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443
카나가와에서 코쿤의 보호를 받는 도시는 요코하마가 유일했다.
일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구야가 걸핏하면 최소한의 호위로 요코하마를 방문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만큼 안전하고 문화시설이 많은 도시였다.
“별 거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인프라가 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구나. 역 주변에 백화점이 몇 개나 있는 거야….”
“세 개.”
“그래? 쇼핑하는 재미는 있겠네. 그럼 우리 공주님,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한서현과 최예장은 그곳에 있었다.
요코하마역에서 내린 최예장은 곧 신사처럼 허리를 숙이며 한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날 따라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주님이라니.
순간적으로 혐오감이 인다.
그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손을 잡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한서현은 그의 시선을 피해 무작정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바다가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백화점도 전망이 좋구나.”
“카구야 님이 가장 좋아하는 데야. 입점해 있는 브랜드가 트렌드하고, 바다를 내다볼 수 있으니까.”
마루이시티 요코하마.
건물 최상층에서 내린 두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최예장은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보고 크게 감탄했다.
반면 한서현은 주변을 안내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카구야의 손에 이끌려 몇 번이고 요코하마에 들린 한서현은 감상이 덜했던 것이다.
“좋네. 이런 곳에서 너랑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최예장이 바다를 뒤로하며 말한다.
한서현은 살며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에도 최예장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이 웃었다.
“위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가면서 뭐가 있는지 둘러보자.”
“그래.”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해줘. 여기까지 왔으니 너한테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거든.”
“나는 괜찮아.”
최예장의 호의 어린 시선.
한서현은 감정을 죽이며 마다했다.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선물 같은 걸 받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이 무거운 일도 없다.
“왜? 내가 약혼자한테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알았어.”
“그래, 뭐 갖고 싶은 건 없어?”
“없는데….”
하지만 그녀는 다음 말을 듣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없었다.
“정말 하나도 없어?”
“…뭐든 좋아.”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고른다?”
“그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최예장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샅샅이 살피던 시선은 이윽고 그녀의 손에 걸려 있는 팔찌에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그 팔찌, 아직까지도 하고 있구나.”
“…….”
한서현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그러고는 팔찌를 차지 않은 손으로 팔찌를 찬 손목을 감춘다.
그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은 최예장은 눈을 가늘게 모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팔찌인데…, 서현이 너하고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
“그래, 우리 팔찌나 구경하러 가자. 너한테 잘 어울리는 팔찌가 아마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
“내가 선물해주는 팔찌, 차줄 거지?”
마침 시험을 하듯.
최예장이 신사처럼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한서현은 입을 열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어?”
최예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서현은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그의 눈에 담긴 색을 읽는다.
의심과 욕망의 색이다.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저급한 색이 그녀의 세상을 물들인다.
─싫어.
싫다.
말하고 싶은 바를 토하려던 그녀는 이내 시야를 가득 메운 색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 색을 볼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느껴지는 듯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직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할게.”
“너 정말 왜 이리 예쁘니? 내 말도 이렇게 잘 듣고.”
머리 만지지 마.
그녀는 내심 머리가 헝클어지는 걸 짜증을 내며 그의 손길을 참았다.
스스로 되뇐다.
자신은 시리우스의 직계라고.
“아, 엘리베이터 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최예장은 제일 먼저 그녀를 안으로 들이려고 손짓했다.
바로 그때.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그녀를 안내하려던 최예장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한서현의 발걸음도 멈췄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던 그녀는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쿵
무언가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안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소리는 안이 아니라 밖에서─.
“”─…….””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한순간 정신이 나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저, 저게, 뭐야….”
떨림이 가득한 목소리.
최예장이 벌벌 떨며 물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심정이었다.
쿵쿵
유리창 저 멀리서.
바다 위에 서 있는 거대한 형체가 요코하마의 코쿤 앞에 있었다.
한 쪽 팔만 있는, 소의 머리를 한 거인이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주변에 몰려 있는 자잘자잘한 검은 형체들.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몬스터다.
쿵
소의 머리를 한 몬스터가 코쿤을 두드린다.
