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35
“드디어…, 도착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최은혁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그만 억제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울먹거림을 삼킨 은혁은 배에서 내려 제주도에 발을 내딛었다.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하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다다른 그는 이국의 땅을 밟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열대지역에서나 볼 것 같은 야자수가 빼곡히 서 있는 모습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학생들도 모두 감개무량한 기분인 듯싶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내가…. 고작 짜장면 한 그릇을 먹겠다고 제주도까지 와야 해…?”
물론, 탄성을 터뜨리고 난 이후에 허망함을 느끼는 학생들도 많았다.
은혁도 그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오는 동안에도 미션을 치른 그는 몸도 마음도 몹시 지쳐 있었다.
얼른 짜장면이나 먹고 집에 돌아가 푹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때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서나가 일침을 가했으니─.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서나야, 너….”
“아직도 교관님들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배에서 내리기 직전, 매점에서 산 검은 선글라스를 쓴 진서나.
얼굴보다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빨대로 음료수를 쭉쭉 빨아마셨다.
꼭 피서라도 온 듯한 차림이었다. 한편, 그녀를 따르는 아인 학생들도 그녀와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근데 서나야, 너 모습이….”
“이거? 제주도는 일사광선이 세서 혹시 몰라서 매점에서 산 거야.”
“어어…, 그렇구나.”
태연자약해하는 여우 진서나.
은혁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종평을 치르는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서나는 은혁의 머리에 밀짚모자를 씌워주며 당당해했다.
“은혁이 너는 은하가 누누이 말한 말이 기억이 나지 않니?” “대장이 말한 거? 음, 너무 많아서 뭘 말했는지….”
“쉴 수 있을 때는 쉬라고 했잖아. 이렇게 보여도 나는 놀고 있는 게 아니야. 다음 미션에 대비해 체력을 온존하기 위해, 쉴 수 있을 때 쉬고 있는 거지.” “그, 그렇구나….”
서나가 에헴 하며 가슴을 편다.
최은혁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꺼낸 말이 맞기는 했으나, 그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쉬는 게 아니라 노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러나 괜히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트집을 잡힐 수가 있었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녀에 대해 숙지한 은혁은 이대로 침묵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서나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너희가 착각하는 게 있어.”
“착각? 그게 뭔데?”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취해 종평이 모두 끝난 걸로 알고 있다는 거야.”
“…거의 끝난 거 아니야? 이제는 짜장면만 먹는 것만 남았잖아.”
“에휴, 은혁이 너도 그러는 거니? 잘 생각해봐. 우리가 짜장면을 먹는 장소가 어디지?”
“…마라도.” “여기는 어디?”
“…제주도지.” “그러면 이제 마라도로 가야 할 거 아니야. 교관님들이 걸핏하면 말한, 우리나라 최남단으로.”
“…….”
“그럼 교관님들이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한테 뭐라고 말하겠니?”
서나가 타박했다.
그제야 그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이 창백한 얼굴을 보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김칫국을 마시기에는 너무 일렀다. 제주도에 도착했다고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마라도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 주목─!!””””
서서히 아카데미의 방식을 기억한 학생들이 얼굴을 굳히는 가운데.
저 앞에 서 있던 교관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제주도는 중심부에 있는 한라산이 적색던전으로 변모하면서 외곽으로 거주구역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그만큼 교통이 아주 좋지 않아서, 적색던전을 가로지르지 않는 이상 섬을 빙 돌아서 이동해야 한다!”
“마라도로 가는 배는 서귀포항에서 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제주도항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항구지.”
“다시 말해, 서귀포항으로 가려면 섬 외곽을 돌아서 가거나 한라산을 가로질러서 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거다!”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서나가 진즉에 머리에 밀짚모자를 씌워주지 않았더라면 은혁은 아마 교관들의 말을 듣고 실신했으리라.
이미 몇몇 학생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서귀포항으로 가는 방법을 두고 선택지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너희가 어느 쪽을 골라도,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클랜이 협조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다들 마음의 준비는 됐나!?” “”””아니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학생들은 한데 입을 모아 외쳤다.
그럼에도 교관들은 꿈쩍하지 않고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한라산을 지나는 선택지.
하나는 섬 외곽을 도는 선택지.
전자는 난이도가 높은 선택지요, 후자는 시간이 배로 걸릴 법한 선택지였다.
“이번에는 특별히 너희들을 위해서 선택지를 미리 알려준 거야. 그러니 너희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교관들.
학생들은 모두 치를 떨었다.
은혁 역시 살의가 치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봐, 내 말이 맞았지? 그러니까 쉴 수 있을 때 편히 쉬었어야지.”
반면에 서나는 음료수를 쭉쭉 빨며 삼각 귀를 쫑긋거렸다.
물론, 그녀 또한 종평을 치러야 할 입장이었지만.
한편, 그 시각 조아라는─.
“─휴, 서나 말을 듣기를 잘했어. 태양이 눈치도 보여서 뭘 사먹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이걸로 태양이한테 큰소리칠 수 있겠네.”
