롤 수업을 이수해야 했다.
“그래서 나 빼고 너희들끼리 아주 재미나게 놀았겠다?”
“그러면 너도 동아리에 가입했으면 됐잖아.”
“그 동아리를 했다가는 걸핏하면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될 것 같아서 사양이야. 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다음에는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나도 좀 불러라.”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유도준과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
은하는 전 주에 있던 소식을 접한 유도준을 무시했다.
유도준이 정말로 샘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가 이번에 관심을 주는 애들, 나도 만나봐야 할 거 아냐. 나도 일단 명색이 노은하 사단으로 통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게 아니라 걔네들을 네 쪽으로 포섭하려는 생각인 거겠지.”
은하는 그대로 다음 수업을 들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수업이 없는 유도준은 그를 위해 배웅이라도 해주겠다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은하는 짜증을 내는 한편,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도준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어? 쟤 온태양 아니냐? 옆에 상아색 머리 여자애가 있는 걸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맞아. 근데 저기는 교무실인데 쟤네가 왜 저기에 있는 거지?”
그러던 도중.
은하는 저 앞에서 태양과 아라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교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도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방관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온태양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더라고. 은하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뜻인데?”
“항상 논란을 달고 산다는 거야. 만약에 네가 쟤를 끌어안았다가는, 괜히 피곤해지기만 할 걸? 어쩌면 쟤를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어.”
온태양,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은하는 도준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두 사람을 향해 나아갔다.
방향을 바꾸는 일 없이 직진하자, 두 사람은 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으, 은하야. 안녕?”
“…….”
두 사람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그리고 온태양은 눈에 힘을 주며 은하의 앞에 섰다.
그가 입을 연다.
“─동아리 탈퇴 처리를 한 참이야. 나뿐만 아니라, 아라도.”
“뭐? 아니, 왜….”
“네 말대로 내가 잘못을 한 거니, 내가 책임을 져야지. 책임을 지고서 동아리를 탈퇴하는 거야.”
온태양의 비아냥거림.
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는 진즉에 반성문으로 타협을 보았다.
온태양이 동아리를 탈퇴해야 하는 명분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었다.
“애초 나하고 성격이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 날 좋아하지 않는 애들도 많은 것 같고 말이야. 그러니 내가 너희를 위해서라도 나가줘야지.”
은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냉정하게 온태양의 모습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었다.
“그런 식으로 날 평가하는 것처럼 보지 마.”
“…….”
“너는 정말…, 너밖에 모르는 구나.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나약함을 거짓말로 감추고.
수치심을 오만으로 감추고.
마치 시련을 딛고 일어난 것 같은 얼굴을 한 온태양이 은하를 보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상해 보이던 의 얼굴은 은하를 보며 적의로 물들어갔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 이 세상은 너희 같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돌아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행동했다가는 언젠가 벌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거다.”
이윽고 얼굴을 가까이 한 온태양이 은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고 그를 지나쳤다.
은하는 그때까지도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여, 은하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온태양에게 대꾸하기로 했다.
“─맞아. 세상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법이지.”
온태양이 멈칫한 게 느껴졌다.
은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학생들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유도준이 조용히 보폭을 맞췄다.
“근데 이제는 그렇게 안 될 거야.”
세상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세계관.
그러나 과학적인 세계관은 마나가 불러일으킨 재앙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세상이 멸망했다.
당연히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세계관은 의미를 잃었다.
“뭐, 세상이 뭘 중심으로 도는지, 그게 뭐가 중요해? 결국 세상이나 태양은 은하 속에 들어 있는 건데. 안 그래?”
“…넌 가만히 있어. 창피하니까.”
온태양을 포섭하느냐 마느냐.
은하는 그동안 숱한 고민을 했다.
그럼에도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나 확실하지 않아도 어렴풋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면─.
─너무 온태양에게 집착하지 말자.
억지로 친해지지 말고 보류하자.
라는 이명에.
온태양이라는 이름에.
은하는 더 이상 하염없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할 일이 그밖에 많기도 했거니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온태양에게 신경을 쓰다가 온태양의 다른
파티원들을 놓칠 수 있었다.
“폰.”
“어?”
“폰 좀 줘봐.” “어…, 응.”
온태양의 대꾸는 없었다.
은하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기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부터 멍하니 서 있던 조아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가 말을 걸 줄은 몰랐던 것인지, 정신을 차린 조아라가 어수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의 스마트폰을 받아서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전화를 걸어, 그의 스마트폰으로 그녀의 전화번호가 나오게 했다.
“내 번호 저장해놨어. 잘못 눌러서 단축번호 1번으로 설정이 됐는데, 이건 네가 알아서 하고.”
“…뭐? 1번? 아니,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이렇게 마음대로 번호를 따가는 게 어디….”
“온태양 저거. 내가 봤을 때 아마 사고 많이 치고 다닐 거야.”
은하는 대뜸 그녀의 말을 잘랐다.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았을 때도 온태양이 불합리에 대항하기 위해서 사고를 치고 다니기는 했다.
그녀에게 번호를 준 건 이를 위한 대비였다.
“만약에 너희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모르는 일이 있으면 물어보는 것도 괜찮고.”
“…음….” “그리고 너무 최가인한테 기대려고 하지 마. 괜히 일 처리 추잡해질 수 있으니까 나한테 연락해.”
“너 무슨 꿍꿍이니?”
“너희랑 친해지려는 꿍꿍이.”
“…후, 훅 치고 들어오면 누가 뭐 두근거릴 것 같아!?”
“뭔 소리야. 아무튼. 알았지?”
조아라의 얼굴이 빨게진다.
은하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다시 뭐라 말을 하려 하는데─.
“─조아라! 안 오고 뭐해!?” “태, 태양아…! 야! 같이 가! 지금 갈게!”
저 멀리서 온태양이 화를 내면서 그녀를 부른 것이다.
당황한 조아라는 우왕좌왕하다가 은하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뛰어가 버렸다.
은하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등아카데미야. 여기에 있다 보면 결국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조아라는 언젠가 내 도움을 받게 될 거야.
선의를 가장한 저의다.
어찌 보면 밑밥 깔기다.
시간을 듬뿍 들여야 했다.
일전에 은우에게 독을 심었듯이.
은하는 차분히 그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낚싯대는 하나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
“야, 너 수업 지각한 건 아냐?”
“나도 알거든. 그냥 빠지지, 뭐.”
“지금 에브리파인에서 은하 네가 여자 번호를 땄다는 글이 올라온 건 알고 있고?”
“…괜찮아. 누나랑 은애만 모르면 되는 일이니까.” “와우! 지금 톡방이 불타오르는데 너 얘네들 감당할 수 있겠어?”
“…….”
“게다가 얘네만 아니라 지금 네가 작업하고 있는 애들도 있지 않냐? 걔네들 성격은 괜찮아?” “…그거 삭제 못하냐.”
“우리,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생각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바닥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유도준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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