평상시에는 투명한 색으로 돼 있는 코쿤은 충격을 받아 반구형의 형태를 드러냈다.
괴물은 그것을 몇 번이나 두드려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코쿤이 흔들리는 소리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방불케 했다.
이윽고─.
─쩍 쩌적
코쿤에 금이 갔다.
한서현은 그것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최예장도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괴물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므어어어어어어
소의 머리를 한 몬스터가 운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꼭 웃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놈은 분명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놈이 팔을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녀석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하, 하지 마─!!”
최예장이 큰소리로 절규한다.
하지만 놈은 그의 절규를 비웃듯이 마침내 추어올린 손으로 균열부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
코쿤이 무너졌다.
군세가 몰아친다.
☆
단순한 대규모 편재다.
몬스터만 죽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가던 시민의 배를 가른 몬스터를 쓰러뜨린 은하는 이것이 단순한 편재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코쿤이 무너졌다고!?”
“응! 내가 위에서 보고 온 거니까 확실해!”
은하는 저도 모르게 소리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시미야 카에데의 품에 안긴 채, 높은 위치에서 요코하마를 내려다본 정하양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다행히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은 모양이야. 한쪽 방향이 무너진 다음, 코쿤이 다시 수복됐어.”
정하양이 전했다.
거대한 몬스터가 팔을 휘둘러서는 코쿤의 일부를 부숴버렸다고.
그러나 다행히 완전히 부서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단지 일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흐트러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지만.
코쿤이 한 번 흐트러진 영향으로 대규모 편재가 발생한 거야.
그런데다 코쿤이 수복되는 사이에 외부에서 몬스터들이 들어온 거고. 바다에서 들어온 거라고 치더라도, 여기까지 진입했다는 것은 수가 꽤 많다는 뜻일 텐데….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아다닌다.
일본의 고유 몬스터다.
놈들이 하늘을 뒤덮듯 존재했다.
“꺄아아아악!!”
하늘 위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까마귀형 몬스터가 돌연 하강해서는 머리를 숙여 도망치던 시민 한 명을 낚아챘다.
리볼버 쏜
은하는 재빨리 멀어지는 놈을 향해 마나로 이루어진 가시를 쏘았다.
까마귀가 푸드덕대는 소리를 내며 추락한다.
그 순간, 차은우가 보호마법으로 떨어지는 시민을 받아냈다.
몬스터들이 바다에서 온 거라면…. 우리가 타고 온 배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어.
다행히 다른 애들은 미션 때문에 시내 어딘가에 있어 무사하겠지만, 걔네들이 겁을 먹고 배로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야.
은하는 아직 숨이 붙은 몬스터를 찌르며 생각에 빠졌다.
몬스터들이 침입했다.
필시 해안가에는 많은 몬스터들이 바글거리고 있으리라.
자신이라면 모를까,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이나 다른 학생들이 해안가로 향하는 것은 위험했다.
“아리엘. 지금부터 돌아다니면서 아카데미 애들한테 내 말을 전해.”
“응. 뭐라고 전할까?”
“되도록 해안가에서 멀어지라고. 몬스터들의 침입경로는 바로 거기일 테니까.”
“오케이!”
아리엘에게 전언을 전달한 은하는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한 마리를 죽인 것으로 머리 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놈들이 적의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내 그들이 붉은 눈을 빛내면서 떼를 지어 은하에게 날아들었다.
은하는 피하지 않았다.
검은 가시나무에 마나를 두 차례 압축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피하지 않아도─.
─독박쓰기
원 모어 타임(One more time)
뒤에서 달려 나와서는 놈들을 향해 큼지막한 방패를 내미는 강시형.
마나를 양분으로 점점 지름을 넓힌 방패가 강시형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늘로 솟은 녹색의 기둥.
기프트 과 합쳐진 마법이 몬스터들의 공격을 강시형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차은우의 보조마법이 놈들의 공격에 뒤로 밀려나는 그를 지원했다.