교관들의 행패에 분개해하고 있는 온태양과 다르게.
태양의 눈치를 피해 배에서 서나와 즐겁게 놀았던 그녀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쉬어둬서 다행이다.
☆
요코하마로 가는 배가 출항했다.
학생들은 바다 위에서 5일에 걸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연히 편히 쉴 틈 따위는 없었다.
항해하는 여정도 종평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단지 잠시 쉬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오늘 저녁 즈음에 미션을 받게 될 터였다.
“그때까지 푹 쉬어둬야지, 뭐….”
배에 올라타자마자 깨끗이 샤워한 은하는 머리 위에 수건을 얹은 채로 중얼거렸다.
배 후미.
점점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던 은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을 생각하더라도 일본을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생겼네.
강릉으로 다녀왔으면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쉴 수 있었을 텐데….
종평이 끝나는 대로 바로 수업을 들으러가게 생겼어.
후회해도 이미 늦었지만.
은하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회귀를 하고 나서 가장 큰 후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왕 이리 된 거,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지.”
은하는 수건으로 아직 젖은 머리를 털었다.
바다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은 꽤나 드문 일에 속했고, 지상전에 비해서 상당히 어려운 축에 속했다.
필시 자신이나 친구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
무엇보다 실전감각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될 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훈련해야 할 게 있으니….
그거나 연습해야겠네.
은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박에는 마나관리기구 등급으로 A급에 속하는 클랜의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전 이국종 교관이 말하기를, 저들을 비롯하여 교관들이 5일 동안 개인교습을 해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라면 몰라도 친구들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얻게 되리라.
물론, 은하는 기회를 봐서 눈치껏 개인교습을 빠지기로 했지만.
바로 그때.
“서영 누나?”
플레이어들의 상태를 훑어보던 중, 그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신서영을 발견했다.
치렁거리는 은색 귀걸이가 햇살에 반짝인다.
신서영, 의정부 탈환전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많은 사람들을 지켜낸 영웅.
그녀는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경비를 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연신 그녀를 힐끗거릴 정도로.
대체 무슨 일이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녀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하는 아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받으며, 동네에 사는 누나를 대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교관이 부르는데 주머니에 손이나 넣고 오고…. 하…, 내가 말을 말지. 할 말 있으니까 따라와.”
“네.”
“그리고 머리는 대체 그게 뭐니? 말릴 거면 제대로 말리든가. 거기 가만히 있어봐.”
마찬가지로 동네에 사는 철부지를 대하는 것처럼 한숨을 쉬는 신서영.
은하의 머리에 있던 수건을 들춘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윽고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완전히 말렸다.
은하는 머리가 말끔히 세팅된 것을 보고는 만족해했다.
“이거 괜찮네요? 이번 종평 동안은 누나한테 말려달라고 하면 되겠네.”
“얘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네 드라이기니?”
신서영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져 있는 반면에 정작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일단 안에 들어가서 말하자.”
신서영이 그를 선실로 안내했다.
교관들에게 배정된 선실이었다.
선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선실과 신서영에게 배정된 선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자신은 강시형과 같은 방을 써야 했건만.
그녀는 독실을 배정받은 것이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니? 너는 학생이고, 나는 교관인데 당연한 거 아니니?”
이내 은하의 반응을 확인한 그녀는 아무렴 어떠냐는 듯이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부탁할 거요?”
“그래, 이번 종평 때문에.”
자리에 앉은 신서영이 한 쪽 팔을 휙 하고 펼치자,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두 사람을 감쌌다.
소리가 외부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결계였다.
“사실 이번 종평은 단지 일본에서 짬뽕만 먹고 오는 게 다가 아니야.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아서 애들한테 말하고 있지 않았던 건데…. 일단 은하 너한테는 말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진지한 어조로 말을 꺼내는 그녀.
신서영은 이번 종평이 어떤 식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인지 설명했다.
한국에 호의적인 일본의 카구야는 단순히 한국의 아카데미 학생들의 입국을 허락한 게 아니었다.
학생들의 입국을 허가하는 대신에 학생들은 일본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방문해야 했다.
학생들 간의 친선교류인 셈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카구야도 결국 위정자다.
그녀가 한국에 호의적이라 해도, 위정자의 입장에서 아무 이득 없이 학생들의 입국을 허가할 리 없었다.
은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그런 의미에서 친선교류라는 것은 양국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친선교류, 좋지. 경험이 많을수록 그만큼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요?”
“문제는 친선교류를 하면 어쩌다가 친선경기도 하게 되지 않겠냐는 거지.”
“아.”
은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신서영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저희가 질까봐 그러는 거예요?”
“얘가 무슨 소리야?”
그러나 신서영은 그의 예상과 달리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선녀님도…. 우리는 너희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애초에 친선경기가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이라서 아직 애들한테도 말하지 않은 거야.”
“뭐야. 그럼 뭐가 문제에요?”
“너. 노은하 너. 네가 문제지.”
은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은하의 코를 콕콕 찔렀다.