기프트 의 힘을 이용해 조금 전에 강시형이 전개한 마법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지닌 마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잘 했어. 강시형, 뒤로 비켜.”
“악!”
그리고 두 사람의 협력을 지켜본 은하는 흡족해하며 말을 꺼냈다.
바다 위에서 훈련한 보람이 있다.
그는 이내 강시형이 옆으로 빠지는 동시에 옅은 금색으로 물든 칼날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플래티나 크로스
다섯 번을 압축한 것보다 약하다.
그러나 두 번으로 압축한 마법은 머리 위를 가득 메웠던 몬스터들을 단숨에 일소시켜 버렸다.
“후….”
일단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구한 은하는 저 멀리 있는 편재를 느끼며 긴 한숨을 흘렸다.
설마 일본에서 이만한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은하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은하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저들이 굳건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것이다.
그 시선을 모를 리 없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내 어딘가에 있을 애들을 찾아서 교관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면─.”
이곳은 이국의 땅이다.
게다가 자신과 친구들은 학생이다.
따라서 자신과 친구들이 이 나라의 국민들을 지켜야하는 의무는 없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은하 혼자였다면 사람들이 어떻든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겠지만, 친구들은 아니었다.
따라서 파티의 리더라면 소속원의 의견도 반영할 줄 알아야 했다.
무엇보다 파티를 이끌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하도록 하자. 그래도 이것 하나는 명심하도록 해. 그 사람들 목숨보다 너희들이 더 중요하다는 걸.”
친구들이 당차게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표정을 바꾸며 파티 리더로서 파티원들을 불렀다.
“정하양.”
“응.”
“하양이 너는 몬스터가 적은 길을 우선해서 찾아줘. 그리고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길도 찾아주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
“윤이별.”
“아, 응!”
“너는 주변에 몬스터에게 공격받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줘.” “…응, 해볼게.”
“차은우.”
“응!”
“이제부터 애들 몸 상태는 네 손에 달려 있는 거야. 버프를 걸어주거나, 부상자를 치료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해.”
“응, 그렇게 할게!”
“김민지.”
“응.”
“내 보조를 맡아줘. 할 수 있지? 그리고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얘가 사람을 굴리네…. 알았어.”
“봉구래.”
“응, 자기.”
“…너는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어.” “흐음, 믿음에 보답하도록 할게.”
“강시형.”
“어!”
“조금 전에 하던 것처럼 하면 돼. 잘할 거라고 믿을게.” “알았어!” “은하야! 나는 뭘 하면 될까?”
“…아리엘.”
“오우!”
“하양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하양이가 시키는 대로 해.”
“응? 그게 다야? 식은 죽 먹기지!”
“카에데.”
“어.”
“너도…, 딱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믿어. 여유가 된다면 아카데미 학생들이나 교관들을 찾아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할게.”
“…은하야, 나는 뭘 하면 될까?”
“교관님은 쉬세요.”
“어…, 그래. 나는 쉬지, 뭐….”
가게 앞에서 미션을 건넨 교관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가르치는데 재능이 있는 부류였다.
그를 제외해 파티원들에게 명령한 은하는 선두로 나섰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저 멀리서 연기가 솟구친다.
건물이 무너지고 비명이 들린다.
은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얌전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누나가 안 그럴 리가 없지.”
하늘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폭풍.
도시를 태우던 불길이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치솟았다.
폭풍이 꺼진 하늘에서 반짝이면서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마석이리라.
은하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인영을 찾고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신서영이다.
“하양아, 이제 어디로 가면 될지 알겠지?”
“응. 확인했어.”
이 재앙의 규모가 얼마나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은하는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
신서영.
그녀가 일부러 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요코하마 내에 흩어진 학생들과 교관들을 집결시키기 위해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녀의 계책은 성공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폭풍을 보고 모여들었다.
이윽고 자리에 모두 모인 사람들은 요코하마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한국 아카데미의 이름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인명구조작업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무기를 들고 싸우지 못하는 사람은 부상자들의 치유에 전념하도록 한다!”
이에 카나가와현의 마나관리기구는 정식으로 한국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시민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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