신서영이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일본으로 가는 애들 이름을 선녀정부에 보냈지. 그랬더니 글쎄, 선녀님이 나한테 대뜸 전화를 건 거 있지?” “뭐라고요?”
“이번 종평, 기대하겠다고. 너희들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게 다예요?” “아니.”
신서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그녀가 허공을 휘젓던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더니.
“네 활약, 기대하겠다고. 일본 애들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주라고.”
“…네?”
“뉘앙스로 생각해보면 친선경기는 아무래도 거의 합의가 된 내용인 것 같더라.”
“허….”
“선전 차원에서는 좋은 일인 거지. 우리나라 플레이어가 일본 놈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은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선녀 임가을이 자신을 콕 집어 말할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 그녀의 속셈이 너무 빤히 보였다.
신서영의 말대로였다.
국민들의 자긍심 고취.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임가을이 그런 게 있기는 했지.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의 기프트 소지자를 가장 늦게 배출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다.
하물며 임가을은 정치인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살던 대배우인 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정권 초창기에 중국의 항아와 일본의 카쿠야에게 뒤처지는 인상을 받고는 했다.
실제로 항아와 카구야도 임가을을 같은 선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고.
더군다나 이전 삶에서만 하더라도 그녀는 국내에서 터진 재앙 때문에 무능하다는 이미지로 낙인찍히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제일 예쁘거든?’
결국 이전 삶에서는 자랑할 것이 그런 것밖에 없던 그녀였다.
아, 하나 더 있기는 했지.
다른 나라와 달리 임가을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하백련이 있었던 것.
워낙 자존심이 강한 그녀였으며, 여배우로서 살았다 보니 과시욕이 센 그녀였다.
물론, 카구야나 항아도 그랬지만. 어찌 보면 위정자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엄청 신났겠네요.”
“그래, 신난 것 같더라. 생각해보면 네가 선녀님이랑 인연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연이에요, 우연.”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번 삶에서 선녀 임가을은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가고 있었으며, 아카데미 학생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파악하고 있었다.
하여,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같은 의 기프트 소유자인 카구야에게.
나, 이렇게 잘 나간다고.
가만 보면 이 사람도 진짜 애가 따로 없어….
물론, 한 나라의 수장인 임가을은 다른 속셈도 가지고 있으리라.
이번 일을 계기로 선녀정부에 대한 지지율을 올릴 생각이라거나.
그럼에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닐 테지만.
“뭐, 카구야도 승낙한 이야기라면 그쪽도 생각하고 있는 게 있겠지. 이길 거라고 자신하고 있는지도.”
“그렇겠죠.” “근데 나는 걔네들이 자신하더라도 우리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너 때문에, 너, 너.”
“…근데요?”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자 신서영이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일단 친선경기란 말이야. 이기더라도, 상대 국가의 위신까지 신경을 써줘야지.”
“그렇죠?”
“그러니 은하야, 이렇게 부탁할게. 제발 철저하게 이기지 말아줘. 아마 선녀님은 네가 그러길 바라겠지만, 그건 절대 안 돼. 너도 알고 있지?”
재빨리 고개를 숙이는 신서영.
은하는 그녀의 정수리를 보고서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제야 다른 교관이 아니라 그녀가 친선교류로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대략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까.
신서영은 행여나 상대국의 위신에 그가 흠집을 낼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은하는 황당하기만 했다.
자신에게 신용이 없는 듯했다.
그가 그런 식으로 말을 했더니─.
“─은하 넌 맨날 그렇게 말하면서 사고만 치고 다니잖아.”
“…….”
“네가 어째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 이렇게 부탁하는 거라고. 알았어?”
신서영의 일침.
은하는 선뜻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지은 죄가 많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짐하건대, 그도 채신머리는 있었다.
내가 걔네한테 왜 그러겠어?
나중에 백련이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는데.
은하는 자신했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웬 조건?”
다만 은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것을 이용해 이득이나 취하기로 했다.
은하는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에게 손가락 두 개를 내밀어보였다.
“하나는 이번 종평 성적은 무조건 만점으로 주기.”
“얘가…. 성적이 뭐 흥정이니?”
“가서 일본 애들한테 이길 건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후…. 그래, 좋아. 대신 네가 지면 0점인 줄 알아.”
“오케이.”
질 리가 없다.
은하는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나머지 하나는 전 이제 미션에서 빠질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너 혼자 놀겠다는 거니?”
“저한테 미션은 도움도 안 되니까 그냥 저 혼자 훈련이나 하려고요. 아, 바다에서 나오는 몬스터들하고 싸울 생각이니까 그건 참가할게요.”
“후….”
은하는 싱글벙글 웃었다.
몇 년을 알아왔는데.
그는 신서영이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푹푹 쉬며 앞머리를 띄워 올리는 것도 어디까지나 화가 난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좋아. 내 권한으로 네가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가할게. 만약 놀면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걱정마세요.”
놀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은하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사람 귀찮게 만드는 미션을 할 바에 차라리 홀로 훈련하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편하게 애들을 굴릴 수 있겠어.
미션에 치이고, 자신에게 치이고.
은하는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